◐2006년 세계가 인정한 최고의 작가 볼프 에를브루흐
국제아동도서협의회(International Board Book for Young people: IBBY)는 2년에 한 번, 짝수 해에 ‘국제 안데르센 상’을 수여한다. 이 상은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을 기리기 위해 그의 탄생 150주년이 되던 1956년에 제정된 상으로, 전 세계의 어린이책 작가 중 두 명에게 수여된다. 아동문학 부문과 일러스트레이션 부문으로 나뉘는데, 특정 저작이 아니라 작가에게 주는 상으로 작가가 평생 동안 작업한 모든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그만큼 어린이책에서는 가장 공신력 있는 상으로 ‘어린이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며, 수상 작가에게는 생애 최고의 영예이다.
올해 3월 IBBY는 국제 안데르센 상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수상자로 독일의 그림책 작가 볼프 에를브루흐를 지명했다. 볼프 에를브루흐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로 널리 알려진 작가. IBBY는 그를 당대 최고의 혁신자, 실험가로 부르며, 그가 그림책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볼프 에를브루흐의 작품은 일견 단순하고 꾸밈없이 소박해 보인다. 하지만 때로는 매우 난해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유머러스하고 즐겁고 유쾌하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의 탁월함은 ‘꽤나 심각할 수도 있는 철학적인 주제를 놀랄 만큼 뛰어난 상상력과 독창성으로 형상화하기’라고 정리할 수도 있겠다. 그에게는 이런 별명이 어울리지 않을까? ‘유쾌한 그림책 철학가!’
여기 웅진주니어에서 그의 작품 두 편을 소개한다.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와 <못생긴 다섯 친구>. 최고의 그림책 작가,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멋진 작품들이다.
◐“자, 아줌마들, 날아볼까요? 하늘을 나는 아줌마, 마이어 부인과 함께!”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는 그 이야기 자체로도 누구에게나 즐거운 그림책이다. 그러나 오히려 어른들이, 특히 엄마들이 더 큰 위로와 만족감을 얻지 않을까 싶다. 만약 삶이 무료하고 의미 없이 느껴진다거나, ‘내 삶’에 ‘내’가 빠져 있는 것 같아 우울하다거나, 너무나 많은 걱정들로 늘 마음이 무거운 이가 있다면, 특히나 이 책은 좋은 처방이 될 것 같다. 한마디로 ‘걱정쟁이’ 아줌마, 마이어 부인이 하늘을 날며 행복해진 이야기이다.
마이어 부인은 걱정이 많다. 늘 머릿속은 먹구름이 낀 것처럼 걱정이 가득하다. 단추가 외투에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사소한 걱정부터, 비행기가 우리 정원에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엄청난 스케일의 걱정까지 그녀의 걱정은 끝이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모든 걱정을 한방에 사라지게 하는 진짜 걱정거리가 생겼으니, 바로 정원에서 아직 털도 안 난 벌거숭이 새끼 지빠귀를 발견한 것. 이제 마이어 부인은 온갖 정성을 다해 지빠귀를 키운다. 그러다 진짜 엄마 새가 그러는 것처럼 나는 것도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한 날, 마이어 부인은 지빠귀를 데리고 생전 처음 나무에 오른다. 하지만 아무리 날갯짓을 보여 주어도 따라하지 않는 꼬마 지빠귀. 지빠귀와 나뭇가지 위에 나란히 앉아 먼 데를 내다보던 마이어 부인은 문득 기이한 느낌이 들고, 마침내 꼬마 지빠귀에게 나는 것을 가르치는 데 성공한다. 자신이 직접 날아 버린 것이다!
마이어 부인이 꼬마 지빠귀와 함께 저 높은 교회의 종탑 옆을 날아가는 마지만 장면, 마이어 부인의 그 자신만만하고 힘찬 표정이란! 정말 ‘나도, 한번 날아볼까?’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하늘 한 번 쳐다보고, 팔을 들어 날갯짓도 해 보고 싶다. 마이어 부인은 어떻게 날게 된 걸까? 그 비밀이 궁금하다.
◐하늘을 나는 방법, 꼬마 지빠귀를 키워 보세요!
정원에는 사시사철 싱싱한 채소가 잘 자라고, 늦여름에는 상상도 못할 만큼 통통한 호박을 딸 수 있고, 남편은 늘 따뜻한 시선으로 박하 차에 변함없는 애정을 담아 준다. 어쩌면 충분히 따뜻하고 즐거울 수도 있는 삶, 그러나 마이어 부인은 늘 걱정, 걱정이다. 그건 그녀의 삶에서 자신이 빠져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충만한 삶은 커녕, 일상이 주는 소소한 기쁨이나 위안조차 찾지 못해 쓸데없는 걱정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꼬마 지빠귀를 발견하고부터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이제 그녀는 그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다. 심지어 하늘을 나는 일까지! 의미 없던 일상이 멋진 비상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극적인 반전’이란 이런 때를 위해 있는 말이지 싶다. 충격적이기도 하고, 허를 찔린 것 같기도 하다. 한순간 머릿속이 환해지는 깨달음의 순간마저 경험한 것 같다.
마이어 부인이 하늘을 날게 한 것은 바로 꼬마 지빠귀. 그것은 마이어 부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극적인 열쇠가 되었다. 그리고 그 녀석의 역할은 바로 마이어 부인이 몰두하고 집중하게 만든 것이었다.
◐볼프 에를브루흐가 그려낸 ‘몰입의 즐거움’
결국 ‘몰입의 힘’이었을 것이다. 마이어 부인이 하늘을 날게 한 것은. 마이어 부인은 꼬마 지빠귀를 보살피며 자신의 모든 애정을 쏟고 관심을 집중시켰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두려움과 걱정을 잊어 버렸다. 문득 ‘내가 날 수 있을 것’이라는 멋진 상상까지 하게 됐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용기와 믿음, 자신감까지 얻게 되었다.
이 책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이란 책을 떠오르게 한다. 32쪽짜리 그림책, 마이어 부인의 이야기는 교육심리학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방대한 연구의 정수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 같다. <몰입의 즐거움>에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일에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몰입’이란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을 표현하는 말로, 물아일체, 무아지경, 황홀경 등의 상태와 비슷하다. 마치 마이어 부인이 문득 자신이 날 수 있을 거라 믿고 날아오른 그 순간처럼. 그것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몸을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충만한 삶을 사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몰입은 자신의 내부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외부 상황에 의존해 얻은 행복보다 훨씬 더 사람을 성숙시키고 정신을 고양시키는 값진 것이다.
볼프 에를브루흐는 그렇게 우리를 참된 삶, 충만한 삶으로 인도하는 몰입의 순간을 마이어 부인이 하늘을 날아버리는 기발하고 대담한 사건으로 표현했다. 삶이란,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삶에 대한 그의 깊이 있는 통찰은 이야기의 힘이 느껴지는 멋진 그림책으로 태어나 아이도 어른도 각자의 삶의 위치에서 많은 것을 곱씹어 보게 할 것 같다. ‘내 꼬마 지빠귀는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