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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3년 11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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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12쪽 | 140*215*21mm |
ISBN13 | 9788954449724 |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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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은 우리사회의 오래된 화두이다. 적정한 노동시간이 얼마인지와 초과근무시간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들은 늘 첨예한 대립을 불러온다. 많은 뉴스에서 알려주듯이 우리나라는 정말 많은 시간을 일한다.
출근 전 개인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주 이른 아침에 출근하는 나는 항상 의문이다.(7시경에 김포공항역을 통과하는데 정말 사람이 많고 다들 너무 바쁘다) 이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이른 시간에 다들 어디를 가는걸까?
우리가 그렇게 많은 시간 일한다면 결국 제대로 된 “노동”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다다를 수 밖에 없다. 질문이 노동시간이든 임금이든 무엇이든 간에. 게다가 AI가 급격하게 보급되고 쓸만한 일자리는 급격하게 줄어들거라는 어두운 전망 앞에서 우리의 노동(직업)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설 수 밖에 없다.
두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노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가짜노동과 진짜노동을 밝히고, 왜 노동이 중요한지를 설명한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가짜노동에 쓰고 있는지를 사례를 들어 알려준다. 거의 고발 수준인데, “가짜노동” 그 단어 자체만으로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노동을 댓가로 생계를 이어가는 우리 모두는 “가짜”라는 말 앞에 우리가 마치 도둑이 된 듯한 죄책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그런 점에서 저자들의 “가짜노동” 규명 작업은 꽤나 아프게 다가온다.
이야기는 결국 “노동” 왜 중요한지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저자들은 노동의 가치가 인간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며 가짜노동을 벗어나라고 촉구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가짜 노동은 그냥 텅 빈 노동이 아니다. 바쁜 척하는 헛짓거리 노동, 노동과 유사항 활동, 무의미한 업무(p.96)”다.
1930년대 학자들은 미래사회를 우리가 하루에 매우 적은 시간만 일하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불행히도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렇다면 가짜노동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일을 해킹함으로써 가짜 노동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데, 대가를 지급하는지의 여부도 가짜와 진짜를 가르는 기준이 아니며, 노동시간을 가치로 환산하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고의적인 거짓말 만이 문제가 아니에요. 노동의 허위적 본성을 포함한 세계의 허위적 본성 자체가 문제죠... 우리는 인간의 삶에서 의미와 자율성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하지만 점점 줄어들죠. 컨설팅, 코칭, 브랜딩, 홍보 이런 것들이 이 논리로 끌려들어갔어요. 모든게 문서로 만들어져야 하고 그 문서는 좋아 보여야 하죠. 해결책이 사실상 문제를 일으키고요“(p.227)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그 생산물의 가치가 낮아진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생산물의 가치는 거기에 투입된 시간에 의해 정의된다고 애덤 스미스가 우리에게 가르쳤기 때문이다”...“생산물의 가치가 아니라 시간만큼 임금을 받는다는 관념은 우리안에 깊숙이 박혀있다. 그 결과 일이 실제보다 오래 걸린다고 말해야 유리해지는 상황이 만들어졌다”(p.278)
공공부문에서 저자들이 말하는 가짜노동은 너무나 만연해 있다. 제대로 시스템이 작동하는지 알기 위해 만들어내는 과정(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성과를 측정하기 위해 만들어낸 시스템과 문서들은 어떻고. 뿐만아니라 사람을 믿지 못해서 혹은 좋아보이는 것들을 따라하기 위해서 하는 일들은 얼마나 많은지.
책을 읽는 순간 순간 너무 실랄해서 아프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왜 노동이 중요한가. 가짜노동은 왜 문제인가. 왜 우리는 왜 일하는가. 그에 대해 저자들은 “노동은 세상과의 유기적 상호작용”이라고 말한다.
“성취과정이 가치 있다는 관념은 끈기있게 이어졌다.... 칭찬의 대상은 작업과정에 투입된 노력 그 자체였다.”..“노동은 처리활동이다. 사물을 만들고 처리하는 행위는 인간이 자신의 환경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방식이며, 한 인간이 세상에 들어가서 자기 자신이 되는 방식이다. 인간이 환경을 처리하고 자신을 외면화, 즉 체현하는 건 노동을 통해서라고 헤겔과 마르크스는 말했다”..“우리는 주변세계를 처리함으로써 뭔가를 바꿔놓는다”..“인간은 그런 활동을 통해 자신을 일하는 존재로 형성시킨다”...“노동은 인간의 내면을 외면화시키고 외부를 내면화시키는 활동이다. 그렇게 인간은 자신안에서, 환경 안에서 자리를 찾는다고 헤겔과 마르크스는 말하곤 했다”..“인간은 일할 때 즉 세계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할 때 자유롭다”(p.323)
“노동은 인간이 되다는 것의 의미와 불가분으로 연결돼 있어서 본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세계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방식에서의 유일한 핵심은 본질적으로 살고 있는가 비본질적으로 살고 있는가의 문제다. 왜냐하면 노동은 인간 존재의 근본을 이루는 일부이기 때문이다.”(P.324)
결국 노동은 인간의 본질이다. 제대로 된 노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존재의 손상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그것이 “가짜 노동이 끼치는 진짜 해악”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의 본질에 대한 저자들의 시각에 완전히 동감한다. 노동이 생계의 수단임은 분명하지만 생계 문제와는 다른 본질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해 노동의 해방을 외쳤지만 이는 노동의 가치가 자본가들에게 착취 당하기 때문이고 노동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서는 밝혀주지 못한다. 그런면에서 이 책에서 밝히는 노동의 본질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생계만을 위한 노동이 결국 우리를 황폐하게 하는지 알 듯 하다.
가짜노동이 왜 문제인지, 노동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크게 공감함에도 불구하고 가짜노동을 없애기 위해 동참하라는 저자들의 요구에는 안타깝게도 응할 수가 없다. 생계 때문이라는 대답도 맞고, 세상을 변화시킬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변명도 맞고, 실제로 그런 행동이 가능하지 않다는 변명도 맞다.
비록 가짜노동을 없애기 위한 행동에 나설 수는 없으나 노동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귀한 책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의미한 노동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고 조금이라도 가짜노동을 더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 노력이라도 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것을 위안 삼는다.
자음과모음 출판, 이수영 옮김의 『가짜 노동』은 데니스 뇌르마르크, 아네르스 포그 옌센이라는 덴마크의 철학자이자 비평가, 강연가로 저명한 두 사람이 저술했다. 덴마크 저자는 낯선 편이었는데, 내용은 제법 흥미로웠고, 부제인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에 걸맞게 최근 자주 언급되는 번아웃 상태와도 연결되는 내용이었다. 사실 부제를 보고 호기심에 책을 읽게 된 면도 크다.
『가짜 노동』은 현대 시대의 노동이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잡아먹고 있는지 그 근원을 찾아보고, 노동의 근본을 탐구한다. 오늘날 많은 이들을 '바쁜' 상태로 유지하고 있는 내외부적 강압들, 바쁘지 않은 상태가 죄악인 것처럼, 무능한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사회와 기업의 시선의 원인을 살펴보고 어떻게 해야 가짜 노동, 즉 의미없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만드는 '텅 빈 노동'에서 해방되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를 짚어나간다.
책에서는 선사시대의 노동에 대해서도 언급하지만 가짜 노동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19세기 말 산업혁명 후 20세기 초에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부터이다. 말하자면 자본시장이 세계적으로 넓어지기 시작한 때이다. 각 국가에 한해 이루어지던 작은 규모의 경제에서는 크게 필요하지 않았던, 말하자면 조금은 불편한 경영체제를 감수할 수 있었던 상태에서는 괜찮았지만 생산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기업이 확장되고, 시장이 국가와 국가를 넘어 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더 효율적이고 능률적인 것을 찾다보니 '관리직'이 증가하게 되고, 관리하는 '사무직'의 증가가 많은 사람들을 작은 사무실 안에 몰아넣으며 점차 비효율적인 의미 없는 노동들을 증가시켜왔다는 것이다. 가짜 노동은 오늘날 다수의 사무직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
하루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8시간(점심시간 제외) 정도로 고정되어 있는데 노동자들은 과연 그 시간을 온 집중력을 다해 일에 매진할까? 실제 일에 필요한 시간은 3, 4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을 때도 많고,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있으면서도 일이 아닌 쇼핑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마다 다른 점이 있으나 어느 사무실에서든 이러한 점이 있다. 과연 하루 8시간이 온전히 의미있는 노동에 쓰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일하는 사람이면 한 번쯤 품었을 질문이다. 기업의 출퇴근 문화는 눈에 보이는 곳에 사람을 못 박아두고 그 사람이 시야에 보이는 것만으로 일의 정도를 측정하는 면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몇 년 동의 코로나 사태는 기업 문화를 일부 바꿔놓았다는 말이 있다. 모든 기업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기업들은 재택 근무 내지 직원들이 자신의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근무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변경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그러한 기업 문화가 아직은 드문 편이지만 차차 그렇게 바뀌어 나간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되돌아보고 조금 더 유연한 삶을 살아갈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많이 언급되는 번아웃의 문제에서도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오랫동안 계속 바빠야했고, 바빴던 사회였기 때문에 근무 시간이 아닌 여가 시간이 주어졌을 때조차 일하지 않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삶의 여유를 찾는다면 더 즐거운 인생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노동에 관한 생각은 오래 전부터 개인적으로 품어왔던 생각인데, 노동을 취급하는 것에도 일종의 차별이 있다. 책에서도 언급된 바 있지만 사무직, 즉 화이트 컬러의 직종을 보다 우수하고 고급으로 여기고 육체 노동을 하찮게 치부하는 것이다. 육체 노동 집안에서 자식을 화이트 컬러로 만드는 일은 목표이자 성공의 척도가 된다. 그러한 점은 덴마크나 우리나라, 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하다. 그러나 나는 전부터 이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가로지르는 이분법적 선에 육체/정신이라는 서구의 이분법적 태도가 은연 중에 깔려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정신을 높게, 육체를 낮게 분리하여 취급했던 이분법적 사고가 자연히 노동에도 스며든 것은 아닐까. 책에서는 자본주의 산업화의 발달로 많은 사무직이 생겨나고, 고학력자가 늘어나면서 증가한 정신 노동, 가짜 노동에 대해 주로 말한다. 물론, 육체 노동이라고 '텅 빈 노동'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불필요한 곳에 인력을 소모하며 육체 노동이 이루어지는 산업현장도 태반이니까. 하지만 육체와 정신 노동을 가르는 부분에 그러한 인식적 작용은 없었을지 생각하게 된다. 합리성, 효율화, 생산성, 경쟁성 등을 중시하는 것이 서양의 경제정책에서 들어온 면이 크기 때문이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찬찬히 생각하다가 후에 덧붙인다. 문관과 무관을 차별했던 동양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가르는 선이 꼭 서양에 국한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무엇인가 동서의 문화를 막론하고 둘 사이를 가로지르는 선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노동의 근본을 따지고 올라가면 생존을 위한 노동이 기본이 되는데 생존을 위한 노동은 고되고, 더러운 것이 많다. 이른바 3D 직종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 청소, 빨래, 농사, 어업 등등 먹고 사는데 직결된 것들이다. 생존 노동만을 놓고 본다면 필요한 노동은 선사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그 시대에도 벽화를 그리고, 음악을 하는 문화예술 활동 또한 존재했다. 예술활동은 한편으로 인간의 삶의 의미를 보다 충만하게 채워주는 노동이 된다. '개미와 베짱이' 일화에서 놀기만 하던 베짱이가 나중에 고생하게 되지만 베짱이의 음악활동으로 개미가 노동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있는 노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고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의미를 주지 못하면서 놀기만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겠다.)
결국 노동의 의미는 스스로 깨달아야 변할 수 있다. 자신의 노동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것이 정말 의미있는 노동인지 아닌지 깨닫게 되면, 정책 선전과 오류로 잘못 시행되고 있는 불필요한 노동들에 의문을 가지고 바라보게 될 것이다. 현재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너무 오랫동안 의미 없는 노동에 길들여져 왔던 까닭에 기계적인 노동을 하며 스스로 그 의미를 들여다 보고 있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 책은 그런 이들에게 충분한 자극제가 되어 줄 것이다. 이 책을 접하게 된다면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살펴보게 될 것이며, 그 순간부터 진정한 해방이 시작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가짜 노동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의미를 찾는 일을 하게 된다면 세상은 보다 서로에게 보탬이 되는 의미로 충만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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