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
새벽의 힘, 새벽 에너지를 충전하라!
큰 그릇에 담겨 있는 물을 밖으로 쏟아내려면 국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자가 없어 아쉬울 때는 젓가락만 있어도 가능하다. 그릇에 젓가락을 넣고 힘차게 휘젓다보면, 물이 밖으로 넘친다. 더 빠른 속도로 휘젓는다면, 그릇에 담긴 물을 거의 다 밖으로 밀어낼 수 있다. ‘힘없는 국자’보다 ‘힘차게 움직이는 젓가락’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젓가락의 힘’이다.
우리 인생에서 열매를 많이 맺기 위해 많은 도구가 필요하지 않다. 단 하나라도 확실하게 집중하면 원하는 열매를 얻을 수 있다. 삼일교회 힘의 원천은 새벽예배에 있다. 새벽예배라는 젓가락 하나로 교회 전체와 성도의 삶 전체를 휘젓는 것이다. 일단 모든 성도가 새벽예배에 집중하게 되면, 그들의 삶 전체가 바뀐다.
늦은 저녁까지 모임이나 약속을 만들 리 없고,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리고 새벽에 최우선적으로 교회로 모인다. 새벽예배에 우선순위를 두면, 집을 구할 때에도 교회 근처로 오는 것을 최고의 이상(理想)으로 여긴다. 새벽예배가 끝난 다음에는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식사를 함께한다. 그렇게 되면 이 식사시간이 최고의 교제권을 형성하는 시간이 된다. 이 교제권이 결혼으로 이끌기도 하고, 사업으로 이끌기도 하고, 새로운 도전과 자극을 주는 모임으로 발전한다. 삶의 목표, 철학, 패턴이 모두 새벽을 중심으로 바뀐다.
이것은 새벽예배라는 젓가락으로 전체를 휘저은 결과이다.
광야의 영성
최근 한국 교회에 특별 새벽기도 운동이 일어나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우려하는 마음도 있다. ‘특새’라고 해서 1~2주 새벽에만 집중하고, 평소 새벽예배는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교역자들이나 담임목사도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되면 특새는 일종의 이벤트요, 쇼에 그칠 뿐이다. 특새의 존재 이유는 꾸준한 새벽기도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특새라면 오히려 정상적인 새벽기도를 방해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시대는 광야의 영성이 필요하다. 광야는 단조로운 곳이다. 광야는 단순하고, 비천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을 반복적으로 하는 곳이다. 신나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다.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훈련이 광야 훈련이다. 광야의 영성은 곧 일상의 영성이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간에 일관된 자세를 견지하는 훈련이 광야 훈련이다.
빌 하이벨스 목사가 자신의 책 제목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IVP 역간)으로 차용했던 D. L. 무디의 말이 인상적이다.
“인격이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당신의 모습이다.”
다시 말해, “일상에서의 순종, 단조로움 속의 순종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특별한 자극이 필요 없는 인생, 자극 없이도 순종하는 인생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을 보라. 다윗의 삶에는 단 한 번의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다윗의 삶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것이 참된 신앙이자 경건이다.
매일매일 변함없이 하나님을 만나는 새벽예배만이 진정한 에너지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복기가 가능한 삶
말씀은 실제 삶의 원동력이 된다. 말씀에서 실제적인 유익을 얻는다는 말이다. 우리는 매일 주시는 하늘의 지혜로 오늘의 삶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새벽 말씀은 하루를 이길 수 있는 실제성이 그 생명이다.
통역사 시험을 준비하는 자매가 있었다. 시험 당일, 날고뛰는 많은 경쟁자들 앞에서 두려워했다. 그런데 새벽예배 말씀에서 인사이트(insight)를 얻어 답을 발견하고,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수석 합격이었다. 그 자매는 통역할 내용을 단순히 외우려고 하지 않고 의미 중심으로 흐름을 파악하여 통역했다고 한다. 그 자매는 새벽예배에서 얻은 통찰과 평안 덕택이었다고 고백한다.
프로 바둑 기사들은 승부를 마무리 짓고 난 다음에 복기(復棋)를 한다. 복기란 승부가 끝난 다음에 양 대국자가 서로의 잘잘못을 되짚어보기 위해 방금 바둑을 둔 순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두는 것이다. 보통 250개에서 300개의 돌을 다시 둔다. 그런데 한 점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복기한다. 어떻게 그걸 다 외우는지 신기하다. 그런데 프로 기사에게 물어보면, 외워서 두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한 점 한 점 둘 때마다 의미 있는 돌을 놓는 것이다. 바둑알을 왜 그곳에 두는지 의미를 생각하면서 두면, 복기가 가능하다.
복기는 의미의 연결이다. 의미 있는 돌을 놓으면 누구나 복기가 가능하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의미 있는 돌이 살아남듯이 우리의 의미 있는 행동은 살아남는다.
예전에 설교를 준비하다가 컴퓨터 문제로 원고를 날린 적이 있다. 그때 ‘어떻게 이걸 다시 복구하나’ 하는 낭패감에 젖어 있었다. 그꾷나 지금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의미를 중심으로 다시 적어나가면, 거의 그대로 복기가 가능하다. 복기가 안 되는 설교는 ‘대충 준비한 것’이다. 꼭 전해야 할 말씀의 핵심과 흐름을 잡은 설교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외워서 하는 설교가 가능한 것이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Herbert Gould, 1932~1982)는 1시간이 넘는 변주곡을 연주하기로 유명했다. 그 긴 곡을 어떻게 외우는지 궁금했는데, 그는 악보를 다 외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선율의 의미를 중심으로 연주한 것이다.
나는 특별히 날짜를 잘 외우는 성도를 알고 있다. 몇 월 며칠은 무엇을 한 날이고, 몇 월 며칠은 누구를 만난 날인지를 정확히 기억한다. 머리가 좋아서인가? 아니다. 그 성도는 매순간을 ‘의미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특정 날짜를 결코 잊지 않는다. 하루하루 일기를 써보라. 의미 없이 사는 사람은 “세 끼 먹고 잤다” 외에는 쓸 것이 없다. 그러나 의미 중심으로 살면, 일기로 남길 것이 있는 인생이 된다. 설명이 가능한 인생을 산다.
예수님은 의미 있는 삶을 사셨다. 그냥 사신 것이 아니다. 당신도 의미 있는 사역을 하라. 왜 하는지를 알고 하라. 의미 있는 기도를 하라. 중언부언하라는 말이 아니다. 기도의 삶은 의미를 부여한다. 기도하고 이룬 일은 복기가 가능하다. 그냥 대충 한 것이 아니라 방향과 목적을 가지고 이룬 일이기 때문이다. 새벽예배를 회복하라. 그러면 복기가 가능한 인생이 될 것이다.
새벽 에너지란?
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옛것도 익히면서 새것도 알아간다”는 뜻이다. 새벽 에너지로 무장한 사람은 옛것에서 얻은 힘으로 새로운 것을 창출해낸다.
모세오경 중 마지막 책인 신명기는 광야를 통과한 신세대에게 주신 말씀이다. 모세 시대의 말씀을 단순히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고, 발전된 모습이 엿보인다. 새벽 에너지는 옛것에서 얻은 영감을 새롭게 적용하는 능력을 제공한다.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영성(靈性)으로 이 시대를 헤쳐나가는 것이다.
찬송가 '만왕의 왕 내 주께서'는 원래 아이작 와츠(Isaac Watts, 1674~1748)가 1707년에 작사한 곡이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라는 느린 템포의 곡이었다. 사람들은 이 곡을 100년 넘게 불렀다. 물론 그당시의 은혜도 있었다.
그런데 젊은 허드슨(Ralph E. Hudson, 1843~1901)은 이 템포에 만족할 수 없었다. ‘웬 말인가’라는 탄식조의 고백에 만족할 수 없었다. 자신이 경험한 십자가의 은혜는 그보다 더 강렬하고, 뜨겁고, 에너지 넘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180년간 부른 찬송의 앞부분 가사를 이렇게 바꾸었다.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당했나.”
그는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고백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후렴은 자신이 이렇게 덧붙였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허드슨이 경험한 십자가는 단순히 고통 중에 흐느끼는 십자가가 아니었다. 마음속 큰 고통이 사라지게 만드는 힘이었다. 믿고 난 후에 새로운 눈이 열리는 에너지였다. 그리고 영혼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기쁨이었다. 이것이 젊은이의 고백이요 새로운 영감 속에서 업그레이드 된 신세대의 고백이다.
이렇게 만물을 새롭게 만드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말씀을 새롭게 이해하는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가? 매일 새벽 만나를 내려주시듯 새벽에 만나는 예수님의 체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새벽은 힘이 있다. 새벽에는 넘치는 에너지가 있다. 그 시간을 사모하라. 당신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가슴에 불을 붙이는 거룩한 엿보기
이 책의 메시지는 2009년 12월 한 달간 삼일교회 특별 새벽기도회에서 전한 말씀이다. 이 새벽기도회는 나와 삼일교회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삼일교회는 숙명여대 강당에서 10년간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더 이상 숙대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무 준비 없이 급작스럽게 한 달 만에 장소를 비워야 했다. 예배 장소를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했던 교육관으로 옮기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2009년 전반기를 보냈다. 당장 예배 출석 인원이 3천 명 정도 줄어들었고,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런 침체를 벗어나 새 힘을 얻고 도약하게 된 것이 2009년 12월 특별 새벽기도회이다. 단기간에 1만 4천 명의 예배자가 2만 명으로 급성장한 계기가 되었다. 예배를 통한 사람들의 변화는 어느 누구나 알아볼 정도로 강렬한 것이었다. 삼일교회 역사상 이렇게 단기간에 예배자가 증가한 적은 없었다.
크고 작은 기적들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병든 자들이 일어나게 되었고, 아이를 갖지 못하던 가정에 태의 문이 열렸다. 좌절과 낙심 속에 있던 사람들이 새 힘을 얻었고, 매너리즘에 빠진 사역자들 사이에 새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여기 그 새벽 에너지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을 때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다. 이 책에서 조금이나마 그 은혜를 함께 나누고 싶다.
이 책은 엿보는 책이다. 사람들이 정열적으로 변화하고, 위기를 극복하고, 좌절감과 장애를 뚫고 나간 말씀에 대한 엿보기이다. 엿보는 것으로 정보를 얻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엿보다가 당신의 가슴에 성령의 불이 붙기를 바란다.
삼일교회에서 체험했던 열기보다 더 뜨거운 열기가 당신의 가슴과 섬기는 교회에 불붙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이 책이 당신의 새벽 에너지를 충전시켜줄 것이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전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