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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3년 09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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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56쪽 | 808g | 148*225*28mm |
ISBN13 | 9791171251681 |
ISBN10 | 1171251688 |
2024년 08월 21일 ~ 2024년 09월 30일
9월의 굿즈 : 타공 정리함/클립 북 라이트/디즈니 캐릭터 태블릿 파우치/손잡이 텀블러/메쉬 펜 파우치
2024년 08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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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Hartnell, Medieval Bodies
여느 동물처럼 인간도 몸에 의존해 세상과 관계를 맺고 사유한다. 한때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믿음이 너무 커서 그와 대비되는 측면인 물리적 실체로서 육체의 중요성은 간과되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유물론자든 관념론자든 모두가 안다. 우리의 이성이나 심지어 영성까지도 몸의 일부라는 것을.
몸 바깥의 세상에 대한 인식이 그러하듯, 우리 몸에 대한 인식도 동시대적 사유의 지평에 귀속된다. 몸에 대한 오늘날의 보편적 지식은 학교에서 배운 것, TV 다큐멘터리에서 본 것,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들, 주변 사람들에게 주워들은 것, 언론 보도 내용 등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러한 정보 시스템은 공기처럼 편재하고 일상화되어 있어 지금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과거의 인식 구조에 대해서는 짐작하기 어렵다. 저자 잭 하트넬(Jack Hartnell)은 이러한 인식 구조의 차이에 주목하며 우리를 천 년 전 유럽과 중동으로 안내한다.
중세 시대에 몸에 대한 인식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관념은 4대 체액설이다. 피, 노란 쓸개즙, 검은 쓸개즙, 점액이 몸을 구성하고 있는데, 이 물질들의 구성비에 따라 어떤 기질이 발현되거나 건강 상태가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중세인들은 이러한 인식에 따라 체액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한 음식물을 섭취하도록 권장하기도 했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 특정 체액을 인위적으로 뽑아내기도 했다. 오늘날 의학적 관점에서는 매우 위험했던 이러한 조치들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어 확고해진 관념은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고 1500년이 넘게 지배적 사상으로 자리 잡았다.
저자의 논의는 몸의 위계를 따라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위에서 아래로 향하며 전개된다. 머리는 특정 개인을 구분하는 가장 명확한 기호이며, 그것을 잘라내는 순간 아주 확실하고 깔끔하게(?)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는 점에서 특권적 위치를 지닌다. 편견과 달리 중세에도 목을 베는 형벌은 그리 빈번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극단적인 충격요법이 필요할 때 통치자들은 이 방식을 채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목을 벨 수도, 혹은 베는 것을 중지시킬 수도 있다는 것은 통치자의 권위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였다(70p).
중세인과 우리의 감각기관은 기능상으로 전혀 다를 것이 없겠지만, 어떤 자극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수용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온갖 현란한 미디어에 찌들어 있는 우리와 삶 전반에 걸쳐 특별한 자극이 없는 중세인에게 동일한 자극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비슷한 심상을 불러일으킬 리는 만무하다. 음악을 듣는 것 자체가 드문 시대에 대성당에 들어가 듣는 성가의 황홀한 공명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영적 체험이었을 것이다. “중세의 감각을 어떤 식으로든 현실에서 생생하고 정확하게 재구성하기란 당연히 불가능하다(90p).”
피부 챕터에서는 중세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전통이 흥미로웠다. 영국 의회는 2017년 초까지도 독피지에 법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1497년부터 기록된 법률 독피지가 두루마리 수천 개 분량에 달한다고 한다. 역시 남의 전통은 철저히 짓밟고 자기 전통은 철통같이 보존하는 민족답다.
죽음 뒤 남는 뼈에 대한 집착은 중세인이나 현대인이나 비슷하다. 아마 영혼이 빠져나간 후 몸에서 건질 수 있는 가장 선명하고 단단한 잔여물이 뼈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집착의 강도는 중세인을 따라갈 수 없다. 중세인들은 뼈가 사후 연옥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여겼다. 이러한 관념을 지어낸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같은 13세기 신학자들이었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그들이 오늘날 유럽의 고고학적 풍경을 만들어 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세 왕족이나 귀족들은 자기 유골이 크고 아름답고 웅장한 대성당 중앙에 안치되어 그곳을 지나는 수많은 성직자나 일반 백성들이 자기 영혼을 떠올리며 기도 올려주기를 바랐고, 그러한 마음을 담아 대성당을 직접 지어 올리거나 후원했다. 그 대성당들은 지금도 시내 중심가나 광장에 남아 커뮤니티의 구심점 역할을 하거나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을 끌어모은다. 아퀴나스가 오늘날 유럽의 GDP에 기여하는 바가 이렇게 큰 것이다.
뼈에 대한 집착은 성유물 집착과 맞닿아 있다. 숱한 성인들이 신체의 흔적이나 직접적인 신체 일부분을 성유물로 남겼고, 그 물질의 효험을 보고자 하는 이들은 목숨 걸고 수백수천 킬로미터를 걸어 성지를 찾아 기도를 올렸다. 예수 본인의 것이나 예수와 가까웠던 이들의 것에는 더 큰 효험이 있다고 믿어졌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남아 있는 성유물에는 조작된 것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되나, 꼭 모든 진실이 밝혀져야만 좋은 것은 아닌지라 암암리에 ‘믿거나 말거나’ 상태에 놓인 것도 많다. 성 안토니오의 은혜로운 설교가 당대의 귀감이 되었다는 이유로 그 설교를 쏟아내던(아니, 설교가 경유하던) 턱뼈를 호화로운 성해함에 넣고 순례자를 맞이하는 장면은 섬찟하기까지 한데(109p), 성 안토니오 본인에게 이러한 턱뼈 신성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어진다. 그러면 아마 그 성인은 “그리스도의 진짜 포피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곳이 4곳인데 그것보다야 낫지 않아?”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353p).
마지막 장에서는 미래의 몸을 다루며 결론을 갈음했다. 앞으로 새로운 중세 유적이나 고문서가 발굴되고, 그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는 기술도 함께 고도화되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중세인들의 인식을 조명할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리리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저자의 시인대로 이 책은 “겉핥기식으로 살펴본 시도”이지만(401p), 여러모로 중세 역사와 예술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고품격의 대중서다. 신체 각 부에 얽힌 중세의 인식과 다양한 역사적 실례들, 그리고 그 시각적 증거자료로서 희귀한 고문서 속 이미지들은 이 책의 존재 가치를 톡톡히 보여준다. 중세인이 일반적으로 몸에 대해 품은 생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도달하면 꼭 열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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