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디저트로 비유하자면, 머랭쿠키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겉으로는 딱딱할 것 같지만, 막상 입에 넣으면 달콤한 풍미가 퍼지며 부드럽게 녹는 인간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머랭은 계란 흰자를 아주 오랫동안 휘젓고 오븐에 넣어야만 완성됩니다. 그런 저자와 그녀의 내공 모두 마치 머랭을 닮지 않았나 싶습니다.

미디어 아트에 대해 하나도 아는 게 없지만, 개인적인 일로 아트센터 나비에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입구에 놓여져 있는 이 책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제목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디어 아트와 함께 한 나의 20년’.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요즘같이 연애도 몇 개월 안으로 끝내고 음식도 10분 안에 안 나오면 주문을 취소해버리는 인스턴트 라이프 속에서 한 분야에 10년도 아니고 20년 이상 몸담는다는 것은 그 시간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그런 20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보낸 한 기관의 리더가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가지고 쓴 하나의 인생 이야기이자 디지털 예술을 기반으로 한 철학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저는 이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더 나은 방향성을 찾고자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한 사람의 이야기.’ 책의 구성은 굉장히 다양하고 방대합니다. 그러나 이는 그만큼 저자가 그동안 아주 오래토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척도로 느껴집니다.

미디어 아트라는 생소한 주제를 보다 폭넓으면서도 진중히 다루기 위해 문장 하나하나에 맞는 참고문헌과 자세한 설명을 넣어준 것을 보며, 저자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독자를 배려하기 위해 최대한 마음을 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중의 시각에서는 내용이 조금은 전문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조금이라도 가깝게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문장들 속에 저자 자신만의 애정이 담긴 표현을 넣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가볍지 않은 진중함을 담으려 노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간 아트센터 나비를 운영하며 겪은 여러 실패의 이야기 그리고 그에 따른 교훈과 성공의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자가 해당 기관의 리더이기 때문에 본인의 말로써 기관의 업적을 직접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데에 있어서는 절제와 겸손함을 택했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독자로서 제가 느낀 기관과 저자의 업적은 가히 훌륭한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건, 우선 이 기관의 모든 관계자와 저자는 디지털아트뿐 아니라 디지털, 미디어아트를 통해 새로운 미래의 지평선을 여는 데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과연 몇 개의 기관이 지난 세월동안 예술을 통해서 현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철학적 방향이나 인간 자체의 본질을 탐구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간 표현의 자유는 많이 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 그리고 인간의 됨됨이를 예술과 작가 지원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저자의 노력은 아주 높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들 생각만 하고 주저할 때 저자와 기관의 직원들은 생각을 행동으로도 이어가는 도전을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방문자로서 이곳에 1시간만 있던 제가 실제 아트센터 나비 회의실에 붙어 있던 여러 손글씨의 포스트잇, 그리고 그 포스트잇에 쓰여진 키워드를 보며 느낀 것은 하나입니다. ‘아, 이곳은 디지털 예술을 통해 인류와 사회를 발전하는 데에 진심을 담았구나.’ 그리고 그 손글씨가 각기 달랐던 점. 이는 그만큼 기관의 직원들이 최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담으려 노력했다는 것도 증명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세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그것은 실패, 교육, 그리고 철학입니다. 이 책의 초반에는 참 다양한 실패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아마 저자는 이러한 실패담을 공유함으로써 이 길을 걷고 있는 차세대만큼은 자신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서 과거의 이야기를 공유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독자로서 제가 느낀 점은 좀 다릅니다. 저는 오히려 기관과 저자가 그러한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는 그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됐다고 봅니다. 시대적으로 너무 진보적이었던 도전이었기에, 이제는 현 시대에 맞게 그 실패를 다시금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보고 도전해볼 수 있지 않겠는지요? 책을 읽은 독자이자 일반 대중으로서 그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보고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대단히 교육적인 이야기도 많이 담고 있습니다. 특히 아르메니아의 투모(TUMO) 교육센터 이야기는 우리의 교육 전문가들이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 만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비단 예술가뿐 아니라 교육자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마지막은 철학입니다. 사실 독자로서 느낀 저자의 특징은 대단히 철학적, 탐구적, 학구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지혜를 한 분야에만 쓰기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만큼 아주 다양한 가능성이 느껴지는 지혜와 호기심의 폭발력을 곳곳에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성과 감성의 사다리 그리고 질문과 답이라는 사다리를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는 저자의 모습이 그려졌다고 할까요? 그만큼 저자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따른 답과 방향성을 찾으려고 많은 노력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 지난 20년간 이어졌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저자의 10년 후, 20년 후가 더 기대되는 역발상을 해보게 됩니다. 탐구의 과정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료하게 증명하는 도전자가 저자라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노력은 혼자만의 힘이 아닌 여러 사람의 협력으로 가능했다고 보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위해 그간 기관의 직원들이 얼마나 최선을 다하려 했는지 저절로 상상이 되는 문장과 대목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닌 미디어 예술을 통해 더 좋은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한 모든 이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데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예술뿐 아니라 인간의 삶에 있어서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있다면 그것은 너무 슬픈 인생이 아니겠는지요. 그래서 이 책은 답을 추구하는 것 같으면서도 하나의 답이 아닌 보다 나은 ‘방향성’의 다양성을 탐색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고 봅니다.

생각과 질문을 통해 다양성 그리고 방향성이라는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싶으신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이 책은 질문과 질문 그리고 또 질문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한 한 사람의 지난 20년간의 귀한 목소리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지난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와 기관이 예술을 넘어 인간의 모든 영역을 선하게 다루는 하나의 사회혁신처가 되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