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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귀도 크놉 저 / 신철식 | 울력 | 2013년 11월 25일 | 원제 : Bis dass der Tod uns scheidet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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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364g | 148*210*30mm
ISBN13 9791185136035
ISBN10 1185136037

관련분류

책소개

목차

저자 소개

저자 : 귀도 크놉(Guido Knopp)
1948년 1월 29일 트라이자에서 출생하였다. 프랑크푸르트 대학과 암스테르담 대학, 그리고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사학, 정치학, 신문방송학을 공부하였고, 1975년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1994년에 저널리즘학 교수가 되었다. 〈벨트 암 존탁〉지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지를 거쳐 1978년부터 독일공영방송 ZDF에서 근무하였다. 1984년부터 ZDF의 현대사 편집국장으로 ...
역자 : 신철식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독일 베를린 공대에서 수학하였고, 2000년에 외교통상부에 들어가 현재 주 뭄바이 총영사관에서 근무 중이다. 옮긴 책으로 『비너스, 마리아, 파티마』, 『히틀러의 뜻대로』, 『나는 히틀러를 믿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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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클린턴 부부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자였던 빌 클린턴은 통통한 백악관 인턴 직원과 정사를 가졌으며 이 불미스런 사건의 진실을 몇 달 동안 숨겼다고 고백해야만 했다. 유례가 없던 이 진흙탕 싸움을 통해 아주 외설스런 세세한 부분까지 공개되었다. 힐러리는 대중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존경받는 퍼스트레이디에서 몇 주 사이에 미국에서 가장 심한 굴욕을 당한 여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빌과 힐러리도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낭만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들은 예일대학 법학부를 다닐 때 서로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 재능 있는 법학도였던 힐러리는 자신의 경력을 뒤로 하고 남자 친구를 따라 촌구석인 아칸소 주로 따라갔고, 그곳에서 빌은 정치 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스타가 되었다. 빌 클린턴은 32살의 나이로 주지사가 되었고, 힐러리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주지사 부인 역할을 수행했다. 귀여운 딸아이를 얻은 것은 그들의 결혼 생활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클린턴 부부는 승승장구하며, 1992년 드디어 성공을 거두게 된다. 클린턴이 미국의 42대 대통령으로서 워싱턴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혜성처럼 등장해 급격한 신분 상승을 이루긴 하였지만, 이 시기부터 이미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클린턴이 주지사 시절 호감을 가지고 대했던 젊은 여성들로부터 계속 좋지 않은 말들이 나왔다. 힐러리는 항상 남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지만, 남편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주위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호감을 받는 남편에 비해 그녀는 항상 냉정하고 권력을 좇는 여성이라는 나쁜 평판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이런 상황이 워싱턴에 입성한 뒤에도 그다지 많이 바뀌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힐러리를 권력욕에 사로잡힌, 클린턴의 후견인으로 여겼다.
클린턴 정부 시절, 정치적으로는 대단한 성과가 있었지만, 개인사적으로 보면 클린턴 부부는 불행했다. 클린턴 부부에 대한 조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하여, 나중에는 혼외정사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마침내 1998년 1월에 스캔들이 불거져 나왔다. 르윈스키 스캔들은 그의 대통령직, 특히 그동안 쌓아 왔던 그의 명성을 송두리째 앗아갈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힐러리는 언제나 그의 편이었다. 그녀는 클린턴과 자신의 결혼 생활을 지키기 위한 투사가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스캔들을 헤쳐 나오는 과정에서 적어도 대중들에게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녀가 보여 준 절제된 행동과 신뢰는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힐러리 클린턴은 전직 영부인으로서 고위 관직에 취임한 최초의 여성이다. 2000년에 그녀는 뉴욕 주 상원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면 무엇이 힐러리 클린턴으로 하여금 “이혼이라는 간단한 절차”를 택하지 않도록 했을까? 만약 이혼을 했다면, 미국 대통령 클린턴은 정치적 퇴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힐러리의 정치적 꿈, 특히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려는 그녀의 꿈도 종말을 고하였을 것이다.

다이애나 비와 찰스 왕세자
아마도 영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결혼으로 기록될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의 결혼 또한 클린턴 부부의 경우와 같이 복잡한 양상을 띤다. 정치적인 계산과 사랑 사이에 감추어진 날카로운 무언의 대립은 가장 오래된 입헌군주국인 영국을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는 파국으로 몰고 갔다. 다이애나 스펜서는 웨일즈의 왕자를 사랑했고, 그를 공경했다. 이와 달리 엘리자베스 여왕과 대중들의 계속되는 압력에 시달리며 자신의 많은 나이 때문에 압박을 받고 있던 찰스는 무엇보다도 윈저 왕가를 존속시켜 줄 수 있는 여성을 찾고 있었다. 즉, 예의범절이 바르고 호감이 가며, 고결하고 ‘숫처녀이며,’ 신교도이고 귀족적인 품위가 있으며 아름다운 외형을 갖춘 여성을 선택하려 했는데, 왕족들의 눈에는 다이애나가 바로 적임자로 보였던 것이다!
찰스 자신은 물론 결혼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980년 가을, 언론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눈치를 챘을 때, 국민들은 열광했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빠져들었다. 찰스의 오랜 연인 카밀라 파커 볼스조차 그에게 다이애나와 결혼하라고 다그쳤다. 결국 찰스는 왕실과 왕위 계승권을 확실히 보장해 줄 적임자가 다이애나라고 확신하기에 이른다.
1981년 2월 24일에 거행된 약혼식 기자회견에서는 왕실에서의 이들의 결혼 생활이 어떠할지 미리 엿볼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 눈치 없는 한 기자가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있는지 질문을 했다. “그럼, 물론이죠!”라고 다이애나는 그를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찰스는 머뭇거리며, “사랑을 어떤 의미로 부르든지 간에 말이죠”라고 덧붙였다. 늦었지만 이때라도 젊은 신부는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경고음을 인지했어야 했다. 다이애나가 이미 찰스와 카밀라의 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기의 결혼식은 런던의 유명한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예정대로 거행되었다. 다이애나는 이로써 연적을 밀어냈다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언론들은 이런 현실과는 달리 그녀를 신데렐라 공주로 묘사하였다. 결혼식 날 캔터베리 대주교는 “이것은 동화의 소재가 될 만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옛 동화 속의 결혼은 환상적인 결론으로 그 끝을 맺지만, 이 결혼은 이제 곧 그 모든 환상들이 깨어지게 각본이 짜여 있었다. 세기적인 이 결혼은 혼외정사, 말도 안 되는 삼류 희극 같은 일들로 점철되어, 결국 이혼이라는 파국을 맞게 된다. 결국, 영국 왕실과 언론 그리고 전 세계가 그렇게 보고자 했던 왕실의 러브스토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이애나가 파리의 센 강을 지나는 터널 속에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때, 그녀는 완전히 신화가 되었고,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한 왕비”가 되었다. 왕세자비로서의 불행했던 그녀의 삶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소라야 왕비와 팔레비 왕
이란 팔레비 국왕과 소라야 왕비의 관계도 천일야화에 나오는 동화처럼 시작되었다. 그것은 첫눈에 반한 사랑이었다. 국왕은 열여섯 살인 소라야 에스판디아리의 사진 한 장을 보고는 “바로 이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이 미인은 양갓집 출신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페르시아의 영주였고, 어머니는 독일인이었다. 열여덟 살 때 그녀는 페르시아 국왕의 두 번째 아내가 되어 왕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처음부터 저주를 받은 것처럼 보였다. 소라야는 결혼식을 치르기 전에 티푸스라는 중병을 앓았고, 그 때문에 결혼식을 수차례 연기해야만 했다. 동화처럼 왕비가 된 그녀는 특히 독일 여성들에게 숭배의 대상이었고, 50년대의 다이애나 비였으며, 그녀들의 꿈을 대리 충족시켜 주는 일종의 대리 왕비였지만, 불길한 전조들이 처음부터 소라야를 괴롭혔다. 그녀와 국왕 사이에 진솔한 사랑의 감정이 불타오르고 있었는데, 두 사람 지인들의 얘기와 왕비가 남긴 개인 사진들이 그들 두 사람의 밀접한 관계를 증명해 준다. 그러나 왕의 꿈은 시작도 전에 끝난 것처럼 보였다. 결혼식 직후에 서방 강대국들 사이에서 이란의 석유를 둘러싼 정변이 일어났고, 부부는 테헤란의 불안한 정국을 피해 망명길에 올랐다. 불과 며칠 뒤에 국왕은 미국 CIA의 도움을 받아 왕권을 되찾았다. 소라야는 위기가 그들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 환상적인 커플은 7년 동안 자식을 가지지 못했다. 가슴이 아팠지만, 이 때문에 팔레비 왕은 자신의 아내를 내쳐야 했다. 권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후사가 있어야 한다는 국시에 따라 이혼이 결정되었다. 소라야에게 지불된 위자료는 수백만 달러에 달했고, 온갖 보석으로 가득 찬 보석함도 주어졌다. 그러나 그녀가 지불했던 대가는 그 이상이었다. 소라야가 죽을 때까지 다시 결혼을 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팔레비 왕은 이혼하고 불과 여섯 달 뒤에 다시 약혼식을 올렸다.
페르시아 왕의 새로운 부인은 왕에게 그토록 고대하던 아들을 선사했다. 이제 왕은 왕위 계승자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란 혁명 기간인 1979년에 그는 망명길에 올라야 했기 때문에 왕권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그레이스 켈리와 모나코 레니에 대공
은막의 여왕이었던 그레이스 켈리는 무엇보다도 부모가 원하던 결혼상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 수많은 남성의 구애를 물리쳤다. 모나코 군주인 레니에 대공이 청혼했을 때 비로소 그녀의 마음이 흔들렸다. 결혼은 순식간에 이루어져서 절친한 친구들조차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56년 봄, 25개국에서 1,200여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몬테카를로의 모나코 대성당으로 몰려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전통을 고수하는 귀족 출신과 변덕스러운 쇼 비즈니스 세계 출신의 이 낯선 만남을 아주 이상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할리우드 스타와 유복한 귀족 간의 결혼은 처음부터 성사될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환상의 영역을 제공하는 두 꿈의 세계가 이 결혼을 통해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레이스 켈리는 모나코의 왕비가 되어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그녀가 영화를 찍었던 장소이기도 한 코트다쥐르의 지중해 연안에서 살았다. 영화계의 스타 배우가 상류 귀족인 공비가 되었고, 그럼으로써 모나코는 국제 사교계의 새로운 메카가 되었다. 언제나처럼 그레이스 켈리는 이 역할도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그녀는 모나코 왕국이 오랫동안 고대하던 왕세자를 선사했고, 이 고루한 귀족 가문에 매력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삶은 많은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녀의 매력이 곧 그녀의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어적인 어려움, 궁정의 엄격한 의전 규범, 오래전부터 서먹해진 남편 등, 이 모든 것들이 그녀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행동했지만, 항상 이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 부부는 마지막에 가서야 그레이스 켈리가 그토록 갈망했던 화합을 이룰 수 있었다.
그녀의 죽음 또한 그녀의 삶과 마찬가지로 파란만장하고 수수께끼 같았다. 1982년 가을, 그녀는 곡선 도로에서 자동차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녀의 막내딸인 스테파니 공주는 중상을 입었지만 살아남았다. 그레이스 켈리는 오늘날 신화가 되었다. 보잘것없던 소녀가 왕비가 된 아메리칸드림의 전형이 되었다.

괴벨스 부부
제3제국의 모범 부부 역할을 했던 요제프와 막다 괴벨스는 전혀 롤 모델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니었고, 대중매체의 주목을 받는 사람도 아니었다. 히틀러가 마지막 순간까지 벙커에서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괴벨스 부부는 나치 제국의 정상 내외는 아니었지만 모범적인 부부상을 보여 주는 역할을 했다. 나치의 최고 지도자들이 정상적인 가족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 “키 작은 박사”는 자신의 가족을 국민들의 모범이 되는 가족으로 부각시키려 했다.
요제프 괴벨스와 같은 타입의 선전선동가, 범죄자에게 사랑과 같은 인간적인 감정이 일어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겠지만, 두 사람이 같이 지낸 처음 몇 해 동안을 기록한 그의 일기에는 이런 감정들이 드러난다. 비록 소유하고 있다는 자부심이라든지 자아 확인과 같은 심리가 그에게 우세하게 나타나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가 1931년에 부유한 기업가와 이혼한 이 이혼녀와 결혼한 것은 처음부터 정치적 목적을 띠고 있었다. 막다는 괴벨스에게 사교계에 어울릴 수 있도록 그에 걸맞은 예의범절을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괴벨스를 제국 선전장관으로 임명함으로써 두 사람의 목적은 달성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이제 새로이 국가가 부여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초창기에 서로에게 열정적이었던 시기가 지나자 그들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요제프 괴벨스는 부인의 후견인 노릇을 하고자 했으나, 부인 스스로는 독립적인 역할을 수행하길 원했다. 그들 관계는 점점 소원해졌다. 괴벨스는 부인의 후견인 노릇을 가장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고, 막다는 히틀러와 밀접한 관계를 다시 구축하려고 했다. 이 때문에 괴벨스의 결혼은 애초부터 삼각관계였던 것처럼 보였다.
전쟁이 발발하기 오래전부터 결혼 생활은 엉망이었다. 히틀러가 개입한 덕분에 겨우 별거라는 상황을 막을 수 있었으며, 이로써 선전용 부부의 파국을 피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사랑과 애정이 결혼 생활의 근간이 되지 못하자, 이 결혼 생활을 유지시켜 준 것은 국가사회주의 이념이었다. 괴벨스 부부는 전쟁이 끝날 무렵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여섯 명의 자식 목숨까지 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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