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기독교 사회(Post-Christendom)와 시대를 사는 지혜는 어디서 오는 걸까? 칼뱅과 루터,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 왕국 체제의 산물이자 지지자이기에 그들을 경유하여 1세기의 기독교와 신약성서로 귀환의 경로일지언정 초막 셋 짓고 머무를 수 없다. 키르케고르를 디딤돌 삼아 곧바로 1세기의 기독교와 신약 성서로 돌입해야 한다. 그러면 왜 키르케고르이고, 1세기의 교회일까? 그건 우리 시대의 요청이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시대의 화두는 무엇일까? 평화다. 폭력을 넘어 평화와 화해로 나아가는 일이다. 하나님과의 평화, 이웃과의 평화, 자신과의 평화, 자연과의 평화에 이르러야 한다. 탈기독교적이면서도 폭력과 평화를 성찰한 이는 역사적으로 아나뱁티스트와 함께 쇠렌 키르케고르이다. 그리고 르네 지라르를 추가할 수 있겠다. 폭력의 뿌리를 계시론에 입각해서, 인간의 존재론을 탐색하는 이 책은 우리를 지혜의 길로 인도하리라 확언한다.
- 김기현 (로고스 서원, 《욥, 까닭을 묻다》의 저자)
미국 브라이트 신학교(Bright Divinity School)의 기독교 윤리학 교수인 찰스 벨린저(Charles Bellinger)의 『폭력 계보학』(The Genealogy of Violence)이 이상보 목사의 명쾌한 번역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 책에서 벨린저 교수는 현대 인간론의 난제 중의 하나인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 하나의 기독교 인간학적 답변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앨리스 밀러, 어빈 스타우브, 칼융, 어니스트 베커 등이 제시한, 폭력에 대한 심리학적 문화 인류학적 관점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쇠렌 키르케고르와 르네 지라르의 사상을 중심으로 그 해답을 탐구한다.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인간 윤리 및 사회제도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 개인의 혹은 집단의 원시적 폭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전쟁이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벨린저 교수는 키르케고르 사상의 재해석을 통해 이러한 인간 폭력의 근원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 그로 인한 존재론적인 불안, 그리고 그 불안한 상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와 구원으로 나아오라는 부름에 대한 의지적 거부, 즉 “자신의 영적 성장 가능성에 대한 저항”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더 나아가 르네 지라르의 모방이론과의 비교분석을 바탕으로 키르케고르의 인간 폭력에 대한 이해가 실존적이고 개인적인 측면에만 적용되지 않고 공동체적이고 사회적인 함의가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은 이러한 현대의 폭력에 대한 심리학적이고 사회학적이며 동시에 신학적인 분석이 전통적인 속죄이론에 주는 함의를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벨린저 교수의 책은 키르케고르의 사상을 인간의 폭력성이라는 측면에서 재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독교 속죄교리의 발전 방향성을 제시한 탁월한 연구서이다.
- 김영원 (장신대 조직신학 교수)
찰스 벨린저의 《폭력 계보학》을 처음 접할 때 받은 솔직한 감정은 상당히 낯선 책이라는 인상이었다. 우선 저자인 찰스 벨린저라는 이름이 다소 낯선 것이 사실이다. 브라이트 신학교의 신학, 윤리학 교수인 벨린저는 아직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저명한 신학자는 아니다. 《폭력 계보학》이라는 제목도 다분히 낯설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쇠렌 키르케고르와 르네 지라르 사상을 통한 성찰’이라는 부제(副題)는 너무 뜻밖의 조합이라서 생경(生硬)한 느낌의 첫인상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러나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저자는 《폭력 계보학》이라는 이질적인 제목에 독자들이 공감하고 설득당할 수밖에 없는 논리적인 설명을 펼쳐 나간다. 인류에게 만연한 폭력, 특히 20세기 1, 2차 세계대전 등을 통해 최악으로 치달았던 전대미문의 대형폭력사태를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폭력에 대한 여러 사회과학적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저자는 폭력의 뿌리에 대한 진정한 대답은 오직 신학적 차원에서 가능할 수 있다고 독자들을 설득한다. 21세기 우리 사회에도 아직 만연하고 있는 다양한 폭력을 강 건너 불처럼 구경만 하고 있던 우리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무뎌진 양심에 경종을 울리는 목소리가 아닐 수 없다.
벨린저 교수는 인간폭력의 뿌리를 키르케고르의 저서들을 독해(讀解)하면서 탐색해 나간다. 잘 알려진 것처럼 키르케고르는 요하네스 클리마쿠스, 하우프니엔시스, 안티 클리마쿠스 등의 익명(匿名)을 통한 저술 활동을 펼쳐서 그 자신의 진의(眞意)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 사색가였다. 따라서 ‘우울하고 고독한 덴마크 사상가,’ ‘급진적 개인주의자’ 등의 별명이 잘 어울리는 키르케고르는 군중의 폭력 현상에 대한 설명과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데, 바로 그런 키르케고르의 여러 저서를 천착(穿鑿)하면서 폭력의 진정한 뿌리를 찾아내려는 벨린저 교수의 통찰력이 놀랍다. 계속되는 창조와 열린 미래, 인간의 자유와 책임, 불안과 죄, 절망과 죽음에 이르는 병 등 20세기에 유행했던 실존주의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중요 개념들이 벨린저 교수에 의해 다시 소개되고 신선하게 재해석되고 있다. 다음 몇 개의 직접 인용문을 통해 저자의 논증 방향을 미리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불안의 근원을 제거함으로써 불안감을 진정시키려는 인간의 시도가 폭력의 출발점이다.”(119쪽), “타인에 대한 악의의 가장 기본적인 뿌리는 새로운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자신에 대한 악의이다.”(123쪽), “키르케고르 사상은 인간의 무질서의 가장 깊은 지층을 발굴하고 밝혀내려는 고고학적 연구의 일종이다.”(108쪽).
‘신 앞에 선 단독자(單獨者)’ 개념으로 유명한 주관주의적 성향의 사상가 키르케고르에게서 폭력의 신학적 죄와 절망의 뿌리를 캐내는 작업도 놀랍지만, 키르케고르를 ‘모방 욕망과 희생 제의’ 개념을 주장한 르네 지라르와 연결하여 고찰하는 것은 더욱더 독창적이고 신선한 발상이다. “군중은 거짓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라는 키르케고르의 절규는 진정한 개인화의 실패가 모방 욕망과 희생 제의를 불러온다는 지라르의 사상과 일치한다는 지적이다. 진정한 주체, 신 앞에서 참된 자아로 거듭나지 못한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이 폭력이라는 죽음의 굿판을 역사의 현장에 펼쳐놓게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벨린저 교수에게 큰 영향을 준 다른 한 사람의 흔적도 행간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가 바로 에릭 뵈겔린(Eric Voegelin)이다. 20세기의 중요한, 그렇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문명비판가였던 뵈겔린이 저자에게 보이지 않는 멘토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기본적인 전제는 인간의 무질서는 납득 가능한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223쪽)라는 저자의 말처럼 《폭력 계보학》은 자칭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이 왜 광기 어린 폭력에 휩싸이게 되는지를 분석하려는 저서이다. 다양한 사회과학적 이론들, 이른바 ‘세속적 이론들’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깊은 폭력의 뿌리가 인간에게 내재하여 있음을 강조하는 저서이다. 비폭력주의적 아나뱁티스트 전통의 관점에서 벨린저 교수는 심지어 기독교 역사 자체에도 신의 이름으로 수많은 폭력이 난무했음을 고발하며, “인간 모두가 죄인이자 동시에 의인”이라는 고전적 신학적 명제를 확인한다.
결론적으로 《폭력 계보학》은 오랜만에 만나는 신선한 감동의 저서이다.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곳곳에 생각을 자극하는 통찰력과 다양한 학술적인 정보가 숨어있어 큰 도전과 성취감을 주는 훌륭한 저서이다. 21세기 들어서서 새롭게 나타나기 시작한 전 세계의 양극화 현상, 특히 정치적 양극화와 온갖 거짓 뉴스들(fake news), 탈진리(post-truth)의 폭력 현상 속에 사는 우리에게 이 모든 증오와 무질서의 뿌리를 가늠하게 해주는 귀한 저서이다. 책임 있는 학문적 자세로 꼼꼼하고 깔끔하게 번역을 완성한 번역자에게도 감사와 축하를 보낸다.
- 배국원 (전 한국침례신학대 총장)
현대 사회에는 폭력이 난무하다. 인종, 젠더, 장애, 정치와 같은 온갖 이슈로 인류는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고자 노력한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사실은 폭력의 정반대 편에 서 있으리라 기대되는 종교마저 때때로 폭력을 정당화한다는 점이다. 종교의 자기모순을 목도하며, 저자 찰스 벨린저는 신학적/종교학적 사유를 통하여 폭력의 뿌리를 파헤치고자 시도한다. 폭력을 심층적으로 해부하기 위해 저자는 키르케고르와 르네 지라르의 이론을 독자에게 친절하게 소개한다. 종교와 폭력의 문제를 고민하는 독자에게 본 도서는 분명 깊은 성찰을 제시해 줄 것이다.
- 임성욱 (연세대 신과대학/연합신학대학원 부교수)
찰스 벨린저의 책 《폭력 계보학》은 르네 지라르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책이다. ‘군중은 비진리다’(The Crowd is Untruth)라고 지속적으로 말한 키르케고르는 미묘하고 신학적으로도 심오한 폭력의 심리학 이해를 위한 기초를 제공한다. 지라르의 군중 이해는 키르케고르보다 훨씬 이론적으로 정교하고 방대하다. 군중 심리학에 대한 지라르의 이론은 고대 아즈텍 문명으로부터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사회과학적 데이터를 고려함으로써 현대의 철학적 인류학과의 대화 속에서 명확히 표현된 방대한 사회이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키르케고르의 기독교 실존주의 철학과 그 이후의 독일 하이데거와 프랑스의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에게서 발견되는 무신론적이고 신이교주의적인 실존주의 철학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영지주의 연구의 대가 한스 요나스는 하이데거의 철학을 허무주의적 실존주의로 파악해서 현대의 새로운 영지주의로 분석한 바 있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신 앞에서의 단독자와 니체와 하이데거가 자신들의 디오니소스적 메시아주의 속에서 선택한 군중의 신 디오니소스는 대조된다. 키르케고르 이후의 실존주의 철학은 집단주의로서의 사회주의적 실존주의로 기울게 된다. 키르케고르의 경우처럼 하나님 앞에서의 단독자가 실존주의 철학의 중심이 아니라, 니체와 하이데거의 허무주의적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군중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중심에 자리 잡게 된다.
찰스 벨린저는 르네 지라르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정치철학자 에릭 뵈겔린(Eric Voegelin)을 이 책에서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다. 뵈겔린은 한스 요나스(Hans Jonas)의 고전적인 영지주의 연구를 정치연구에 적용해서 고대 영지주의와 현대 전체주의적 운동들 사이의 유사성을 분석한 바 있다. 뵈겔린에 의하면, 독일 민족사회주의(나치즘)와 국제사회주의(소련 공산주의 운동)는 새로운 영지주의 운동이다. 20세기의 이 두 사회주의적 전체주의 운동은 모두 일종의 대체종교(Ersatz-Religion)’ 혹은 ‘정치종교’(Politische Religion)들로서 “영지주의적 군중 운동”이라는 것이 뵈겔린의 기본적인 분석이다. 르네 지라르와 폭력 계보학에 대한 연구로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 정일권 (전 숭실대 교수 · 국제 지라르 학회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