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화된 지식을 넘어 융합과학으로
우주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의미를 묻다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누구나 한 번쯤 던져봤을 이 근원적인 질문은 오랜 기간 종교와 철학의 영역이었다. 종교와 철학이 우리를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분명 한계도 존재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시대와 문화, 개인의 신념에 따라 주장하는 바가 달랐다. 물론 얼마 전까지 과학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10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우주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 과학의 폭발적인 발전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우리 인간과 우주에 대해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2014년 유미과학재단을 설립해 청소년과 일반인의 ‘과학하기’와 ‘과학 이해하기’를 우리 사회에 널리 전파하고자 힘써온 송만호 이사장과 빅히스토리의 관점에서 우리 우주와 생명을 다룬 2021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한국과학창의재단 올해의 책 『과학오디세이-유니버스&라이프』의 저자 안중호 교수가 분절되고 파편화된 과학 지식을 아우르는 융합과학의 관점으로 우주의 탄생에서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까지 이어지는 장구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은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백뱅 이후 138억 년의 역사를 과학으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우주와 물질을 설명하는 물리, 물질들이 결합하는 원리를 설명하는 화학, 생명이 탄생하고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생물학, 지구의 환경을 설명하는 지구과학을 날실과 씨실로 엮어 태초의 우주에서 현재의 ‘나’로 이어지는 놀라운 관계의 연속성을 드러낸다.
이 장구한 여행을 함께 하다보면 ‘우리 모두가 왜 별의 자손인지’ ‘우리가 어떻게 시아노박테리아에 빚을 지고 있는지’ ‘침팬지와 인류가 어떻게 공통 조상에서 분기한 것인지’와 같은 질문에 답하며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점차 다가갈 수 있다. 방대한 시간을 다루지만 최대한 어려운 개념과 서술, 수식을 피하고 누구나 접근 가능한 설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 초심자와 미래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138억 년 우주의 시간이 1년의 달력이라면
우주 달력을 통해 본 관계의 연쇄들
138억 년이라는 우주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 감각으로는 좀처럼 그 규모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지구에서 일어난 지질학적 시간도 아득한데 하물며 우주의 시간은 어떠할까. 저자들은 138억 년이라는 우주의 시간을 1년의 달력으로 축약해 영겁과 같은 시간에 가려져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존재들의 관계를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우리의 시간 감각으로는 현생 인류가 등장한 약 25만 년 전은 무척이나 긴 시간이다. 채 한 세기를 살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아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럼 우주 달력에서 우리 인류는 언제쯤 출현했을까? 놀랍게도 우리 인류는 한 해의 마지막인 12월 31일 23시 50분에 등장했고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인류의 전 대륙 확산은 7분 후인 23시 57분에 일어났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우주의 중심인 것처럼 행동할 때가 많지만 우주 달력을 통해 보면 우리는 이제야 막 출현한 햇병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공간적 규모와 더불어 시간적 규모에서도 우리는 우주의 먼지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우주 달력이 드러내는 우주적 규모의 관계들은 우리가 누구이고 또 어디에 있는지 더 깊이 고민하도록 이끈다.
빅뱅으로 우주가 시작된 1월에서 출발해 원시별이 탄생한 2월, 태양계와 지구가 탄생하고 지구에 첫 생명체가 탄생한 9월, 진핵생물이 출현한 11월과 현생 인류가 탄생한 12월까지 시간 여행을 하다 보면 우주의 달력의 시간이 거대한 탄생과 소멸, 생과 죽음의 반복이라는 것 그리고 현재의 우리도 어떠한 탄생과 소멸 사이에 놓인 사건, 그중에서도 아주 작은 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초심자와 청소년을 위한
한눈으로 보는 현대 과학의 성과들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구와 우주의 역사를 융합과학의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는 지금, 현대 과학은 얼마만큼 발전한 걸까.
우주와 인간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진화론을 제창한 찰스 다윈, 대륙 이동설을 주장한 지구물리학자 알프레트 베게너, 진핵생물이 원핵생물인 고세균과 박테리아가 결합해서 만들어졌음을 밝힌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 DNA의 특징을 발견한 생물학자 제임슨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등 자연스럽게 현대 과학의 성과와 그 주역들을 만날 수 있다.
스탠리 밀러가 몇 개의 깨끗한 무기 분자들의 반응을 통해 생명의 분자인 유기 분자들이 생성되어 첫 생명체가 탄생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처음 밝혀냈던 1953년, 그 이전까지만 해도 생명체의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과 같은 유기 분자들이 무기 분자들의 반응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밀러의 밀러-유리의 실험 이후 많은 과학자들이 비슷한 실험을 정교하게 발전시키면서 2020년, 첫 생명체는 밀러가 밝혔던 깨끗한 분자가 아니라 다양한 분자들이 마구 섞인 복잡한 분자들에 의해 탄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과학의 발전으로 더 정확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 외에도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탐험하며 직접 관찰한 것을 토대로 입증한 자연선택 기반의 진화학이 멘델의 유전법칙을 만나 현대의 진화유전학의 구심점이 되고, 이후 후성유전학을 통해 음식, 습관, 주변 환경 등 후천적인 변화에 의해서도 유전 형질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게 된 과정은 19세기에서 21세기에 걸친 과학의 발전을 단번에 그려나갈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저자는 과학의 개념이나 과학이 이룬 성과를 분리하지 않고 역사의 맥락 안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써 내려가 과학을 처음 접하는 학생이나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과학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우리 종은 좀 더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
관계가 드러내는 인간중심주의의 편협성과 인류의 미래
기후 위기, 쓰레기로 넘쳐나는 바닷속, 사라져가는 동식물... 지구의 위기는 곧 우리의 위기다. 우리는 지난 몇 년에 걸쳐 바이러스로 위기에 내몰리고서야 비로소 실감했다. 역병은 인간의 역사 속에 늘 존재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남은 사람들이 생존해나갔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를 통해 지구가 우리에게 보내는 경종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게 느껴진다. 인간의 역사는 우주의 역사 138억 년, 지구의 역사 46억 년에 비하면 고작 30만 년에 불과하다. 인간이 있기 전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물종도 멸종과 생존을 수없이 반복했지만 이는 소행성과의 충돌, 빙하기로 인한 기온의 변화 등 자연 원리에 의해 수천만 년에서 수억 년에 걸쳐 일어난 멸종이었다. 그에 비하면 인간이 출현한 이후 산업화를 포함해 인간 중심으로 일어난 자원의 무분별한 사용, 가축 동물의 사육과 학살로 인한 지구 생태계 파괴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불구하고 ‘인류세’라는 오명을 남길 만큼 그 영향이 실로 막대하다.
위기에 내몰린 지구,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 우리는 앞으로 어떤 방향을 나아가야 할까?
이 책은 호모 사피엔스의 눈부신 성공을 다루며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맞닿아 탄생하게 된 현생 인류의 발전 과정을 밀도 있게 다룬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지구에서 절대적으로 높은 우위에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의 힘만으로 불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추상적 사고와 언어를 바탕으로 높은 지능을 가진 우리는 이제 생존 본능으로만 살아가던 일차원적인 방식을 버리고 고도화된 지능을 활용하여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의 생태계가 함께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인류세로 인해 위기를 맞게 된 지구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자 우리 후세대의 미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과학 기술도 인공지능이나 유전자 조작 기술처럼 인류의 편리를 위한 것에서 머물지 않고, 지구 생태계와 인류가 함께 지속가능한 공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선조들이 남겨준 고차원의 지능과 정신 활동의 진정한 쓸모가 아닐까. 더 나아가 인류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태인 지구, 더 나아가 우주의 한 점으로 시작된 별들의 자손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