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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 박태원, 채만식, 심훈, 이광수, 이기영, 황순원, 강경애, 이인직, 이효석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0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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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년 0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35*207*1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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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9명)

저 : 염상섭 (廉尙燮, 횡보橫步)
서울출생. 교토부립제2중학교, 보성소학교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문학부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10월에 「암야」의 초고를 작성하고 『삼광』에 작품을 기고하는 등 20대 초반부터 작품 활동을 꾸준히 펼쳤다. 1920년 2월 『동앙일보』 창간과 함께 진학문(秦學文)의 추천으로 정경부 기자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는1920년 7월 김억(金億), 김찬영(金瓚永), 민태원(閔泰瑗), 남궁벽(南宮璧), 오상... 서울출생. 교토부립제2중학교, 보성소학교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문학부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10월에 「암야」의 초고를 작성하고 『삼광』에 작품을 기고하는 등 20대 초반부터 작품 활동을 꾸준히 펼쳤다. 1920년 2월 『동앙일보』 창간과 함께 진학문(秦學文)의 추천으로 정경부 기자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는1920년 7월 김억(金億), 김찬영(金瓚永), 민태원(閔泰瑗), 남궁벽(南宮璧), 오상순(吳相淳), 황석우(黃錫禹) 등과 함께 동인지 『폐허』를 창간하고 폐허 창간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조선일보학예부장, 만선일보와 경향신문의 편집국장을 지냈다. 1921년 『개벽』에 발표한 처녀작「표본실의 청개구리」한국 최초의 자연주의적인 소설로 평가되며, 암야」「제야」「전야」「만세전」등을 통해 근대 중편소설의 초석을 닦았으며, 이후 소시민들의 생활상을 치밀하게 보여줌으로써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독특한 시각은 장편소설 『삼대』에 이르러 집대성 되었다.

1920년대 염상섭은 대체로 당시 문단에서 양대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중립적인 노선을 견지하고자 노력하였는데, 단편 "윤전기"를 통해 그의 가치중립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앞서 언급한 바 있는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삼대"는 식민지 현실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가족간에 벌어지는 세대갈등을 그려낸 그의 대표작이다. 서울의 한 중산층 집안에서 벌어지는 재산 싸움을 중심으로 1930년대의 여러 이념의 상호관계와 함께 유교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현실을 생동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서라벌예술대학 학장, 예술원 종신회원, 경향신문 편집국 국장, 만선일보 편집국 주필, 국장, 시대일보 사회부 부장, 동아일보 정경부 기자를 역임하였다. 그 밖의 작품으로 『두 파산』, 『일대의 유업』 등의 단편소설과 『무화과』, 『백구』, 『취우』등의 장편소설이 있다. 1963년 작고하였으며, 대한민국 예술원상 문화훈장 은관, 3.1 문화상,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받았다.
저 : 박태원 (朴泰遠, 호 : 몽보夢甫, 구보丘甫)
작품의 이데올로기보다는 문장 그 자체의 예술성을 중시하고, 새로운 소설적 기법을 시도하는 한편, 인물의 내면 의식 묘사를 중시하는 등 강한 실험정신을 보여준 작가이다. (1909년~1987년) 서울 출생으로 1930년 신생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에 나왔다. 구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반계몽, 반계급주의문학의 입장에서 세태풍속을 착실하게 묘사한 『소설가 구보씨의 1일』『천변풍경』등을 발표함으로... 작품의 이데올로기보다는 문장 그 자체의 예술성을 중시하고, 새로운 소설적 기법을 시도하는 한편, 인물의 내면 의식 묘사를 중시하는 등 강한 실험정신을 보여준 작가이다. (1909년~1987년) 서울 출생으로 1930년 신생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에 나왔다. 구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반계몽, 반계급주의문학의 입장에서 세태풍속을 착실하게 묘사한 『소설가 구보씨의 1일』『천변풍경』등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1930년 일본 호세이대학(法政大學)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도중에 중퇴하였지만 그 일본 유학 시절 현대 예술 전반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경성고보 3학년 때인 1926년 『조선문단』에 시 『누님』이 가작으로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하였다. 초기에는 주로 시를 썼으나, 이후 단편 『적멸(寂滅)』(1930), 『수염』(1930), 『꿈』(1930) 등을 발표하면서 소설 창작에 주력하게 된다. 그리고 1933년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하면서부터 예술파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정립하기 시작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가족을 남겨둔 채 월북하였고, 북한 쪽 종군기자로 활동했다고 한다. 1960년에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의 집필을 착수하나, 당뇨병과 고혈압으로 실명과 전신불수가 되는 시련을 겪으면서『갑오농민전쟁』 1, 2부를 출간한다. 1986년 7월 10일에 사망했으며, 사망 후에 박태원의 구술을 정리하여 『갑오농민전쟁』 3부가 출간되었다.
저 : 채만식 (蔡萬植, 백릉白菱, 채옹采翁)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 1902년 전라북도 옥구에서 출생하여 임피보통학교,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을 중퇴했다. 조선일보사·동아일보사·개벽사 등의 기자로 재직했으며, 1936년 이후로는 창작에 전념하며 풍자성이 농후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45년 낙향하여 1950년 이리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1924년 단편「새길로」(『조선문단』)로 등단 후 290여 편...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 1902년 전라북도 옥구에서 출생하여 임피보통학교,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을 중퇴했다. 조선일보사·동아일보사·개벽사 등의 기자로 재직했으며, 1936년 이후로는 창작에 전념하며 풍자성이 농후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45년 낙향하여 1950년 이리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1924년 단편「새길로」(『조선문단』)로 등단 후 290여 편에 이르는 장편·단편 소설과 희곡·평론·수필 등을 썼다.

장편 「인형의 집을 나와서」(1933)·「탁류濁流」(1937)·「천하태평춘」(1938)· 「금(金)의 정열」(1939) 등과 단편「레디메이드 인생」(1934)·「치숙」(1938)·「패배자의 무덤」(1939)·「맹순사」(1946)·「미스터 방(方)」(1946) 등이 대표작이다. 1942년 조선문인협회가 주관한 순국 영령 방문 행사와 1943∼1944년에 국민총력조선연맹이 주관하는 예술 부문 관계자 연성회, 보도특별정신대 등 친일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저 : 심훈 (본명 : 심대섭(沈大燮), 호 : 海風)
1901년 9월 12일, 노량진 현 수도국 자리에서 조상 숭배 관념이 철저한 아버지 심상정과 어머니 파평 윤씨 사이에서 3남 1년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조선조 말 중류 가정 출신으로 온후한 성품과 뛰어난 재질을 지닌 여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심훈의 본명은 대섭이고 소년 시절에는 금강생, 중국 유학 때는 백랑, 1920년 이후에는 훈이라고 썼다. 1915년 심훈은 경성 제일고보에 입학하였으며, 1... 1901년 9월 12일, 노량진 현 수도국 자리에서 조상 숭배 관념이 철저한 아버지 심상정과 어머니 파평 윤씨 사이에서 3남 1년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조선조 말 중류 가정 출신으로 온후한 성품과 뛰어난 재질을 지닌 여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심훈의 본명은 대섭이고 소년 시절에는 금강생, 중국 유학 때는 백랑, 1920년 이후에는 훈이라고 썼다.

1915년 심훈은 경성 제일고보에 입학하였으며, 1917년 3월 왕족인 전주 이씨와 혼인하였다. 제일고보 4학년 재학중(19세)에 3·1만세 운동에 가담했다가 3월 5일 피검되어 7월에 집행유예로 풀려 나왔다. 이어 중국 망명길에 올라 남경과 상해를 거쳐 향주에 이르러 지강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여기에서 안석주와 교유하여 후일 '극문회'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1942년 이후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아내 이해영과 이별하였다. 1930년, 심훈은 19세의 무희인 안정옥과 결혼하여, 『독백』『그날이 오면』등의 시를 발표했다. 그 후 장남 재건과 같이 충남 당진에 내려가 창작에 전념하였다.

1933년 심훈은 장편 『영원의 미소』를 탈고하여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이해영에 대한 회고적 작품 『직녀성』을 발표하여 그 고료로 부곡리에 자택을 짓고 '필경사'라고 불렀다. 이 필경사에서 심훈은 『상록수』를 쓰고 또 그것이 [동아일보]현상모집에 당선되어 일약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상록수』는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현상 모집에 당선되어 상금 500원을 탄 작품으로, 농촌 계몽 운동을 일으킨 큰조카 심재영과 최용신을 모델로 쓰여졌다. 가난한 농촌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 그의 작품들은 대개 애향심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계몽주의 문학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저 : 이광수 (李光洙, 춘원春園)
호는 춘원(春園). 한국 현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가장 중요한 작가다. 조선왕조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구한말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여, 일찍 부모를 여의고도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유학을 통하여 근대사상과 문학에 눈뜨고 이를 한국적 사상 및 문학 전통에 접맥시켜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열어나갔으며, 한국전쟁 와중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놀라운 창작적 삶을 이어간 작가였다. 14세 ... 호는 춘원(春園). 한국 현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가장 중요한 작가다. 조선왕조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구한말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여, 일찍 부모를 여의고도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유학을 통하여 근대사상과 문학에 눈뜨고 이를 한국적 사상 및 문학 전통에 접맥시켜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열어나갔으며, 한국전쟁 와중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놀라운 창작적 삶을 이어간 작가였다. 14세 때 일진회 유학생으로 도일하여, 메이지 중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하고 [소년]지를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년 1월 1일부터 한국 신문학 사상 최초의 장편인 『무정』을 연재했다.

1919년 도쿄 유학생의 2 ·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했고,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보석된 뒤부터 본격적인 친일 행위를 했다.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었으며 가야마 미쓰로라고 창씨개명을 하였다. 8 ·15광복 후 반민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34년 동안 작가로 활동하면서 『개척자』, 『선도자』, 『재생』, 『마의태자』,『단종애사』, 『군상』, 『흙』,『유정』, 『이순신』, 『그 여자의 일생』, 『이차돈의 사』, 『그의 자서전』, 『사랑』, 『원효대사』 등 60여 편의 소설과 시가, 수필, 논문, 평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몽주의 문학을 통하여 브나로드 운동 등 사회개혁 활동을 북돋우기도 하였다. 일제 시대 그의 친일 행각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었다가 자강도에서 병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문학은 50년이라는 지속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소설 외에도 시가·평론·수필 등 전영역에 걸친 방대한 규모를 드러냈다. 그러나 주류는 역시 소설이며 더불어 문학사적 가치를 1차적으로 결정해주는 것은 1910년대 계몽주의 소설들이다. 이 시기의 장편 『무정』(1917)은 우선 시제의 정확한 구별과 새롭고 의욕적인 문체 등으로 형식 면에서 근대소설로서의 획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이전의 신소설과 달리 당대인들의 삶과 성격을 실감나게 그렸고, 사회현실에 대응하는 젊은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잘 그려냈다는 점에서 근대성을 획득하고 있다. 또한 시대적 이념이라 할 수 있는 부르주아 계몽주의 입장에서 자유결혼 및 근대적 자아각성의 문제 제기를 통해 전통적 인습·윤리를 반대하고, 신교육·신문명을 통한 자강주의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나타난 추상적 계몽주의,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인식의 결여는 『무정』을 진정한 의미의 근대소설로의 평가를 유보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무정』과 같은 계몽소설의 연장에 놓이는 『흙』은 농촌계몽소설로서, 브나로드 운동 등의 민족적 교화운동의 일환에서 나온 작품이다. 이광수의 농촌현실에 대한 관심은 이보다 앞선 1916년 『매일신보』에 발표한 『농촌계발』이라는 논문에서 발견되는데, 그는 이 글에서 우리 농촌의 결점 중의 하나로 '교육이 없음'을 지적하며 선각자적 지식인이 농촌계발에 앞장서야 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정신에서 나온 『흙』은 농민과의 정신적 연대성이 고조되던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며 주인공 '허숭'은 자신의 신분(변호사)을 버리고 농촌으로 돌아가는 이상적인 지식인으로 그려진다. 한편 이광수의 작품 중 상당수가 남녀의 애정을 다루고 있는데 『유정』(1933)·『그 여자의 일생』(1934~35)·『사랑』(1938) 등에 나타난 남녀간의 애정은 통속적인 애정소설과는 달리 정신적인 이상주의를 지향하는 특유한 성격을 지닌다.

이광수는 『단종애사』(1928~29)를 포함한 다수의 역사소설을 발표해 역사소설가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발휘했다. 그가 역사소설을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시기는 1920년대 후반이며, 일제에 대한 직접적인 대항이 어려워지자 현실적인 소재보다 역사소설의 비유적 기능을 빌려 현실을 비판하고 이에 항의하려는 역사소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대표작인 『이순신』(1931~32)·『이차돈의 사』(1935~36)·『공민왕』(1937) 등은 옛 것을 재현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역사를 대중화한 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복고주의에 흘러 당대 현실에 대응한 실현적 관심을 제기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이광수의 대표적 평론은 초기의 『문학의 가치』(1910)· 『문학이란 하(何)오』(1916)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한국 최초의 본격적 평론이라 할 수 있으나 명확한 문학관에 입각하여 하나의 문학적 주의를 이론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서구 문학의 여러 주의를 체계 없이 나열한 한계를 드러낸다. 초기의 잡다한 주의들은 그후 톨스토이 예술론의 영향 아래 공리주의 내지 계몽주의에 뿌리를 내렸고 이후의 문학론들은 대개가 '인생을 위한 예술' 및 '도덕과 예술의 일치'를 강조하는 것으로 모아졌다. 그래서 그의 논설은 항상 주목이 되었고 당시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저 : 이기영 (李箕永, 호 민촌(民村))
농촌현실의 발견과 새로운 인물유형의 창조를 통해, 농민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창출해 냄으로써 농촌현실의 총체성을 구현하는 사실주의소설의 가능성을 확보하고 '경향소설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대작 『고향(故鄕)』을 쓴 작가 이기영이다. 충남 아산 출생으로 1924년 『개벽』에 「오빠의 비밀편지」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한 이후, 줄곧 경향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농촌현실의 발견과 새로운 인물유형의 창조를 통해, 농민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창출해 냄으로써 농촌현실의 총체성을 구현하는 사실주의소설의 가능성을 확보하고 '경향소설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대작 『고향(故鄕)』을 쓴 작가 이기영이다. 충남 아산 출생으로 1924년 『개벽』에 「오빠의 비밀편지」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한 이후, 줄곧 경향문학의 대표적 작가로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1931년과 1934년의 카프검거사건 당시 구속되기도 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카프의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일찍이 월북하여 북조선 문학예술총동맹을 이끌면서 조소친선협회 중앙위원회 위원장,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1984년 사망하여 평양에 묻혔다. 농민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창출한 초기작 『민촌』, 『농부 정도룡』, 노동자 관점에서 현실을 반영한 후기 작품 『서화』, 『고향』, 『두만강』등이 대표작이다. 또한 소설집에는 『민촌』(1927), 『신개지(新開地)』(1938), 『생활의 윤리』(1942), 『봄』(1942), 『동천홍(東天紅)』(1943), 『광산촌』(1944), 『처녀지(處女地)』(1944), 『어머니』(1948) 등 다수가 있다.
저 : 황순원 (HWANG,SUN-WON,黃順元)
교과서에 실린 소설 소나기의 작가. 그는 원래 시인에서 출발하여 소설로 정착하였으며, '시적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형 문장을 사용하고 직접적 대화보다는 감각적 묘사와 서술적 진술, 그리고 옛날 이야기나 전설을 현재의 사건과 융합시키는 환상적인 수법을 통해 소설에 설화적 분위기를 부여했다. 1915년 3월 26일, 평양에서 가까운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에서 태어났다. 황순원의 나이 만 ... 교과서에 실린 소설 소나기의 작가. 그는 원래 시인에서 출발하여 소설로 정착하였으며, '시적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형 문장을 사용하고 직접적 대화보다는 감각적 묘사와 서술적 진술, 그리고 옛날 이야기나 전설을 현재의 사건과 융합시키는 환상적인 수법을 통해 소설에 설화적 분위기를 부여했다.

1915년 3월 26일, 평양에서 가까운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에서 태어났다. 황순원의 나이 만 4세에 그의 부친은 3.1운동 때 평양 숭덕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평양 시내에 배포한 일로 1년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기도 한다. 1921년 만 6세 때 가족 전체가 평양으로 이사하고, 만 8세 때 숭덕소학교에 입학한다. 유복한 환경에서 예체능 교육까지 따로 받으며 자라났다.

1929년에는 정주에 있는 오산중학교에 입학했으며, 그 이듬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첫 발표는 1931년 7월 『동광』 을 통해서인데, 「나의 꿈」이라는 시가 그 등단작이다. 이후 중학교 시절 거듭 시를 발표하다가 1934년 졸업과 함께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와세다 제2고등원에 입학한다. 여기서 이해랑, 김동원 등과 함께 극예술 연구단체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립하고, 이 단체 명의로 27편의 시가 실린 첫 시집 『방가』를 간행하였다.

1935년 1월에는 평양 숭의여고 문예반장 출신으로 일본 나고야 금성여자전문 재학중인 동갑의 처녀 양정길과 결혼하였으며, 황동규 시인을 비롯 3남 1녀를 낳았다. 1936년 와세다 제2고등학원을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한 황순원은 두 번째 시집 『골동품』을 출간한다. 그의 소설은 1937년 7월 『창작』 제3집에 발표한 「거리의 부사」가 첫 작품이다. 원고지 30장 정도의 길이인 이 작품은 동경에서 이 집 저 집 떠돌아다니며 사는 조선인 유학생의 궁핍한 일상을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듬해 10월에 「돼지계」를 발표하고, 이 두 작품을 비롯해서 창작 연대가 확실치 않은 다른 11편의 단편을 함께 묶어 그로부터 3년 뒤인 1940년에 『황순원 단편집』(『늪』)을 출간하였다.

일제의 간섭을 피해 1943년부터 고향 빙장리에 머물러 있던 황순원은 해방되고 9월에 평양으로 돌아가지만, 곧 공산 치하에서 지주 계급으로 몰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이듬해 가족들과 월남한다. 그해 9월에 서울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취임한다. 그때까지 가끔 시도 쓰고, 주로는 단편소설도 써왔는데, 처음으로 장편 구조를 가진 『별과 같이 살다』를 부분적으로 발표하게 된다. '곰녀'라는 한 여성의 육체적 신분적 수난을 중심으로 일제 말기에서 해방전후의 열악한 시대상황을 부각시키고 있는 이 작품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된 것은 1952년의 일이다.

1948년에는 7편의 단편을 수록한 『목넘이마을의 개』를, 1951년에는 「별」「그늘」 등이 수록된 소설집 『기러기』를, 1952년에는 11편의 단편을 담은 단편집 『곡예사』를 출간했으며, 이듬해인 1953년에는 그의 대표작인 「학」과 「소나기」가 발표되었다. 이후 「학」은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총 14편 단편소설을 수록한 단편집 『학』으로 출간된다. 1956년 말에 발표된 이 작품집 속에는 전쟁을 겪으면서 생명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 작가의 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1953년 9월부터 『문예』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5회를 연재하고, 잡지는 폐간되지만 작가는 그 뒷부분을 따로 써두었다가 이듬해 겨울에 단행본으로 출간한 카인의 후에는 그를 단편 작가로 머물지 않게 한 평판작이다. 평양에서 지주로 살던 작가 집안이 북한 공산주의 체제가 성립되면서 뿌리뽑힘을 겪어야 했던 실화가 바탕이 되었다고 알려진 이 소설은, 그 시기의 북한의 실상을 다루면서도 오작녀, 도섭 영감 등 토착적 삶을 배경으로 하여 급박하게 변화를 겪으며 살아 움직이는 인간상을 창조하여 존재의 의미와 사랑의 가능성을 묻고 있는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957년부터 경희대학교에 부임하여 문학적인 분위기와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확보한 상태에서 더욱 왕성한 작품활동을 한다. 그 해에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선임되었고, 스스로의 다산의 창작과 그 성취를 기반으로, 그것에 대한 사회적 예우가 얹어지는 가운데서 수많은 문인 제자들을 길러낼 수 있었던 시기가 이때로부터 열렸다. 경희대학교에서는 특별한 보직 없는 평교사로 23년 6개월을 봉직하고 또 말년까지 계속 명예교수로 있었다.

이 시기단편집 『잃어버린 사람들』과 『너와 나만의 시간』, 『탈』, 장편 『나무들 비탈에 서다』, 『움직이는 성』,『신들의 주사위』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1985년에 고희 기념집으로 낸 『말과 삶과 자유』 는 수필류를 쓰지 않은 황순원 문학에서는 보기 드문 산문집으로, 그의 인생관, 문학관, 미래관 등을 엿볼 수 있는 짧은 산문들로 채워져 있다.

예술원 원로회원을 역임했고, 아시아 자유문학상, 예술원상, 3.1 문학상, 인촌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경희대학교 국문과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많은 문인들을 배출해냈으며, 2000년 9월14일 86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소설가인 아들과 딸, 황동규, 황시내가 있다.
1906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부친을 여읜 뒤 모친의 재혼으로 장연(長淵)으로 이주했다. 1920년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했으나, 동맹 휴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아 경성부 동덕여학교 4학년에 편입해 약 1년간 수학했다. 1924년 양주동 등이 참여한 잡지 [금성]에 ‘강가마’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고, 같은 해 9월 고향으로 돌아가 무산 아동을 위한 흥풍야학교를 개설... 1906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부친을 여읜 뒤 모친의 재혼으로 장연(長淵)으로 이주했다. 1920년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했으나, 동맹 휴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아 경성부 동덕여학교 4학년에 편입해 약 1년간 수학했다. 1924년 양주동 등이 참여한 잡지 [금성]에 ‘강가마’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고, 같은 해 9월 고향으로 돌아가 무산 아동을 위한 흥풍야학교를 개설해 학생과 농민을 지도했다. 그 뒤 신간회와 여성 단체인 근우회 활동에도 가담했다. 1931년 장하일과 결혼하고 간도에 이주해 살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한때 [조선일보] 간도지국장을 역임했으나, 건강 악화로 1942년 남편과 함께 간도에서 귀국해 요양하던 중 작고했다. 1931년 단편 소설 『파금(破琴)』으로 문단에 데뷔했고, 장편 소설 『어머니와 딸』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 인정을 받았다.

어려운 살림살이와 병고, 그 리고 중앙 문단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준열한 작가 정신으로 식민지 한국의 빈궁 문제를 작품화하는 데 힘쓴 작가이다. 작가 강경애의 문제의식이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인간 문제』와 「지하촌」을 비롯해 「원고료 이백 원」, 「소금」, 「어둠」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날카로운 안목으로 제국주의와 계급, 젠더 문제를 치밀하게 다룬 작가이자 언론인, 여성 운동가. 가난과 불우한 가족, 중앙 문단과 멀리 떨어진 지방살이이라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근대 최고의 작품들을 발표했다.
저 : 이인직 (李人稙)
호 국초(菊初)이며 경기 이천(利川)에서 출생하였다. 일본 도쿄[東京] 정치학교를 수학한 뒤 1906년에 『만세보(萬歲報)』 주필이 되면서 신소설 『혈(血)의 누(淚)』를 동지에 연재, 계속 많은 작품을 썼다. 1908년에는 극장 원각사(圓覺社)를 세워 자작 신소설 『은세계(銀世界)』를 상연하는 등 신극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국권피탈 때 이완용(李完用)을 돕고 다이쇼[大正] 일본왕 즉위식에 헌송문(獻頌文)... 호 국초(菊初)이며 경기 이천(利川)에서 출생하였다. 일본 도쿄[東京] 정치학교를 수학한 뒤 1906년에 『만세보(萬歲報)』 주필이 되면서 신소설 『혈(血)의 누(淚)』를 동지에 연재, 계속 많은 작품을 썼다. 1908년에는 극장 원각사(圓覺社)를 세워 자작 신소설 『은세계(銀世界)』를 상연하는 등 신극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국권피탈 때 이완용(李完用)을 돕고 다이쇼[大正] 일본왕 즉위식에 헌송문(獻頌文)을 바치는 등 철저한 친일행동을 하기도 했으나 한국에서 처음으로 산문성(散文性)이 짙은 언문일치의 문장으로 신소설을 개척한 공로는 크다.

『혈의 누』 외에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귀(鬼)의 성(聲)』, 그밖에 『치악산(雉岳山)』 『모란봉(牡丹峰)』 등이 있고, 단편으로 『빈선랑(貧鮮郞)의 일미인(日美人)』이 있다. 한국 최초의 신소설가로서 개화사상을 고취하고 갈등과 성격 묘사, 그리고 사실적 문장을 처음으로 구사하였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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