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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1년 11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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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56쪽 | 618g | 130*205*29mm |
ISBN13 | 9791156334347 |
ISBN10 | 1156334349 |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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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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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본서의 첫 단편인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의 문장이다. 왜 하필 저 문장이 표제가 되었을까? 위의 단편을 목차 맨 처음에 배치한 이유는? 얼핏 하찮아 보이는 빗방울은 모이고 모여 작은 웅덩이나 잔잔한 강이 되기도 하지만 돌연 거센 폭풍을 몰고 오기도 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한 치 앞도 예단할 수 없는 삶에 무력하게 내던져진 인간은 심지어 한 시공간 안에서조차 서로 다른 운명을 맞이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고. 그런데 만약 저 모든 게 어느 정신병자의 환각이거나 한낱 꿈이라면? 파리 리뷰(편집자)는 살면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포착하고 그를 빗방울에 빗댄 게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모든 빗방울의 이름은 곧 삶이 된다. 독자를 단번에 휘어잡을 만한, 기가 막힌 제목이 아닌가. 이제부터 저 빗방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파악해 보려는 나의 이름 역시 ‘그중의 하나, 읽고 쓰는 빗방울'이라는 가정 하에...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나 「어렴풋한 시간」 의 공통점은 주 인물들과 상황 묘사가 마치 실제인 듯 매우 생생하다는 것이다. 영화 [아이덴티티(2003년 개봉/제임스 맨골드(감독)/존 쿠삭(에드 역)]를 연상시키는 전작은 삶이란 자동차 사고처럼 대비와 예측이 불가능한 재난과도 같음을 암시한다. 매우 짧은 분량에 비해 적당한 스릴과 긴장감이 느껴지는 밀도 높은 작품임에는 틀림없지만, 독서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다분해 보인다.
그런가 하면 「어렴풋한 시간」은 도입부터 무척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자동차 냉각수를 모두 마시고 죽은 아빠에 이어, 검시관이 말한 모습대로 죽은 엄마를 묘사한 부분. 작가들이 표제와 첫 문장(혹은 도입부)에 심혈을 다하는 이유일 것이다. 독자는 뭔가 독특하고 이후 전개가 마구 궁금해지는 그것들에 현혹되기 마련이니까.
반면 레이먼드 카버의 「춤추지 않을래」는 감정이 서서히 달구어지는 쪽에 가깝다. 밋밋해 보이는 세 인물의 대화가 이상하게 짠하고 울적한 게 여운이 깊고 넓다. 황정은의 소설 『백(百)의 그림자』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랄까.
영화 [엠퍼러스 클럽(2002년 개봉)]의 원작인 「궁전 도둑」은 12년 전 개봉작인 [죽은 시인의 사회]를 연상시킨다. 교육과 사회, 직업관 혹은 인간 자체에 대해 심오한 질문을 받은 듯한 이 작품은 10년 넘게 교사직에 몸담았던 나의 지난날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19년 동안 꿈꾸듯 살아왔다. 보지도 않고 봤으며, 듣지 않은 채 들었고, 모든 것을, 거의 모든 것을 망각했었다. 그러다가 말에서 떨어지면서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난 이후로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롭고 날카로웠다. 가장 오래되고 사소한 기억까지 선명하게 살아났다. 잠시 후 몸이 마비 상태임을 알았지만, 그 사실은 거의 관심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 그는 마비 상태가 최소한의 대가라고 (느꼈으며 그렇게) 합리화했다.”(「모든 걸 기억하는 푸네스」, 288쪽)
「모든 걸 기억하는 푸네스」는 낙마 사고 후 모든 걸 기억하게 된 한 청년의 이야기다. 이 작품의 저자는 무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다. 언젠가 『알레프』를 완독한 후 내친김에 『픽션들』까지 읽다 중도 하차한 그에게 다시금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준 이 단편에 대한 첫 느낌은 실제로 푸네스와 같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추측이었다. 인간의 한계에 대해 숙고하다 갑자기 얼토당토않은 생각에까지 미치게 된 묘한 작품이다.
“그래서 너한테 물어본 거야, 값이 싸질 거다.”
“고마워요. 끔찍하게 자상하시네요.”(「늙은 새들」, 303쪽)
김훈의 『화장』과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등을 떠올리게 하는 「늙은 새들」의 매력은 차고 넘친다. “반쯤 잠든 에테르 속에서 가장 섬세한 생각을 발견할 수 있다.”(303쪽) 아인슈타인의 일화를 빌어 나온 이 문장은 소설의 맥락상 죽음에 임박한 늙은 새(노인)의 또렷한 정신을 비유한 듯하다. 그렇게 나이 든 육체에 반비례하는, 에너지 짱짱한 여든아홉의 아버지는 “낮에 누워 있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지적하”며 자신과 아들의 장례식에 필요한 관을 할인된 가격에 미리 구매하려 한다. 죽기도 전에 자신의 시신을 화장할 건지 어쩔 건지를 물어보는 아버지를 상상해 보라. 이런 식이라면 중년의 육체에 어정쩡한 정신의 나는 지금 미래의 늙은 새(나)를 미리 보고 있는 셈이다.
“슬픔은 참 수수께끼 같아. 아주 사적이기도 하고.”(「라이클리 호수」, 340쪽) 상실 속에서도 일상은 계속된다. 아들이 죽은 장소는 잊고 싶은 ‘상실’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가족을 잃은 자의 삶은 절름발이의 그것과 같다. 블랙 유머를 닮은 슬픔의 방식이 마음을 파고든다.
그런가 하면 한 번쯤 이별을 경험한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슬프도록 아름다운 일인지. 점점 멀어지다 끝내 사라지고 말 기차를 내내 바라보게 되는 그 아픈 시간마저도(「플로베르가 보낸 열 가지 이야기」 <당신이 떠난 후에>).
“타운 북부에서 어느 흑인 부부가 백인 동네에 식료품점을 개업했다. 그날 밤 가게 창문이 전부 깨지고 불이 났다. 신문에 폐허가 되어버린 가게와 능글맞게 웃는 두 명의 경찰관과 재산을 전부 잃어버린 흑인 부부의 사진이 실렸다. 브리지 부인은 남편이 출근하고 몇 시간 후에 혼자 아침을 먹다가 기사를 보았다. 그녀는 젊은 흑인 부부의 비참한 얼굴을 살펴보았다.”(「브리지 부인의 상류사회」의 <평등>, 416쪽)
「브리지 부인의 상류사회」는 인종차별, 빈부의 격차, 범죄 등을 통한 사회 풍자와 역설은 물론 마치 거울 속의 나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만든다. 어느 날은 중고의류 보따리 해체 작업에 투입된 소년원의 소년들과 함께 자원봉사를 하고(<장갑>), 또 어느 날은 칵테일파티에 갔다가 강도를 당할 뻔한 상류층 부인의 일상(<헤이우드 덩컨 집 강도 사건>)은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가진 자들은 모를 것이다. 자신들의 선행이 그 의도와 다르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지. 하지만 가장 큰 공포는 그 누구도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과연 나는 타인의 불행에 무관심하고 방관하는 대중 속에 끼어있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백화점의 군중 속에 떠밀려 낯선 이의 거북한 인사를 받고 보니 아는 사람이었다? 한 끗 차이로 심하게 경계하던 사람이 일순간 편안한 사람이 되고 마는(<낯선 사람과 절대로 말하지 말 것>) 이 웃지 못할 해프닝이라니.
본서에 엮인 단편들은 결국 삶을 이루는 각양각색의 빗방울들이라 할만하다. 경험이란 인간의 비상한 능력인 왜곡된 ‘기억’과 ‘상상력’이 투사된 현실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기 마련이고, 이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평소 단편집 읽기를 꺼리던 나에게 이 책은 가장 애정 하는 단편집 1호가 될 공산이 크다. 일독하고 말기엔 너무 진중한 책을 만났다. 문득 내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가진 소소한 것들에 감사하게 된다. 서평단 응모 댓글에 ‘한 편 한 편 음미하며 한 잔의 커피처럼 추운 겨울을 따듯하게 나고 싶’다는 내용을 남겼더랬는데, 딱 그럴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만나게 되기까지의 모든 우연과 행운에 감사하며.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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