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YES24 카테고리 리스트

YES24 유틸메뉴

Global YES24안내보기

Global YES24는?

K-POP/K-Drama 관련상품(음반,도서,DVD)을
영문/중문 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Korean wave shopping mall, sell the
K-POP/K-Drama (CD,DVD,Blu-ray,Book) We aceept PayPal/UnionPay/Alipay
and support English/Chinese Language service

English

作为出售正规 K-POP/K-Drama 相关(CD,图书,DVD) 韩流商品的网站, 支持 中文/英文 等海外结账方式

中文

검색


어깨배너

2월 혜택 모음
웨일북 소마
1/6

빠른분야찾기


윙배너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허일후 아나운서가 추천하는 인생 도서

관련상품
소마

인류의 주요 사상들이 깃든 배경 속에서 한 인간의 기막힌 여정이 시작된다.

소마

채사장 저 | 웨일북

마케팅 텍스트 배너


 파트너샵가기 공유하기 예스24 음반 판매 수량은
차트와 차트 집계에 반영됩니다. 한터차트/가온차트 집계 반영 안내
수입
LP

베리 쿨 크리스마스 3집 (A Very Cool Christmas Vol. 3) [투명 블루 & 투명 컬러 2LP]

펄 잼, 블랙 크로우스, 폴 사이몬, 스티브 원더, 엘라 피츠제럴드, 마이클 잭슨 외

[ 180g / 1500장 넘버링 한정반 ]
The White Buffalo, Johnny Winter, Ella Fitzgerald, Stevie Wonder, Willie Nelson 노래 외 16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Music on Vinyl / Music on Vinyl | 2021년 12월 10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96 판매지수란?
상품 가격정보
판매가 60,700원
할인가 49,200 (19% 할인)
YES포인트
추가혜택쿠폰 및 사은품(1종)
추가혜택쿠폰 쿠폰받기
  • 주문금액대별 할인쿠폰
배송안내
배송안내 바로가기

구매 시 참고사항
구매 시 참고사항
  • 명확한 재생 불량 사유가 확인된 경우에만 반품이나 교환이 가능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판매중

수량
  • 국내배송만 가능
1/4
광고 AD

베리 쿨 크리스마스 3집 (A Very Cool Christmas Vol. 3) [투명 블루 & 투명 컬러 2LP]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21년 12월 10일

관련분류

음반소개

LP 구매시 참고 사항 안내드립니다.
※ 재킷/구성품/포장 상태
1) 명백한 재생 불량 외에 경미한 재킷 주름, 모서리 눌림, 갈라짐 등은 반품/교환 대상이 아님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2) 속지(이너 슬러브)는 디스크와의 접촉으로 인해 갈라질 수도 있는데, 이는 반품/교환 대상이 아닙니다.
3) 디스크 라벨은 공정상 매끄럽게 부착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4) 본품에 문제가 없는 겉포장 비닐의 손상은 교환/반품 대상이 아닙니다.

※ 재생 불량
1) 톤암 혹은 무게 조절 기능이 없는 턴테이블을 사용하시는 경우, (주로 올인원 형태 모델) 다이내믹 사운드의 편차가 큰 트랙을 재생할 때 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는 대부분 가벼운 톤암 무게가 원인입니다.
기기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재생 불량 현상에 대해서는 반품/교환이 불가하니 톤암 조절이 가능한 기기에서 재생하실 것을 권유 드립니다.
2) 디스크는 정전기와 먼지로 인해 재생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전용 제품으로 이를 제거하면 대부분 해결됩니다.
3) 바늘에 먼지가 쌓이는 경우에도 재생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디스크 이상
1) 디스크 표면이 울렁거리거나 휘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생에 이상이 있는 경우에만 반품이나 교환이 가능합니다.
2) 재생 음역의 왜곡을 최소화 하고 반복 재생시에도 최대한 일관되게 유지되도록 디스크 센터 홀 구경이 작게 제작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턴테이블 스핀들에 맞지 않는 경우에는 전용 제품 등을 이용하여 센터 홀을 조정하시면 해결됩니다.
3) 간혹 디스크에 미세한 잔 흠집이 남아있거나 마감이 깨끗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재생에 이상이 있는 경우에만 반품이나 교환이 가능합니다.

※ 컬러 디스크
아래에 해당하는 경우는 불량이 아니므로 반품 및 교환은 불가하오니, 구매시 참고를 부탁드립니다.

1) 컬러 디스크는 웹 이미지와 실제 색상이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2) 컬러 디스크의 특성상 제작 공정시 앨범마다 색상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3) 컬러 디스크는 제작 과정에서 다른 색상 염료가 섞여 얼룩과 번짐, 반점 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교환/반품 안내
1) 명백한 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 요청 시에는 불량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 및 동영상과 재생기기 모델명을 첨부하여 고객센터에 문의 바랍니다.
2) LP는 잦은 배송 과정에서 재킷에 손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재판매가 어려우므로 오구매, 변심으로 인한 반품은 어렵습니다. 신중한 구매를 부탁드립니다.

디스크

Disc1
  • 01 [Side A] Pearl Jam - Someday At Christmas
  • 02 The Black Crowes - Back Door Santa
  • 03 The Waitresses - Christmas Wrapping
  • 04 The White Buffalo - Christmas Eve
  • 05 Harvey Danger - Sometimes You Have To Work On Christmas (Sometimes)
  • 06 Johnny Winter - Please Come Home For Christmas
  • 07 The Dandy Warhols - Little Drummer Boy
  • 08 [Side B] The Teskey Brothers - Dreaming Of A Christmas With You
  • 09 Nicole Atkins - Every Single Christmas
  • 10 The Louvin Brothers - Santa Claus Parade
  • 11 Willie Nelson - Frosty The Snowman
  • 12 Toni Stante - Donde Esta Santa Claus? (Where Is Santa Claus?)
  • 13 Paul Simon - Getting Ready For Christmas Day
  • 14 The Offspring - Christmas (Baby Please Come Home)
  • 15 Gavin James - Fairytale Of New York
Disc2
  • 01 [Side C] Amy Winehouse - I Saw Mommy Kissing Santa Claus
  • 02 Stevie Wonder - What Christmas Means To Me
  • 03 The Ventures - Santa Claus Is Comin’ To Town
  • 04 Ella Fitzgerald - The Secret Of Christmas
  • 05 Lowell Fulsom - I Wanna Spend Christmas With You
  • 06 The Ronettes - Sleigh Ride
  • 07 Albert King - Santa Claus Wants Some Lovin’
  • 08 Aretha Franklin - Joy To The World
  • 09 Michael Jackson - Little Christmas Tree
  • 10 [Side D] Akim & The Teddy Vann Production Company - Santa Claus Is A Black Man
  • 11 Debbie Dabney - I Want To Spend Christmas With Elvis
  • 12 Ray Anthony Ft. The Bookends - Christmas Kisses
  • 13 Dinah Washington - Ole Santa
  • 14 Dusty Springfield - O Holy Child
  • 15 The Emotions ? What Do The Lonely Do At Christmas?
  • 16 Whitney Nichole - Pass Me A Drink (It’S Christmas)
  • 17 The Staple Singers - Who Took The Merry Out Of Christmas
  • 18 Kurtis Blow - Christmas Rappin’
  • 19 Run-D.M.C. - Christmas In Hollis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아티스트 소개 (21명)

노래 : Ella Fitzgerald (엘라 피츠제랄드)
엘라 피츠제랄드는 재즈 보컬의 역사를 다시 쓴 디바이다. 그녀는 아무 의미 없이 재잘거리는 스캣(Scat)이라는 창법을 가장 능숙하게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그 어느 악기 못지 않은 즉흥성을 표현할 줄 알았으며 스윙과 비밥 시대에 걸쳐 더욱 빛난 달콤한 목소리와 넘실대는 스윙감을 통해 엘라 피츠제랄드는 재즈의 ‘퍼스트 레이디’로 재즈역사에 각인되었다. 사라 본, 빌리 홀리데이와... 엘라 피츠제랄드는 재즈 보컬의 역사를 다시 쓴 디바이다. 그녀는 아무 의미 없이 재잘거리는 스캣(Scat)이라는 창법을 가장 능숙하게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그 어느 악기 못지 않은 즉흥성을 표현할 줄 알았으며 스윙과 비밥 시대에 걸쳐 더욱 빛난 달콤한 목소리와 넘실대는 스윙감을 통해 엘라 피츠제랄드는 재즈의 ‘퍼스트 레이디’로 재즈역사에 각인되었다. 사라 본, 빌리 홀리데이와 함께 재즈 음악사에 길이 남는 ‘여인천하’를 이뤄낸 엘라 피츠제랄드는 1917년 4월 25일 버지니아주 뉴포트에서 태어났다. 비운의 여가수 빌리 홀리데이처럼 엘라 역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데, 성장기의 대부분을 홈리스(homeless)로 보낼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보낸다. 엘라는 1934년 뉴욕 할렘가에 소재한 아폴로 극장에서 열린 노래 경연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청중의 자격으로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던 밴드 리더이자 드러머인 칙 웹(Chick Web)은 이 체구 작은(?) 소녀에게서 가능성을 발견, 자신의 빅 밴드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게 한다. 칙 웹의 도움으로 엘라는 그의 밴드의 리드 싱어 자격으로 대중 앞에 섰고 얼마 후 그녀가 데카(Decca) 레이블에서 처음 녹음한 ‘A-tiskete, A- Taskete’(1938), ’Undecided’(1939)가 공전의 히트를 거두며 가수로서의 순조로운 출발을 한다. 그러나 1939년, 칙 웹의 갑작스런 요절로 인해 엘라는 그 후 2년 간 그가 떠난 밴드의 빈 공간을 메워 나가야 했다. 1942년 솔로로 독립한 그녀는 예전 소녀의 상큼함과 순수함이 느껴지던 데뷔시절과 달리 좀 더 완숙한 목소리로의 변신을 필요로 했다. 잉크 스팟(Ink Spot), 루이스 조던(Louis Jordan)과 같은 R&B 싱어들과 잠시 활동을 같이 하던 엘라였지만 자신이 가야할 길은 역시 ‘재즈’임을 깨닫고, 1946년 노먼 그란즈(Norman Granz-훗날 버브 레코드의 사장이 됨)를 새 매니저로 맞이하며 비밥의 거성인 트럼펫 주자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밴드의 리드 싱어로 일하게 된다. 디지와의 연주 경험은 엘라가 비밥의 문법을 자기의 목소리로 소화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변화무쌍한 리듬과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파트별 연주에 맞춰 터져 나오는 유창한 스캣 창법은 비밥의 연주와 그녀의 보컬이 어울림을 갖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당시 그녀의 남편이기도 한 베이시스트 레이 브라운(Ray Brown) 트리오의 백업 연주로 녹음된 ‘How high the moon’(1947)같은 곡에서 그녀의 스캣 창법은 악기에 버금가는 애드립이 목격된다. 1955년 버브(Verve)와 전속 계약을 맺은 엘라는 이 때부터 음악 인생의 최고의 황금기를 맞는다. < Songs from Pete Kelly’s blues >(1955)가 앨범 차트 7위를 기록하는 것을 시작으로 인기가도를 질주한다. 이듬해, 구수한 목소리의 트럼펫 주자 루이 암스트롱과의 듀엣 < Ella & Louis >(1956)가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쿼텟의 백업 연주로 발표 되 대중적, 비평적 찬사를 얻었으며 두 사람간의 음악적 교분은 < Ella & Louis again >(1957)과 < Porgy & Bess >(1958)로 이어진다. 이 앨범들은 재즈 팬들의 필수 컬렉션 대상들이기도 하다. 같은 해 < Ella Fitzgerald Sings The Cole Porter Song Book >(1956)이 재즈 판을 휩쓸며 베스트셀러로 기록되는 성공을 거둔다. 이를 시작으로 엘라는 조지 거쉰(George Gerswin), 제롬 컨(Jerome Kern), 해롤드 알렌(Harold Arlen), 어빙 벌린(Irving Berlin)등 1세대 틴 팬 앨리 작곡가들의 명곡들을 자신의 목소리로 담아내는 방대한 작업을 수행한다. 이런 그녀의 노력은 틴 팬 엘리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dgers)와 하트 로렌즈(Hart Lorenz)의 곡으로 꾸며진 실황 앨범 < Ella Fitzgerald Sings The Rodgers And Hart Song >(1957)의 성공으로 이어지며 마침내 재즈의 ‘퍼스트 레이디‘로 군림하게 된다. 틴 팬 앨리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1958-59년 사이에 녹음해 발표한 조지 & 이라 거쉰(George & Ira Gershwin)의 곡을 집대성한 < The George & Ira Gershwin Song Book >(1959)을 통해 정점에 다다른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 엘라는 < Mack The Knife-Ella In Berlin >(1960)을 폴 스미스(Paul Smith) 쿼텟의 연주로 녹음된 라이브 앨범을 공개, ‘How high the moon’, ’Mack the knife’를 히트시킨다. 이후 1963년엔 명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퀸시 존슨(Quincy Jones)이 편곡으로 연주된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와의 협연작 < Ella & Basie! >과 1965년엔 오랫동안 음악적 교분을 쌓아온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과 다시 의기투합해 < Ella At Duke Place >를 각각 발표하는 등 스윙의 거장과의 잇단 명작을 공개한다. 캐피톨(Capitol)로 이적해 다시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간 엘라는 1969년 그만 백내장으로 인해 잠시 활동을 중단한다.

1973년 연로한 나이에 불구하고 < Ella Fitzgerald At The Carnegie Hall >을 발표했고, 1977년 몬트럭스 재즈 페스티벌에도 참가해 실황 앨범 < Ella Fitzgerlad With The Tommy Flanagan Trio-Montreux’77 >을 공개하며 예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한 손색없는 보컬 기량을 선보였다. 1980년대 이르러 지병인 심장병으로 인해 예전만큼의 노련함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엘라는 근근히 연주 활동을 지속해나간다. 그러나 나빠진 건강과 시력을 인해 그녀는 1994년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그리고 2년 후인 1996년 6월 15일 비버리 힐즈에 있는 자신에 집에서 세상을 떠난다.
1960년대 제임스 브라운과 더불어 흑인 대중음악의 산 증인으로 칭송되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는 11살의 어린 나이에 흑인 팝 소울 음악의 전설 모타운 레코드(Motown)사에 소속되어 음악활동을 시작, 1970년대부터 셀프 프로듀싱(Self-producing)을 선언하며 앨범 제작 전 과정을 진두지휘하는 ’아티스트’의 천재(天才)를 부각시킨 팝 스타이다. 천부적인 작곡 감각과 각종 키보드를 비... 1960년대 제임스 브라운과 더불어 흑인 대중음악의 산 증인으로 칭송되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는 11살의 어린 나이에 흑인 팝 소울 음악의 전설 모타운 레코드(Motown)사에 소속되어 음악활동을 시작, 1970년대부터 셀프 프로듀싱(Self-producing)을 선언하며 앨범 제작 전 과정을 진두지휘하는 ’아티스트’의 천재(天才)를 부각시킨 팝 스타이다. 천부적인 작곡 감각과 각종 키보드를 비롯, 앨범 녹음시 대부분의 악기를 혼자서 다 연주해 낼 정도의 다재(多才)를 유감 없이 발휘한 그는 도무지 시각 장애인이라고 믿을 수 없는 독창성을 자신에 음악에 담아낸다. 또한 마빈 게이(Marvin Gaye)와 함께 1970년대 미국 사회 내 흑인들의 비참한 삶과 애환을 표현한 ’게토 리얼리티’를 얘기한 음악인으로 기억되면서 흑인 인권 지도자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하자는 운동을 이끌었던 사회 운동가이기도 했다. 자신의 노래를 통해 스티비 원더는 지금껏 인종과 이념의 벽을 넘어선 절대불변의 숭고한 가치인 ’사랑의 전도사’임을 전 세계에 알려왔다. 그의 음악만큼이나 이런 그의 행적은 전 세계 음악인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으로 그를 기억하게 했다. 1950년 5월 13일 스티브 랜드 모리슨(Steveland Morrison)이라는 본명으로 미국 미조리주 출신인 그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의 과잉 산소 공급 사고로 맹인이 되었다. 디트로이트로 이주해 소년기를 보낸 그는 일찍부터 음악적으로 재능을 드러내 10살이 되기도 전에 대부분의 악기를 스스로 터득하는 천재성을 보인다. 1962년 1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는 천재성을 인정받으며 베리 고디(Berry Gordy Jr.)가 이끄는 모타운 레코드사와 계약을 한다. 리틀 스티비 원더(Little Stevie Wonder)라는 아름으로 발표한 그의 첫 싱글인 라이브 버전 ’Fingerprints-part 2’(1963)가 발표 즉시 차트 1위에 오르며 순조롭게 출발한다. 1965년부터 이후 6년 간 ’Uptight’(1966), ’I was made to love her’(1967), ’For once in my life’(1969), ’My cherie amour’(1969), ’Yester-me, yester-you, yesterday’(1969), ’Signed, sealed, delivered’(1970)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그는 명실상부한 모타운 대표 인기스타로 떠오른다. 21살이 되던 1971년 모타운 측과 재계약을 앞두고는 ’앨범 제작에 관한 모든 통솔권을 자신에게 위임할 것’이라는 계약 조건을 내세운다. 당시까지 철저한 ’스타 시스템’으로 운영되던 모타운 사의 입장에선 매우 부담스러웠던 요구를 그는 끝내 관철시키며 셀프 프로듀싱으로 제작한 첫 앨범 < When I’m Coming From >(1971)을 발표한다. 이듬해인 1972년 < Music of my Mind: 앨범 차트 21위 >를 시작으로 같은 해 가을 발표된 명반 < Talking Book:앨범 차트 3위 >(1972)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앨범 모든 수록 곡의 작곡은 물론 연주와 프로듀싱을 혼자서 해낸다. 또한 이 앨범은 A면의 첫 곡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와 B면의 첫 곡 ’Superstition’을 모두 싱글차트 1위에 등극하는 놀라운 기록을 수립한다. 1972년 같은 해 발표된 두 장의 앨범을 통해 그는 기존 3분대의 모타운 식 히트 곡의 틀을 벗어나 ’Super woman’, ’Maybe your baby’와 같은 6-7분대의 대곡을 과감히 수록했고, 재 계약을 통해 받은 계약금으로 클라비넷, OBX, ARP, 폴리포닉, 무그와 같은 다양한 신시사이저 장비들을 도입, 사운드의 혁신을 일궈낸다. 이듬해 발표한 < Innervisions >(1973)는 그의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위상을 한층 높여준 명반으로 흑인 빈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Living in the city’와 재즈적인 접근을 강하게 드러낸 ’Too High’, ’Superstition’에 버금가는 펑키한 넘버 ’Higher Ground’, 절대자인 신에게 헌정하는 가스펠 곡 ’He’s Misstra know it all’을 담은 수작이었다. 전작에 이어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며 < Innervisions >는 이듬해인 1974년 그래미 상 ’올해의 앨범’ 부문을 비롯, 4개 부문을 휩쓰는 쾌거를 올린다. 1974년 교통사고로 심한 부상을 당하며 잠시 활동의 위기를 맞은 그는 이에 아랑곳없이 < Fulfillingness’ First Finale >(1974)를 발표하며 ’You Haven’t done nothing’, ’Boogie on Reggae woman’을 각각 팝 차트와 R&B 차트 1위에 올리며 앨범은 1975년 다시 한번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비롯, 5개 부문을 석권한다.(올해의 앨범상을 연속으로 수상한 건 스티비 원더가 처음이었다.) 1975년 모타운 사와 1천 3백만 불의 재계약을 한(당시 팝 음악계에선 최고의 액수) 그는 2년여의 준비 끝에 더블 앨범< Songs in the key of life >(1976)을 발표한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히트곡이 쏟아진 앨범에서 ’Sir Duke’, ’I Wish’가 팝 차트 1위에 오르고, 팝 가수 조지 마이클이 1998년에 리메이크 하기도 한 7분이 넘는 대곡 ’As’(36위)와 재즈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George Benson)의 코러스와 재즈 플롯주자 바비 험프리(Bobby Humphrey)가 참여한 라틴 팝 ’Another star’(32위) 역시 좋은 반응을 얻는다. < Songs on the key of life >는 이듬해 1977년 다시 그에게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안겨다 준다. 70년대 말, 스티비 원더는 흑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하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음악 외에도 흑인의 권익신장 운동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그는 4년여의 공백 끝에 발표한 < Hotter than July >(1980)의 수록곡 ’Happy Birthday’를 통해 이런 그의 노력을 전 세계에 알린다.(결국 1985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은 미국 국경일로 지정된다) 앨범에선 이 외에 레게의 시인 밥 말리(Bob marley)에게 헌정하는 레게 넘버 ’Master Blaster(jammin’)’와 지금껏 애청되는 그의 러브 발라드 ’Lately’를 차트에 진입시키는(각각 5위, 64위) 성과를 거둔다. 영화 음악 작곡에도 열심이었던 스티비 원더는 < Journey Through the secret life of Plant >(1979)를 시작으로, 그에게 오스카 주제가 상을 안겨준 영화 < Woman in Red >(1984)의 테마 곡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를 팝 차트 1위에 올리며 전 세계를 스티비 원더 열풍 속으로 다시 한번 몰아넣는다. 그의 영화 음악 작업은 < Jungle Fever >(1991), < The adventure of Pinocchio >로 계속된다. 1983년엔 폴 메카트니와 함께 한 듀엣 곡 ’Ebony & Ivory’로, 1985년 ’Part time Lover’로 다시 팝 차트 1위에 오르며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 Character >(1987)이후 8년이라는 긴 공백기에 들어간 그는 < Conversation Peace >(1995)로 다시 팝 무대에 복귀한다. 90년대 활동은 비록 예전만큼의 날카로운 창조력은 아니었지만 전 세계 수많은 팝 음악인들의 기대와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다시는 그 누구도 재현 못할 ’팝 음악의 대가’임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알린다.
노래 : Willie Nelson (윌리 넬슨,Willie Hugh Nelson)
미국의 음악가·가수·작곡가·시인·배우·운동가다. 찬사받은 음반 《Shotgun Willie》 (1973), 상업적·평론적으로 성공한 《Red Headed Stranger》 (1975), 《Stardust》 (1978)를 통해 넬슨은 컨트리 음악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내슈빌 사운드의 고루한 관습에 반기를 든 아웃로 컨트리의 핵심적 인물 중 한 명으로써 컨트리 음악의 세부장르를 1960년 말부터 개척... 미국의 음악가·가수·작곡가·시인·배우·운동가다. 찬사받은 음반 《Shotgun Willie》 (1973), 상업적·평론적으로 성공한 《Red Headed Stranger》 (1975), 《Stardust》 (1978)를 통해 넬슨은 컨트리 음악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내슈빌 사운드의 고루한 관습에 반기를 든 아웃로 컨트리의 핵심적 인물 중 한 명으로써 컨트리 음악의 세부장르를 1960년 말부터 개척했다. 30편이 넘는 영화에서 연기하고, 여러 책을 공저하고, 바이오연료 통용과 대마초 합법 운동에 참여했다.

대공황 시기 출생해 조부모님의 손에 키워졌으며, 7세 즈음 첫 곡을 작곡하고 10세 되어서는 자신의 첫 밴드에 영입되었다. 고교 시절에는 지역 중심으로 밴드 보헤미안 폴카(Bohemian Polka)와 순회공연을 했고 리드 싱어와 기타 연주자로 활동했다. 1950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군에 입대했으나 등 문제로 제대했다. 그 뒤 베일러 대학에서 2년간 재학했으나 음악적 성공으로 중퇴했다. 그즈음 텍사스주 라디오 방송국에서 디스크자키와 홍키통크 음악을 하는 가수로 일했다. 워싱턴주 밴쿠버로 이사한 뒤인 1956년 〈 Family Bible 〉를 쓰고 〈 Lumberjack 〉를 녹음했다. 1958년 텍사스 주 휴스턴으로 넘어가 D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했다. 에스퀘이어 볼룸에서 주간으로 노래를 부르고 디스크자키로 일했다. 이때 컨트리 스탠더드로 자리잡는 몇 곡을 쓰는데, 〈 Funny How Time Slips Away 〉, 〈 Hello Walls 〉, 〈 Pretty Paper 〉, 〈 Crazy 〉 등이다. 1960년 테네시주 내슈빌로 이동해 이후 팸퍼 뮤직과 출판 계약을 했고, 그 회사는 그를 레이 프라이스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합류시킨다. 1962년 첫 음반 《...And Then I Wrote》을 녹음했다. 이러한 성공의 나날에서 1964년 RCA 빅터와 계약했고 그 이듬해 그랜드 올 오프리에도 합류했다. 이후 1960년대 말과 1970년 초까지 차트 중반까지 진입하는 히트를 하던 가운데 1972년 은퇴를 선언하고 텍사스 주 오스틴으로 이사했다. 오스틴의 활동적인 음악 신에 고무되어 은퇴를 번복하고 아르마딜로 월드 헤드쿼터에서 주기적인 공연을 선보였다.

1973년, 아틀렌틱 레코드와 계약한 후 아웃로 컨트리로 전향해 《Shotgun Willie》, 《Phases and Stages》 등 음반을 발표했다. 1975년, 컬럼비아 레코드로 이적해 《Red Headed Stranger》를 발표, 극찬을 받는다. 동년, 또다른 아웃로 음반 《Wanted! The Outlaws》을 웨일런 제닝스, 제시 콜터, 톰폴 클레이서와 제작한다. 1980년대 중엽 여러 히트 음반 (예: 《Honeysuckle Rose》), 여러 히트곡 (예: 〈 On the Road Again 〉, 〈 To All the Girls I've Loved Before 〉, 〈 Pancho and Lefty 〉)을 제작했으며, 동료 가수 자니 캐시, 웨일런 제닝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소속된 슈퍼그룹 더 하이웨이멘에 가입한다.

1990년, 그가 3천 2백만 달러의 부채가 있다고 주장한 국세청에 의해 자산이 압류되었다. 그의 상당한 빚 지불의 어려움은 1980년대 감행한 나약한 투자가 한 원인이었다. 1992년 발표한 더블 앨범 《The IRS Tapes: Who'll Buy My Memories?》의 수익 및 넬슨의 자산경매가 부채를 완전 탕감한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사이에는 지속된 대대적 순회공연을 진행하고 매년 새 음반을 발표했다. 그 평가는 긍정에서 혼합까지 망라한다. 레게, 블루스, 재즈, 포크 등 장르를 탐구했다. 1979년 영화 《일렉트릭 호스맨》을 통해 영화 첫 출연을 했고 이후로도 영화 및 텔레비전에서 다양하게 출연했다. 넬슨은 주요 진보운동가이자 대마초 합법화를 주장하는 마리화나법률개혁협회(약칭 NORML) 자문위원회의 공동의장이다. 환경 분야에서, 넬슨은 식물 기름을 제조하는 바이오디젤 브랜드 윌리 넬슨 바이오디젤의 경영자이다. 또한 텍사스 주 공식 음악 자선단체 텍사스 뮤직 프로젝트의 자문위원회의 명예 회장이다.

2013년도에 버클리 음악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노래 : Amy Winehouse (에이미 와인하우스)
1950~60년대 미국에서 활동한 걸그룹. 베로니카 베넷(Veronica Bennett), 에스텔 베넷(Estelle Bennett), 네드라 탤리(Nedra Talley) 1950~60년대 미국에서 활동한 걸그룹.
베로니카 베넷(Veronica Bennett), 에스텔 베넷(Estelle Bennett), 네드라 탤리(Nedra Talley)
블루스 기타 연주자, 가수. 블루스 기타 연주자, 가수.
노래 : Aretha Franklin (아레사 프랭클린)
20세기를 정리하는 작업이 러시를 이루는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궁금중이 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가수는 누구였는가? 많은 음악팬들이 먼저 프랭크 시내트라 또는 앨비스 프레슬리를 떠올릴 것이다. 신세대 같으면 머라이어 캐리라고 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구 대중음악계는 거의 그 주인공을 흑인 여가수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으로 낙점한 상황이다. 먼저 시사주간지 < 타임 >이 선정한 ‘2... 20세기를 정리하는 작업이 러시를 이루는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궁금중이 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가수는 누구였는가? 많은 음악팬들이 먼저 프랭크 시내트라 또는 앨비스 프레슬리를 떠올릴 것이다. 신세대 같으면 머라이어 캐리라고 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구 대중음악계는 거의 그 주인공을 흑인 여가수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으로 낙점한 상황이다. 먼저 시사주간지 < 타임 >이 선정한 ‘20세기 문화예술인 20인’을 보자. 여기에는 대중음악인 넷이 포함되었는데 그들은 프랭크 시내트라, 비틀즈, 밥 딜런 그리고 아레사 프랭클린이었다. # 20세기는 왜 아레사 프랭클린인가? 놀라운 사실은 로큰롤의 황제라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자타가 공인하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빠졌다는 점이다. 두 대중음악사의 거인은 누가 봐도 아레사 프랭클린에 비해서는 대중적 지명도나 후대의 영향력 측면에서 앞선다. 만약 흑인 음악인 한 사람을 꼽았어야 했어도 그 주인공은 마이클 잭슨이 되어야 당연하다. 그런데 왜 아레사 프랭클린인가? 아레사 프랭클린이 명단에 오른 이유는 마이클 잭슨을 누른 ‘흑인의 대표성’ 때문으로만 볼 수 없다. 흑백을 떠나서 팝 음악계 전체를 진동시킨 ‘경이로운 가창력’ 때문이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42년생 미국 멤피스에서 태어나 1960년대말 스타덤에 오른 왕년의 가수지만 지금도 노래하면 음악관계자들은 만장일치로 그녀를 거명한다. 얼마나 노래를 잘하길래 그런가. 몇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그녀가 1967년 프로듀서 제리 웩슬러의 지원 아래 어틀랜틱 음반사에서 처음 앨범을 취입했을 때 반주를 해준 사람들. 이른바 세션맨들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노래솜씨에 그만 넋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너도나도 ‘이런 환상적인 레코딩에 내가 참여한 것이 영광’이라며 어울려 춤을 췄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의 유선방송국VH원이 주최한 ‘디바스 라이브’(음반으로도 나왔다) 공연에서는 관람객 중 한 사람이었던 여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가 인상적인 소감을 남겼다. “아레사를 보기 전에 난 스타에 반한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난 홀린 기분이다. 아레사가 나한테 ‘옷이 멋져요’ 하길래 난 주저없이 ‘가지세요’라고 했다. 발가벗고 여기를 나가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그녀는 옷을 가질만하다!” 지난해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아레사 프랭클린은 다시 한번 천부적인 가창력으로 사람들의 혼을 뺐다. 그녀는 시상식장에서 노래부르기로 돼있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병으로 불참하게 되자 갑작스럽게 대타로 뛰게 되었다. 뒷무대에서 불과 몇분 연습하고 나서 그녀는 거뜬하게 파바로티의 ‘네순 도르마’를 불렀다. 더욱이 72인조 오케스트라에 맞추기 위해 그 곡을 파바로티의 키로 노래했다. 주최측, 오케스트라 단원 그리고 객석 모두가 ‘경외’의 박수를 쳤다. 그녀에 대한 평자들의 찬사와 칭송은 끝이 없다. ‘형언하기 어렵다’(No other description will do)가 대부분이다. 음악평론가 벤 에드먼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지난 50년간 우리를 놀라게 하고 겁에 질리게 한 또다른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영국의 록잡지 < 모조 >는 지난해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 100인’을 음악관계자 설문을 통해 선정한 바 있다. 여기서 1위는 말할 것도 없이 아레사 프랭클린이었다. < 모조 >측은 2위와 표차를 엄청나게 내고 그녀가 넘버 원 싱어가 된 것에 놀랐다. 다시금 아레사 프랭클린이 남녀, 흑백, 장르를 통틀어 ‘20세기의 최고 가수’라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 그녀는 소울의 영원한 여왕 그녀의 음악은 목소리와 창법의 미학뿐 아니라 시대성이 있다. < 타임 >지가 20세기의 위대한 문화예술인 중 한 사람으로 뽑은 진정한 이유다. 1960년대 후반 아레사 프랭클린이 불러 유명한 곡 ‘존경(Respect)’, ‘체인 오브 풀스(Chain of fools)’, ‘생각해요(Think)‘ 등에는 당시 흑인들의 당당한 의식이 배어 있다. 흑인 민권운동의 불길이 솟아오르던 그 무렵 흑인들은 백인 지배사회에서 결코 흑인들이 열등한 인종이 아니며, 따라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흑인의 영혼을 의미하는 소울(Soul)이었다. 소울 음악은 때문에 목청을 돋워 질러대는 ‘샤우트’를 특징으로 했다. 국내에서도 록의 비조로 불리는 신중현이 소울을 창조적으로 도입해 김추자, 박인수, 펄 시스터즈와 같은 소울 가수가 1970년대 초반 두각을 나타낸 바 있다. 1967년 미국의 디트로이트에 흑인 폭동이 발발했을 때 성난 흑인 민중들은 백인들에게 존경을 요구하는 의미에서 아레사 프랭클린의 그해 히트곡 ‘존경’을 시위대의 찬가로 불렀다. 이듬 해 디토로이트 시장 제롬 카바나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다. 미국사회가 이때부터 흑인의 음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백인들도 흑인의 레코드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다시 말해 흑인 소울의 존재를 만천하에 고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신(神)의 조리에 의한 거 같은 지존(至尊)의 가창력으로 그것을 전했으니 그 위력은 더할 나위가 없다. 또 지적하는 바이지만 ‘존경’을 듣고 동료가수 오티스 레딩은 혀를 내둘렀다. 이 곡은 그가 쓴 곡으로 직접 불러 발표한 바도 있는데, 아레사 프랭클린이 완전히 새롭게 그리고 완벽하게 소화한 것을 듣고 질려버린 것이었다. 오티스 레딩의 경탄. “난 내 노래를 잃어버렸어. 저 여자가 내 곡을 빼았아갔어!” 아레사는 조금도 변함없는 ‘소울의 여왕(Queen of soul)’으로 통한다. ‘여성 소울(Lady soul)’이란 별명도 있다. < 디바스 라이브 >에서 아레사 프랭클린과 호흡을 맞춘 머라이어 캐리도 그렇게 호칭하고 있지만 이 호칭들은 영원히 아무도 넘아다볼 수 없을 것 같다.
마이클 잭슨 음악 여정은 주지하다시피 1963년 4명의 형들과 함께 결성했던 패밀리 그룹 잭슨 파이브(Jackson 5)로 시작되었다. 5살이라는 어린 나이와 그에 걸맞지 않게 리드 보컬을 맡았던 그는 너무나도 빼어났던 가창력과 귀여운 춤 실력 때문에 언제나 세간의 관심대상이었다. 지방을 중심으로 명성을 쌓아가던 잭슨 파이브와 마이클은 1969년 베리 고디의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하면서 본격적으로 팝 음악계에 뛰어... 마이클 잭슨 음악 여정은 주지하다시피 1963년 4명의 형들과 함께 결성했던 패밀리 그룹 잭슨 파이브(Jackson 5)로 시작되었다. 5살이라는 어린 나이와 그에 걸맞지 않게 리드 보컬을 맡았던 그는 너무나도 빼어났던 가창력과 귀여운 춤 실력 때문에 언제나 세간의 관심대상이었다. 지방을 중심으로 명성을 쌓아가던 잭슨 파이브와 마이클은 1969년 베리 고디의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하면서 본격적으로 팝 음악계에 뛰어들었다.

첫 넘버 원 싱글 ‘I want you back’에 이어 ‘ABC’ ‘The love you save’ ‘I’ll be there’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2년 간 그룹활동에 전념하던 마이클 잭슨은 1971년 12월 탐라-모타운 레코드와 솔로 계약을 체결했다. 1971년 데뷔곡 ‘Got to be there’를 발표해 싱글차트 4위에 랭크시킨 후 ‘Rockin’ Robin’, ‘Ain’t no sunshine’, ‘Ben’, ‘I wanna be where you are’,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솔로와 그룹활동을 성공적으로 병행했다.

마이클 잭슨이 변성기가 지나고 성인으로 접어들자 잭슨 파이브도 점점 퇴색해갔고, 1979년 마이클은 드디어 성인으로서 첫 음반 을 발표했다. 1977년 흑인판 <오즈의 마법사>였던 뮤지컬 영화 <더 위즈(The Wiz)> 사운드트랙을 통해 만났던 퀸시 존스가 앨범의 프로듀서로 동참해 마이클 잭슨의 ‘성인신고작’을 한결 윤택하게 빛냈다.

활기 넘치는 리듬의 펑크(funk)와 디스코, 소울, 그리고 록과 팝, 발라드가 퓨전된 그 음반에는 마이클 잭슨이 작곡한 2곡의 업 템포 댄스넘버 ‘Don’t stop till you get enough’(최근 영화 <러시아워2>에 삽입되었음)와 ‘Working day and night’와 로드 템퍼튼 작곡의 깔끔한 팝 넘버 ‘Rock with you’, 절제된 보컬의 발라드 ‘She’s out of my life’ 같은 히트곡이 실려있었다. 수록곡 중 ‘Girlfriend’는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가 작곡해 준 곡으로 향후 둘 간의 파트너십을 예고했다.

이 마이클 잭슨의 방향성을 제시해 준 앨범이라면 1982년 12월에 발표된 는 ‘팝의 황제’라는 마이클 잭슨의 원대한 꿈을 실현시킨 회심작이었다. 퀸시 존스와 마이클 잭슨의 공동 프로듀스작인 그 앨범은 37주간이나 앨범차트 정상을 지켰으며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2천6백만장의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또한 전례가 없는 무려 7곡이 싱글 발매되어 모두 차트 10위 내에 올랐고 그 중 2곡이 정상을 차지했다. 그 앨범으로 마이클 잭슨은 198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역대최다인 7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2000년 산타나와 타이 기록).

‘문워크(Moonwalk)’라는 독창적인 댄스를 유행시킨 ‘Billie Jean’과 에디 밴 헤일런의 기타 속주가 흐르는 ‘Beat it’이 차트 1위에 올랐으며, 첫 싱글로서 폴 매카트니와의 듀엣 곡이었던 ‘The girl is mine’(2위), ‘Wanna be startin’ somethin’(5위), ‘Human nature’(7위), ‘P.Y.T.’(10위), 마지막 싱글 ‘Thriller’(4위) 등이 연속해서 히트했다. 백인 최고스타 폴 매카트니와 록 기타의 거장 에드워드 밴 헤일런을 끌어들였다는 것은 크로스오버는 물론, 더 많은 수요층에게 다가가려는 그의 음악적 야심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Billie Jean’의 뮤직비디오는 MTV가 백인 록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만을 방영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틀었던 역사적인 첫 흑인 뮤직비디오였다. 한편 1984년 4월에는 폴카 음악과 ‘패러디의 대가’인 얀코빅(‘Weird Al’ Yankovic)이 ‘Beat it’을 패러디한 ‘Eat it’을 발표해 싱글차트 12위에 진입시키기도 했다.

영국의 난민구호 자선 프로젝트였던 밴드 에이드(Band Aid)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의 성공에 자극 받은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는 막강한 스타들을 규합, 유에스 포 아프리카(USA For Africa)를 조직해 1985년 1월 그 미국 버전인 ‘We are the world’를 만들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다. 그 해 8월에는 그간 음악동지였던 폴 매카트니와의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 마이클 잭슨이 ‘레논/매카트니’ 크레딧으로 된 250곡이 넘는 비틀스 곡들의 판권을 4천7백5십만 달러에 사버렸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해 협력관계가 깨졌음은 물론 현재까지도 그 둘은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갱스터 영화의 대부 마틴 스코시즈가 감독한 17분짜리 뮤직비디오 ‘Bad’가 1987년 2월에 선보였고, 8월에는 분위기가 한층 어두워졌으며 록적인 느낌이 강화된 새 앨범 가 발매되었다. 퀸시 존스가 세 번째로 프로듀스를 맡은 이 앨범은 전작의 흥행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8백만장 이상 팔려나가는 성공을 거둔다. 특히 무려 5곡이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해 2곡이 1위에 오른 전작을 능가했다.

여성 보컬 시다 가렛과 호흡을 맞춘 ‘I just can’t stop loving you’를 시작으로 타이틀곡 ‘Bad’, 흥겨운 핑거 스냅이 시종일관 등장하는 ‘The way you make me feel’, 시다 가렛과 글렌 발라드가 공동 작곡한 발라드 넘버 ‘Man in the mirror’, 음산한 분위기가 압권인 ‘Dirty Diana’ 등 모두 5곡이 차례로 정상에 등극했다. 그 외에도 ‘Smooth criminal’, ‘Leave me alone’ 등 수록곡 전반이 주목받았다. 1988년 12월에는 마이클 잭슨과 존 레논의 아들 숀 레논 등이 출연한 영화 <문워커(Moonwalker)>가 전 세계에 개봉되었다.

보다 자신 고유의 음악을 찾기 위해 퀸시 존스와 헤어진 마이클 잭슨은 1991년 홀로서기를 시도한 첫 작품 를 발표한다. 젊은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를 메인 프로듀서로 받아들여 만든 이 음반은 마이클 특유의 사운드에 최신식 힙 합과 랩, 메탈 음악 등이 합쳐졌다. 작곡과 제작에 있어 마이클 잭슨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인 음반이었지만 너바나 같은 그룹의 얼터너티브 록 태풍에 휘말려 전작들의 파괴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emember the time’, ‘Jam’, ‘In the closet’ 등 테디 라일리가 솜씨를 발휘한 곡들과 영화 <프리 윌리>의 주제곡으로 쓰였던 ‘Will you be there’ 같은 곡들은 대중들과 평단으로부터 동시에 큰사랑을 받았다. 또한 ‘Black or white’의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모핑’ 기법 같은 놀라운 기법들은 향후 영상 발전에 디딤돌이 되었으며 에서부터 구현된 환상적인 스튜디오 기술로 다시 한번 녹음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마이클 잭슨은 자신이 원하는 악기음색과 음원을 찾을 때까지 스튜디오 작업에 매달렸으며, 코러스 만해도 음색을 바꿔가며 다채롭고 풍부하게 꾸며 일반 제작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녹음기술만으로 볼 때는 모든 ‘프로듀서와 엔지니어의 드림’이었다.

해가 지지 않는 성공가도를 달리던 마이클 잭슨의 기세가 한풀 꺾인 것은 1993년의 일이다. 그 해 8월 바로 어린이 성추행 사건이 터진 것. 이 사건은 그간 깨끗한 이미지를 이어가던 그에게 막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한동안 그는 언론의 집중포화에 시달렸다. 그러다 얼마 후 갑작스레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했고, 이에 매스컴은 ‘여론 무마용’이라며 그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매체의 공격이 심해짐에 따라 마이클 잭슨의 분노도 정비례했다. 그에 대한 분노는 1995년에 발표한 더블앨범 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 장은 히트곡들로, 다른 한 장은 신곡들로 구성된 이 음반은 ‘역사’로 해석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얘기들을 많이 담고있었다. 특히 그를 괴롭혀온 매스컴과 어린이 성추행 소송인에 대한 원한과 경멸, 냉소 등이 짙게 깔려있었으며, 그 때문에 음악도 예전과는 달리 상당히 거친 사운드가 지배적이었다.

알 켈리와 지미 잼 & 테리 루이스, 댈러스 오스틴 등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이 음반에서는 여동생 재닛 잭슨과 듀엣을 이룬 ‘Scream’과 ‘They don’t care about us’, ‘D.S.’, ‘Money’, ‘2 Bad’ 같은 곡을 통해 쇼비즈니스와 세상의 폭력에 대한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물론 ‘You are not alone’, ‘Smile’ 등 따뜻한 노래들도 있었지만 다른 차가운 곡들 탓에 듣기가 좀 부담스러웠고, 그래서였는지 ’주라기음반’에 걸맞지 않게 흥행도 부진했다. 1997년에는 리믹스 앨범 을 발매하기도 했다.

4년이 흘러 2001년 그는 솔로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3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영예를 얻었으며, 9월에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휘트니 휴스턴을 비롯해 엔 싱크, 브리트니 스피어스, 데스티니스 차일드, 어셔 등 당대 최고의 팝스타들이 출연한 가운데 그의 솔로 30주년 기념 공연을 가졌다.

그리고 10월 30일, 마이클 잭슨은 6년만의 정규 앨범 을 발표하며 다시 팬들 앞에 섰다. R&B 최고의 프로듀서 로드니 저킨스가 메인 프로듀서로 참여한 이 음반은 전작에 비해 훨씬 부드러워졌으며 한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던 특유의 활기 넘치는 리듬도 회복했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등 여러 좋은 일이 겹쳐서인지 밝은 분위기의 내용물들이 담겼다.

3마디의 독특한 리듬이 중독성을 발휘하는 첫 트랙 ‘Unbreakable’, 춤추기에 좋은 부드러운 댄스리듬 그리고 약간은 복고적 사운드가 듣기 편한 첫 싱글 ‘You rock my world’, 변화가 심한 비트가 인상적인 ‘Heartbreaker’ 등이 비트감 느껴지는 곡들. 라틴 풍의 기타 연주가 잔잔한 ‘Whatever happens’에서는 산타나의 무게감 있는 연주도 들을 수 있으며, ‘Speechless’, ‘The lost children’, ‘Break of dawn’ 같은 곡들은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발라드 곡들이다.
노래 : Dusty Springfield (더스티 스프링필드)
35년여에 달하는 긴 세월 동안 파퓰러 뮤직의 정상에서 활동했던 여가수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eld)는 백인이 부르는 흑인 소울 이른바 ‘블루 아이드 소울’을 1960년대부터 구사하면서 백인 소울의 영역을 개척한 위대한 여가수로, 흑인에 못지 않은 강렬한 보컬 호소력에 팝의 부드러운 느낌을 동시에 지녔으며, 재즈적 감성까지 구현해 낸 대형 싱어다. 1996년 공전의 반향을 부른 영화 < 접속... 35년여에 달하는 긴 세월 동안 파퓰러 뮤직의 정상에서 활동했던 여가수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eld)는 백인이 부르는 흑인 소울 이른바 ‘블루 아이드 소울’을 1960년대부터 구사하면서 백인 소울의 영역을 개척한 위대한 여가수로, 흑인에 못지 않은 강렬한 보컬 호소력에 팝의 부드러운 느낌을 동시에 지녔으며, 재즈적 감성까지 구현해 낸 대형 싱어다. 1996년 공전의 반향을 부른 영화 < 접속 >에 그녀의 노래 ‘The look of love’가 삽입되어 애청되면서 국내의 신세대 팬들과도 친숙해졌다. 1939년 영국 런던에서 메리 이사벨 캐서린 버나데트 오브리엔(Mary Isabel Catherine Bernadette O’Brien)이란 본명으로 태어나 1958년 3인조 보컬 그룹 라나 시스터스(Lana Sisters)에서 가수활동을 시작했으며 1960년에는 오빠 디온(Dion), 그의 친구 팀 페일드(Tim Feild)와 함께 더 스프링필즈(The Springfields)를 결성, 본격적인 활동을 펼친다. 더스티 스프링필드로 개명하고 오빠 디온도 팀 스프링필드로 이름을 바꾸며 이듬해 ‘Dear John’으로 데뷔한 스프링필즈는 처음에 차트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1961년 <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 > 독자 선정 영국 최우수 보컬 그룹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1963년 발표한 싱글 ‘Island of dreams’와 ‘Say I won’t be there’가 잇따라 영국 차트 5위에 오르면서 인기 그룹으로 비상한다. 하지만 주가를 올리고 있던 시점에 더스티 스프링필드가 솔로활동을 선언하면서 그룹은 해체를 맞는다. 이미 그룹을 통해 풍부한 음색과 가창력을 대중에게 알린 터라 솔로활동은 순풍에 돛단 듯 시작부터 성공가도를 질주했다. 허스키하면서 소프트한 느낌은 로큰롤 밴드가 맹위를 떨치던 이른바 브리티시 인베이전 시대에 드물게 여성 솔로가수로서 성공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주었고 처음부터 그녀는 단순한 팝이 아닌 ‘미국적인 소울’의 필을 표현했다. 작곡 팀 마이크 호커와 이보르 레이먼드는 미국 흑인음악의 상징인 모타운 식으로 쓴 곡 ‘I only want to be with you’로 그녀에게 차트4위(미국 12위)라는 좋은 성적을 안겼다. 이 곡은 얼마 전 국내 칼라핸드폰 광고에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으며 1976년에는 비틀스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영국의 틴 아이돌 그룹 베이 시티 롤러즈(Bay City Rollers)가 리메이크해 친숙해지면서 명곡으로 자리잡았다. 더스티 스프링필드는 이어 역시 호커와 레이먼드 컴비가 써준 ‘Stay awhile’로 차트13위에 올랐으며 틴 팬 앨리 전통을 계승한 전설적 작곡 콤비 버트 바카라크(Burt Bacharach)와 할 데이비드(Hal David)가 만들어준 ‘I just don’t know what to do with myself’와 함께 3위로 다시 상위권을 점령했다. 디온 워릭(Dionne Warwick)을 키워낸 이들은 영국 여가수로서 드물게 스탠더드와 소울 감성을 동시에 간직한 그녀를 높이 평가해 디온 워릭이 취입했던 곡 ‘Wishin’ and hopin’’을 제공, 마침내 미국차트 6위에 올려 미국에서도 통하는 가수로 만들어 냈다. 이 때 더스티는 뉴욕에 건너와 녹음하면서 영미(英美)를 관통하는 명실상부한 대서양 스타로 똬리를 틀기 시작한다. ‘Wishin’ and hopin’’에 이어 ‘All cried out’(41위)은 심지어 미국에서만 싱글로 발표되었다. 1964년이 저물어 가던 겨울 오빠 팀 스프링필드가 쓴 곡 ‘Losing you’으로 영국 차트 9위(미국91위)에 오른 그녀는 1965년과 1966년에도 쾌조를 보여 훗날 팝 보석으로 널리 애청된 ‘In the middle of nowhere’(영국8위)와 명콤비 캐롤 킹과 제리 고핀이 쓴 발라드 ‘Some of your lovin’ (영국8위) 그리고 ‘Little by little’(영국17위) 등을 줄줄이 내놓았다. 이 시점에 꼭 기억해야 할 곡은 더스티의 것으로서는 가장 많이 팔렸으며 아직까지 라디오를 통해 오랜 사랑을 받고 있는 ‘You don’t have to say you love me’(엘비스 프레슬리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다)로 이 곡은 영국차트 정상에 이어 미국에서도 4위를 차지했다. 다시 캐롤 킹과 제리 고핀이 준 ‘Goin’ back’(영국10위)과 ‘All I see is you’(영국9위, 미국20위) 두 곡을 더 히트시킨 그녀는 이 두 곡이 담긴 베스트 앨범 < Golden Hits >를 차트에 6개월 동안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으며, 이러한 성공으로 국제적 팝 스타로 도약, 영국 BBC 텔레비전의 음악프로 MC로 뽑히기도 했다. 당시 <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 >지의 여론조사에서 최우수 영국 여가수와 최우수 국제 여가수에 선정되는 기쁨도 누렸다. 1967년 들어 미국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에서 보내게 된다. 그녀의 국제적인 명성이 더욱 확산된 가운데 ‘I’ll try anything’(영국13위, 미국40위)이 히트했고, 바카라크와 데이비드 콤비의 곡으로 007영화 < Casino Royale >의 삽입곡인 ‘The look of love’ 또한 미국에서 22위에 올라 변함 없는 인기를 과시했다. 이 곡은 30여 년이 지난 1996년 한국영화 < 접속 >에 삽입되어 천지를 진동시켰다. 1968년에는 팝 명반으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 Dusty in Memphis >를 발표한다. 미국의 소울의 도시 멤피스에서 녹음한 이 앨범은 ‘팝과 소울’의 절묘한 결합으로 빠짐없이 여성 팝 보컬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또한 더스티의 음악을 ‘블루 아이드 소울’로 일컫게 하는데 결정타가 됐던 작품이기도 하다. < Dusty in Memphis >에선 미국 10위를 기록한 ‘Son of a preacher man’를 비롯해 ‘Don’t forget about me/Breakfast in bed’ ‘The windmills of your mind’(스티브 매퀸이 주연한 영화 < Thomas Crown Affair >의 주제곡으로 1999년에 영화가 피어스 브로스넌 주연으로 리메이크되면서 이 곡도 스팅의 노래로 리메이크됐다)가 연속 싱글로 나왔지만 비평적 찬사만큼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1970년 발표한 앨범 < A Brand New Me > 이후 그녀의 활동과 인기는 눈에 띄게 후퇴했으며 1972년 < See All Her Faces >와 이듬해 < Cameo >는 차트에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곧 사라져 버렸다. 이후 긴 휴식기를 마치고 1978년 < It Begins Again >, 1979년 < Living Without Your Love >, 1982년 < White Heat > 앨범을 발표하는 등 다시 왕성한 활동을 펼쳤지만 자신의 앨범보다는 딴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한 곡들에서 인기를 누리는 독특한 양상을 보였다. 1984년에는 스펜서 데이비스(Spencer Davis)와 ‘Private number’를 불러 인기를 얻었고, 1987년에는 카펜터스의 리처드 카펜터(Richard Capenter)의 앨범에서 ‘Something in your eyes’를 불러 건재함을 과시했다. 바로 직전 1987년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와 호흡을 고른 곡 ‘What have I done to deserve this’는 그녀의 재기를 몰고 온 기폭제가 됐다. 평소 더스티 스프링필드를 존경해 온 펫 샵 보이즈의 초청으로 참여해 고수(高手)의 멜로디 파트 가창력을 시범한 이 곡은 영국 차트2위를 기록한 데 이어 미국차트도 강타, 역시 2위를 밟았다. 이 곡의 대성공과 함께 다시금 자신의 솔로 히트곡들을 생산, 1989년 역시 펫 샵 보이스가 만들어 준 영화 < Scandal >의 삽입곡 ‘Nothing has been proved’를 영국차트 16위까지 올렸으며, 같은 해 ‘In private’도 14위에 랭크시키며 관록의 힘을 과시한다. 펫 샵 보이스가 4곡을 맡은 1990년 앨범 < Reputation >도 차트38위까지 오르는 히트를 기록했다. 50살 초로(初老)에도 활동의 가속페달을 밟으며 노익장을 과시한 그녀는 1995년에도 < A Very Fine Love >를 발표했지만 얼마 후 유방암으로 투병 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병이 호전되어 가던 1999년 3월 그녀는 엘튼 존과 함께 로큰롤 명예전당에 이름을 올린 지 10일 후에 암이 재발하면서 60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3명의 친자매들로 구성된 이모션스(Emotions)는 시카고에서 출발한 흑인 여성 보컬 그룹이다. 대부분의 흑인 가수들처럼 이들도 어려서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내공을 쌓았기 때문에 디스코 싱글 ‘Best of my love’(이글스의 노래와는 동명이곡)로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에도 앨범 전체적으로는 가스펠적인 뿌리를 간직하고 있었다. 맏언니 쉴라(Sheila)를 위시한 완다(Wanda), 재닛(Jeane... 3명의 친자매들로 구성된 이모션스(Emotions)는 시카고에서 출발한 흑인 여성 보컬 그룹이다. 대부분의 흑인 가수들처럼 이들도 어려서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내공을 쌓았기 때문에 디스코 싱글 ‘Best of my love’(이글스의 노래와는 동명이곡)로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에도 앨범 전체적으로는 가스펠적인 뿌리를 간직하고 있었다. 맏언니 쉴라(Sheila)를 위시한 완다(Wanda), 재닛(Jeanette) 이렇게 허친슨(Hutchinson) 가(家)의 자매들은 1968년에 정식으로 이모션스를 결성하고 이듬해 데뷔 앨범 < So I Can Love You >를 흑인 음악으로 유명했던 스택스(Stax) 레이블을 통해 발표했고 1970년대 중반까지는 이렇게 자신들의 음악적 고향인 소울과 가스펠에 근접한 리듬 앤 블루스 팝을 주로 소화했다. 1970년대 중반 콜럼비아 레코드로 이적한 이후 어스 윈드 &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리더 모리스 화이트(Maurice White)의 후원 하에 이들의 음악은 디스코적인 리듬 앤 블루스로 서서히 변모해 갔다. 이 자매들의 고유 스타일에 모리스 화이트의 펑키(funky)한 음악 터치가 가해져 팝적이고 댄서블해진 후천적 형질을 획득했다. 모리스 화이트가 작곡과 제작을 맡은 ‘Best of my love’는 1977년 5주 동안 1위를 지켰으며 이후 이 자매들과 모리스 화이트 간의 연합은 1979년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신곡 ‘Boogie wonderland’의 백보컬에 3 자매가 기꺼이 참여함으로써 다시 한번 굳건함을 과시했다. 1980년대 디스코의 물결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이모션스의 인기도 정비례하면서 음악계에서 유유히 사라져 간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영원한 퇴장이 아니었다. 복고 열풍에 일조한 샘플링 기법은 새로운 음악 장르에 대해 앞만 보고 달려가던 1990년대에 팝의 고전들을 재조명하는 기회를 부여했다. 그동안 잊혀졌거나 신세대들이 들어보지 못한 곡들의 멜로디를 시대적 감각에 맞게 생명력을 부여한 점은 샘플링 그 자체의 단점을 희석시킬 수 있을 정도의 기특함이었다. 팝의 디바 머라이어 캐리는 1993년 3번째 정규 음반 < Music Box >의 첫 번째 싱글 커트곡 ‘Dream lover’에서 이모션스의 ‘Show me how’를 멋들어지게 샘플링 했지만 2집 음반 < Emotions >의 타이틀곡은 바로 이 이모션스의 ‘Best of my love’와 비슷하다는 오명을 감수해야 했다. 이모션스, 쓰리 디그리스(Three Degrees), 라벨(LaBelle), 포인터 시스터스(Pointer Sisters) 같은 1970년대 ‘피매일(female)’ 보컬 그룹의 활동은 걸 그룹의 전성기인 1960년대와 여성 보컬 그룹의 황금기인 1990년대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했다. 이 세 자매의 가창력과 하모니는 별 다섯 개를 매겨도 아깝지 않다. 노병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노래 : The Staple Singers (더 스테이플 싱어즈)
펄 잼(Pearl Jam)은 극도로 상업화되고 겉멋에 좌우되는 1980년대 팝에 ‘분노한 젊은이들’의 극단적 음악조치라고 할 그런지와 얼터너티브 록을 대표하는 검투사격 그룹이다. 그들은 너바나와 함께 흐리고 비가 잦은 미국 북서부에 위치한 시애틀에서 발화한 이 반격의 X세대 록을 정점으로 끌어올리며 시대를 갈랐다. 하지만 < Nevermind >에 조금 늦게 공개된 펄 잼의 데뷔작 < Ten >은 당시 판매량과 ... 펄 잼(Pearl Jam)은 극도로 상업화되고 겉멋에 좌우되는 1980년대 팝에 ‘분노한 젊은이들’의 극단적 음악조치라고 할 그런지와 얼터너티브 록을 대표하는 검투사격 그룹이다. 그들은 너바나와 함께 흐리고 비가 잦은 미국 북서부에 위치한 시애틀에서 발화한 이 반격의 X세대 록을 정점으로 끌어올리며 시대를 갈랐다. 하지만 < Nevermind >에 조금 늦게 공개된 펄 잼의 데뷔작 < Ten >은 당시 판매량과 인기에서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가치와 역사적 위상에서는 밀려났다. 이른바 ‘2인자 콤플렉스’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시작한 그런지 1세대 밴드인 마더 러브 본(Mother Love Bone)의 보컬리스트 앤드루 우드(Andrew Wood)가 마약 과용으로 사망하자 기타리스트 스톤 고사드(Stone Gossard)와 베이시스트 제프 아멘트(Jeff Ament)가 에디 베더(Eddie Vedder/보컬), 마이크 맥크리디(Mike McCready/기타), 데이브 크루센(Dave Krusen/드럼)을 규합해 결성했다. 이 5인조 밴드의 음악은 펑크와 하드록의 성분으로 호쾌함을 전해 주는 동시에 소량의 사이키델릭이 칵테일처럼 섞여 있어 몽환적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이들에 대한 지지도가 다른 고향 동료 밴드들보다 미약한 이유는 펄 잼의 노래에는 모던 록에 끌리기 시작한 국내 신세대들에게 소원(疎遠)한 미국적 하드록의 인자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1992년 초 너바나의 역사적인 싱글 ‘Smells like teen spirit’이 빌보드 싱글 차트에 오르면서 그런지 시대를 개막하자 펄 잼은 물론 앨리스 인 체인스, 사운드가든 같은 시애틀 출신의 그런지 밴드들이 일제히 전면에 솟구쳤으며, 펄 잼의 음반 < Ten >도 뒤늦게 인기 대열에 합류했다. 아이들에 대한 사회와 부모들의 무관심을 얘기한 ‘Jeremy’와 X세대의 송가 ‘Alive’ 등은 1990년대 록 씬에 획을 그은 노래들로 이 5인조 밴드에게 확고한 정체성을 확립해 주었다. 특히 에디 베더의 광기 어린 모습이 뇌리에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Jeremy’의 뮤직비디오 클립은 M-TV 뮤직비디오 시상식에서 여러 부문을 휩쓸면서 얼터너티브의 클래식으로 남았다. 이 음반을 발표한 직후 드럼 주자 데이브 크루센이 데이브 아브루지스로 교체되었으며 1990년대 록페스티벌의 대명사 롤라팔루자와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영화 < 싱글스 > 사운드트랙에 참여하면서 분주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영화 < 싱글스 >에서는 카메오로 직접 출연도 해 달콤한 외도(?)를 즐기기도 했다. 1집의 대대적인 성공은 펄 잼을 인기 밴드로 등극시켜 주었지만 그들은 본격적으로 음반사의 스타 시스템에 대항해 단호하고도 신념에 찬 저항을 시작했다. 좀 더 강렬한 방향으로 사운드스케이프를 꾸려 간 1993년의 두 번째 음반 < Vs >에서는 일체의 싱글도 커트 하지 않았고, 뮤직 비디오 제작도 거부했다. 무엇보다 대규모 공연장에서의 라이브를 지양하고 소규모 공연장에서 자신들의 진정한 팬들과의 인간적인 교감을 중요시했으며 대중음악 상업성을 대표하는 공연 프로모터 티켓마스터(Ticket master)를 상대로 고가의 입장료 반대 투쟁을 시작했다. 달걀로 바위 치기의 이 싸움에서 패소하긴 했지만 펄 잼이 보여준 용기는 록의 진정성에 대한 주위를 환기시키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너바나가 이상주의자라면 펄 잼은 행동주의자였다. 선의의 경쟁자이자 음악적 동지였던 커트 코베인이 자신의 손으로 세상을 마감 한지 8개월 후에 공개된 < Vitalogy >의 분위기는 매우 달랐다. 후반부로 접근할수록 몽롱하면서 발라드 트랙들이 여러 곡 자리하고 있는 것은 절친한 친구를 잃은 펄 잼의 음악적인 고뇌를 반영한 것을 의미한다. 드럼 플레이어가 데이브 아부르지스에서 잭 아이언스로 바뀌면서 팀 내 분위기를 쇄신하고 발표한 이 작품부터 싱글 커트를 재개했다. ‘Tremor christ(18위)’와 모던록 차트 정상을 호령한 ‘Better man(13위)’, ‘Spin the black circle(58위)’, 그리고 ‘Corduroy(53위)’ 등이 팬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섰다. 특히 싱글 ‘Spin the black circle’이 제 38회 그래미에서 최우수 하드록 부문을 수상하면서 펄 잼은 격분한 젊은이들의 치기 어린 반항의 이미지를 넘어 진지하고 솔직한 아티스트로서 승격했음을 알렸다. 마이크 맥크리디는 엘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의 보컬리스트 레인 스탈리(Layne Staley)와 매드 시즌(Mad Season)을 조직해 활동 반경을 넓혔으며, 펄 잼의 멤버 전원이 영원한 우상 그래서 ‘그런지의 대부’로 불린 닐 영(Neil Young)의 < Mirror Ball >에 힘을 보태면서 국경을 초월한 선후배간의 끈끈한 정(情)을 과시했다. 이 무렵 처녀작에 수록된 ‘Jeremy’가 뒤늦게 싱글로 발표되었고 동시에 B면에 자리하고 있던 ‘Yellow ledbetter’도 인기가 동반 상승했다. 특히 싱글이란 개념이 없는 국내에선 록 팬들이 이 곡을 찾기 위해 펄 잼의 1집부터 3집을 구입하는 헛수고를 하거나 수입 음반 취급 점을 찾아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싱글 ‘I got Id(7위)’가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톱10에 진입하면서 히트 싱글을 보유한 밴드를 체험하기도 했다. 제3세계의 영적인 영감과 음악, 그리고 실험주의를 대폭 수용한 1996년의 음반 < No Code >에서 펄 잼의 직선적인 통쾌함은 많이 묽어졌다. 비록 ‘Who are you(31위)’와 ‘Hail Hail(69위)’를 차트에 올렸지만 동지 너바나의 부재(不在)로 인한 커다란 부담감은 음반 제작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입김으로 작용했으며 이것으로 이들은 밴드 결성 6년 만에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뇌하기 시작했다. < No Code >의 실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자신들의 본령을 되찾은 것인지 1998년에 공개한 < Yield >는 다시 하드록에 기반을 둔 본래의 사운드로 회귀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의 록 음악계는 철저하게 변했고 상업화된 얼터너티브와 그런지는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었다. 비록 싱글 ‘Given to fly(21위)’와 ‘Wishlist(47위)’, ‘Do the evolution’이 사랑 받긴 했지만 앨범의 판매력은 현저히 하락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전쟁 중 하나로 꼽히는 유고 내전 당시 고통받던 코소보 난민을 위해 제작된 음반 < No Boundaries >에서 펄 잼은 J. 프랭크 윌슨(J. Frank Wilson)이 1964년에 히트시킨 ‘Last kiss’를 커버해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진입했다. 팝의 기류가 틴 팝과 하드코어, 그리고 라틴 댄스로 도배되던 2000년, 이들은 통산 여섯 번째 작품 < Binaural >을 공개했지만 인상적인 반향을 끌어내지 못한 채 서서히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다. 10년이란 세월은 ‘그런지의 큰 별’ 펄 잼의 날카로운 충격파마저도 무디게 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변화에 단 한번의 불평도 없이 묵묵히 자신들의 길을 걷고 있다. ‘2인자’는 결코 1등의 자리를 빼앗겼다는 식의 패배주의적 뉘앙스가 아님을 1960년대의 롤링 스톤스에 이어 1990년대의 펄 잼은 증명한다. ‘그런지의 살아 있는 역사’라는 점만으로도 펄 잼은 위대하다. 너바나는 ‘짧고 굵게’로 모든 것을 가졌지만 펄 잼은 이 시대가 가장 싫어하는 ‘길게’로서 굵음으로 남으려는 역사와의 고단하고 질긴 투쟁을 전개하고있다.
밴드 : The Black Crowes (블랙 크로우즈 )
< Shake Your Money Maker >(1990)로 데뷔한 블랙 크로우즈(Black Crowes)는 록 본연의 정신을 부활시킨 1990년대의 가장 중요한 밴드 중에 하나이다. 이들은 아메리칸 하드 록의 진수를 무기로 당시 절정에 달해 있던 상업적 팝 메탈에 대한 안티테제의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완고한 미국 남부 특유의 음악적 전통에 기반한 특유의 서던 록(southern rock) 사운드는 많은 이들에... < Shake Your Money Maker >(1990)로 데뷔한 블랙 크로우즈(Black Crowes)는 록 본연의 정신을 부활시킨 1990년대의 가장 중요한 밴드 중에 하나이다. 이들은 아메리칸 하드 록의 진수를 무기로 당시 절정에 달해 있던 상업적 팝 메탈에 대한 안티테제의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완고한 미국 남부 특유의 음악적 전통에 기반한 특유의 서던 록(southern rock) 사운드는 많은 이들에게 ‘1990년대 로큰롤의 정의를 내렸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출발점이 처음부터 서던 록이었던 것은 아니다. 1984년에 로빈슨 형제가 미스터 크로우즈 가든(Mr. Crowes Garden)이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시작했을 때 이들은 펑크 밴드였다. 자신들이 펑크와는 결국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비로소 블랙 크로우즈로 이름을 바꾼 후 지금의 사운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데뷔 앨범에서 보이는 이들의 음악은 1970년대의 완고하고 비타협적인 록 사운드 바로 그것이었다. 블루지한 감성을 바탕으로 한 미드 템포의 꽉 찬 사운드는 마초적인 분위기의 보컬과 함께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가사 면에 있어서도 이들은 전통적인 태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Twice as hard’, ‘Jealous again’, ‘Hard to handle’(오티스 레딩의 곡을 커버)등이 그렇다. 이는 다소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당시 이들은 1980년대 전반을 지배했던 팝 음악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인식되었고, 열광적인 팬들의 반응 또한 이들의 이러한 사운드와 태도가 단순한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었다. 이어서 발표된 90년대 판 (롤링 스톤즈의) < Exile On Main Street >인 < The Southern Harmony And Musical Companion >(1992)은 밴드의 절정에 달한 기량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발매 첫 주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하면서 음악적으로 상업적으로 모두 성공을 일궈냈다. 이 후 블랙 크로우즈는 < Amorica >(1994)를 발매했는데, 국내에서는 수정된 자켓 사진으로 화제가 되었던 앨범이다. 전작들과는 달리 퍼커션, 젤리피쉬 등의 다양한 악기 도입과 게스트들의 참여로 더욱 풍성해진 사운드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작품 전반에 걸쳐 넘실대고 있는 충실한 그루브감은 앨범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1996년에 발표한 < Three Snakes & One Charm >은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의 열광적인 지지와는 대조적으로 대중들의 무관심 속에 사라지는 비운을 맛보았다. 3년 간의 절치부심 끝에 만들어진 < By Your Side >(1999)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혹자는 이를 블루스에 강한 기반을 둔 이들의 사운드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블루스는 정형화된 구조와 형식을 고수하다보니, 변화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허나 블랙 크로우즈는 그 상업적인 결과를 떠나 1990년대에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한 중요한 밴드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그들은 얼터너티브의 물결이 사라진 후 등장한 복고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들의 변치 않는 록 정신의 행진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지켜보는 것 또한 우리들에게는 매우 흥미 있는 일일 것이다.
포틀랜드 오레곤에서 댄디 워홀스가 결성되기 전 커트니 테일러(V, G)는 뷰티 스탭 Beauty Srab이라는 글램 록 밴드의 드러머였다. 그런 전적을 가진 그가 도발적인 소녀의 이미지를 사진 지아 맥케이브(K), 피터 홈스트롬(G), 에릭 헤드포드(D)와 1990년 초 결성한 댄디 워홀스는 그런지의 영향이 다분한 브릿 팝 음악으로 엘렉트라픽션 Electrafiction과 러브 앤 라킷츠와 공연하면서 그들의 이름... 포틀랜드 오레곤에서 댄디 워홀스가 결성되기 전 커트니 테일러(V, G)는 뷰티 스탭 Beauty Srab이라는 글램 록 밴드의 드러머였다. 그런 전적을 가진 그가 도발적인 소녀의 이미지를 사진 지아 맥케이브(K), 피터 홈스트롬(G), 에릭 헤드포드(D)와 1990년 초 결성한 댄디 워홀스는 그런지의 영향이 다분한 브릿 팝 음악으로 엘렉트라픽션 Electrafiction과 러브 앤 라킷츠와 공연하면서 그들의 이름을 음악 씬에 알리기 시작했다. 1995년, < Dandy’s Rule OK? >라는 다소 발칙한 타이틀의 첫 앨범을 발표한 후 다음해인 1996년, 메이저 레이블 캐피탈과 계약하면서 댄디 워홀스는 1997년 여름 많은 관심 속에서 첫 메이저 앨범 < THE DANDY WARHOLS COME DOWN >을 발표했다.
밴드 : The Teskey Brothers (테스키 브라더스 )
2008 년 그룹을 결성 한 Josh Teskey와 Sam Teskey의 이름을 따서 명명 된 멜버른 출신의 호주 블루스 락 밴드. 2008 년 그룹을 결성 한 Josh Teskey와 Sam Teskey의 이름을 따서 명명 된 멜버른 출신의 호주 블루스 락 밴드.
오프스프링(Offspring)은 그린 데이(Green Day)와 함께 1990년대 얼터너티브의 또 다른 축을 형성했던 네오 펑크(Neo Punk)의 선두주자이다. 이들은 음악을 통해 X-세대의 좌절과 분노를 대변했고 1970년대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펑크의 재림(再臨)을 알리며 부활의 축포를 쏴 올렸다. 얼터너티브의 조상이 바로 펑크인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뉴 펑크(New Punk)의 출현은 당연한 결과였다. 2... 오프스프링(Offspring)은 그린 데이(Green Day)와 함께 1990년대 얼터너티브의 또 다른 축을 형성했던 네오 펑크(Neo Punk)의 선두주자이다. 이들은 음악을 통해 X-세대의 좌절과 분노를 대변했고 1970년대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펑크의 재림(再臨)을 알리며 부활의 축포를 쏴 올렸다. 얼터너티브의 조상이 바로 펑크인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뉴 펑크(New Punk)의 출현은 당연한 결과였다. 20년이란 긴 세월만큼이나 같은 카테고리로 묶이는 음악 스타일 또한 변화의 양상을 띄기 마련이다. 오프스프링은 선배들이 일궈놓은 자산들 위에 1980년대 하드코어의 헤비 메탈적인 성향과 캐치한 멜로디 라인을 결합시켜 신 조류를 탄생시켰다. 바로 이점, 헤비 메탈과의 친화성이 그린 데이와 이들을 구분시키는 주요 키워드이다. 음악을 들어보면 파괴적인 동시에 대중 친화적인 모순(矛盾)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출신 성분 또한 남다르다. 이들은 과거 펑크의 주역이었던 사회적, 경제적 낙오자들이 아닌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대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밴드는 자신들의 레이블인 블랙 레코드(Black Records)를 통해 1987년 발매한 데뷔 싱글 ‘I’ll be waiting’ 이후 데모곡들이 펑크(Punk)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되면서 차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년 뒤, 이들은 네메시스(Nemesis)를 통해 데뷔 앨범 < Offspring >(1989)을 내놓으며 호의적인 평가를 얻어냈고 이를 계기로 1980년대부터 ‘펑크 음악의 발전소’ 역할을 한 에피타프 레코드(Epitaph Records)와 계약을 체결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오랜 공백 뒤에 나온 2집 < Ignition >(1993)으로 펑크의 날카로움과 대중적인 선율이 공존하는 밴드만의 개성이 확립되었음을 알린 오프스프링은 최대 성공작인 < Smash >(1994)를 통해 절정기를 맞이하였다. 펑크, 스카(Ska), 헤비 메탈 등을 한데 섞어낸 이 작품은 최초로 싱글 차트 10위에 진입한 ‘Come out and play’을 비롯하여 ‘Bad habit’, ‘Self-esteem’, ‘What happened to you’, 등의 히트곡들을 배출하며 미국 내에서만 500만장 이상을 판매하는 경이를 이루었다. 젊은이들은 댄스곡이 아닌 펑크 송을 틀어놓고 흥겨운 춤판을 벌였고 MTV 또한 이들의 뮤직 비디오를 연일 틀어댔다. 이 후, 상업적 성공을 둘러싼 에피타프 레코드와의 갈등으로 소속사를 콜롬비아(Columbia)로 옮긴 밴드는 < Ixnay and Hombre >(1997)를 발매하며 활동을 이어나갔다. 앨범은 대중적인 곡조를 줄이고 파괴적인 기타 리프를 강조한 ‘All I want’, ‘Gone away’등을 차트에 등장시키며 선전했으나 그것은 분명 < Smash >의 충격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1998년에 등장한 < Americana >는 1년 전의 음악적 실패를 만회하기에 충분한 세련미를 뽐내며 롱런의 가능성을 열어준 작품이었다. 첫 싱글 ‘Pretty fly (For a white guy)’를 시작으로 비틀즈의 ‘Ob-La-Di, Ob-La-Da’를 패러디한 ‘Why don’t you get a job?’, 영화 주제곡을 독특하게 리메이크한 ‘Feelings’등이 청자들의 귀를 잡아끌며 인기몰이를 주도했다. 2000년, 어느새 30대의 어른이 되어버린 오프스프링은 < Conspiracy of One >을 소개하며 나이와 무관한 자신들의 힘있고 정열적인 펑크 행진이 멈추지 않았음을 대중들에게 알렸다.

회원리뷰 (0건)

매주 10건의 우수리뷰를 선정하여 YES포인트 3만원을 드립니다.
3,000원 이상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일반회원 300원, 마니아회원 6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리뷰/한줄평 정책 자세히 보기
리뷰쓰기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0건)

1,000원 이상 구매 후 한줄평 작성 시 일반회원 50원, 마니아회원 1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리뷰/한줄평 정책 자세히 보기
0/50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배송 안내
배송 구분 YES24 배송
  •  택배사 : CJ대한통운 (상황에 따라 배송 업체는 변경 될 수 있습니다.)
  •  배송비 : 2,000원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포스터 안내
  •  구매하신 상품에 포스터 사은품이 있는 경우, 포스터는 상품 수량과 동일한 수량이 제공됩니다.
  •  포스터는 기본적으로 지관통에 포장되며, 2장 이상의 포스터도 1개의 지관통에 담겨 발송됩니다.
  •  포스터 수량이 많은 경우, 상황에 따라 지관통 추가 및 별도 박스에 포장되어 발송될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반품/교환 방법
  •  마이페이지 > 반품/교환 신청 및 조회, 1:1 문의,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맨위로
예스이십사(주)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11, 5층~6층(여의도동,일신빌딩) 대표 : 김석환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권민석 yes24help@yes24.com 사업자등록번호 : 229-81-37000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5-02682호 사업자 정보확인 호스팅 서비스사업자 : 예스이십사(주)
고객만족센터 T.1544-3800
상담 전화번호
  • 중고샵 문의 1566-4295
  • 영화예매 문의 1:1 문의
  • 공연예매 문의 1544-6399
1:1 문의하기 자주 묻는 질문 상담시간 안내
YES24 수상내역 정보보호 관리체계 ISMS인증획득 개인정보보호 우수사이트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서울보증보험
고객님은 안전거래를 위해 현금 등으로 결제 시 저희 쇼핑몰에서 가입한 구매안전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비스가입사실 확인
EQUU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