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남북한 정상이 판문점의 경계선을 자유롭게 오갔던 모습을 말이다. 하지만 현재 남북한은 대화가 단절된 상태다. 늘 과격한 말과 파괴적인 행동을 보이는 북한을 바라보며 많은 국민들은 ‘통일’에 대한 회의론을 내놓기도 한다. 게다가 분단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인 젊은 청년들은 ‘통일’보다 현재 우리 청년들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이야기한다.
한 편으로 사회는 점점 더 갈등이 첨예화 되고 있다. 나와 다르면 비난을 넘어 혐오하는 사회. 빈부격차, 지역감정, 세대갈등, 젠더갈등, 젠트리피케이션, 다문화갈등 등 온갖 극단적인 갈등을 보도하는 뉴스를 보다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여기에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들은 대선후보를 선출하며 원색적인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시민은 1등인데, 정치는 꼴등’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얼마전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이라는 이름에서 벗어나 선진국이 되었지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점점 더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양한 목소리가 아닌, 서로를 물어뜯는 비난만 남아있는 우리 사회를 가득 채운 여러 갈등의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힙 베를린, 갈등의 역설』은 현재 극단적인 갈등사회로 치닫고 있는 한국 사회에 힙스터의 성지로 떠오른 베를린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새로운 통합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베를린은 대한민국에도 다양한 기억을 떠올리는 공간이다. 1960년대 간첩단 사건이 발생한 곳이자 1989년 당시 대학생이던 임수경 씨가 북한 방문을 위해 경유한 곳이기도 하다. 유일한 통일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성으로 무려 3명의 대통령이 통일을 위한 구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베를린에서는 ‘평화의 소녀상’의 철거를 막은 시민운동도 일어난 곳이다.
요즘 여러 도시 중에서 베를린이 힙하게 떠오르고 있다. 분단의 상처와 기억을 안고 있는 베를린은 현재 그간의 갈등을 새로운 에너지로 전환하여 분출하는 도시로 변모했다. 유럽에서 가장 힙한 클럽이 있는 도시, 새로운 미술과 음악의 유행을 선도하는 도시,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베를리너들이 공존하는 도시인 베를린은 현재 분열된 한국사회에 다양한 시사점과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책의 저자인 이광빈과 이진은 연합뉴스 독일 특파원과 재독정치문화학자로 만나 독일 분단기 서독 내부의 갈등을 취재했다. 이 책은 두 저자의 베를린에서의 경험과 통찰이 오롯이 담겨 있는 책이다. 저자 이진은 사회 ‘갈등’을 단순한 분열로 보는 시각을 넘어, 이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이야말로 새로운 사회로 변화하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갈등능력’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저자 이광빈은 베를린 시민사회가 일본이 쳐놓은 ‘반일 민족주의 프레임’에 걸려들지 않고, 전시 여성 성폭력 피해의 보편성을 강조하며 시위해 소녀상을 지켜낸 모습을 취재했다. ‘베를린 소녀상 철거 명령 논란’ 보도로 그는 2020년 12월 한국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과 제 52회 한국기자상 ‘조계창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1부 경계에서 탄생한 힙베를린’에서는 분단시기의 동서독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혔던 공간인 베를린이 ‘차이에 대한 인정’을 통해 공존과 저항의 도시로 힙하게 변화해간 모습을 그렸다.
‘2부 남북에 기회의 땅, 베를린’에서는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만나는 공간인 베를린을 조명하며, 유일한 분단국인 한국이 만들어가야 할 통일의 모습과 방향을 제시한다. 민족주의를 넘어 보편주의에 입각한 민간 교류와 남북한 사람들의 모습,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함께 살고 있으나 누구도 제대로 조명하고 있지 않은 다문화 사회 한국의 모습에 대해 제언하고 있다.
‘3부 한국이 몰랐던 서서갈등’은 답보 상태를 반복하는 남북관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또한 ‘통일’을 둘러싼 남한 내부의 남남갈등을 통일의 과정에서 불거진 ‘서독’ 내부의 서서갈등이 어떻게 진행되고 해결되어 가는지를 보며 고찰하고 있다. 좌우의 이념을 떠나 보편적 민주주의를 확장하기 위한 초당적 협력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4부 즐거운 갈등, 공존의 기술’에서는 나치 시대 전체주의, 식민주의의 굴레에서 독일이 어떻게 벗어나 유럽의 새로운 중심 국가로 떠오르게 되었는지를 소개한다. 소수의 의견도 끝까지 경청하는 시민사회의 ‘힙’함과 동서독 시민의 갈등, 난민 정책 갈등을 넘어 새로운 통합을 지향하는 베를린의 모습이야말로 가장 힙한 공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힙 베를린, 갈등의 역설』에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한명숙 전 국무총리, 김황식 전 국무총리, 박명림 연세대 교수의 추천사가 실려 있는 것도 남다르다. 명사들이 직접 보내온 글에는 통일에 대한 새로운 시각, 사회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남다른 통찰을 담은 책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K-POP, K-무비, K-푸드, K-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힙’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그 다음은 ‘힙’한반도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 책을 통해 베를린의 갈등 해결법을 좀더 찬찬히 살펴보는 건 어떨까?
유일한 통일 국가인 독일 베를린의 갈등 해법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인 대한민국의 통합 방향을 제시하는 책
이 책은 조금 독특한 책이다. 한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다. 누구는 그 구멍에 눈을 대고 세상을 바라보기도 하고, 누구는 그 구멍에 실을 꿰어 연결시키고 싶다고 한다. 누구는 구멍 좌우의 선을 보고 과녁이라고도 하고, 또 누구는 이것을 세상을 표현하는 동서남북 방위라고도 한다. 이런 다양한 해석 모두가 맞다. 이 책을 보는 독자가 생각하는 그것이 정답이다.
『힙 베를린, 갈등의 역설 』은 정답을 주장하는 책이 아니다. 베를린은 다양한 난민들과 여러 민족이 모여 사는 유럽의 ‘뉴욕’같은 용광로 같은 도시다. 사람들은 베를린를 ‘힙’한 공간으로 뽑는다. 하지만 베를리너는 뉴요커와 다르다. 편견에 치우치지 않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포용하며, 보편적 인권을 지향하고, 다양한 의견을 포용한다. 그렇게 힙한 공간이 된 베를린은 새로운 시대의 대표적인 도시로 떠올랐다. 그리고, 분단을 겪고 통일된 독일과 베를린 시민의 모습은 전세계 유일한 분단국인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다.
이 책의 두 저자는 한국과 독일에서 ‘갈등’이 주는 ‘힘’에 주목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용광로’ 같다고 말한다. 그만큼 역동적이며 변화가 많은 사회라는 뜻이다. 하지만 격심한 변화가 가져온 현재 대한민국의 갈등수치는 최고치에 다다른 상태다. 누군가 살짝만 건드려도 여기저기서 활화산처럼 분노가 터져 나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우리는 ‘갈등’을 다루는 방법을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독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동서독 갈등은 첨예 했으며, 서독 시민들도 서로 의견이 갈려 갈등했다. 통일은 원하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와 버렸고, 동서독 경제 격차를 메우는데 급급하다보니 동독에서는 신나치즘 같은 극단적 민족주의 세력의 정당이 힘을 얻었다. 쏟아져 들어온 난민과 이민자들과도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독일은 이런 갈등을 새로운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변화시켰다.
민족주의를 넘어 보편주의로, 전체주의를 넘어 민주주의로. 성숙한 시민들은 협소한 내셔널리즘을 넘어 세계시민이 살아가는 도시인 베를린을 만들었다. 베를린에서는 머리색, 피부색에 관계 없이 모두가 ‘베를리너’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간다. 갈등을 겪지만, 이 또한 충분한 존중과 경청을 통해 새로운 발전의 토대로 만들고 있다. 책 제목인 『힙 베를린, 갈등의 역설』은 이런 갈등이 있어 베를린이 힙하게 변모할 수 있었다는 뜻으로 정해졌다.
이 책은 독일 분단의 대표 도시인 베를린 시민들의 여러 모습과 인터뷰를 통해 독일이 어떻게 이 갈등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었는지 알려준다. 또한 현재 같은 종류의 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사회가 어떻게 이 분열을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유일한 분단국인 한국이 통일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접근해야 하는지도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들은 좌우파 정권을 따지지 않고 주변국들의 협조 분위기를 만들어간 정부와 민간 교류의 끈을 놓지 않았던 서독 시민들, 그리고 새로운 민주주의의 열망을 표현한 동독 시민들의 노력이 합쳐져 통일을 이루어 냈다고 분석한다.
그렇다고 이 책 『힙 베를린, 갈등의 역설 』이 무겁기만 한 책은 아니다. 각각의 챕터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연결되어 마치 각각의 미니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책 시작 부분에는 독일과 한국의 마치 데자뷰 같은 사건들을 화보집으로 엮어 비주얼 측면에서도 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올컬러의 화보는 책 중간중간에도 가득해 베를린의 힙한 모습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독특한 스타일의 책 디자인 또한 이 책의 메시지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거나, 서재에 꽂힌 작은 이야기책들을 펼쳐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회 참여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AGI society에서 책 디자인을 맡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