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YES24 카테고리 리스트

YES24 유틸메뉴

Global YES24안내보기

Global YES24는?

K-POP/K-Drama 관련상품(음반,도서,DVD)을
영문/중문 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Korean wave shopping mall, sell the
K-POP/K-Drama (CD,DVD,Blu-ray,Book) We aceept PayPal/UnionPay/Alipay
and support English/Chinese Language service

English

作为出售正规 K-POP/K-Drama 相关(CD,图书,DVD) 韩流商品的网站, 支持 中文/英文 等海外结账方式

中文

검색


어깨배너

2월 혜택 모음
웨일북 소마
1/6

빠른분야찾기


윙배너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허일후 아나운서가 추천하는 인생 도서

관련상품
소마

인류의 주요 사상들이 깃든 배경 속에서 한 인간의 기막힌 여정이 시작된다.

소마

채사장 저 | 웨일북

마케팅 텍스트 배너


아침이슬 50년, 김민기에 헌정하다
 파트너샵가기 공유하기 예스24 음반 판매 수량은
차트와 차트 집계에 반영됩니다. 한터차트/가온차트 집계 반영 안내
CD

아침이슬 50년, 김민기에 헌정하다

[ 양장 제본 + 2CD + 60p 라이너 노트 ]
윤도현, 태일 (NCT), 장필순, 메이트리, 유리상자 노래 외 13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Kakao Entertainment / 경기문화재단 | 2021년 07월 28일 리뷰 총점10.0 정보 더 보기/감추기
음악
5점
디자인/구성
5점
회원리뷰(1건) | 판매지수 4,734 판매지수란?
상품 가격정보
판매가 33,000원
할인가 26,700 (19% 할인)
YES포인트
추가혜택쿠폰 및 사은품(1종)
추가혜택쿠폰 쿠폰받기
  • 주문금액대별 할인쿠폰
배송안내
배송안내 바로가기

구매 시 참고사항
구매 시 참고사항

판매중

수량
  • 해외배송 가능
1/4
광고 AD

아침이슬 50년, 김민기에 헌정하다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21년 07월 28일
시간, 무게, 크기 1,500g | 142*124*14mm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1
  • 01 새벽길 - 윤도현
  • 02 아름다운 사람 - 태일(TAEIL)
  • 03 작은 연못 - 장필순
  • 04 철망 앞에서 - 메이트리
  • 05 늙은 군인의 노래 - 유리상자
  • 06 기지촌 - 이은미
  • 07 주여, 이제는 여기에 - 윤종신
  • 08 가을편지 - 나윤선
  • 09 천리길 - 크라잉넛
Disc2
  • 01 상록수 - 알리
  • 02 친구 - 박학기
  • 03 그 사이 - 웬디(WENDY)
  • 04 봉우리 - 한영애
  • 05 강변에서 - 정태춘
  • 06 교대 - 이날치
  • 07 야근 -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찾사)
  • 08 이 세상 어딘가에 - 권진원, 황정민
  • 09 아침이슬 - 다함께

아티스트 소개 (18명)

대한민국 국민밴드 윤도현 밴드(YB)의 보컬이다. 별명은 윤가수, 대인배다. 세상에 영원은 없다는 사실에 무진장 슬퍼하면서도 또 그렇기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창조해내는 스스로의 모습에 들뜨기도 하는, 어쩔 수 없는 열정맨이자 로맨틱 아빠이다. 록의 본고장 미국에서 날아온 '워프트 투어' 초대장을 가슴에 품고 꿈꾸듯 날아가, 그곳에서 자유와 도전, 그리고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다시금 새기고 돌아왔다. 8살, 도... 대한민국 국민밴드 윤도현 밴드(YB)의 보컬이다. 별명은 윤가수, 대인배다. 세상에 영원은 없다는 사실에 무진장 슬퍼하면서도 또 그렇기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창조해내는 스스로의 모습에 들뜨기도 하는, 어쩔 수 없는 열정맨이자 로맨틱 아빠이다. 록의 본고장 미국에서 날아온 '워프트 투어' 초대장을 가슴에 품고 꿈꾸듯 날아가, 그곳에서 자유와 도전, 그리고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다시금 새기고 돌아왔다. 8살, 도레미파솔라시를 알게 된 그 때부터 불혹(不惑)을 앞둔 지금까지 끊임없이 진정한 록커를 꿈꿔온 그는 오늘도 외친다. 락앤롤!
유일한 여성으로 포크계를 소리 없이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장필순(1963년)은 대학 졸업 후 연합 서클 햇빛촌에 들어가면서 음악을 시작했다. 가수가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녀는 친구 김선희와 소리 두울을 결성하고 대학가를 돌며 캠퍼스 가수로 인정받았다. 1984년 소리 두울은 옴니버스 앨범에 참여하게 되고 수록곡 ‘바람에 실려온 사람’이 대학가와 다운타운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당시 절정의 인기 프로그램... 유일한 여성으로 포크계를 소리 없이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장필순(1963년)은 대학 졸업 후 연합 서클 햇빛촌에 들어가면서 음악을 시작했다. 가수가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녀는 친구 김선희와 소리 두울을 결성하고 대학가를 돌며 캠퍼스 가수로 인정받았다. 1984년 소리 두울은 옴니버스 앨범에 참여하게 되고 수록곡 ‘바람에 실려온 사람’이 대학가와 다운타운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당시 절정의 인기 프로그램 < 젊음의 행진 >에도 자주 출연한다. 이에 1986년에는 이들의 첫 음반이 세상에 나오고 인지도에 힘입어 인기 가수들의 라이브 공연 게스트로 활동하며 최성원이 기획한 < 우리 노래 전시회 >에 ‘코스모스’라는 곡으로 참여한다. 하지만 활동 끝에 김선희가 유학을 결정하는 바람에 팀은 와해되고 만다. 화음으로 노래를 받쳐주던 장필순은 코러스가수로 인정을 받아 수십 명의 가수들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신윤미와 더불어 최고의 목소리 세션 주자로 한 시대를 풍미하고 박정운, 오석준과 함께 오.장.박이라는 팀을 결성해 당시 최고의 인기 가수인 이상은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 굿모닝 대통령 >에 음악으로 참여해 ‘내일이 찾아오면’을 히트시킨다. 이어 김현철의 프로듀싱으로 나온 그녀의 데뷔 음반은 세련된 편곡과 수준 높은 세션들의 참여로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는 ‘어느새’, 김현철과의 듀엣곡 ‘잊지 말기로 해’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라디오를 타지는 않았지만 ‘빨간 리본’, ‘내 마음 언제까지나’ 등과 같은 수작이 담겨 있다. 10곡의 작곡자가 모두 다른 2집에서 ‘여행’을 히트시킨 후 그녀는 조동익이 프로듀서를 맡은 3집 < 이 도시는 외로워 >에서 자신의 숙성한 창법과 고품격의 분위기를 담아 낸다. 그녀가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기도 한 이 앨범에는 리메이크곡 ‘제비꽃’을 비롯해 ‘강남 어린이’, ‘도시의 하루’가 수록되어 있으며 어린 시절부터 콤플렉스로 작용해 그녀를 괴롭혔던 목소리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표현하는 음악적 도구가 되어 그녀의 정체성을 보호하고 있다. 1995년에 발표한 4집은 오랫동안 해왔던 포크적 감성에 재즈와 록을 덧붙여 ‘상상해 보셨나요’와 같은 짙은 어두운 분위기를 표출한 곡도 있으며 전형적인 조동익의 분위기가 풍겨 나오는 ‘노란 모자’, 팬들에게 사랑을 받은 ‘하루’, ‘나누니나나’ 같은 곡들이 있다. 1997년에 그녀는 이정식과 합작 앨범을 발표했으며, 여러 곳에서 명반으로 뽑힌 5집으로 다시 한번 저력을 보였지만, 시장에서는 환대를 받지는 못했다. 수준작인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크랜베리스(Cranberries)를 연상시키는 ‘스파이더 맨’ 등이 들어 있는 이 앨범은 록과 포크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곡을 만드는 그녀의 솜씨가 궤도에 올랐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앨범은 아직까지도 그녀의 존재를 환기시킨 1990년대 말의 중요한 음반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후 그녀는 재건한 하나음악의 식구들과 계속 라이브 공연을 가졌으며 예전과 같이 코러스를 많이 하지는 않지만 친한 가수들과는 계속 교류를 하고 있으며 조동익이 담당했던 영화 < 내 마음의 풍금 > 주제곡을 한동준과 같이 불렀고 김현식 추모 앨범에서는 ‘재회’라는 곡으로 참여했다. “포크는 통기타와 어우러진 음악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정신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장필순은 현 6집을 구상 중에 있으며 포크계 여성가수의 희망으로 유일하게 자리잡고 있다.
멤버 : 박승화, 이세준 2인조 남성 듀오 유리상자는 이름처럼 잔잔한 발라드를 추구하는 그룹이다. 어쿠스틱 사운드를 중심으로 한 포근하면서 서정적인 이들의 음악은 데뷔 이래로 변한 것이 없다. 앨범 발매 시기도 자신들의 작품과 분위기가 일맥상통하는 가을로 항상 맞춰 잡는다. 미성에 섬세한 떨림을 실어 전달하는 보컬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들은 분명 감성의 ‘약한 부분’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박승화는 199... 멤버 : 박승화, 이세준

2인조 남성 듀오 유리상자는 이름처럼 잔잔한 발라드를 추구하는 그룹이다. 어쿠스틱 사운드를 중심으로 한 포근하면서 서정적인 이들의 음악은 데뷔 이래로 변한 것이 없다. 앨범 발매 시기도 자신들의 작품과 분위기가 일맥상통하는 가을로 항상 맞춰 잡는다. 미성에 섬세한 떨림을 실어 전달하는 보컬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들은 분명 감성의 ‘약한 부분’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박승화는 1993년 데뷔해 솔로 가수로 2장의 앨범을 공개한 적이 있는 가수였다. 역시 혼자활동 중이던 이세준이 그의 공연에 코러스로 참여하면서 자연스레 팀 결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앨범에 새로운 ‘리콜’ 제도를 도입할 정도로 자신감에 넘쳤던 유리상자의 1집은 1997년에 공개됐다. 수록곡 중에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 ‘순애보’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방송 활동을 많이 한 것은 아니었지만 공연을 통해 이들의 인기는 상승곡선을 그렸다. 기독교 신자인 멤버들의 사상이 투영된 두 번째 앨범 < 사랑찾기 >는 1998년에 나왔다. ‘331’은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노래였지만 대중들은 여전히 그들의 곡을 좋아했다. 앨범 발표 후 가진 콘서트는 연일 매진사례를 기록하며 유리상자의 인기를 증명했다. 1999년에 발표된 세 번째 작품인 < be happy... >의 공명은 대단했다. 싱글 ‘신부에게’는 각종 차트에서 상위를 기록했으며 연일 예식장에서 울려 퍼졌다. 이 노래는 팀의 노랫말을 맡고 있는 이세준에게 작사상을 선사하기도 했다. 2000년 나온 네 번째 음반의 타이틀은 변함 없는 사운드를 예감할 수 있는 < home >이다. 김형석이 프로듀스를 맡았던 이전과는 달리 멤버들 본인이 앨범을 직접 제작했고 윤상이 ‘그곳에서''와 ''난 말야‘의 편곡에 참여했다. 독특한 점은 예전의 인기그룹 푸른하늘의 ‘우리 모두 여기에‘가 리메이크되어 실려 있다는 것이다. 이 곡에서는 홍경민, 최재훈, 박혜경, 윤상이 유리상자와 함께 호흡을 골라 또 다른 느낌을 선사했다. 유리상자의 음악에는 그들만의 스타일이 있다. 참신하다고 할 만큼의 다채로운 음향은 구사하지 않지만 멤버들은 준비되지 않은 변화가 오히려 자신들의 음악의 질을 낮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정적(靜的)’인 그들에게 무모한 ‘동적’ 변신을 요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댄스의 전제통치가 자행되는 가운데 우수한 발라드의 약진은 ‘다양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방송에서 이은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연장이 그녀의 주된 행동 반경이기 때문이다. 무대 위의 그녀는 누구보다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신발조차 신지 않고 스테이지를 마음껏 가로지르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맨발의 디바’라는 호칭을 선물했다. 이 격정적인 여가수는 1988년 다운타운에서 처음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신촌블루스의 앨범에 참여하며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그녀는 1992년에 와서야 ... 방송에서 이은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연장이 그녀의 주된 행동 반경이기 때문이다. 무대 위의 그녀는 누구보다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신발조차 신지 않고 스테이지를 마음껏 가로지르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맨발의 디바’라는 호칭을 선물했다. 이 격정적인 여가수는 1988년 다운타운에서 처음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신촌블루스의 앨범에 참여하며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그녀는 1992년에 와서야 꽃을 피운다. 그해 발표된 1집에 실린 ‘기억 속으로’는 놀라운 반응을 몰고왔다. 이 곡은 엄청난 리퀘스트를 받았으며, 많은 이들에 의해 여기저기서 불려졌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그녀는 유려한 발라드를 부르는 가수로 기억됐다. 그 이미지는 다음 앨범의 히트곡 ‘어떤 그리움’을 통해 더욱 굳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콘서트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은 그녀의 빼어난 록 보컬을 알고 있었고 내심 작품에 그 재능이 반영되기를 바랐다. 그동안 가려졌던 그녀의 모습은 세 번째 앨범 < 자유인 >에서 활짝 드러났다. 수록곡들은 열기에 찬 라이브 현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폭발적인 ‘참을 만큼 참았어’는 기존의 이미지를 단숨에 날려 버렸다. 사람들은 서서히 그녀의 진가를 알기 시작했다. 이은미는 다른 가수들의 곡들도 무리 없이 소화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원곡의 감성과는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하는 매력적인 보이스는 이미 1996년의 리메이크 앨범 < 팝스 월드 >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이었다.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의 ‘Greatest love of all'', 저니(Journey)의 ‘Open arms''등의 팝 명곡들을 멋지게 불러낸 그녀는 1999년 < Nostalgia >를 통해 가요에도 각별한 애정이 있음을 보여줬다. 그녀의 보컬은 발라드, 재즈, 록, 포크의 경계를 자유롭게 가르고 있었다. 2001년의 새 앨범 < 노블레스 >에서 이은미는 그 다양한 장르를 한데 끌어들였다. 이 앨범은 타이틀이 상징하듯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적 자존심을 지켜 나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어느 새 서른을 훌쩍 넘어버린 그녀의 목소리엔 치기 어린 과시욕보다 편안함이 묻어 있었다. 이은미는 아직도 1년에 수십 회 이상의 공연을 치뤄내며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드러내고 있다. 비록 TV에서 접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꾸밈 없는 진솔한 음악을 바라는 이들의 곁에 언제까지라도 머물러 있을 것이다.
발라드의 계보를 꾸준한 인기로 잇고 있는 윤종신의 음악은 그가 본격적인 히트 선상에 오른 3집부터 복고풍으로 일관하고 있다. 앨범 재킷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만의 스타일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자상하고 부드러운 음색은 섬세한 배려로 항상 사랑했던 이의 행복을 비는 가사와 더불어 그의 색깔을 특징짓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음악에 대한 꿈을 불태웠던 그는 대학 2학년 때 대학가요제를 목표로 곡을 만들고 연습을... 발라드의 계보를 꾸준한 인기로 잇고 있는 윤종신의 음악은 그가 본격적인 히트 선상에 오른 3집부터 복고풍으로 일관하고 있다. 앨범 재킷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만의 스타일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자상하고 부드러운 음색은 섬세한 배려로 항상 사랑했던 이의 행복을 비는 가사와 더불어 그의 색깔을 특징짓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음악에 대한 꿈을 불태웠던 그는 대학 2학년 때 대학가요제를 목표로 곡을 만들고 연습을 했다. 비록 대학가요제에는 탈락했지만 교내 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가요제에서 알게 된 친구의 소개로 정석원을 만났다. 그리고 공일오비의 데뷔 앨범을 위해 오디션을 받는다. 공일오비의 1집에서 ‘텅빈 거리에서’로 인기를 얻은 그는 정석원의 도움을 받아 1집을 제작한다. 대학가요제를 위해 만들었던 곡들이 대거 수록된 이 앨범은 크게 사랑 받지는 못했지만 그의 미성이 수놓은 가능성을 창출했다. 1집에서는 ‘처음 만날 때처럼’이 알려졌고 다시 정석원과 손잡은 2집에서는 ‘너의 결혼식’이 인기를 얻으며 공일오비를 벗어나 독자적인 비행을 시작한다. 어쿠스틱한 반주가 일품인 3집의 ‘오래 전 그날’은 높은 판매고와 라디오의 방송 순위에 상위를 차지하며 드디어 그를 인기 가수의 위치로 격상시켰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4집에서 앨범 전체를 직접 주관하며 프로듀서와 작곡가로서의 역량에 도전한다. 장혜진과 듀엣으로 부른 ‘Goodbye’, 그리고 앨범을 알린 ‘부디’와 ‘이층집 소녀’의 다정다감한 음색은 고정팬들을 열광시켰으며 뒤이은 ‘내 사랑 못난이’의 인기로 음반은 꾸준히 팔려나갔다. ‘환생’이 대 히트를 기록한 5집과 군대 가기 전 서둘러 만든 6집은 유희열과의 작업으로 만들어졌다. 몇 곡만 같이 하려던 의도는 유희열의 광기를 보고 앨범 전체를 같이 조율하게 됐으며 조규찬의 코러스가 기가 막힌 ‘환생’은 그를 인기 선상에서 내려오지 못하도록 했다. 군대 가기 전 팬서비스 차원으로 발매된 리메이크 앨범 < 육년 >은 ‘길’과 같은 곡이 라디오에서 꾸준히 나왔지만 빈약한 구성으로 그의 팬들에게는 다소 실망을 안겨준 앨범이 되었다. 군대 말년에 알게된 신병 하림과의 만남은 윤종신을 새로운 음악 세계로 이끌었다. 그와 같이 작업한 7집에는 여전히 교복이 등장하는 복고풍의 비디오 클립 ‘배웅’이 환영받았고 박정현과 같이 부른 ‘우둔남녀’, 김조한과 같이 부른 ‘녀석’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머물러요’, ‘구원’ 등과 같은 곡으로 알 수 있듯이 그 간의 노선에서 약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한 앨범이다. 군대에 있을 때 경험한 이별을 소재로 만든 그의 8집은 그가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가장 많이 발휘한 앨범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지루한 감을 풍기는 이 앨범은 ‘Annie’가 일반적으로 알려졌음에도 그 전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했다. 연예계의 마당발로 통하는 그는 이미 작사가로 많은 활동을 했으며 박정현, 정경화 등의 가수에게 곡을 주어 작곡가로서의 입지도 다지고 있다. 최근에는 차태현의 앨범에 프로듀서와 작곡자로 참여하고 있는 그는 마흔 살 즈음엔 영화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에 도전해 보고 싶은 욕심도 있으며 최근 하림의 데뷔 앨범에 관여하며 제작자로 변신을 시도했다.
노래 : 알리 (ALi,본명 : 조용진)
꾸준히 언더 그라운드의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박학기가 가수에 대한 꿈을 꾼 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였다. 노래 실력이 월등했던 그는 동네에서나 학교에서 인기 있는 가수였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통기타로 고액의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된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1988년 < 우리노래 전시회 3집 >에서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로 좋은 반응을 얻은 그는 전곡을 김현철의 곡으로 도배한 데뷔 앨범에서 ‘향기로운... 꾸준히 언더 그라운드의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박학기가 가수에 대한 꿈을 꾼 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였다. 노래 실력이 월등했던 그는 동네에서나 학교에서 인기 있는 가수였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통기타로 고액의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된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1988년 < 우리노래 전시회 3집 >에서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로 좋은 반응을 얻은 그는 전곡을 김현철의 곡으로 도배한 데뷔 앨범에서 ‘향기로운 추억’을 크게 히트시키며 1989년 골든 디스크 신인상을 비롯한 많은 상을 휩쓸며 음악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고 그렇게 성공적인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이름을 아직까지도 라디오에서 호명되게 하며 꾸준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첫 앨범에는 ‘이미 그댄’, ‘아름다운 비밀’, ‘내 소중한 사람에게’ 등이 연속해서 인기를 얻었으며 가늘고 독특한 음색은 애청자들을 위로하며 앨범의 전 곡이 심야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신청을 받았다. 그는 이 인기에 힘입어 같은 소속사 식구인 푸른하늘의 4집에서 ‘우리 모두 여기에’라는 곡을 같이 부르는 한편, 기독교도로서 CCM 음악에도 활동 무대를 넓혀 복음성가집 < 우리 모두 하나되어 >에서는 ‘나의 기도’를 작곡해 직접 불러주었으며 < 빛으로 모두 함께 >라는 앨범에서는 ‘언젠가 당신 곁에서’라는 곡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김현철의 풋풋함이 살아 있는 그의 첫 앨범이 성공한 뒤로 너무 뚜렷한, 혹은 개성이 없는 그의 음악 세계는 수면 아래로 내려가고 만다. 2집에서 역시 김현철의 힘을 입은 ‘자꾸 서성이게 돼’가 인기를 얻고 어떤날의 곡을 보사노바로 리메이크한 ‘오래된 친구’가 리퀘스트를 받았지만, ‘유난히’가 수록된 3집, ‘그대 창가로 눈부신 아침이’가 수록된 4집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못했고 그는 좌절한다. 실의의 나날 속에 한동안 진로에 대한 고민과 전공이였던 미술에 대한 회귀를 생각한 그는 노래에 대한 애정을 담은 ‘나의 길’이 수록된 5집을 발표하고 조규찬과 같이 라이브 공연을 펼치며 재기의 전의를 다진다. 라이브 공연에서 보여준 팬들의 성원과 단짝 조규찬의 도움으로 계속해서 1998년 ‘자전거’와 ‘제발 나를’, 그리고 김광석의 추모곡인 ‘남겨진 너의 노래’가 수록된 6집을 발표한 그는 1999년에는 조규찬과 같이 김민기 트리뷰트 공연에서 ‘그 사이’를 불렀다. 2000년 그는 유리 상자의 노래 ‘신부에게’를 피처링 해 주기도 하고 김광석 추모 앨범을 기획하고 프로듀싱하는 저력을 보이며 김광석의 장학재단에 힘을 실어 준 그는 들국화의 트리뷰트 앨범에서 역시 조규찬과 함께 ‘매일 그대와’를 부르는 등 가장 바쁜 나날을 보냈다. 유리상자, 이수영 등에게 곡을 주는 작곡가로도 활동하며 음악학원의 강사로도 바쁜 그는 최근 그의 음악 인생을 정리하는 < Go Back >이라는 타이틀로,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Go Back과 발음이 비슷함)한다는 의미로 콘서트를 했다. 이런 그가 심기일전해서 새 앨범으로 팬들의 가슴을 다시 두드리길 기대한다.
한영애는 남성 중심적인 대중음악의 한복판에 서서 목소리로 모든 음악을 제압한 탁월한 가창력의 소유자이다. 그녀는 요동하는 모든 장르를 바다와 같은 넉넉함으로 받아들여 한영애마의 향기로 뿜어내었으며 아무리 훅이 없는 노래라도 허스키한 보컬로 들리게 만드는 주술적인 능력으로 현존하는 여가수 중 최고의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를 잘 알 수 있는 곳은 무대이다. 그것이 라이브이건 연극이건, 뮤지... 한영애는 남성 중심적인 대중음악의 한복판에 서서 목소리로 모든 음악을 제압한 탁월한 가창력의 소유자이다. 그녀는 요동하는 모든 장르를 바다와 같은 넉넉함으로 받아들여 한영애마의 향기로 뿜어내었으며 아무리 훅이 없는 노래라도 허스키한 보컬로 들리게 만드는 주술적인 능력으로 현존하는 여가수 중 최고의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를 잘 알 수 있는 곳은 무대이다. 그것이 라이브이건 연극이건, 뮤지컬이건 그녀는 모션과 음악을 잘 합치할 수 있는 이상형으로 인정받고 있다. 1977년 포크 그룹 해바라기의 멤버로 가수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이정선, 이광조, 이주호, 김영미 등과 함께 2장의 앨범을 냈다. 하지만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던 그녀는 < 덧치맨 >이란 연극에서 극중인물로 분해 서곡과 에필로그를 불렀으며 이어 < 영원한 디올라 >라는 뮤지컬에서는 주인공역 디올라를 맡아서 열연하며 노래보다는 연극 쪽에서 더 촉망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해바라기 2집을 발표한 후 극단 자유극장에 입단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배우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녀가 가수로 컴백을 한 것은 ‘여울목’, ‘완행열차’가 들어 있는 1집을 1985년에 발표하면서였다. 이정선 감독 하에 발표된 이 앨범은 기존의 여가수에 대한 이미지를 부서버린 작품이 되었다. 그녀의 걸쭉한 목소리는 모든 곡을 통제하고 있으며 블루스적인 색채가 농염하게 빛나는 ‘건널 수 없는 강’과 같은 트랙은 아련한 향수를 일으키는 ‘여울목’과 ‘완행 열차’ 등과 더불어 빠져 나올 수 없는 마력을 발산하고 있다. 1986년부터 앨범에 참여했던 이정선과 엄인호가 조직한 프로젝트팀 신촌블루스에서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그대 없는 거리’와 같은 곡으로 주목받으며 3년간 팀의 메인 보컬로 간판 스타가 된다. 그리고 ‘지금은 헤어져도’가 들어 있는 해바라기의 기념 앨범에 참여했다. 그녀는 1988년 모두가 최고 걸작 중의 하나로 꼽는 2집을 발표한다. ‘누구 없소’가 한바탕 인기 몰이를 하고 난 뒤 ‘코뿔소’, ‘루씰’ 등이 나란히 인기를 얻은 이 앨범은 베이스 주자 송홍섭이 프로듀서를 맡았으며 전인권, 김현식, 윤명운, 박주연 등의 뛰어난 보컬 주자들을 코러스로 등장시킨 앨범이었다. 개인 콘서트를 많이 가졌던 시기를 지나 2집의 연장선상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말도 안돼’, ‘조율’ 등이 수록된 3집 후에, 그녀는 다시 연극계와 음악계를 오가며 전방위 활동을 펼친다. 그녀는 후에 < 아우성 >이란 앨범으로 발표된 단독 콘서트를 63빌딩에서 갖는가 하면 서울과 파리, 독일을 오가며 셰익스피어의 < 햄릿 >에 출연한다. 그리고 ‘불어오라 바람아’가 히트한 4집을 1995년에 내놓고 이 앨범으로 한국방송 프로듀서상을 받았다. 성숙한 세계관과 음악적인 각성이 돋보이는 그녀의 4집은 그녀가 3곡을 작곡하고 거의 대부분의 곡을 작사함으로써 목소리만으로 제패했던 세계에서 한 발짝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관조적인 자기 성찰은 1997년 있었던 < 신중현 트리뷰트 콘서트 >의 연출과 함께 우리 모두를 자아의 중심에서 음악을 펼쳐보이는 새로운 거장의 품 안으로 인도 했다. 그녀는 새로운 밀레니엄에 다시 태어날 것을 꿈꾸며 세기말에 5집을 발표한다. 기존의 음악적 스타일을 좌우했던 포크와 블루스에 테크노의 결합을 시도한 이 앨범은 현 긱스의 멤버들인 한상원, 이상민, 정재일 등이 총출동 한 가운데 강호정이 프로듀서를 맡았으며 신윤철, 송홍섭, 박현준 등이 세션으로 참여했다. 특히 테크노의 리프가 인상적인 ‘난다’는 “껍질을 깨고서 우주를 안고 난다, 난다, 난다, 날아.”의 가사가 보여주듯 ’바라본다’와 함께 그녀의 넓은 시야를 음미할 수 있는 멋진 곡이다.
“오늘 내가 디딘 자국은 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리라”. 선구자적인 발상으로 조국의 독립과 자주를 위해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백범 김구 선생님의 이 말을 그대로 옮겨온다면, 오늘날 이 말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대중 음악의 마지막 투사 정태춘(1954년)일 것이다. 그는 < 실업극복국민운동 >부터 시작해 <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 북한동포 기금마련 < 한가족 열린 음악회 >, < 고 문익환 목사 ... “오늘 내가 디딘 자국은 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리라”. 선구자적인 발상으로 조국의 독립과 자주를 위해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백범 김구 선생님의 이 말을 그대로 옮겨온다면, 오늘날 이 말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대중 음악의 마지막 투사 정태춘(1954년)일 것이다. 그는 < 실업극복국민운동 >부터 시작해 <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 북한동포 기금마련 < 한가족 열린 음악회 >, < 고 문익환 목사 헌정 음반 >, 서구의 문화침탈에 대항한 <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까지 자신의 참여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사회개혁의 기치를 빼어들었다. 그는 비록 김민기와 같이 시대적 요청의 화합물이 되거나 서태지와 같은 권능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 나간 파워맨은 아니었지만, 고군분투하여 따낸 사전검열제도폐지와 끔찍한 진실의 현장을 포착한 < 아! 대한민국 >, < 92년 장마, 종로에서 > 등으로 그 동안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지 못했던 소위 운동권의 저항가요들을 뛰어넘었다. 그것은 대학이란 포장지로 감싼 운동권 가요의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는 민중의 노래였으며 오랜 시간 다져진 글래디에이터의 자신에 찬 고백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중학교에 들어서는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이 농부의 아들은, 고등학교 때는 현악반에 다니면서 음악대학에 대한 꿈을 키운다. 하지만 청년시절의 방황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지도 선생님과의 이별은 그를 어두운 사춘기적 자화상 속에서 살게 했고, 재수와 함께 시작된 여러 번의 가출은 이 우울한 시인을 젊은 날의 불안한 군상들 속으로 인도했다. 그는 마음을 잡지 못했고 결국 군대를 가야했다. 이미 학창시절에 곡을 쓸 줄 알았던 그는 이 시절에 ‘서해에서’, ‘시인의 마을’, ‘사랑하고 싶소’와 같은 곡들을 만들었으며, 차근차근 모아두었던 곡들로 제대 후 평론가 최경식의 주선에 의해 서라벌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 1978년 말에 발표한 첫 번째 음반은 엄청난 대중적인 파고를 일으키며 정태춘을 스타덤으로 인도했다. 비록 많은 가사들이 검열에 의해 수정되긴 했지만 그는 ‘시인의 마을’로 1979년 MBC 신인가수상을 수상했으며 ‘촛불로’ TBC 방송가요대상 작사부문을 받았다. 그리고 이 신인가수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1978년 만난 인생의 동반자 박은옥과 1980년 결혼식을 올린다. 불교적 색채를 드러낸 2집, 국악과 양악 편곡의 멋진 대비를 보여주는 3집의 실패로 경제적인 압박을 받은 그는 부인 박은옥과 같이 하기 시작한 1984년의 앨범에서 ‘떠나가는 배’로 또 다시 스매시 히트를 터트린다. ‘사랑하는 이에게’라는 스테디 리퀘스트곡을 남긴 이 음반은 포크적 색채를 버리고 스트링 세션 위주의 편곡으로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간 앨범이었다. 음악을 포기할 마음까지 먹었던 그는 이 음반의 성공으로 다시 활기를 되찾았으며 1985년 1월부터 시작된 < 정태춘.박은옥의 얘기 노래마당 >라는 공연을 벌였다. 자신의 음악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준 이 공연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문제들을 얘기할 수 있는 솔직한 태도가 좋았던 그는 TV를 배제한 활동을 계속했으며 ‘북한강에서’, ‘붕숭아’와 같은 곡으로 계속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다. 민주화 투쟁과 6.29 선언 등으로 변화한 국내의 분위기를 실감한 그는 검열을 의식해 발표하지 못했던 곡들을 모아 < 무진 새노래 >라는 타이틀로 내놓으며, 이 때부터 달라진 사회적인 시각과 국악에 대한 애정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엉켜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1988년부터는 <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 >라는 공연을 펼쳐 외세의 시각이 진실인 것처럼 되어 있는 현 세대를 교정하는 작업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 청계피복노조 지지공연을 시작으로 전교조 지지공연, 전노협 지지공연 등에 참석하거나 주도적으로 행사를 만들어 대중집회의 단골주자로 부상했다. 이러한 와중에서 만들어진 < 아, 대한민국 >이 1990년 발효된 새 음비법을 따른 공륜에 의해 거부당하자, 음반을 불법 복제 테이프로 만들어 발표하며 전면적인 투쟁을 선포했으며1991년 1월 29일 <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 개악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 >의 위원장을 맡아 반대 성명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사전검열제도 폐지와의 기나긴 투쟁이 시작된다. 그는 계속해서 < 92 장마, 종로에서 >를 테이프로 제작해 배포했으며 이 앨범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의 피땀 어린 노력이 배어 있는 사전 심의 조항 폐지 운동은 1995년 11월 7일 국회를 통과하며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 힘없던 시인의 승리는 이렇게 기나긴 길을 돌아서 찾아왔다. 그의 고생을 우리는 피상적으로밖에는 알 수 없지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감동과 환희의 순간이었다. 1998년 정태춘은 늘 함께 해온 부인 박은옥과 함께 20주년 기념 음반을 발표했다. 함춘호, 조동익 등의 일급 세션이 참여한 이 앨범에서는 초창기 서정미의 단아해진 멜로디들을 들을 수 있으며 한 층 더 깊이가 새겨진 선동성을 읽을 수 있다. 포크 음악인들 위주의 중견 가수들과 함께 위성방송에 음악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콘텐츠 회사 S.O.K를 설립한 그는 평생 넘어야 할 산처럼 버티고 있는 국악에 대중적인 접근을 꿈꾸며 지금도 대중 집회를 빠짐없이 순회하고 있는 이 시대 민중의 거울이다.


사회성 짙은 "한국적 포크"를 추구해온 대한민국의 가수, 시인, 싱어송라이터, 문화운동가, 사회운동가이다. 서정성과 사회성을 모두 아우르는 노랫말을 직접 쓰고 이를 국악적 특색이 녹아 있는 자연스러운 음률에 실어서 작품을 발표하기 때문에 한국의 대표적인 음유시인으로 불린다. 이번 내레이션 진행은 그의 첫 영화작업으로, ‘블랙딜’ 기획안을 보고 한번에 흔쾌히 작업에 참여하였으며, 울림있는 내레이션으로 다큐멘터리 영화에 진정성을 더했다.

Album
1978 《시인의 마을》
1980 《사랑과 人生과 永遠의 詩》
1983 《떠나가는 배(이어도)》
1985 《북한강에서》
1988 《정태춘 박은옥 무진 새노래》
1993 《92년 장마, 종로에서》
1995 《정태춘 박은옥 - 20년 골든》
2002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2012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격동의 순간이 있듯이 우리 나라에도 현대사의 발전 과정에서 독재에 항거한 열망의 시대가 있었다. 이 역사의 현장을 살아온 사람들은 이제 기성 세대가 되어 젊은이들의 음악에 하품을 보내고 있지만 이들이 견뎌 냈던 시간을 정면에서 위로해 주며 1980년대 대중 음악의 한 축을 형성했던 이들의 음악은 1990년대에 들어 신세대에게 전혀 통용되지 않는 음악이 되어 버렸다. 운동권의 노래 모임 ...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격동의 순간이 있듯이 우리 나라에도 현대사의 발전 과정에서 독재에 항거한 열망의 시대가 있었다. 이 역사의 현장을 살아온 사람들은 이제 기성 세대가 되어 젊은이들의 음악에 하품을 보내고 있지만 이들이 견뎌 냈던 시간을 정면에서 위로해 주며 1980년대 대중 음악의 한 축을 형성했던 이들의 음악은 1990년대에 들어 신세대에게 전혀 통용되지 않는 음악이 되어 버렸다. 운동권의 노래 모임 새벽에 의해 순수 노래 전문패로 시작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1984년 민중가요의 첫 번째 신호탄을 합법 공간으로 쏘아 올린다. 대중적인 인기를 위한 포석 이라기 보다는 민중가요라는 타이틀을 걸고 음반을 내는 것이 중요했던 이들의 첫 앨범에는 서울대의 메아리의 창작곡인 ‘내 눈길 닿는 곳 어디나’, ‘바람 씽씽’ 등과 ‘일요일이 다가는 소리’, 김소월의 시에 노랫말을 붙인 ‘기도’ 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후기의 앨범에서 보여주는 운동적 시각에 입각한 가사보다는 일상의 소소함을 표현한 곡들이 많았다. 팀으로서의 활동이 없었던 노찾사는 6.29선언으로 희망을 얻고 합법적인 공개공연을 위해 조직적인 팀이 짜여진다. 그리하여 투쟁가 위주의 곡들을 배제하고 대중의 인기를 얻을 만한 곡들을 선별하고 편곡하여 2번째 앨범에 실었다. 2번째 앨범은 이들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다. 수록곡으로는 후에 대중 가수로 큰 성공을 거두는 안치환이 만든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전태일의 삶을 조망한 ‘그날이 오면’, 공장의 풍경을 경쾌한 리듬에 실어 표현한 ‘사계’, 등이 인기를 얻었으며 판매고는 50만장을 넘겼고 지하에서만 부르던 음악들이 인기 차트의 순위에도 등장해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이들의 성공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모든 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멜로디, 감상적인 동시에 진보적인 노랫말에 원인이 있었다. 하지만 ’’90년대에 넘어들면서 이들의 음악은 수용자의 감성을 따라가지 못했다. 과거 여러 노래패에서 좋았던 곡들을 발췌하고 수집했던 이들은 3집에서는 ‘그리운 이름’, 이나 ‘사랑 노래’와 같은 창작곡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조금은 투쟁적인 어투의 곡 ‘선언’을 슬며시 집어넣었다. 이 앨범에서 대학가에서 인기를 끌었던 ‘님을 위한 행진곡’이 대중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이들의 음악은 점점 시대의 조류에 조금씩 밀렸다. 이 당시 급변한 정세와 문민정부의 출범 등으로 진보 진영은 혼돈을 맞았다. 이에 따라 노찾사의 네 번째 앨범은 직설적인 문제의식의 투영보다는 새롭게 대두된 ’’90년대의 고민과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를 했다. 그리고 이들뿐만 아니라 꽃다지와 노래마을 등이 합법 공간으로 투항하였다. 이들은 노래를 통한 인간 정서의 발전을 위해 활동하고자 하는 모색을 새롭게 하며 점점 달라지는 문화현상에 대한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빨리 대처할 수도 없었고 성공적이지도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4집은 기존의 민중가요의 성격을 지닌 노래들 외에도 록과 아카펠라 등의 형식적인 실험을 더했다. 하지만 댄스씬으로 몰린 세대들에게 외면당했고 내부적으로는 음악성에 대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 현재 노찾사는 활동 중단 상태에 놓여 있다. 1992년의 와 같은 끊임없는 성원으로 뒤덮었던 열화와 같은 팬들의 호응은 사라진지 오래가 되었다. 대학생들 중에는 노찾사에 들어오려는 학생이 없고 거기에 따른 재생산의 토대, 음악생활, 연습생활을 보장해 줄 수도 없는 처지가 됐다. 합창, 중창의 시대가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고 그룹 중심의 춤이 한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는 과거 엘리트주의에 의해 멸시받던 힙합이 담지하게 되었다. 아마도 매니지먼트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노찾사에게는 지금 시대에 부응하는 것은 무리이리라. 어느 순간부터 자본주의 논리는 진보진영의 해체와 약화를 속도감 있게 진행시켰다. 노찾사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 급격히 식어 갔으며 신세대에 대한 사회학적 담론이 유행하였다. 그리고 가볍고 감각적인 문화 상품은 현실의 진중하고 어두운 모습들을 모두 감추어 버렸다. 정작 노찾사의 시대에 싸워왔던 문제들은 여전히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는데 우리 모두는 과거를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제의 악인은 살아남아 떵떵거리고 의인은 여전히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지상의 고난을 묻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펼쳐나가는 싱어송라이터이자 깊은 울림의 보컬리스트 권진원, 그녀가 노래로 세상에 등장한 것은 1985년 여름 제6회 MBC 강변가요제를 통해서였다. 당시 한국외국어대학교 네덜란드어학과에 재학 중이던 권진원은 자작곡 <지난 여름밤의 이야기>로 은상을 수상했다. 강변가요제가 권진원 음악 인생의 의미 있는 출발점이라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은 권진원의 음악에 ...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펼쳐나가는 싱어송라이터이자 깊은 울림의 보컬리스트 권진원, 그녀가 노래로 세상에 등장한 것은 1985년 여름 제6회 MBC 강변가요제를 통해서였다. 당시 한국외국어대학교 네덜란드어학과에 재학 중이던 권진원은 자작곡 <지난 여름밤의 이야기>로 은상을 수상했다.
강변가요제가 권진원 음악 인생의 의미 있는 출발점이라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은 권진원의 음악에 가치와 아름다움을 더하는 깊이 있는 여울목이었다. 1987년 어느 날 권진원은 우연히 서울 대학로 연우무대에서 열린 노찾사 공연을 보러 갔다. 그날, 권진원은 홀로 부르는 노래, 홀로 즐기는 노래가 아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노래, 세상을 관통하는 노래와 조우했다. 노찾사는 권진원의 음악 인생을 운명처럼 바꿔놓았다. 권진원은 오디션을 거쳐 노찾사의 일원이 되었고, 이후 수많은 공연에 참여하며 노찾사 2집의 <저 평등의 땅에>와 3집의 <사랑 노래>를 불렀다. 요컨대 권진원은 자유와 평등을 향한 열정을 자신의 독창적인 목소리로 꽃피워 올림으로써 이상과 진실을 갈구하던 시대의 영혼이 모두의 노래로 만개할 수 있게 했다.
1992년 권진원은 솔로로 독립하여 첫 음반 <북녘 파랑새>를 발표했고, 이때부터 싱어송라이터로서 길고도 치열한 새로운 음악 인생을 영위했다. 2집 <살다보면>, 3집 <집으로 가는 길>, 4집 <해피버스데이투유>, 5집 <노란 풍선>이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고유한 음악적 결을 지키려는 권진원의 투명하고 정직한 열정 때문일 것이다. 음악가는 오로지 음악으로 말하고,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소리와 메시지에 이르기 위해 감내해야 할 고통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권진원은 6집 음반에서 <나무> <푸른 강물 위의 지하철> 등 더욱더 사색적인 노래들로 깊은 울림을 전했고, 이어 7집 <멜로디와 수채화>를 발표했다.
예술에 있어 새로움과 도전이 하나의 본질이라면, 전통과 핵심에 대한 천착 역시 또 하나의 본질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세상 현실을 핑계로 도전도 천착도 하지 않은 채 옛 명성에 기대려 할 때, 권진원은 계속 자신이 가고자 하는 소리의 길을 향해 나아갔다. 때로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옛 노래를 불러 세대 간의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한국적 전통과 정신을 복원하는 음악으로 우리 문화의 가치와 품격을 보여주기도 했다. 권진원의 음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그것은 사람의 음악이다. 노래가 사람의 곁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기꺼이 다하려는 마음으로 <그대와 꽃피운다>, <사월, 꽃은 피는데>를 발표했다. 그 사이 그녀만의 길이 그녀의 뒤에 깊고 길게 그려졌고, 30여년의 시간을 통해 한 음악가의 올곧음과 고귀함이, 누군가가 끝내 닮고 싶어질 하나의 음악 세계가 이렇게 완성되어 가고 있다.
황정민은 서울예전 연극과를 졸업하였다. "도전2000-사상 최대의 오디션"을 통해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캐스팅되었다. 이 영화에서 우직하고 단순한 성격의 드러머 강수 역으로 분해 충무로에서 주목받았다. 또한 < YMCA 야구단 >에서는 송강호와 단짝 친구로서 콤비 플레이를 펼치며 유머러스하면서도 따뜻한 코믹 연기를 선보이고, <로드무비>에서는 사랑은 상처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또다시 남자와 사랑에 ... 황정민은 서울예전 연극과를 졸업하였다. "도전2000-사상 최대의 오디션"을 통해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캐스팅되었다. 이 영화에서 우직하고 단순한 성격의 드러머 강수 역으로 분해 충무로에서 주목받았다. 또한 < YMCA 야구단 >에서는 송강호와 단짝 친구로서 콤비 플레이를 펼치며 유머러스하면서도 따뜻한 코믹 연기를 선보이고, <로드무비>에서는 사랑은 상처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또다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동성애자 대식 역으로 나온다.

이처럼 황정민은 어리숙한 시골청년에서, 상처 많은 동성애자, 또 조금은 뺀질거리는 비열한 변호사까지 그 다양한 캐릭터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특한 필모그래피를 쌓아나가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 번도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사실. 어느새 황정민도 그 이름만으로 신뢰를 주는 배우로 성장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필모그래피]

YMCA야구단(2002)|류광태
로드무비(2002)|주연배우
바람난 가족(2003)|주영작
마지막 늑대(2004)|고정식
여자
정혜(2004)|작가 지망생
달콤한 인생(2005)|백사장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나형사
천군(2005)|남한장교 박정우
너는 내 운명(2005)|석중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10분단편(2005)|주연배우
CJ인디컬렉션-여자
정혜(2005)|주연배우
가을날의 동화-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주연배우
너는 내 운명+10분단편(2005)|주연배우
행복(2006)|영수
사생결단(2006)|주연배우
헷지(우리말녹음)(2006)|알제이
검은집(2007)|전준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2007)|슈퍼맨
그림자살인(2008)|홍진호
오감도(2009)|주연배우
멤버 : 김인수, 한경록, 박윤식, 이상면, 이상혁 한국 인디음악의 독보적인 존재이자 한국 펑크록을 대표하는 밴드. 이들의 역사는 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부이촌동에서 고등학교까지 동고동락하던 친구들로 대학교 입학 후 우여곡절 끝에 클럽 드럭의 오디션을 통과, 드럭밴드로 발을 내디뎠다. 쌍둥이 형제지간인 이상면(기타)과 상혁(드럼), 박윤식(보컬, 기타), 한경록(베이스) 네 명과 뒤에 합류한 ... 멤버 : 김인수, 한경록, 박윤식, 이상면, 이상혁

한국 인디음악의 독보적인 존재이자 한국 펑크록을 대표하는 밴드. 이들의 역사는 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부이촌동에서 고등학교까지 동고동락하던 친구들로 대학교 입학 후 우여곡절 끝에 클럽 드럭의 오디션을 통과, 드럭밴드로 발을 내디뎠다. 쌍둥이 형제지간인 이상면(기타)과 상혁(드럼), 박윤식(보컬, 기타), 한경록(베이스) 네 명과 뒤에 합류한 김인수(아코디언, 키보드)로 구성된 크라잉넛은 '말 달리자'라는 곡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IMF 한파로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때 터져 나온 '말 달리자'는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라고 부르짖는 후렴구로 당시 20대들을 하나로 만든 청춘의 송가였다. 그리고 이들의 1집은 인디밴드로는 최초로 10만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리며 전설이 됐다.

1970년대 후반 영국을 강타했던 펑크를 부활시켜 '조선 펑크'라는 이름으로 군림한 크라잉넛. 2010년 6집 앨범을 내며 15년 세월을 단 한 번의 멤버 교체 없이 함께해온 이들은 '환갑 현역 로커'를 꿈꾸며 지금도 달리고 있다.
2005년 동반제대 후 전용 녹음 스튜디오까지 마련해 명실공히 '자주독립 음악인'이 된 크라잉넛은 여전히 술 마셨다 하면 새벽을 보는 체력으로 공연 뒷풀이를 주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서커스 유랑단' '룩셈부르크' '밤이 깊었네' '좋지 아니한가' 등 다수의 히트곡이 있다.

‘음악 놀이터’ 의 조그만 창고에서 태어난 크라잉넛은 거침없이 질주하는 ‘말달리자’로 1990년대 후반 국내에도 인디라는 이름의 주류 음악에 대한 대항마가 엄존하고있음을 증명한 밴드이다.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들어’라는 후렴구를 뿌려대며 다섯 악동들은 신촌일대를 휩쓸고 다녔고, 이는 클럽문화의 세(勢)확산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홍대 신촌의 언더그라운드로 운집했고, 그들을 수용할 라이브 클럽들이 속속 생겨났다. 메인스트림에서도 지하세계의 조직적인 움직임에 관심을 집중했고, 자의반 타의반 인디의 존재와 가능성을 인정했다. TV 가요 프로와 고비용의 뮤직 비디오가 아닐지라도 음악이 생동감 있게 스피커에서 터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크라잉넛은 그러면서 우리 음악계에 펑크라는 ‘뉴 록’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는 의미 있는 발자취를 새겼다.

그들은 1970년대 후반 영국을 평정했던 섹스 피스톨스와 클래시를 부활시키며 우리에게 없었던 펑크 록의 에너지와 파괴력을 전달했다. 그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야성미와 고무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성 발랄은 펑크의 본질, 바로 그것이었다. IMF 한파로 인해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시점에 등장한 것도 영국 펑크의 태동 배경과 맞아 들어갔다. 하지만 크라잉너트는 단순히 이 땅에 외제 펑크를 수용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펑크에서 음악적 ‘자유’를 보았다. 펑크의 약속이라 할 3코드와 미니멀리즘에 집착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레게와 스카뿐 아니라 폴카와 보사노바도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재즈나 헤비메탈을 못할 게 없었다. 그들은 이런 짬뽕 사운드를 ‘조선 펑크’라 명명했다. 펑크의 개량화 또한 국산화였다.

그러한 지향은 한국 젊은이들의 송가가 된 ‘말달리자’로 인해 인디 밴드로는 최초로 5만장이라는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1998년 데뷔작, 그리고 주류와 인디을 수시로 넘나드는 유랑(?) 생활을 선언한 이듬해의 2집 에 계속되었다. 이번에 내놓은 3집 에서도 크라잉너트의 조선 펑크는 건재하다. 그동안 후지 록페스티벌 참가, 들국화 헌정 앨범 참여, CF 출연 그리고 곧 디지털 영화 의 주연 등의 활동으로 인해 혹시 펑크 오리지널리티의 소멸을 가져온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그건 잠시의 기우에 불과했다. 멤버들은 오히려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음악을 볼 수 있는 폭 넓은 시야를 확보했다”며 엔터테이너로서의 행보를 즐거워했다. 하기야 인디 밴드가 언더에 숨기만 하라는 법은 없지 않는가. 앨범은 전작 보다 더 진일보했음이 나타난다. 타성에 젖는다는 것은 이들에게는 남의 일처럼 보인다.

영화의 메인 테마로 삽입된 동명의 곡은 극적인 곡의 전개가 긴장감을 더하는 스카펑크 트랙이며 김혜수, 이성재, 차승원이 주인공을 맡아 곧 개봉 예정인 영화 에서 흘러나오게 될 ‘지독한 노래’는 빠른 보컬과 격렬한 리듬 전개가 인상적이다. 몸파는 여성에 대한 노래 ‘붉은 방’은 슬픔을 머금은 아코디언 음색이 주도하는 비가(悲歌)이며,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Honey’’는 박윤식이 3인조 여성 록밴드 파스텔의 베이시스트 김선희와 듀엣으로 아주 부드럽게 처리했다. 컨트리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 사물놀이 한판 ‘금환식’ 등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곡들이다. 전체적으로는 요즘 분위기를 의식한 듯 복고성향이 두드러진다. 지금까지는 말달리며 ‘앞으로’ 나갔지만 이제는 이소룡 양귀비 금환식 불놀이와 같은 저 옛날로, ‘뒤로’ 돌아가 거기서 재미와 충격을 채집하고있는 셈이다. 자칫 잘못하면 퇴행이 될지도 모르는 것을 그들 특유의 스타일로 온고지신을 꾸려냈다. 특히 타이틀곡으로 낙점 된 ‘밤이 깊었네’는 음반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곡이다. 부드러운 소프트 록 사운드는 이제까지의 크라잉넛 음악 가운데 가장 쇼킹한 주류로의 전향이다. 이러한 밴드의 태도는 그러나 기회주의나 억지가 아니라 6년 간의 음악 관록이 빚어내는 자연스런 연착륙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언더와 펑크에의 수절을 강제하기보다는 도리어 갈채로 화답할 때가 아닐까. 박윤식 이상면 한경록 이상혁 김인수가 일궈내는 편안한 연주 화합은 친구들이기에 가능했고, 비치 보이스 정도는 아닐지라도 뛰어난 보컬 하모니를 자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그들은 치고 달리기만 하던 펑크 키드에서 생각하고 노력하는 아티스트로의 점진적인 이동을 수행한다. ‘말달리자’로 인디의 개막을 고하며 스타트를 끊었지만, 다양성과 자유가 담긴 조선 펑크를 앞세워 인디 속에 함몰되지 않고 수면위로 부상, 비상하고있다. 이것은 국내에서 인디 밴드가 뻗어나가기 위해 취해야할 적극적인 생존방식이다. 언제까지 우물안 개구리로 살수는 없다.
Vocal | 권송희 Kwon Song Hee Vocal | 신유진 Shin Yu Jin Vocal | 안이호 Ahn Yi Ho Vocal | 이나래 Lee Na Rae Bass, Keyboards | 장영규 Jang Young Gyu Bass, Keyboards | 정중엽 Jeong Jung Yeop Drums | 이철희 Lee Chul Hee Vocal | 권송희 Kwon Song Hee
Vocal | 신유진 Shin Yu Jin
Vocal | 안이호 Ahn Yi Ho
Vocal | 이나래 Lee Na Rae
Bass, Keyboards | 장영규 Jang Young Gyu
Bass, Keyboards | 정중엽 Jeong Jung Yeop
Drums | 이철희 Lee Chul Hee

회원리뷰 (1건)

매주 10건의 우수리뷰를 선정하여 YES포인트 3만원을 드립니다.
3,000원 이상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일반회원 300원, 마니아회원 6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리뷰/한줄평 정책 자세히 보기
리뷰쓰기

1명의 YES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리뷰 총점10.0/ 10.0
음악 음악 점수 디자인/구성 디자인/구성 점수 정보 더 보기/감추기 음악
100% (1건)
5점
0% (0건)
4점
0% (0건)
3점
0% (0건)
2점
0% (0건)
1점
디자인/구성
100% (1건)
5점
0% (0건)
4점
0% (0건)
3점
0% (0건)
2점
0% (0건)
1점

한줄평 (2건)

1,000원 이상 구매 후 한줄평 작성 시 일반회원 50원, 마니아회원 1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리뷰/한줄평 정책 자세히 보기
0/50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배송 안내
배송 구분 YES24 배송
  •  택배사 : YES24 (상황에 따라 배송 업체는 변경 될 수 있습니다.)
  •  배송비 : 2,000원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포스터 안내
  •  구매하신 상품에 포스터 사은품이 있는 경우, 포스터는 상품 수량과 동일한 수량이 제공됩니다.
  •  포스터는 기본적으로 지관통에 포장되며, 2장 이상의 포스터도 1개의 지관통에 담겨 발송됩니다.
  •  포스터 수량이 많은 경우, 상황에 따라 지관통 추가 및 별도 박스에 포장되어 발송될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반품/교환 방법
  •  마이페이지 > 반품/교환 신청 및 조회, 1:1 문의,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맨위로
예스이십사(주)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11, 5층~6층(여의도동,일신빌딩) 대표 : 김석환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권민석 yes24help@yes24.com 사업자등록번호 : 229-81-37000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5-02682호 사업자 정보확인 호스팅 서비스사업자 : 예스이십사(주)
고객만족센터 T.1544-3800
상담 전화번호
  • 중고샵 문의 1566-4295
  • 영화예매 문의 1:1 문의
  • 공연예매 문의 1544-6399
1:1 문의하기 자주 묻는 질문 상담시간 안내
YES24 수상내역 정보보호 관리체계 ISMS인증획득 개인정보보호 우수사이트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서울보증보험
고객님은 안전거래를 위해 현금 등으로 결제 시 저희 쇼핑몰에서 가입한 구매안전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비스가입사실 확인
EQUUS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