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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3년 06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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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8쪽 | 448g | 210*305*15mm |
ISBN13 | 9788943305093 |
ISBN10 | 89433050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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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한번 씩 내가 어릴 적 난 어떻게 살았는지가 궁금하다.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어느날, 나는 ‘나의 사직동’이라는 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나의 사직동’은 어릴 적 주인공이 살던 골목마을이 아파트로 재개발되는 이야기이다. 언뜻 들으면 ‘재개발’은 우리 사회를 발전시킬 좋은 것 같지만 이 책은 재개발이 싫은 11살 아이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주인공이 나와 많이 비슷하다 생각하며 시를 지어보았다.
사직동
신민준
오늘, 난 아파트 앞에 멈추어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팽이를 돌리던 아이들,
인형 놀이 하던 아이들.
이제는 추억 속에 있을 뿐입니다.
광화문 옆 작은 골목길 마을, 사직동.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웃고 수다를 떨던 사직동.
오늘, 난 아파트 앞에 멈추어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포크레인과 트럭들이 바꾼 사직동을.
높은 아파트가 대신한 나의 사직동을.
내 마음 속, 허무함만 남긴 사직동을.
푸른 하늘을 바라봅니다.
높은 아파트를 바라봅니다.
오늘, 난 아파트 앞에 멈추어
추억뿐인 나의 사직동을 떠올려봅니다.
「나의 사직동」을 읽고...사라진 추억의 고향을 찾아서
김해 봉명 초등학교 5학년 3반 강연후
계영이가 사는 곳은 사직동129번지. 아주 오래되어 낡은 한옥 집에 살지만 아흔이 넘도록 옛일을 다 기억하시는 정미네 할머니와 채소 말리는 게 취미인 나물할머니, 공짜로 머리를 해주시던 파마 아줌마와 골목길 청소 스마일 아저씨, 삼십년 동안 애들 먹여 살린 해장국 집 아줌마 등과 정답게 살고 있습니다. 곧 이 동네를 떠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어느 날 사직동에 ‘아파트를 세운다.’는 낯선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계영이는 ‘혹시 우리도 이제 아파트에 살게 되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아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부터 사직동엔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엄마, 아빠는 자주 ‘회의’라는 것을 하러 가시고, 늘 웃으시던 슈퍼아저씨와 말이 없으시던 재활용 아저씨가 소리 높혀 싸움을 벌였습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싸우기도 했습니다. 어른들이 싸우는 동안 아이들만이 여기 저기 골목에서 함께 놀고 놀다 지치면 언제나 그랬듯이 이 나무 저 나무의 그늘 밑에서 까르르 웃고 얘기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동네는 천천히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사 갈 곳은 새로 생긴 아파트가 아닙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살아온 정든 이곳을 떠나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야만 했습니다. 이제 새로 생긴 사직동 아파트에는 계영이네도, 정다운 이웃들도 없습니다. 진돌이 소리 대신 자동차 소리와 공사현장 소리만 들립니다. 뛰어놀던 골목길도, 쉴 수 있는 감나무도 없어졌습니다. 철근과 크레인, 굴착기가 여기 저기 보입니다. 홍파동으로 이사 갔던 계영이는 자꾸 이곳 사직동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지만 어린 시절 정겨웠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반장 할아버지 생일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했던 말처럼 동네사람들은 다시는 같이 모일 날이 없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계영이는 사직동으로 다시 돌아오지만 사직동 129번지가 아닌 모닝펠리스 103동 801호입니다. 노는 아이도 없고, 진돌이가 짖는 소리도 없는 사직동은 예전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사직동이 더 이상 아닙니다. 언덕엔 멋진 아파트가 덩그러니 들어서 있지만 사람들은 개발되기 전 사직동의 옛 모습을 마음속에 담아두어 언제나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부산 화명동에도 지하철이 생기고 극장도 생기고 건물들이 많아져서 엄마와 동생이랑 가던 약수터도, 야채밭도 없어졌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놀았던 그 동네 약수터와 산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데 계영이는 나보다 더 오래 살았던 동네에서 쫓겨나듯이 떠났으니 더 그립고 마음이 아플 것입니다. 서울 이모댁에 갔을 때 경복궁, 광화문을 구경하며 사직동에 가봤지만 책속에 있던 계영이 동네 모습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래된 집보다 새로 지은 아파트가 더 멋져 보이고, 새로 생긴 도로며 건물들 때문에 주민들이 더 편리한 생활을 할 수는 있겠지만 살고 있던 사람들이 쫓겨나야만 하는 개발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깨끗하고 아늑한 집을 주는 대신 정든 곳에서 떠나게 하는 것은 더불어 잘 사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개발 때문에 아이들이 뛰어놀던 장소들이 망가져가고, 나무며 숲들이 사라져 간다면 그것은 아이들의 추억거리들도 모두 다 사라져 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10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누구에게나 소중히 여기는 추억의 장소가 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거나 저도 모르게 아련해지는 곳 말이다. 내겐 광화문이 그렇다. 아버지의 사무실이 있었던 광화문을 지금도 나는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나조차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긴 세월이 흘렀건만, 사무실이 있던 건물을 올려다 볼 때면 여전히 가슴이 뭉클해진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건물이지만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은 젊은 아버지와 어린 내가 있던 그 시절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 아버지 사무실을 간간이 놀러가곤 했다. 왜 놀러갔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어른들의 환대와 맛있는 음식, 그리고 광화문의 볼거리들이 내 흥미를 끌었던 것 같다. 사무실에서의 재미가 시들해진다 싶으면 나는 밖으로 나와 한바퀴를 돌곤 했다. 사무실이 있던 건물에서 조금 위로 올라가면 새문안 교회가 있었다. 한번도 들어가 본 적 없지만, 이웃집 같은 느낌의 작은 교회가 도심에 있다는 게 어린 마음에도 희한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때 내가 광화문에서 걸었던 거리는 불과 백 미터도 되지 않았다. 또 오랜 시간을 머물렀던 것도 아니다. 잠깐씩 놀러가 구경했을 뿐인데 그 때의 기억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한성옥이 그리고 김서정이 쓴 '나의 사직동'은 서울 사직동의 지난 시간을 살갑게 전하는 책이다. 사직동 129번지에서 나고 자란 한성옥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이 책은, 어린 소녀의 입을 통해 그 시절 그 장소로 우리를 이끈다. 소녀가 제일 먼저 안내하는 곳은 일제 시대 때 지어져 칠십 년 넘게 동네 한 복판을 지켰다는 그녀의 집이다. 친정 엄마가 어릴 적에 이사와 그녀가 열한 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는 그 집은, 봄이면 라일락이 피고 가을이면 황금빛 은행나무를 볼 수 있는 담쟁이로 무성한 집이었다. 그 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유년을 찬란하게 보낼 수 있었다.
사직동은 참으로 정겨운 동네였다. 아흔이 넘은 정미네 할머니와 나물 말리는 게 취미인 나물 할머니가 계셨고, 파마 약만 사가면 공짜로 머리를 해주던 파마 아줌마와 날마다 골목길을 쓸던 스마일 아저씨가 계셨던 곳이었다. 해장국으로 자식들 먹여 살리고 가르쳤다며 해장국이 자신에게는 서방이라던 해장국 집 아줌마와 가끔씩 사탕을 쥐어주던 슈퍼 아저씨가 계셨고, 하나뿐인 팔로 온갖 일을 했던 재활용 아저씨와 아줌마가 계셨던 곳이었다. 소박한 행복이 넘실대던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네에 '도심재개발 사업시행인가득'이라는 낯선 현수막이 걸리면서 사직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는 회의 간다며 자주 집을 비우기 시작했고, 늘 웃던 슈퍼 아저씨와 말 없던 재활용 아저씨가 소리 높여 말다툼 하는 곳으로 변해갔다. 아이들은 전처럼 놀았지만 동네는 예전같지 않았다. 떡볶이를 팔던 문구점이 문을 닫자 금새 다른 간판이 걸렸고, 꽃집과 치킨 집은 부동산 사무실로 업종이 바뀌었다. 반장 할아버지 생일이 온 동네 사람이 함께 하는 마지막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사가 시작되고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곤 몇 년이 지나 다시 모이는 날이 되었다. 어린 소녀는 청소년이 되었고, 사직동 129번지는 모닝팰리스 103동 801호가 되었다. 한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눈에 띄지 않았고, 옛날 동네 사람들은 찾을 수 없었다. "노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 개 짓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 여기는 사직동이지만, 나의 사직동은 아닙니다. 나의 사직동은 이제는 없습니다."
전 같을 수 없는 사직동에 소녀는 절망하고 말았다. 작은 일에도 함께 기뻐하고,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눴던 시절은 이제 어디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지난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그 흔적마저 사라진 곳에서 소녀가 발견한 것은 허탈감 뿐이었다. 좋은 시설이 좋은 환경을 만들거란 어른들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사직동은 그 시절 그 사람들이 없으므로 이미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마음 한 구석이 시린다. 추억의 흔적이 사라진 곳이 결코 전 같을 순 없을테니 말이다.
아버지의 사무실이 있었던 작은 건물을 볼 때마다, 회상할 수 있는 장소가 남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느낀다. 시간을 담아내고 세월을 견뎌낸 것은 외형이 어떻던 간에 그 자체만으로도 작은 역사가 되니 말이다. 만일 사직동에 예전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한군데라도 남아 있었다면 소녀가 느꼈던 상실감이 그토록 크진 않았을 테다.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했던 음식점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내게 큰 선물이 된다. 우리는 추억을 먹고 사는 존재고, 더듬을 추억이 많을수록 우리의 삶은 더 풍성해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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