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가 서서히 길어지는 시간
당신은 오후 세 시 앞에 서 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채움에 앞서는 여백으로, 소란과 수다보다는 침묵으로
잠깐 멈추고 바라보고 말하라 한다, “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화려하고 현란한 비주얼이 넘쳐나는 세상, 눈길을 잡아끄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여백이 많아 짐짓 심심해보일 수 있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내 안의 이야기가 차오르고, 사진을 찍은 이에게 말을 건네고 싶은 사진. 누군가 사진의 하늘에 칠을 했다면 오랜 생각 끝에 꼭 필요한 부분만 칠한 것 같다. 절제된 잿빛 하늘이다. 흑백 사진임에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진을 찍은 시간대까지 짐작할 수 있는, 그런 깊이가 느껴지는 사진. 사진에는 동상 하나가 있다. 하늘에 날개를 쉬이 펴지 못하는 중년 천사가 오도카니 자신의 앞을 응시하고 있다. 글 작가의 말처럼 ‘우선멈춤’하게 하고 여러 질문을 이끌어 내는 사진이다. 가령 ‘나의 생, 이다음은 어떻게 하지?” “앞으로 무엇을 또 할 수 있을까?” 아님, “난 어디로 가는 거지?” 같은 질문들. ‘나’라는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사진, 그리고 글.
소설가와 사진작가 남매가 펴낸 포토에세이, 『오후 세 시의 사람』의 사진 작품들 모두 표지 사진처럼 하나하나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특별함이 있다. 소란스러운 수다, 왁자지껄한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잠깐 멈출 것을 권하는 에세이. 말을 잠시 멈추고 손은 가만히 내려놓고 저기 멀리 바라보라고 말하는 사진, 그리고 글. 『오후 세 시의 사람』은 한꺼번에 많은 것 하지 말고 하나만 생각하고, 한 군데만 응시하라고 조용히 말을 건넨다.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쥐고 흔들어 왔다고… 그러다 여기 ‘오후 세 시’ 같은 중년의 시간에 도착했다고….
주변에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많다. 아니 거의 모든 사람이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사진 스스로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도록 하는 사진은 많지 않다. 밖의 말이 아닌 내면의 말, 이 책의 사진작가 최영진의 작품은 사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여백을 통해 침묵의 말을 들을 것을 권한다. 주로 바다를 찍으면서 절제된 풍경과 미니멀한 사물 사진으로 선(禪)적인 느낌을 전하는 사진이다. 저절로 눈이 머물게 되는 사진을 통해 독자는 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듣는다.
사진 한 장에 글이 한 편씩 붙어 있다. 친절하게 ‘포토에세이’로 분류되지만 짧은 글이 대부분이다. 작가 최옥정은 “사진처럼 글에도 여백을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사진 속 풍경을,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쓴 글들이다. 유장하게 적은 긴 분량의 글도 있고 스토리가 담겨 있는 이야기 형식의 글도 있어서 글만 보아도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책의 어디를 펴든 편안히 읽을 수 있다. 책의 중반을 넘어서면 작가의 글은 좀 더 내밀하게 일상을 파고든다. 중년을 넘어선 사람, 좌절을 경험하고 인생의 쓴맛을 본 사람의 내면 풍경을 따라가면서 일상을 그려 준다. ‘오후 세 시’ 같은 나이, 4~50대의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변화는 과연 옳은가? 함께 생각해 보기 위한 글이다. 그렇다고 무겁지는 않다. 살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하지만 무심코 지나치는 주제이니까…. 한편으론 그보다 더 젊거나 더 나이 든 사람에게도 자신이 발을 디딘 ‘지금 여기’의 삶을 문득 돌아보게 하는 에세이이다. 삶은 언제나 앞을 향해 바삐 나아가고 사람들은 그것을 애써 따라간다. 그러다 문득 뒤돌아보면 후회와 반성할 것이 눈 온 뒤의 발자국마냥 쌓여있다. 멈춤의 상태. 사진작가 최영진과 글작가 최옥정은 한번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시간을 갖자고 독자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가장 큰 위로는 ‘공감’, 느린 독서, 여운 있는 독서의 이유
인생을 돌아볼 나이에 다다른 사람이 읽기 좋은 책
“그들은 바빴다. 세상에 안 바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안 바쁜 사람은 그녀뿐인 것 같았다.”(오후 세 시의 사람?2, p.228:5~7) 작가의 글처럼 모든 사람이 바쁘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피곤하다. 그러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조차 읽고 싶은 책이 있다. 책의 절반이 사진인 데다가 글이 한 편씩 따로 떨어져 있어서 자투리 시간에 한두 편이라도 읽을 수 있다면 아무리 바빠도 독서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루 종일 활자에 시달린 사람조차도 책을 펼칠 수 있게 저음의 목소리로 조용히 말을 거는 책이 있다면?
여기 그런 책이 있다. 『오후 세 시의 사람』은 아무 때나 펼쳐서 읽고 싶은 부분을 읽어도 된다. 시처럼, 수필처럼, 짧은 소설처럼 읽어도 좋다. 쉼표가 많은 책, 정보를 입력하라고 다그치지 않는 책은 그 자체로 위안이 된다.
작정하고 쓴 소위 ‘힐링’ 에세이는 아니다. 하지만 가장 큰 위로는 ‘공감’이 아닐까? 내가 처한 상황과 심정을 이해하는 글을 만났을 때 우리는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오후 세 시’ 같은 인생의 후반기에 도달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생활을 들여다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느낄 시간을 갖는다. 때로는 앞을 향해 달리는 것을 잠시 멈추는 것만으로도, 또 잠시 내 발밑을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치유와 성찰이 되기도 한다. 느린 독서, 여운이 있는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인생을 돌아볼 나이에 다다른 사람이 읽기 좋은 책이다. 그렇다면 누가 인생을 돌아보는가? 생각해 보면 누구든지 때때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때로는 실수 때문에, 때로는 기쁨 때문에, 때로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점검한다. 30대에서부터 5~60대까지 모두 읽어도 좋겠다. ‘오후 세 시’에 해당하는 자기 삶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현재의 인생에서 한번쯤 ‘우선멈춤’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사람, 내가 지금 살아가는 모습이 제대로인지 고민하는 사람, 누군가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며 위로받고 싶은 사람, 사진에 관심과 애정이 있어 틈틈이 사진을 감상하고 싶은 사람, 긴 글보다 짧은 글을 음미하면서 읽고 싶은 사람. 낮고 잔잔한, 그러나 따뜻하고 웅숭깊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사람이 읽으면 더 좋을 책이다.
작가의 말
유년 시절의 나에게 바다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무엇에 영향을 받았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유년에 꿈꾸었던 바다는 어떤 바다였을까
지금 내 안의 바다는 그때와 같은 바다일까
나에게 사진은 섬이다
나무, 돌, 풀 한 포기도 모두
내 안의 바다에서 떠도는 섬
바다는 오늘도 나에게 안부를 묻고
나는 떠돌이 섬에게 안부를 묻는다
- 최영진
작품 하나는 작가 정신의 세포. DNA다. 어떤 수식과 연출로도 흉내 낼 수 없고, 탐색과 노력만으로 이를 수 없을 만큼 지엄하다. 모든 것을 포함하고 모든 것을 떠나 있는 세계이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더 지어 나갈지 오래도록 지켜보고 싶다.
사진보다 앞서가지 않으려고 사진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오래 들여다보았다. 아마도 작가는 그 한 장을 찍기 위해 나보다 더 오래 피사체를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둘 사이의 오랜 대면을 느낄 수 있었다. 침묵의 대화를 조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말은 대화의 아주 작은 부분이다. 형상이 사진의 일부분에 불과하듯이… 사진 너머의 지점까지 읽어 내는 밝은 눈이 많기를 바란다.
- 최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