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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 10/20   10월 9일 목표 금액을 달성하여 11월 8일 출간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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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세계사 교과서가 놓친 더 넓은 세계의 역사

2007년 출간되어 역사 교사들과 독자의 큰 호응을 받았던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한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의 필진이 다시 뭉쳤다. 기존 교과서의 오류와 편견을 극복하는 데 길잡이로 삼을 만한 책을 만들어달라는 역사 교사들의 요청에 대한 17년 만의 응답이다. 지구상에서 인류가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범위를 ‘세계’라 할 때, 대략 세계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지역이 이른바 ‘세계사’에서 소외되어 있다. 소외되었던 3분의 2의 세계사를 옹골지게 정리한 필진은 ‘가진 자, 지배자, 식민 강국’의 시선에서 벗어나 세계 곳곳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절절히 만들어갔던 주체자들의 자리에서 더 넓은 시야를 열어보고자 한다. 기존 자료를 취합해 새로 그린 역사지도 56장과 다채로운 도판 235장을 컬러로 실어 ‘보는 재미’를 더했다.

목차

머리말 _ 이희수

1장 가장 오래고 가장 젊은 대륙, 아프리카 _ 이희수

1. 인류의 기원과 문명의 발생
아프리카 동·남부에서 찾은 인류의 시원
■역사의 기억 고인류학자 리키 가족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농경-신석기시대 삶의 흔적
찬란한 역사시대-나일강의 이집트 문명
■역사의 기억 미라 만드는 방법│피라미드 쌓는 방법│파피루스 만드는 방법│저승 세계의 신 오시리스
2. 고대 사하라 이남의 왕국사
쿠시왕국의 이집트 제25왕조 시대 서기전 950~656
메로에 시대 쿠시왕국 서기전 300~서기 4세기
악숨왕국 서기전 80~서기 960
3. 아프리카 전통문화의 특징
아프리카 종교
자연관과 시간관
4. 아프리카 지역의 이슬람화
사하라 남쪽까지 이슬람이 전파된 과정
아랍과 아프리카 문화의 융합, 스와힐리 문화
5. 중세 이후 사하라 이남의 왕국들
가나왕국 서기 700년대~1240
말리왕국 1235~1670
송가이왕국 1000~1591
짐바브웨왕국 11세기~1450
무타파왕국 1430~1760
■역사의 기억 쇼나 석각 예술
에티오피아제국 1270~1974
베닌왕국 1180~1897
콩고왕국 1390~1914
6. 노예무역
7. 강대국들의 아프리카 분할과 착취
아프리카 대륙을 공식 분할한 베를린 콩고 회의 1884~1885
20세기의 아프리카-식민시대에서 독립의 시대로
8. 아프리카의 과제와 미래
■역사의 기억 르완다 제노사이드와 진정한 화해

2장 인류 문명의 시험장, 서아시아 _ 이희수

1. 인류 문명의 시원-이슬람 이전의 역사
1만 2000년 전 신전도시 괴베클리 테페와 고대 문명의 탄생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전
오리엔트에서 번성한 고대 국가들
인류 최초의 대제국,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서기전 550~330
로마와 쟁패한 500년 제국, 파르티아 서기전 247~서기 224
비잔틴제국과 300년 소모전을 벌인 사산조 페르시아 226~651
2. 이슬람 역사의 태동과 발전
이슬람의 탄생과 가르침
정통 칼리파 시대 632~661
아랍인 중심 우마이야조 661~750
이슬람 세계제국 압바스조 750~1258
■역사의 기억 과학과 학문을 대하는 인식론의 차이│‘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의 실체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이슬람 800년 711~1492
투르크족의 등장과 압바스제국의 멸망
근세 이란을 지배한 시아파 사파비조 1501~1736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왕조 909~1517
■역사의 기억 살라딘 장군과 십자군전쟁에 대한 재평가
역사상 최대 오스만제국의 성립과 쇠퇴 1299~1922
이란 카자르조의 개혁과 아랍의 근대화운동
오스만제국의 종말과 서아시아의 독립
3. 20세기 이후 서아시아-대결과 협력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1990~1991년 걸프전쟁과 알제리 민주화의 좌절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과 뒤엉킨 팔레스타인 문제 해법
2001년 9·11테러
IS 궤멸과 소프트파워 전략
2011년 아랍 민주화 시위의 배경과 의미
4. 갈등에서 미래로

3장 동서 세계의 중심, 중앙아시아 _ 이평래

1. 서술의 범위
2. 중앙아시아의 두 세계
3. 고대 유목국가와 오아시스국가
고대 유목국가
고대 오아시스국가
실크로드와 동서 문화교류
4. 중앙아시아의 투르크화와 이슬람화
투르크화
이슬람화
투르크-이슬람 문화의 발전
5. 몽골제국의 성립과 동서 문화교류
몽골제국의 형성과 전개
동서 교류의 확대
몽골제국의 해체
6. 티무르제국의 흥망
7. 티무르제국 이후의 중앙아시아
8. 청조와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지배
청조의 동투르키스탄 지배
러시아의 서투르키스탄 지배
9. 현대의 중앙아시아
동투르키스탄
서투르키스탄
몽골

4장 공존과 병존의 역사, 인도 _ 이옥순

1. 인도의 지리와 역사
인도 역사의 지리 환경
넓은 땅, 많은 진리
2. 고대 문명의 발전
하라파 도시문명
베다 시대의 생활
새로운 종교와 변화
3. 제국의 등장
최초의 제국 마우리아
쿠샨과 사타바하나
굽타 왕조와 문명의 성장
남과 북의 변화
4. 과학기술의 발전
굽타 시대의 과학기술
고대부터 발달한 인도 과학기술의 전통
굽타 시대 이후
5. 중세의 변화
힌두 왕국들의 발전
이슬람 술탄의 시대
남부의 제국 비자야나가르
6. 무굴제국의 성쇠
제국의 건립
제국의 번영
힌두 마라타왕국의 등장
영국동인도회사의 성장
7. 근대 인도의 변화
새로운 지배자 영국
1857년 세포이 항쟁
민족주의의 성장
8. 20세기의 인도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
독립을 향한 발걸음
독립 후의 발전
사회의 변화

5장 대륙과 바다의 징검다리, 동남아시아 _ 조흥국

1. 동남아시아의 선사 문명
민족의 이동과 형성
석기 문화와 청동기·철기 문화
2. 동남아시아의 고대 왕국들
동남아시아의 역사지리
동남아시아의 문화적 특징
북부 베트남의 첫 왕국들
캄보디아의 부남과 중부 베트남의 짬빠
캄보디아의 앙코르왕국
미얀마·태국·라오스의 불교 왕국들
말레이반도와 자와섬의 힌두교-불교 왕국들
고대 동남아시아의 항해·조선 기술
3. 도서 동남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16세기 초 포르투갈의 믈라카 점령과 인도네시아 진출
16세기 스페인의 진출과 필리핀 형성
17세기 네덜란드의 진출과 말레이-인도네시아 세계의 변화
4. 16~18세기 대륙 동남아시아 왕국들의 흥망성쇠
남진하는 베트남
서진하는 미얀마
확장하는 태국
라오스와 캄보디아
5. 18세기 말~20세기 초 식민주의 시대
식민주의의 의미와 영향
스페인과 미국의 잇단 식민지배를 받은 필리핀
네덜란드의 식민 통치와 인도네시아의 성립
영국 식민지배하의 싱가포르·말라야·미얀마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형성
라따나꼬신 왕조 치하 태국의 독립 유지와 근대화
식민주의 시대 의학과 보건위생의 발전
6. 19세기 말~20세기 중엽 민족주의 시대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싱가포르·말라야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타이 민족주의와 입헌군주제의 수립
일본의 동남아시아 점령
7. 동남아시아의 독립과 현대의 변화
독립과 국민 통합의 과제
인도차이나 국가들의 공산화
탈식민시대 동남아시아의 정치·경제적 변화

6장 세계에서 가장 넓은 단일 문화권, 라틴아메리카 _ 서성철·정혜주·노용석

1. 라틴아메리카의 탄생
개념과 의미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특성
2. 아메리카의 고대·중세 문명
아메리카인의 기원
고대 문명
■역사의 기억 마야의 수학│아스떼까의 세계관
3. 정복된 아메리카
대항해시대의 개막
멋진 신세계
아스떼까와 잉카의 멸망
4. 신세계의 건설
식민과 혼합 문화의 탄생
강제노동 제도
아프리카인 노예의 유입
원주민의 저항운동
세계인의 식생활을 바꾼 아메리카 농산물
■역사의 기억 옥수수 문명
무역의 세계화를 이룬 갈레온 무역
5. 라틴아메리카의 독립
독립의 배경과 과정
카우디요의 등장
라틴아메리카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6. 종속된 라틴아메리카-주변부 자본주의 경제
7. 근대 국민국가 발전 과정-혁명과 내전
멕시코혁명
20세기의 혁명과 내전
8.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도판 출처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책 속으로

아프리카 사회의 후진성을 설명하면서 유럽 학자들이 들먹이던 ‘무문자 사회’라는 인식도 문명의 본질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라 여겨진다. 서양 문화 우월주의 또는 중화사상, 농경-정주 중심 사고 틀이 만들어낸 일방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최근 역사 연구자들은 ‘기록의 역사’ 못지않게 ‘기억의 역사’를 중시하게 되었다. 기록의 역사란 오히려 문자를 아는 지식인 계층과 권력을 독점한 엘리트층의 생각과 관점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지만, 수백 수천 년간 기억과 공감으로 전해지며 축적된 전승이야말로 전체 사회 구성원의 하부 구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역사 자료라는 주장이 만만찮은 지지를 얻고 있다. 사실상 중국과 같은 몇몇 문화권을 제외하고는 10세기 이후에야 비로소 중국의 제지 기술이 널리 전파되어 종이가 보급되면서 인류가 ‘기억의 시대’에서 ‘기록의 시대’로 대변환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오랜 기억이 축적된 아프리카의 역사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1장 가장 오래고 가장 젊은 대륙, 아프리카」중에서

그리스 문명은 크레타에서 출발했고, 크레타 문명은 이집트 문명을 한축으로 하고 다른 한 축으로 오리엔트 문명의 지적 성취를 고스란히 받아들여 꽃피운 종합 해양문명이었다. 크레타 문명이 그리스 본토로 흘러들어 미케네 문명을 잉태하고, 끊임없는 자기화 과정을 거쳐 서기전 6세기 드디어 화려한 그리스 문화의 전성기가 열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 로마가 탄생했다. 건축과 예술, 신화적 구조를 띤 종교관, 과학과 철학 등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오리엔트 문명에 지적 신세를 지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었음에도 고대 오리엔트 문명의 실체는 오랫동안 그 문명의 후예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제대로 관심을 유발하지도 못했다. 서양의 인물로 동양을 정복한 알렉산드로스의 공격 행위에는 문명의 위대한 전도사란 수식어가 따라다녔지만, 그의 죽음으로 사라져버린 마케도니아에 비해 문명의 깊이나 역사성이 훨씬 심대하고 광범위했던 페르시아제국은 상대적으로 도외시되었다. 서양이 공격하면 정복이나 위대한 승리가 되는데, 동양이 공격하면 찬탈이나 파괴가 되곤 했던 우리 세계사 교과서의 표현과 관점도 왜곡된 역사의식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2장 인류 문명의 시험장, 서아시아」중에서

실크로드를 통한 물자의 이동은 문화와 사람의 이동을 수반하고, 그래서 물자의 중개를 담당한 오아시스 주민은 항상 동서양의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중국인에 앞서 서방의 종교를 받아들이고, 서방 사람들에 앞서 중국의 제지 기술을 습득했다. 선진문화 수용은 새로운 문화 창조로 이어졌고, 특히 중개무역을 통하여 축적된 경제력은 새 문화 창조의 밑거름이 되었다. 간다라 불교미술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간다라 양식은 인도 불교와 그리스 예술이 만나 이뤄진 것으로, 파미르고원을 거쳐 동아시아 각지에 전해졌다.

오아시스 주민은 또한 동서 세계에서 흡수한 이질 문화와 자신들이 창조한 혼합 문화를 주위 세계로 전파하는 역할도 했다. 사마르칸트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한 소그드인들도 이런 부류 사람들이다. 이들은 4?5세기경부터 유라시아 육상 교통로를 이용하여 각지에 거류지를 만들고 동서 무역을 독점했다. 어려서 글을 깨치면서 장사를 배웠다는 소그드인들은 당나라에서 ‘호상胡商’이라 불리면서 진귀한 외국 상품을 팔고, 고리대금업으로 재산을 모았다. 소그드인들은 몽골, 중국, 서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이익이 남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는데, 이 과정에서 문화 중개자로서도 역할을 했다. 예컨대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위구르 문자는 소그드 문자를 기본으로 한 것이고, 13세기 몽골인들은 위구르 문자를 차용하여 자신의 문자로 사용했다.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네스토리우스교 등 서아시아에서 기원한 종교 역시 이들을 통해 초원에 전해졌다.
---「3장 동서 세계의 중심, 중앙아시아」중에서

광대한 인도 영토에서는 모든 것이 다 생산되었다. 덕분에 부유한 인도는 고대부터 외국인이 선망하는 나라였다. 인도가 서북 지방을 통과한 투르크, 아프간 등 다양한 이슬람 세력에 정복되어 오랫동안 지배를 받는 아픔을 겪은 건, 모든 걸 다 가진 데 따른 역설적인 결과였다. 일부 이슬람 술탄은 인도에 정권을 세우지 않고, 엄청난 재물을 약탈하고 많은 사람을 죽인 뒤에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덕분에 인도는 수없이 파괴되고 폐허가 되는 아픈 역사를 되풀이 겪었다. 근대에는 인도의 특산물을 수입해서 유럽에 팔려는 유럽 상인들이 줄지어 인도를 찾았고, 그들 중 한 나라인 영국이 인도의 지배자가 되었다.

공식적으로 인도가 외국에서 온 세력에게 지배를 당한 것은 이슬람 지배 600여 년, 영국 지배 200여 년 등 약 8세기에 달했다. 그사이에도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전쟁이 이어졌고, 물리적 패배는 거의 다 인도의 몫이었다. 그럼에도 인도는 폐허 속에서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났고, 다시 먼지가 되었다가 부흥하는 역사를 이었다. 항상 패배했으나 결국은 살아남은 인도의 역사는 폐허 속에서 생존한 이전의 역사를 이어가며 지속되었다. 그런 점에서 인도 역사는 자연환경이 준 한계를 넘어선 인간의 장대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4장 공존과 병존의 역사, 인도」중에서

서양인들의 식민주의는 동남아시아 세계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사회적으로 깊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선 식민지배를 통해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국경이 확정되었다. 또한 식민지에 소개된 서구의 의회민주주의 정치사상은 동남아시아의 전통적인 절대군주 체제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으며, 식민지에 도입된 서구식 행정체제는 정치제도의 혁신을 가져왔다.

식민주의는 산업화를 일으킨 서양 국가들이 자원 공급지 및 상품 수요지로서 식민지를 개척하려는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출발했다. 이에 따라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서구 자본은 시장경제의 원리를 현지 사회에 적용해 최대 이익을 추구했다. 전통적으로 농경 사회인 동남아시아에서 서구 자본은 무엇보다 농업에 집중했다. 그 결과 벼농사가 상업화하고, 플랜테이션이 도입되어 상업작물들이 대규모로 생산되었다. 서구 자본은 그 밖에 조선업과 광산업 등에도 투자했으며, 항만과 철도 및 도로가 건설되어 주요 항구들과 도시들이 농업·광업·공업 지역과 연결되었다.

식민주의 시대 동남아시아의 경제 발전은 외형적인 번영과 내부적인 빈곤이라는 구조적 모순을 낳았다. 식민체제에서 한편으로는 수출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전체적으로 볼 때는 생산이 증대했으며, 특히 현지인 지주·식민 관리·상인·고리대금업자 등이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농촌의 부채와 빈곤,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농민들의 불만이 증대했다.
---「5장 대륙과 바다의 징검다리, 동남아시아」중에서

마야인들이 0의 개념을 알았다는 점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마야인들은 전기 고전기인 서기전 1세기에 0이라는 숫자를 창안했다. 그 밖에 세계 문명사에서 0 개념이 있는 문명은 메소포타미아와 인도 문명 말고는 없었다.
마야인들은 수천만 이상인 수와 장구한 시간도 선과 막대기 단 몇 줄로 간단하게 표시할 수 있었다. 분수 개념은 몰랐지만, 점과 막대기라는 기호를 가지고 천문학적 계산도 정확하게 해낼 수 있었다. 마야인들은 유럽인들보다 더 정확하게 태양년의 주기를 측정했다. 마야의 달력에 따르면 1년(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 365.2일인데, 현대의 계산으로 1년은 365.242198일이다. 마찬가지로 마야의 달력에서 한 달(달의 지구 공전 주기)은 29.5308일인데, 현대에 측정한 삭망월의 주기(보름달이 된 때부터 다음 보름달이 될 때까지, 또는 초승달이 된 때부터 다음 초승달이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가 29.53059일인 것을 보면 그들의 계산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알 수 있다. 마야인들은 태양과 달의 주기를 정확히 계산한 데 따라 일식과 월식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6장 세계에서 가장 넓은 단일 문화권, 라틴아메리카」중에서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한 사건의 세계사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신대륙과 구대륙이 연결되면서 경제의 규

출판사 리뷰

-3분의 1에 갇힌 시야의 장막을 걷어내는 탈중심 세계사
-식민 강국의 시선에서 벗어나 세계 곳곳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어간 주인공들의 자리에서 읽는 세계사
-다채로운 역사지도와 사진 자료를 컬러로 보는 세계사


이 책이 만들어진 계기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내의 대표적인 아프리카·서아시아·중앙아시아·인도·동남아시아·라틴아메리카·오세아니아 역사·문화 연구자들이 기존 세계사 교과서들을 꼼꼼히 분석하여, 서구와 동아시아에 편중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구 중심 관점으로 비서구 지역에 대한 잘못된 견해와 정보를 전달하는 교과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해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한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라는 책을 펴냈다. 그 후 기존 교과서의 오류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해달라는, 곧 교과서의 오류와 편견을 극복하는 데 길잡이로 삼을 만한 책을 만들어달라는 역사 교사들의 요청이 있었다. 『더 넓은 세계사』는 바로 그 요청에 대한 17년 만의 응답이다. 다만 일부 필자의 사정으로 오세아니아 편이 빠졌고, 아프리카 편과 라틴아메리카 편의 필자가 바뀌었다.

기존 교과서가 우리에게 가르친 세계관은 서로 맞물려 있는 두 동심원과 같다. 마치 지구가 평평하기라도 한 듯이 서구와 동북아시아가 양쪽 중심에 있고, 다른 지역들은 중심을 둘러싼 가장자리 어딘가에 놓여 있다가, 중심축의 이야기에 필요할 때만 조연처럼 단역처럼 등장한다. 그러나 세계는 두 중심축에서 뻗어나간 동심원이 아니다. 세계는 겹겹이 입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고대 유럽의 문명은 이집트·서아시아와 인적·물적으로 교류하면서 탄생했고,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는 유사 이래 유기적으로 연동하는 관계였으며,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끊임없이 인도로 스며드는 사이 인도는 동서 양편에 풍요를 선사했고, 동남아시아는 인도와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한편 삼각무역으로 라틴아메리카와 중국, 유럽을 연결했다.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동서 양편의 문물을 양쪽으로 전달하며 동북아시아와 유럽의 문화 발전을 자극했다.

현대 서구와 동북아시아의 문명과 풍요는 이들 지역과 사람들을 통과하면서 탄생하고 성장했다. 그러나 이들 지역과 사람들은 그저 문명의 통로나 성장의 발판으로 이용되고 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세계 속 주인공으로 역사를 만들어갔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이들의 존재가 누락된 세계사는 불완전하고 불균형하다. 마치 로마제국과 중국을 괴롭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듯한 기마 유목 민족의 터전 중앙아시아, 고대부터 동서 교류의 중심에 있었으나 최근 들어서야 세계의 신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는 동남아시아, 근현대의 역동성은 무시되고 과거의 찬란한 문명만 박제되어 있는 듯 오해받는 인도, 인류 문명의 시원이자 고대 철학과 과학의 계승자였으나 오늘날 가장 심한 오해와 편견의 대상이 된 서아시아, 인류사 희비극의 총체라 할 수 있는 라틴아메리카, 단 한 번도 잠자고 있지 않았으나 그늘 속 엑스트라 취급을 받기 일쑤였던 아프리카. 이 책은 ‘가진 자, 지배자, 식민 강국’의 시선에서 벗어나 세계 곳곳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절절히 만들어갔던 주인공들의 자리에서 세계사를 돌아보고자 한다.

책 속에서 찾을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몇 가지 소개한다.

세계 최초의 대학은 아프리카에 세워졌다

역사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고대의 학술 기관을 제외하면 ‘세계 최초의 대학’은 11세기 초 설립된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과 영국의 옥스포드대학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선 970년경 이미 알아즈하르대학이 이집트의 카이로에 들어섰다. 말리 중부의 팀북투에 있는 상코레대학도 일찍이 14세기 초부터 발전했다.

유럽은 이슬람 과학자에게서 의학을 배웠다

근대 이전 유럽의 의과대학은 9세기 말 10세기 초 활동한 페르시아인 알라지와 11세기 초 활동한 페르시아계 중앙아시아인 이븐 시나의 저작을 교과서로 사용했다. 중세에 고대 철학자들의 과학 연구를 수집·보존·번역하고 쇄신하며 발전시킨 학문의 요람은 서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와 남유럽에 걸친 이슬람권에 있었다.

칭기즈칸 사후 몽골제국은 분열했나

13세기 초 유라시아 대륙을 장악했던 칭기즈칸이 1226년 사망한 뒤, 몽골제국은 조치 울루스(킵차크칸국), 카안 울루스(원나라), 훌레구 울루스(일칸국), 차가타이 울루스(차가타이칸국)로 나뉘었다. 지금까지는 이를 몽골제국의 분열로 이해했으나, 종가(宗家)인 카안 울루스가 멸망할 때까지 4개 울루스가 통합성을 유지했던 데 근거하여 최근 많은 연구자들이 쿠빌라이 이후의 몽골제국을 일종의 연방제 국가로 본다.

녹슬지 않는 강철은 인도인의 발명품

단단하고 잘 닳지 않아 오늘날 각종 공구와 철로의 소재로 쓰이는 고탄소강을 처음 만들어낸 것은 서기전 6세기의 남인도인들이었다. 남인도의 강철은 아라비아, 이집트, 로마, 중국으로 수출되어 그들 지역의 제철기술 발전을 자극했다. 1500년이 넘도록 비바람과 뜨거운 햇볕을 견디면서도 아직까지 녹슬지 않은 채 당당히 서 있는 것으로 유명한 ‘델리의 쇠기둥’은 인도 제철 기술의 생생한 증거다.

신라의 승려들이 수마트라에 간 까닭은

오늘날 인도네시아를 이루는 주요 섬인 수마트라에 7세기 중엽 건설된 스리위자야왕국은 해상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번영했던 나라다. 스리위자야에서는 대승불교가 번성했다. 7세기의 중국 승려 의정(義淨)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당시 각지에서 스리위자야의 수도인 팔렘방에 와 머무르면서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며 인도 유학을 준비하는 승려가 천 명이 넘었다. 신라에서 인도로 간 여러 구법승도 같은 경로를 따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1도 없는 수 0을 독자적으로 생각해낸 마야인들

1도 없는 상태를 0이라는 수로 처음 인식한 것은 서기 7세기 무렵의 인도인들이라고 알려진다. 이들의 수 체계와 계산법을 바탕으로, 오늘날 세계 공통으로 쓰이는 10진법 인도-아라비아 수 체계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중앙아메리카의 마야인들도 외부 세계와 교류 없이 스스로 0 개념을 도입하고 20진법을 사용했다. 마야인들이 사용한 0의 모양은 이것이다.

저자 소개

튀르키예(옛 터키) 이스탄불대학교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문화인류학자이자 중동 역사와 이슬람 문화에 관한 국내 최고 전문가로, 40년간 이슬람권 전역에서 현장 연구를 해왔다. 도시를 중심으로 뿌리를 내린 이슬람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이슬람 지역의 도시 곳곳을 다니며 탐구하고 기록했다. 이스탄불만 196번을 다녀왔다. 지금은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와 이슬람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서양 중심의 보편적 역사관을 넘어 인류문명의 뿌리인 오리엔트-중동 지역의 역사와 그 토양에서 발아한 이슬람 문명을 조망하고 연구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인류 본사》, 《이희수의 이슬람》, 《세상을 바꾼 이슬람》, 《터키사 100》, 《터키 박물관 산책》, 《헤이트》(공저), 《한국어-터키어사전》(공저) 등 80여 권을 쓰고, 《중동의 역사》, 《금의 역사》, 《문명의 대화》 등 10여 권을 우리말로 옮겼다. 지은 책 중 《이슬람과 한국문화》는 아랍어, 터키어, 이란어로 번역 출간되어 한국과 이슬람 세계의 교류를 밝히는 저술로 평가받았으며,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담긴 고대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를 발굴해 우리말로 옮겨 국내에 소개했다.
몽골 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에서 몽골 근대사로 역사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양대와 한국외대 강사를 역임하고 한국외국어대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몽골 연구자로 최근에는 몽골 역사뿐 아니라 신화와 종교 등 몽골의 정신문화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실크로드의 삶과 종교》,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중국 역사가들의 몽골사 인식》,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한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 《중국 학자들의 소수민족 역사 서술》, 《아시아의 죽음 문화: 인도에서 몽골까지》 등 20여 권을 공동 저술하고, 《몽골 민간 신화》, 《몽골의 종교》, 《중앙유라시아의 역사》, 《몽골 신화의 형상》, 《몽골의 역사》 등을 우리말로 번역했으며, 몽골 및 중앙아시아사에 관한 논문 40여 편을 발표했다.
이옥순은 인도 전문가로, 현재 연세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역사의 변방에 위치한 식민지인, 여성, 동양-인도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인도 델리대학교에서 인도 근대사로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저서로는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인도에 미치다』, 『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 『위대한 영혼, 간디』, 『인도 현대사』,『인도는 힘이 세다』가 있다.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 함부르크대학교의 동양학부 동남아시아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의 초빙교수와 일본 교토대학 동남아시아연구소 초빙교수를 역임했으며, 부산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교수로 십수 년간 가르치고 연구하다가 2019년 8월에 퇴직했다. 강의와 연구의 주 분야는 동남아시아의 역사, 종교, 민족, 여성, 화인, 한국-동남아 교류사, 동남아시아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동남아의 화인사회』(2000 공저), 『불교군주와 술탄』(2004 공저), 『태국 - 불교와 국왕의 나라』(2007),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교류사』(2009), 『제3세계의 역사와 문화』(2015 공저), 『근대 태국의 형성』(2015) 등 스무여 권의 저서와, 밀턴 오스본의 『메콩강 - 그 격동적인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2018)를 포함한 세 권의 역서가 있으며, 수많은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다.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멕시코국립대학교에서 문학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주駐아르헨티나 한국대사관, 주스페인 대사관에서 공보관을 역임하고,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 2018년 지병으로 별세했다. 중남미 역사와 문화에 문학적·인류학적 관심을 기울였으며, 중남미 전체 역사를 체계적으로 조망한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묻힌 거울》을 《라틴아메리카 역사》란 제목으로 우리말로 옮겼다. 그 밖에 《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 《신들의 열매 초콜릿》, 중남미 한인 이주 역사를 다룬 《회상》 등을 번역했다. 2017년 출간한 저서 《마닐라 갤리온 무역》은 동서 무역의 통합과 해상 실크로드의 역사를 동남아와 중남미 관계사로 풀어낸 역작이다.
1984~1988년 멕시코 국립역사인류학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며 치첸이쯔아?플라야 델 카르멘?에즈나 등 마야 문명의 유적지에서 발굴 작업을 하고 유물을 분석했다. 2000년 멕시코국립대학교에서 중미학Mesoamerican Study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에서 연구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강사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멕시코시티: 아스테카 문명을 찾아서》, 《마야 원주민의 전쟁과 평화》, 2014년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옥수수문명을 따라서》, 《신들의 시간: 메소아메리카의 고대문명》이 있고, 아스떼까 문명의 고문서 《여정의 두루마리》와 마야 문명 발견기 《중앙아메리카 치아빠스와 유까딴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우리말로 옮겼다.
2005년 영남대학교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관련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국가폭력과 제노사이드에 대한 연구 범위를 라틴아메리카로 넓혀 현재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국가폭력 구조와 과거사 청산, 그리고 민족주의 기원의 양상 등을 연구하고 있다.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과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에서 연구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라틴아메리카 여러 국가의 과거사 청산과 민주주의 수립 과정을 기술한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기초 입문서 《라틴아메리카의 이해》, 한국과 라틴아메리카의 국가폭력 피해자 유해 발굴 과정을 분석한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환태평양 게이트웨이 지리학》(공역)과 《환태평양 연구》(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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