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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치약 거울크림

김혜순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1월 03일 리뷰 총점10.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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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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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1년 11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186쪽 | 226g | 128*204*20mm
ISBN13 9788932022413
ISBN10 893202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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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1명)

대상을 주관적으로 비틀어 만든 기괴한 이미지들과 속도감 있는 언어 감각으로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온 김혜순이 시를 통해 끈질기게 말하는 것은 죽음에 둘러싸인 우리 삶의 뜻없음, 지옥에 갇힌 느낌이다. 그 죽음은 생물학적 개체의 종말로서의 현상적,실재적 죽음이 아니라, 삶의 내면에 커다란 구멍으로 들어앉은 관념적,선험적 죽음이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제목이 『어느 별의 지옥』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어느 별... 대상을 주관적으로 비틀어 만든 기괴한 이미지들과 속도감 있는 언어 감각으로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온 김혜순이 시를 통해 끈질기게 말하는 것은 죽음에 둘러싸인 우리 삶의 뜻없음, 지옥에 갇힌 느낌이다. 그 죽음은 생물학적 개체의 종말로서의 현상적,실재적 죽음이 아니라, 삶의 내면에 커다란 구멍으로 들어앉은 관념적,선험적 죽음이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제목이 『어느 별의 지옥』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어느 별의 죽음』은 세계의 무목적성에 대한 오랜 응시로 삶에 예정되어 있는 불행을 눈치채버린 이의, 삶의 텅 빔과 헛됨, 견딜 수 없는 지옥의 느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비관주의적 상상력이 빚어낸 시집이다. 그의 시 세계는 일상적이고 자명한 것의 평화와 질서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의식을 난폭하게 찌르고 괴롭힌다.

김혜순은 1955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초등 학교에 입학할 무렵 강원도 원주에 이사해 거기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원주여고를 거쳐 1973년 건국대학교 국문과에 들어가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78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처음 써 본 평론 「시와 회화의 미학적 교류」가 입선하고, 이어 1979년 「문학과 지성」에 「담배를 피우는 시인」,「도솔가」등의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나온다. 대학 졸업 뒤 「평민사」와 「문장」의 편집부에서 일하던 그는 1993년 「김수영 시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는 1998년 '김수영 문학상'을 받음으로써, 낯설고 이색적이어서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던 그의 시세계는 비로소 문단의 공인을 받는다. 2019년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그리핀 시 문학상(Griffin Poetry Prize)를 수상했다.

김혜순 시의 착지점은 '몸', 그것도 해탈이 불가능한 '여성의 몸'이다. 해탈이 불가능한 몸에서 출발한 그의 시적 상상력은 때때로 그로테스크한 식육적 상상력으로까지 뻗친다. 이런 점에서 김혜순의 시를 "블랙유머에 바탕을 둔 경쾌한 악마주의"의 시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는 자기 시의 발생론적 근거를 '여성'과 '여성의 몸'에서 찾는다. 이에 대해 그는 "식민지에 사는 사람은 절대 해탈이 불가능하다. 여성은 식민지 상황에서 살고 있다. 사회학적 요인이 아니라 유전자에 새겨진 식민지성이 있다. 이때의 여성은 인식론적 여성이 아니라 존재론적 여성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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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한국 현대시의 강력한 미학적 동력 ‘김혜순’, 그의 열번째 시집!

파동이란 이름의 부재로 가득 찬 세상,
그 일상과 몸에 구축한 비명과 침묵, 비밀의 숨, 숨, 숨


들끓는 이미지의 연쇄와 파열, 특유의 속도감으로 전개되는 경쾌하고도 탄력적인 리듬감, 상상적 언술의 최극단으로 한국 현대시의 미학을 끊임없이 갱신해온 시인 김혜순(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이 열번째 시집 『슬픔치약 거울크림』(문학과지성사, 2011)을 출간했다. “지배적 상징질서들이 만들어놓은 시적인 것들과 결별하고, 다시 그것을 게워내는 ‘첫’의 혁명”(이광호, 문학평론가)이라 불리며, “수일(秀逸)한 이미지들과 흉내 낼 수 없는 참신한 비유들로 여러 사람을 충격한다”는 평과 함께 제16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직전 시집 『당신의 첫』(2008) 이후 3년 만이다. 최근 선집 『내 생의 중력』으로 통권 400호의 금자탑을 기념한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새로운 항해에 첫 승선자인 시집 『슬픔치약 거울크림』은 검은 어둠으로 꽉 막힌 블랙홀, 혹은 부재를 중심에 둔 내 몸의 움직임과 그 움직임을 주재하는 텅 빈 ‘구멍’에 집중하면서 일 년여에 걸쳐 완성한 장시 「맨홀 인류」를 포함해, 총 44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우선 표제 속 ‘슬픔’과 ‘거울’은 눈여겨볼 만한 단어이다. ‘슬픔(/우울)’은 주체할 수 없이 덩그런 몸뚱이에 붙박인 ‘나’에게서 자유롭지 못한 화자 ‘나’가 눈감은 채로, 걷는 채로 오롯이 치러내는 통증이자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이유이다.

우는 산산이고, 울은 조각이고
우는 풍비이고, 울은 박산이고
내 살갗은 겨우 맞춰놓은 직소퍼즐처럼 금이 갔네
우는 옛날에 하고, 울은 간날에
우는 비누를 먹고, 울은 빨래가 되었네
나는 젖은 빨래 목도리를 토성처럼 둘렀네
우는 얼음의 혀를 가졌고, 울은 얼음의 눈알을 가졌네
나는 얼음을 져 나르느라 어깨가 아팠네z`
-「우가 울에게」 부분

걸어가면서 잠자는 거대한 회색곰처럼
눈꺼풀 위에 너덜거리는 거대한 검은 레이스 구름처럼
기름 질질 싸고 가는 사막 한가운데 덤프트럭처럼
계단은 썩고 다락은 먼지가 한 길이나 쌓인 집채처럼
덩그러니 나 말고 아무도 없다는 거
거리에서 쫓겨나고 쫓겨나면서
점점 커진다는 거
내가 세상의 비명으로 꽉 차 있다는 거
그것밖엔 아무것도 없다는 거
-「어미곰이 불개미 떼 드시는 방법」 부분

내 몸에서 솟은 “뾰족한 초침들이 안타깝다 안타깝다 나를 찌르”(「생일」)기나 하듯, 심드렁하고 퉁명스럽게 툭툭 내뱉는 한마디에도 결코 경쾌함과 탄력을 빠뜨리지 않는 김혜순식 ‘분노’와 ‘비애’는 그렇게 드러난다.

눈뜨고 그냥 있다, 난 안경이니까.
결코 무엇을 보는 법도 없다, 난 그저 안경이니까.
저 화덕 위의 키조개가 뭘 보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냥 있다.
더더구나 나는 눈을 감을 줄 모르니까.
나는 얼음을 먹는 시간과도 같다.
먹고 나면 뭘 먹었는지도 모른다.
[……]
나한테 오는 사람은 왼쪽 하늘과 오른쪽 바다
두 개로 나뉘어서 온다.
그러니 안경에 대고 말하는 건 난센스다.
제 귀에 대고 말하는 거와 같으니까.
-「안경은 말한다」 부분

당신 머릿 속 빛나는 오기처럼 던져라 똥! 던져라 공! 뿌려라 물!
안녕안녕안녕

모두 작별해버리고 싶은 아침

[……]
내가 내 이름을 지을 수 없는 곳, 안녕
내가 내 병명을 지을 수 없는 곳, 안녕
내일 아침은 내 침상에서 새 질병으로 태어날 거야
그 질병에 나를 꽂을 거야
그러니 모두 안녕
이제 마이너스 당신이 된 당신님도 안녕
-「아침 인사」 부분

“외국어로 가득 찬 몸”(「타조」)의 미궁(/미로) 속을 하염없이 걷고 있는 시인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근원적 열정을 들여다보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애당초 이 ‘거울’에 비친 세상이 울퉁불퉁하고, 미끌미끌하며, 변덕이 죽 끓듯 플러스 마이너스를 오가는 터라, ‘움직이는 미로’의 유동성처럼 김혜순 시의 영토에 자기 반복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박멸의 기관. 침묵의 입술”인 ‘귀’로 시인은 말한다(혹은 귀로 세상을 듣는다). 그에 따르면 “귀로 말하기는 언어의 뒤편, 목소리와 이름이 사라진 그 뒷면의 격류로 말하기. 마치 외계인과 만났을 때처럼, 성대 없이 통해야 하는 것처럼. 거울 속에 수장된 여자가 귀로 말한다.” 하여 시인은 “단어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지우며 단어들에게서 문장이 밀려오려는 밀착을 전보다 더 힘껏”(김경주, 시인) 밀어내고 있다. 이때 그 누구의 모방도 불허하는 김혜순의 비유와 날선 감각이 있어 그 ‘귀로 말하기’를 가능하게 만든다.

부신 햇살에 날아가는 내 어금니처럼 노란 것
바람의 터럭 같은 것이 두근두근 날아간다

나는 내 영혼에서 냄새가 난다 라고 쓴다
나는 두근거리는 노랑을 뱉고 싶다 라고 쓴다
-「눈썹」 부분

나는 신성하게도 방사능이 타고 있는 벽난로 속에
숯처럼 까만 영혼을 던지고 쉬기로 했다
먼 나라에 왔으니 기억을 씻어야지 생각했다
조금 쉬다가 슬픔치약을 발라 이를 닦았다
[……]
영원히 계속되는 동화에서 흘러나온
고양이가 살며시 지나가고
비품들이 하나하나 지워졌다
무쇠난로엔 지우개 가루들이 쌓여갔다
하나님이 굴뚝 위로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빗이 거울을 부르고 거울이 빛을 부르고 빛이 나를 부르고
나는 방에 갇혀 있는 거울에 갇혀 있는 나의 슬픈 눈동자에 갇혀 있는
나에게 거울크림을 바르고 천천히 지워져갔다
-「창문 열린 그 시집」 부분

마치 “촘촘히 빈틈으로 그물이 짜인 방/ 그리하여 입구도 출구도 없는 방/ 거울 속에서 유령이 시간 맞춰 나타나는 방”(「창문 열린 그 시집」)처럼 다양한 통로로 가득한 미로 속 화자는 미증유의 꿈을 꾸고 “내가 나에게 명복을”(「토성의 수면제」) 빌며 눈감은 채 자신(의 그림자)을 들여다본다.

역광 속에 멀어지는 당신 뒷모습 열쇠 구멍이네
그 구멍 속이 세상 밖이네

어두운 산 능선은 열쇠의 굴곡처럼 구불거리고
나는 그 능선을 들어 당신을 열고 싶네
-「열쇠」 부분

내 몸을 태우고 남은 빛으로
윤곽을 그린 검은 구멍아
감촉도 죽고 냄새도 죽은 마침표야
너에겐 본드도 붙지 않는구나
한없이 서늘한 것!

너는 나를 태운 불길들 위에 뿌려진 물 한 동이
그리고 그곳에 남은 물무늬
문득 켜지는 검은 눈동자
네가 본 것은 무엇이냐
시멘트 바닥에 쓸려 다니느라 피 맺힌 검은 구멍아
버둥거리던 사지는 어디 갔나
-「나는 불사도 불생도 모릅니다」 부분

이렇게 “어떤 육체를 분방하게 움직이게 하는 숨처럼, 숨 속에 숨은 몸을 더듬듯이”(김경주, 시인)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으로 이 세계를 새롭게 구축해가던 시인이 발을 들인 곳은 지상낙원도 유토피아도 아닌 ‘맨홀 뚜껑’ 아래 하수구 속 세상이다. 바로 “내 몸의 이행”으로 열고 닫히는 ‘구멍’이다. 거리와 광장에서 생과 죽음을 오가는 타인들과 ‘나’는 별개일지 모르나, 발아래 맨홀 뚜껑을 열고 생기는 구멍의 안팎으로 ‘나’와 ‘당신’의 몸을 타고 한 연대기가 흐른다. 마치 허공과 섞어 짜내려가는 직물처럼, 우주의 공허와 광활이 머리 위로 이어지듯이.

또 하나의 맨홀 인류가 탄생하고 있다. 시간이 아기의 몸에 구멍을 뚫고 있다. 머리에 맨홀 뚜껑을 얹고 있다.

그 아래 식당에서 식물, 동물 구별할 것도 없이
질투와 고독과 영혼을 구별할 것도 없이
도마 가득 몸들 올려놓고
두 손으로 난도질하고 있는 요리사의 손동작!

내가 내일 아침 저것을 먹는 것은 구멍의 껍질을 먹는 것인가? 구멍의 밖을 먹는 것인가? 구멍의 사슬을 먹는 것인가? 내 구멍의 보존 욕구여, 쉼표로 연구되는 쉼 없는 음악이여, 만만세여!
[……]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잠은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오는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사랑은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오는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고통은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오는가.
[……]
‘나’, 내가 내 몸속에 유폐되어 있는 곳을 부르는 이름!
‘나’, 몸속의 구멍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자들을 통칭하여 부르는 이름!
‘나’, 혹은 몸속에 사시는 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분을 모셔 부르는 이름!
-「맨홀 인류」 부분

무려 35쪽에 걸쳐 폭발하는 ‘불꽃의 춤’, 형언할 수 없는 ‘리듬의 만다라’가 잦아들면 다시 (시인은) “나는 곧잘 히말라야 정상에 걸터앉아/ 저 까마득한 심해를 내려다보며/ 아침을 먹는다고 상상한다”(「에베레스트 부인의 아침 식사」). 그리고,

그 소녀에게서 떠난 시간들이 줄지어 그녀에게 서빙하는 아침
차가운 수의, 투명한 얼굴, 면도날처럼 시린 몸

할머니들 대표로 우리 엄마가
여든 살 되어가지만 자꾸만 그녀가 나온다고
나이 들수록 그녀가 더 자주 나온다고
입 가리고 호호호 내 퀴즈에 답하실 때
[……]
아줌마! 어디서 살다가 이제 와요? 묻는
이름 없는 소녀에게
나도 낯설어 내 얼굴을 몰라보는 나에게
해 뜨기 전 박명의 시간, 해보다 먼저 슬픔이 솟아오를 때
나는 나의 종이비행기 맨 앞좌석에 앉은 매정한 그녀에게
신선한 아침을 서빙하네
-「아침」 부분

발표하는 시집마다 기성의 영토를 점유하지 않는 방식으로, 여성적 포지션(여성적 위치, 자리, 경험, 상상 그 모든)에서 발화 가능한 여성의 목소리로, 시 쓰는 과정 자체가 시가 되는 방식으로, 매번 당신을 떠나 새로운 당신을 만나듯 매번 저번과 이별하고 그 이별/부재로서 존재하는 시들로 우리의 오감을 동시다발적으로 충격해온 시인답게, 김혜순은 이번에도 역시 우리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언어의 세계에 거주지를 마련해놓고 우리를 초대한다: “커튼을 치고 귀로 말하는 시들을 읽는 즐거움! 침묵? 비밀, 그 무궁한 풍부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 즐거움!/ 내가 이 부재의 비밀을 당신에게 투척하니 흡입하시어 부디 궁핍하길.”

냉수 한 컵의 간절한 눈빛으로

몸을 칼날처럼 얇게 벼리기
물어넣기
냄새나는 입에서 후하고 뱉어지기
낙타의 혹에 갇혀 흔들흔들 눈 감고 가기
썩어가는 몸에서 떨어져 고물거리는
영혼 같은 것이 되기
가려고 떠나가려고만 하기
안 떠나지는 거 못 견뎌하기

몸을 더듬는 물빛으로

미지근한 얼굴에서 미끄러져 내렸어요
손가락을 적시고 흘러내렸어요
담겨진 냉수 한 컵의 전생이 그렇게 쏟아졌어요

사람들은 왜 저마다 몸에서 나가고 싶은 눈빛들을 가졌을까요

눈을 감고 컵을 들어 삼키기
캄캄한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기
다시 태어나길 기다리는 건 아냐
하면서 헤엄쳐 들어가기
끄윽 트림으로 쫓겨나기
영혼인지 열반인지에 섞여 떠오르기
이윽고 구름의 발가락에 매달리기

테두리를 아직 구하지 못한 물이
눈동자처럼 한 컵

우리는 모르는 우리 몸속을 다 알고 있는 물이 한 컵
-「냉수 한 컵」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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