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 자본주의가 경제의 기조를 이루는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경제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내놓을 만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물론 아주 상식적인 수준에서 경제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돈이 있으면 이런저런 주식에나 투자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거나 환율 변동을 보며 달러나 엔화 좀 사둘까 하는 식의 생각은 해보지만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나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복잡한 공식, 통계, 이론, 도표, 수식이 잔뜩 등장하는 교재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현기증마저 느꼈다. 나에게는 대학에 와서까지 수학에서나 다룰 법한 공식과 이론들로 골치 꾀나 썩는 친구들의 모습이 안쓰럽게 생각되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경제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고, ‘경제학’은 여전히 나에게 금단의 영역이다.

이런 나에게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만화로 구성된 덕분에 그 자체의 스토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는 안심이었지만, 이 책이 ‘피케티’라는 경제학자와 그가 쓴 『21세기 자본』을 소개하려는 취지로 저술되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막연한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여태껏 잘 모면해 왔고 생활하는 데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경제학’이 지금 내 앞에 떡하니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나는 이런 부담감 속에서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손에 들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책 내용은 생각만큼 복잡하거나 난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만화 속 주인공(히카리)이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에 흥미가 생겨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또 피케티의 이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내용을 각 장의 도입부에 간단히 정리해 두어서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이 소개하는 피케티의 논지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경제학의 원리나 이론을 거의 모르는 나의 눈으로 보더라도 피케티가 자신의 책 『21세기 자본』에서 주장하는 이런 논리는,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기형적 현실을 염두에 두면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경제적 약자층은 스스로를 보호할 만한 방편이 크게 부족하다. 그래서 만일 그들을 약육강식의 경제 현실 속에 그대로 방치한다면, 경제적 빈곤이 대물림되는 현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경제적 빈부 격차의 발생 원인과 해소 방안에 대한 피케티의 제안도 좋았지만,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으면서 크게 공감한 또 한 가지 사실은 ‘나 자신에 대한 투자’, 곧 새로운 분야, 적성, 재능에 대한 발견, 교육, 학습이 장기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갖고 새로 시작하는 일이 지금 당장은 눈에 띠는 성과가 없는 듯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 효과가 누적되어 10~20년 뒤에는 큰 차이로 나타나게 된다는 말이다.

가령, 생소한 외국어(이를테면 중국어)를 오늘부터 공부하기 시작한다면 단기적(몇 주나 몇 달)으로는 학습 효과가 아직 미미하지만, 장기적(10~20년 뒤)으로는 외국어 원서를 읽는 일은 물론이고 외국인과 대화하거나 편지를 주고받는 일도 가능해진다는 논리다. ‘배움에는 시기가 없다’는 금언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60세에 검정고시를 치거나 80대가 되어 신인 작가로 문단에 진출하는 사람들은 피케티의 이론을 삶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깨달은 점이 많다. 나는 지금까지 현상에 안주하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망설이고 현재의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두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는 반복되는 일상생활 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나 자신에 대해 투자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체념하기 일쑤였는데, 그것이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니 식은땀이 흘렀다. 이제는 그런 변명을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려야겠다. 그리고 100세 시대를 살면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더욱 알차게 활용하여 나 자신을 개발하고, 나의 미래를 위해 나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겠다.

이러고 보니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소개하는 경제학자 피케티와 그의 『21세기 자본』에 대한 흥미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어지럼증을 느끼는 경제학 이야기이고 분량(한국어판은 820페이지)도 만만치 않은 책이라 선뜻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의 소개를 받아 경제학의 기본 지식을 조금은 알게 되었으니 완전히 무지한 상태에서보다는 한결 수월하리라. 이런 점에서 보면,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기본적으로 그 저술 취지에 걸맞게 피케티의 경제 이론서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안내자 역할을 제대로 완수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나처럼 ‘경제학’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 책만큼은 재밌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