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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오한 얼굴을 손쉽게 이해하고 스스로 활용하는 비법

임상빈 | (주)박영사 | 2020년 05월 30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402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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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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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0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쪽수확인중 | 680g | 153*225*20mm
ISBN13 9791130309798
ISBN10 1130309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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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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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1976년 서울 생으로 어려서부터 미술작가가 꿈이었다. 예원학교 미술과,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과,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풀브라이트 한미교육위원단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예일대학교 대학원 회화와 판화과(Painting & Printmaking)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티처스칼리지 미술과 미술교육과(Art & Art Education)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뉴욕에서 작품... 1976년 서울 생으로 어려서부터 미술작가가 꿈이었다. 예원학교 미술과,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과,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풀브라이트 한미교육위원단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예일대학교 대학원 회화와 판화과(Painting & Printmaking)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티처스칼리지 미술과 미술교육과(Art & Art Education)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귀국하여 현재는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미국 등 국내외의 여러 기관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더불어, 세상을 살면서 깨우친 자신의 예술적인 통찰을 여러 방식의 글쓰기로 기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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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01 세상을 제대로 보고 싶다

2016년 봄, 딸이 태어났다. 말 그대로 얼굴이 빛났다. 그런데 그중에 제일은 단연 눈빛이었다. 그야말로 화살이나 총알과도 같이 내 마음 속 깊숙한 곳까지 뚜렷이 꿰뚫어보는 듯했다. 마치 어둠을 밝히는 프로젝터나 이글거리는 태양인 양, 눈앞에 진한 잔상을 남기며 오래토록 어른거리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런데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 계속 보게 되는 그런 류의 매혹.

물론 당시에 내 딸이 내가 감정이입을 한 만큼 실제로 세상을 잘 본 건 아닐 거다. 우선 광학적으로, 신생아의 눈은 세상을 아직 조형적으로 또렷이 보지 못한다. 명암에 비해 색상은 구분도 못하고. 그리고 인지적으로, 신생아의 뇌는 세상을 아직 의미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한다. 받아들인 정보가 적고 이를 관념화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만, 어른이라고 세상을 꼭 제대로 바라보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순수한 마음에 때가 한번 타기 시작하면 정말 걷잡을 수가 없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도 더불어 그렇게 되고. 물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이 객관적으로 다 맞는 건 결코 아니다. 내가 확신한다고 그게 남에게도 정답이 될 수는 없기에.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색안경’을 통해 세상을 본다. 말 그대로 ‘맨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다들 ‘숨겨진 뇌’로 세상을 보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해당 사회의 문화적 교육과 개인적 기질, 그리고 이해타산 등으로 버무려진 관념을 벗어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서 각자의 삶을 산다. 비유컨대, 뇌는 두개골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뇌는 고유의 개성이 넘친다. 인식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편으로는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하나하나 차원이 다 다르다.

그러고 보니, ‘다중우주’가 따로 없다. 그런데 외롭다. 길거리에 사람은 바글바글한데, 누가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줄까. 다들 각자의 방에서 어림잡아 짐작할 뿐, 사실은 나도 나를 잘 모른다. 그런데 잠깐, ‘나’는 누구지? 누구세요? 어, 이 소리는 또 누구?

그래도 뇌는 혼자가 아니다. 몸의 여러 감각기관을 통해서 다양한 신호를 받는다. 이를테면 눈이 주는 시각적인 정보, 그야말로 휘황찬란하다. 그래서 그런지 남녀노소(男女老小) 불문하고 누구나 자신의 조건하에서 세상을 참 열심히도 바라본다.

눈앞에 나타난 세상은 나름대로 소중하다. 그게 바로 자신이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진정한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설사 감옥의 창문일지라도. 잠깐, 이게 남향? 그러면 왜 밤에 더 잘 보이지? 아, 저게 햇빛이 아닌가?
자기 성격 어디 안 가듯이, 뇌도 마찬가지이다. 비유컨대, 이미 나 있는 창문을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크기, 이중창 등의 구조나 디자인 장식 등, 바라자면 끝이 없다. 그런데 애초에 전등불 켜고 끄는 일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 여기 황제감옥 아니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만족스런 창문을 원한다. 비유컨대, 그래서 때 빼고 광낸다. 혹은 아예 교체하고자 백방으로 부단히도 노력한다. ‘명상팀’에 종종 연락도 해보며. 아, 오늘은 왜 이렇게 인터폰을 안 받지? 이런, 잘 안 보이네. 안경 어디 갔지? 음, 좀 살 것 같다.

나는 이 책이 세상을 바라보는 ‘좋은 색안경’이 되기를 바란다. 비유컨대, 내 눈도, 그리고 창문도 다 ‘색안경’이다. 그리고 없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기왕이면 우수한 품질에 뛰어난 미학이 갖춰져, 눈을 잘 보호해주고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채색해주면 좋겠다. 이를테면 세상을 납작하게 축약해버리는 ‘색안경’으로 세상을 보면 어딜 봐도 참 납작하다. 반면에 세상을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색안경’은 그야말로 황홀하다. 이거 어떻게 업그레이드 하지?

그런데 다른 의복과 마찬가지로, ‘색안경’도 여러 개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알게 모르게. 비유컨대, 뇌는 프로그램 운영체제, 그리고 ‘색안경’은 개별 프로그램이다. 그렇다면 때로는 서로 충돌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물론 심각한 버그를 초래하면 조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무탈하게 잘도 흘러간다. 프로그램마다 개념적으로는 상이한 가치들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예컨대, 다니는 직장과 믿는 종교가 상충되는 데도 전혀 문제없이 사는 사람들, 부지기수이다. 말 그대로 낮 다르고 밤 다르다.

물론 ‘색안경’이 하나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사람에게는 ‘고차원의 미감’이 있다. 따라서 기왕이면 질 좋고 멋진 여러 ‘색안경’을 때에 따라 유연하게 바꿔 끼고 싶다. 그래서 한 번 사는 이 세상, 풍부한 의미를 누리며 미련 없이 삶을 음미하며 살고 싶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실상을 보면, 종종 싸움난다. 나와 너 사이에서, 혹은 내 안에서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고차원적인 수련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우선, 여러 ‘색안경’들을 깊이 이해하자. 비슷하면서도 다른 기능과 가치를 인정하며. 다음, 이들을 널리 활용해보자. 상황과 맥락에 맞게.

이와 같이 내 인식계의 깊이와 폭을 차근차근 넓혀가다 보면, 어느 순간 ‘예술적 인문학’의 경지에 이르러 마침내 ‘예술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지는 않을까. 그러한 뜻깊은 여정에 이 책이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잠깐, ‘색안경’ 좀 닦고. 앗, 너무 셌나?



02 세상을 보는 비법에 속지 마라

세상을 보는 비법이 있으면 참 좋겠다. 이를테면 명약관화(明若觀火)한 공식은 세상을 보는 눈을 명확하게 한다. ‘과학공식’이 바로 그 예이다. 바야흐로 1905년, 현대 물리학의 시금석이 된 수식이 발표되었으니, 이는 바로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특수상대성 이론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는 ‘질량-에너지 등가원리’, 즉 ‘E=mc2’이다.
이 수식의 중요한 전제는 다음과 같다. 우선, 질량과 에너지에는 그 위계의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조건만 충족된다면 질량은 에너지로, 에너지는 질량으로 언제라도 변환 가능하다. 다음, 외부의 간섭 없이 잘 통제된 환경 하에서 그 총량은 항상 일정하다. 이는 이전부터 통용되어왔던 ‘질량불변의 법칙’과 ‘에너지 보존법칙’을 아인슈타인이 통합, 발전시킨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근대 서양철학사에서 상충되던 ‘합리론’과 ‘경험론’을 융합하여 위대한 철학자로 추앙받은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떠오른다. 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은 따로 놀던 ‘질량법’과 ‘에너지법’을 융합했기에 위대한 과학자가 된 게 아닐까? ‘융합과 간략화’의 중요성,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세상이 과연 그렇게 쉬운 공식과 이를 설명하는 단편적인 원리로 축약될 수나 있을까? 만약에 세상이 인격체라면 자신을 단순하게 추출해내려는 사람의 시도에 대해 혹여나 욱하며 성내지는 않을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편향되게 호도하며, 일종의 단세포로 납작하게 축약해버린 듯해서 상당히 불쾌하다며.
그런데 사정을 알고 보면 한편으론 이해도 간다. 세상은 원래 복잡하다. 그런데 사람은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아니다. 즉, 엄청난 연산속도와 거대한 저장장치를 지치지 않고 구동시킬 줄 아는 기계와는 애당초 거리가 멀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스스로 소화 가능한 단순한 공식이 필요하다. 자신의 한계와 조건 속에서 나름대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식의 눈’으로 세상을 섣불리 재단할 수는 없다. 마치 공식 자체가 우주불변의 절대법칙이며, 우주보다 선행해서 존재하는 양. 기껏해야 공식은 사람이란 종족에 특화되어 그들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방편적인 기술일 뿐이다. 즉, 그 원리를 다각도로 이해하고 여러모로 의미 있게 활용하라고 우리 앞에 놓여있을 뿐이다. 영원히 고이 잘 모셔야 할 마법의 신줏단지가 아니라.
03 얼굴은 세상을 보는 통로다

기왕 태어난 거 세상 한번 제대로 살고 가자는데 그게 참 짧다. 하고 싶은 일, 아무리 노력해도 어차피 다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주변을 돌아보면 세상만사,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난다. 각양각색의 시시콜콜하거나 중차대한 사건사고, 온갖 종류의 감정발생, 이입, 교류, 오해, 충돌, 소모… 그리고 논리라는 도구로 치장한 말, 말, 말… 어딜 가도 드라마는 끝이 없다. 나와 너 사이에서, 그리고 내 안에서. 거 참, 얼굴표정 구겨진다.
그래서 뜬금없는 상상으로 마음을 풀어본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 없이도 무탈하게 돌아가는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우선, 사람이 주인공인 역사는 더 이상 없다. 다음, 사람이 발생시키는 감정이나 논리놀이도 없다. 그런데 나 또한 사람이라 그런지, 그런 세상이 한편으로는 어색하고 공허하다. 사람의 패권을 놓친 세상, 자연이나 인공지능에게 최종적인 기득권을 넘겨준 세상, 우리 입장에서는 ‘디스토피아’가 따로 없어 보인다. 사람이 만들어야 진정한 의미지, 참으로 의미 없다.
따라서 근엄한 얼굴표정으로 또박또박 외친다. 사람이 세상이다! 우리의, 우리에 의한, 우리를 위한 온갖 종류의 의미로 가득 찬 세상. 물론 언젠가 상황이 바뀐다면 다른 이야기가 전개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충분히 그러하다. 반면에 사람이 없다고 해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어김없이 해는 뜰 거다. 즉, 자연은 상관 안한다. 이는 인공지능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마찬가지이다. 결국, 사람이 있어서 소중한 건 사람뿐이다. 그래서 난 사람을 바라본다. 그렇다면 세상을 쉽게 경험하는 비법 하나가 떠오른다. 그건 바로 ‘우리들의 얼굴’! 손오공이 경험한 부처님의 손바닥이 그러하듯이, 얼굴을 보면 우리들이 만들어가는 생생한 현재진행형 세상이, 그리고 시공의 한계를 넘어 억겁의 세월을 간직한 우주가 형형색색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어이구, 깜짝이야.

얼굴은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공적인 전시(public display)다. 그리고 각자의 얼굴은 유일무이한 원본성을 가진 일종의 미술작품이다. 그리고 그렇게 보는 순간, 세상이 전시장으로 둔갑하고 수많은 미술작품이 도처에 널려있는 마법이 펼쳐진다. 여하튼, 단체사진을 찍었는데 누군가의 얼굴이 가려졌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얼굴은 각양각색, 자신만의 증표다. 세상에 똑같은 나뭇잎이 하나도 없듯이. 따라서 이는 0과 1로 구성되어 무한 복제, 반복될 수 있는 디지털 코드로만 납작해져서는 안 된다. 적어도 우리 개개인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에서는. 나는 내 인생의 거울이다. 그야말로 생긴 대로 논 건지, 아니면 놀다 보니 그렇게 된 건지. 비유컨대, 나는 작가, 내 얼굴은 미술작품이다. 혹은, 상호 영향 관계를 더 강조하자면, 주저자와 논문의 관계일 수도.

분명한 건, 누군가의 지금 얼굴은 자기 인생의 특정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미국 대통령,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 ‘마흔 살이 넘은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예컨대, 젊은 시절 내내 인상을 찌푸리고 다닌다면 얼굴에 그에 따른 주름이 흔적으로 남는다. MBC 방송국에서 제작되어 1969년에 처음 전파를 탄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의 말마따나 항상 웃는 사람의 주름 또한 마찬가지이다. 즉, 주름이라고 해서 다 같은 주름이 아니다.
물론 공자(孔子, BC 551-BC 479)가 말했듯이 ‘얼굴보다 몸이, 그리고 몸보다 마음이 좋은 게 더 중요’하다. 생각해보면, 얼굴은 몸의 한 부분일 뿐이며, 그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이다. 한편으로,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은 당대의 골상학자들의 ‘골을 부숴버려라’라고 말할 정도로 정신이 아닌 육체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렇지만 겉과 속을 구분하고, 이를 차등의 관계로 만드는 수직적인 이분법은 위험하다. 이를테면 겉모습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속은 어떻게든 겉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즉, 마음이 좋다면 얼굴도 자연스럽게 좋아진다. 한편으로, 겉은 속에 영향을 미친다. 남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그리고 겉모습은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를 한다. 가끔씩은 속마음을 화끈하게 드러내며, 혹은 그 이상으로. 예를 들어 우리는 전시장에서 ‘미술작품(겉모습)’을 대면하고는 ‘작가의 영혼(속마음)’을 느낀다. 굳이 작가와 함께 살거나 긴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깨끗한 눈으로 고차원적인 너머의 세계를 쉽게 체감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에는 보는 사람의 내공과 통찰력, 지난한 훈련과 화끈한 깨달음이 요구된다. 이를 갖춘다면 미술작품과 마찬가지로, 얼굴 또한 영혼으로 가는 유일하지는 않지만 매우 효과적인 통로가 된다. 그래서 그런지 역사적으로 수많은 작가들이 자기 자신, 혹은 다른 이들을 그토록 많이도 그려왔다.

나아가, 미술작품을 얼굴로 간주하고 접근할 경우, 새로운 해석과 음미가 가능해진다. ‘미술작품의 얼굴화’라니, 이는 개인적으로 내가 자주 즐기는 방식이다. 여러분도 이 책의 내용을 여타의 작품 감상에 한번 적용해보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이를테면 추상화를 보고 생뚱맞게 눈과 코, 그리고 턱 등을 느낀다니, 재미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게 말이 되는 경우가 정말로 많다!

그야말로 모든 미술작품은 누군가의, 혹은 무언가의 단독, 혹은 집단 ‘초상화’이다. 다른 분야의 여러 산물들이 비유적으로 또한 그러하겠지만, 시각언어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개인적으로 보면,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다 나오거나 부분만 나오건, 정면이거나 측면이건, 아니면 또렷하게 그려졌거나 아니건 간에 작품에 보통 눈은 있더라. 즉, ‘눈 맞추기’야말로 수많은 대화의 시작이다. 아, 눈 또 어디 갔지?
04 수많은 얼굴을 관찰했다

얼굴은 호기심의 대상이자, 시선이 시작하는 관문이다. 그리고 몸의 주인공이자, 한 인격체의 아우라(aura)를 발산하는 로고(logo)다. 미술작가로서 나는 종종 얼굴을 그린다. 보통은 낙서로 그치곤 하지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열심히 관찰한다. 내 나름대로 터득한 ‘매의 눈’으로.

그런데 가끔씩 관찰되는 대상이 나의 시선을 인식하고 불편해하는 경우가 있다. 다분히 조형적인 관심인데 다른 식으로 오해받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조심하는 편이다. 내 눈만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소중한 시선은 아니기에, 그리고 내 의도가 아니더라도 상대방의 해석과 그에 따른 느낌 또한 존중해주어야 하기에.

반면에 미술작품은 나를 오해하는 법이 없다. 아무리 뚫어지게 쳐다봐도, 온갖 부분의 사진을 계속 찍어대도 도무지 뭐라 그러질 않는다. 그래서 나는 미술작품 속 얼굴을 정말 열심히 관찰한다. 물론 가끔씩 주변 사람들이 뭐라 그러긴 한다. 한번은 작품 속 얼굴을 열심히 찍고 있는데, 옆에서 ‘대머리에 관심이 많나봐’ 하며 웃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미술작품에 드러난 얼굴이 세상 모든 사람의 얼굴을 골고루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수없이 많은 얼굴이 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정치적, 관료적, 교육적 성향의 공공기관이 가진 한계나, 소위 고상한 문화에 대해 역사적으로 형성된 고정관념, 혹은 지구촌 패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거대한 기득권의 음모(?)가 드러난다.

이를테면 전반적으로 동양인보다는 서양인의 얼굴이 더 많다. 주인공으로는 당대의 권력자나 유명인, 즉 기득권의 얼굴이 더 많다. 누드의 경우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다. 또한, 행복하게 웃는 표정보다는 근엄한 표정이 더 많다. 그리고 사실 그대로라기보다는 당대의 기준에 따라 나름 이상적으로 미화되거나, 다분히 의도적으로 과장된 얼굴이 아마도 더 많다.

하지만, 여기에는 장점도 있다. 특정 미술관의 방침, 개별 작가의 의도, 그리고 그 작가가 살던 당대 지역문화의 시대정신 등이 버무려진 얼굴들은 연구의 가치가 충분하다. 왜냐하면 얼굴뿐만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색안경’까지도 함께 볼 수 있어서 그렇다. 그러고 보면 ‘관찰을 관찰’한다니, 이런 ‘비평적 거리’야말로 고차원적으로 의미 있는 지적 활동이다.
더불어, 미술작품을 보며 얼굴을 논한다니, 기왕이면 다홍치마다. 그래서 이 책의 전체 제목은 ‘예술적 얼굴책’, 그리고 II부, ‘실제편’의 모든 도판은 미술작품이다. 하지만, 기존의 미술사 책과는 애당초 거리가 멀다. 각 작품에 얽힌 작가의 전기나 시대적인 배경 등, 통상적인 미술사적 지식보다는, ‘얼굴 자체의 미학적인 표정과 이로부터 연상되는 창의적인 내용 간의 유기적인 어울림’에 기본적으로 주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사적 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평상시 얼굴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언제라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알게 모르게 예술적인 소양을 쌓으며 자신의 업무나 일상생활과 연관짓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나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미술작품 속에 있는 얼굴들에 매우 친숙하다. 실제로 이 미술관은 지금까지 내가 가장 많이 방문한 미술관 중 하나이다. 특히 2019년에는 정말로 많이… 아마도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내가 가장 빈번하지 않았을까?

물론 예전에도 엄청 많이 갔다. 특히, 2008년과 2010년… 우선, 2008년에 나는 ‘미술관 프로젝트’를 한창 진행 중이었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도 내가 가장 애정을 가졌던 미술관이 바로 여기였다. 한동안은 그야말로 매일같이 방문해서 미술관의 주요 전시장 작품들을 사진으로 찍고 또 찍었다. 이를 토대로 변형, 과장, 왜곡된 가상 미술관을 만드는 작품을 총 8개나 제작했었다.
촬영이 끝난 후에는 작품을 제작하다가 개인적으로 황당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3주간에 걸쳐 기초 자료를 정리해서 한 외장하드에 넣어놓았는데, 누군가가 차량 뒤 창문을 깨고 그게 담긴 가방을 절도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3주간 작업해서 복구했던 쓰라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도 그렇게 탄생한 작품 중 하나(Modern Art, 2008)를 오랜 기간 동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현대미술 부문 큐레이터를 지낸 낸 로젠탈(Nan Rosenthal, 1937-2014)이 구입을 했다. 이를 자신의 뉴욕 아파트에 걸어놓고 그 작품을 판매한 뉴욕의 갤러리 디렉터와 나를 초대해서는 낮술을 거나하게 함께 마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하튼, 그 인연이 이어져 2012년에 같은 갤러리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의 내 작품을 집대성한 도록(SANGBIN IM: WORKS 2005-2012)이 출간되었을 때 그 책의 서문을 써주기도 했다.
한편으로, 2010년에는 미술관 내부뿐만 아니라 그 건물 주변에서도 서성거리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당시에 그곳을 빈번하게 들락거리다 보니 미술관의 정문 앞 계단에 앉아서 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계단에 앉아있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쏠렸다. 결국, 매일같이 미술관 앞에 가서는 계단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를 조합해서 작품(People-Met Museum, 2010)을 만들었다. 이후에 그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구매하여 새롭게 단장된 서울관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방문 횟수, 그리고 그곳에서 보낸 시간의 총량을 고려한다면, 2019년이 단연 으뜸이다. 그러고 보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내 인생의 사랑? 여하튼, 그곳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 중에 대략 내 엄지손톱보다 큰 얼굴들은 거의 다 찍었다. 게다가 여러 각도로. 어느 순간이 되니 전시장 지킴이들이 나를 알아볼 정도였다. “도대체 왜 매일같이 와서는 일일이 다 찍느냐,” “찍은 건 뭐 하러 또 찍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래서 “관람객이 한두 명도 아닌데 관찰력이 정말 대단하다”며 도리어 칭찬도 해주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찍은 사진들을 하나하나 다시 살펴보며 찬찬히 음미했다. 중요한 내용들은 글로 남기고, 미술작품으로도 풀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말 그대로 ‘고속 재생’ 속도로 흘러갔다. 그리고 다시 미술관에 방문, 현장에서 관찰하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나는 내 인생의 2019년을 훌쩍 건너뛰었다.
참고로, 이 책에 사용된 모든 미술작품은 내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찍은 사진들로 제한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작품으로 범위를 넓히면 더 다채로울 것이다. 개인적으로 다른 자료도 많다. 하지만, 영역을 제한하는 데에는 장점도 있다. 이를테면 한 사람의 시간은 한정적인 데다가, 나는 작가다. 즉, 모든 미술관의 전문가가 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이는 사실 어느 누구라도 그렇다.
따라서 한 기관에 집중하여 이에 통달하는 게 한 개인이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할 만하다. 게다가, 한 기관을 작은 세상으로 간주할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그 기관에 종사한 많은 전문가들의 자료 수집과 작품 전시, 그리고 예술담론과 문화연구의 역량에 자연스럽게 의지하게 된다. 그래서 든든하다. 한편으로 비판적으로 보면, 그 기관의 태생적, 문화적, 정치적 한계 등도 알게 모르게 여실히 드러내게 된다. 그래서 뿌듯하다.
그렇다면 이 방법론은 창작과 학문을 생산적으로 융합해주는, 예술가가 수행하는 ‘작가 주도 연구(artist-led research)’의 적절한 사례가 아닐까. 그간 심화, 확장해온 작품세계의 일환으로도 간주되고. 그러고 보니 이는 2011년 초에 제출한 내 박사논문(The Generative Impact of Online Critiques on Individual Art Practice)과 여러모로 통한다. 그 논문에도 역시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프로젝트가 주된 논의의 대상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 미술관은 내 마음의 고향, 그리고 나의 텃밭이다. 나 너 좋아. 진심으로 고맙고 열렬히 감사하다.




05 전통적인 ‘관상이론’은 문제적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미술작가로서 ‘관상이론’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동양의 전통문화가 저평가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테면 내가 관상 얘기를 하면 구식 문화의 소산이라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관상이론’뿐만이 아니다. ‘성리학’이나 ‘유교’ 얘기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특정 얼굴에 대한 ‘관상이론’의 해설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는다. 하지만, 선조들이 세상을 이해해온 나름의 슬기가 여기에 담겨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는 물론 요즘의 인공지능이 참조하는, 객관적인 수치로 산출된 빅데이터 통계자료와는 애당초 거리가 멀다. 오히려, 당대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자기 확증편향’과 통한다.
그렇지만 ‘관상이론’은 믿음의 문제와는 별개로 연구의 가치가 차고도 넘친다. 이를테면 그 기저에 깔려있는 편향 또한 그 시절의 벌거벗은 초상화다. 비평적인 눈을 가지고 그들이 그동안 구축해온 이야기의 얼개와 구체적인 방법론,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시대정신을 음미하다 보면, 참 많은 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과거의 풍요로운 전통과 단절되는 것은 여러모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 전반이 급격히 현대화되고, 서구의 이론을 새롭게 수용하면서 전통에 대한 고질적인 편견의 뿌리가 상대적으로 더욱 깊어진 듯하다. 그런데 자신의 뿌리와 강점을 살리지 못한다는 건 참 아쉬운 일이다. 게다가, 광의의 의미에서 ‘관상이론’은 국지적인 유행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범국제적인 관심사였다.
대략적으로 관상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공자의 동양,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양은 나름의 ‘관상이론’을 발전시켜 왔다. 우선, 동양에서는 기득권자 편향의 이론이 체계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테면 관직 선발에서 충신을 가려내는 등, 일종의 면접 참고자료였다. 다음, 동양도 그렇지만, 특히 서양에서는 사람의 얼굴을 동물과 연결 짓는 등, 이를 나름대로 학문화했다. 그런데 르네상스를 지나 근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이를 ‘유사과학’이라며 도외시했다.
한편으로, 독일 ‘나치즘(Nazism)’에 의해 이 이론은 인종별 우위를 가리는 ‘우생학(eugenics)’으로 정치적으로 왜곡되어 활용되기도 했다. 그 이후에는 이를 효과적인 인간관계의 ‘처세술’, 원하는 바를 성취하려는 ‘성공학’ 등으로 부드럽게 적용하는 시도를 통해 대중적인 관심을 다시금 이끌어냈다. 그리고 4차혁명 시대에 이르러 요즘에는 범죄자 검거나 범죄 예방을 위한 CCTV 기술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의 활용과 맞물리면서 특정 행위를 한 인물이나 특정 성향의 인물을 얼굴로 가려내는 방식이 특정 지역에서 유통되며 이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갔다.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공포와 더불어.
개인적으로 나는 전통적인 ‘관상이론’에 대한 의구심이 크다. 이는 종종 결과론적이고, 교조적이며, 지식 중심적이다. 그래서 문제적이다. 예를 들어, 송나라 때의 ‘마의상법(麻衣相法)’으로 대표되는 동양 관상을 보면, 특정 종족을 정당화하고 성차별을 당연시하는 성향이 강하다. 또한, 사고를 위한 개념적인 틀이라기보다는 이미 정해진 운명인 양, 정답이라고 가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읽다 보면 정말 가끔씩 대책이 없다.
예컨대, ‘마의상법’에서는 눈두덩이 넓고 퉁퉁하면 ‘전택궁(田宅宮)’이 좋다고 하여, 이는 ‘논밭과 집, 즉 부동산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하지만, 세상을 그렇게 판단하는 순간, 사방에서 예외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그 부위가 좋은데도 빈곤하거나, 나쁜데도 풍족한 사람들은 항상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변명이 필요하다. ‘관상이 다가 아니다’. ‘손금, 혹은 사주팔자가 더 우선시 된다’, ‘복합적으로 다른 운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를 상쇄하기 위한 이러저러한 노력의 결과이다’, ‘운대가 이렇게 흘러서 그렇다’ 등으로. 즉, 논리적으로 ‘그래서 그렇게 되었나보다’라고 받아들이도록 그럼직한 근거를 대며 끊임없이 방어를 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인다.
그런데 그게 지속되다 보면, 결국에는 궁색해지면서 어느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말을 쏟아놓으며 공회전하기 십상이다. ‘넌 몰라’라는 식의 신비주의나 유사과학적인 태도로 담을 쌓든지, ‘너 자꾸 그러면’이라는 식으로 엄포를 놓든지 하며. 이는 어쩔 수가 없다. 결론을 먼저 내놓고 사후 판단에 의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하는 식으로 자가당착적인 논리로 자꾸 맞춰가다 보니.
전통적인 ‘관상이론’과 관련해서 ‘어떤 위치의 어느 부분은 무엇을 의미한다’라는 단언은 특정 조형과 특정 내용을 동일률의 관계로 억지로 연결한 것이다. 즉, ‘상징적 폭력’이다. 이를테면 눈두덩이 복이라는 사고는 당시에 영양공급이 부족해 거기가 홀쭉해진 서민들에 대한 사상적인 압제가 되기도 한다. ‘사회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문제’라는 식의.
이는 그렇게 된 연유를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인과관계를 뒤집어버린 것이다. 즉, ‘인과의 오류’이다. 이를테면 당시에 영양공급이 잘 되었기 때문에 살이 쪄서 부자들의 눈두덩이 퉁퉁해진 것이지, 거기가 퉁퉁하기 때문에 복이 생긴 게 아니다. 비유컨대, 밥을 먹으니 배불러진 것이지, 배불러서 밥을 먹는 게 아니다. 오히려 문장의 의미로 보자면, 배부르고 싶어서, 혹은 배고파서 밥을 먹는 것이 사리에 맞다.
결국, 전통적인 ‘관상이론’에 함의된 ‘결정론적 운명론’은 문제적이다. 비유컨대, 얼굴은 미술작품이다.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 수많은 이야기를 할 뿐. 이는 그저 뭐를 믿고 마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검증 불가능한 예전의 권위에 기대어 지식의 암기를 통해 관상 전문가가 되어 비전문가를 계도하려는 환상은 건강하지 않다.
더불어, ‘아니면 말고’ 식을 넘어선 책임 있는 의견이 중요하다. 그런데 관상 얘기를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풀이하는 ‘관상을 믿지 마라. 재미로 봐라’라는 식의 전제를 다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는 책임감이 결여된 태도이다. 같은 맥락에서 ‘결국에는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노력과 의지, 정신수양이 중요하다’는 식의 따뜻한 조언 역시도 자칫하면 책임 회피용이 되기 십상이다. 주의를 요한다. 물론 나도.
06 [예술적 얼굴표현법]을 제안한다

얼굴을 읽는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선조들의 슬기를 취하면서도 앞으로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작가로서 나는 동양과 서양에서 다른 방식으로 확립된 관상(physiognomy, face reading)이론, 그리고 미세표정(micro expression)이론 등과 관련된 심리학이론, 그리고 전반적인 해부학이론 등에도 관심을 가져왔다. 물론 역사적으로 얼굴을 소재로 한 미술작품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렇지만 이 이론들을 예술과 적극적으로 관계 맺는 시도를 보지는 못했다. 이 책은 그러한 시도의 일환이다.
나는 그동안 내가 여러모로 활용해온 [얼굴표현법]을 이 책을 통해 [얼굴표현표]로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더불어, 이를 적용하는 방식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제시했다. 즉,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조형적으로 공감하는 미감을 창의적인 이야기로 이해하고, 나아가 가치 있는 의미의 실타래로 풀어냄으로써, 미술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여러 인문학도들이 진지하게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하고자 했다.
앞으로 내가 제안하는 ‘예술적 얼굴표현론’이 여러모로 새 시대의 요청에 맞는 효과적인 대안이 되기를 기대한다. 비유컨대, 나는 이 책에서 내가 그동안 몰래 즐겨 써왔던 ‘색안경’의 비법을 전격적으로 공개한다. 속삭여보건대, 그야말로 착용해볼 가치가 차고도 넘치니 기대 바란다. 게다가, 나름 명료해서 사람이 사용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다. 아니, 사람이기에 딱 좋다!
물론 알고 보면, 이 비법은 공감이 어려운 유일무이한 별종이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선배들과, 그리고 당대의 많은 동료들과 여러모로 통하는 지점이 많다. 예를 들어, 음과 양의 끊임없는 상호 영향 관계를 기반으로 한 동양의 ‘음양(陰陽)’ 사상은 나만의 공식을 도출해내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최소한으로는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존중하며 진지하게 사고하는 한 개인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고백’이다. 그리고 최대한으로는 치열한 고민과 토론을 통해 확장, 심화해 나갈 만한 시대정신의 화두가 되는 ‘이야기보따리’이다.
이는 터럭 하나도 건드려서는 절대로 안 되는 폐쇄적인 구조라기보다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가능한 ‘개방형 오픈소스(open source)’이다. 즉, 화끈한 업그레이드나 지속적인 업데이트, 혹은 위계를 흔드는 해킹 등이 가능하도록 출시된 기본형 제품이다. 비유컨대, 안경의 초점, 착용감, 시야 등에 조정이 필요하다면, 여기서는 각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 자기 눈은 스스로가 제일 잘 알기에.
나는 교조적인 닫힌 강령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린 예술담론을 지향한다. 바라기로는, 저자가 터득한 얼굴표정에 대한 공식과 그 이면의 원리를 찬찬히 살펴보고, ‘저자는 얼굴을 이런 방식으로 느끼는구나,’ ‘나름의 의미를 이렇게 만들고 예술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구나’를 경험하다 보면, 각자의 ‘색안경’의 폭을 확장하고 깊이를 심화하는 데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저자 나름의 통찰을 자신의 통찰과 비교하는 기회로 삼으면서.
한편으로, 이 책의 내용을 인공지능이 활용한다면 흥미로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물론 그 경우에는 사람과는 사뭇 다른 종류의 이야기로 흘러가겠지만. 기본적으로 인공지능은 수많은 얼굴 표본을 통계적으로 연산, 분석,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객관적인 기준을 수치적으로 정당화해나가는 데 능하다. 앞으로는 이와 같은 역할이 각계각층에서 더욱 첨예하게 요구될 것이다. 분명한 건, 그들이 잘하는 건 그들이 해야 한다.
난 내가 잘하는 걸 하자. 기본적으로 이 책은 우리를 위한 책이다. 객관적인 기준과 명쾌한 사실보다는 주관적인 판단과 묘한 해석에 의존하는, 즉 ‘예술하기’이다.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려면, 스스로가 원하는, 그리고 내가 잡을 수 있는 고기를 잡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건 바로 통계적인 전체구조보다는 개별적인 파편상황의 관념적인 힘과 예술적인 가능성, 즉 ‘사람의 맛’에 찌든 ‘주관성’이다.
그렇다. 내가 보는 세상이 내가 느끼는 세상이다! 우리 각자가 자존감을 가진 변칙적인 특정 개인의 개성적인 맛을 간직한 ‘맞춤 색안경’을 가지고, 각자의 ‘이야기보따리’를 진심과 열정으로 펼쳐내며, 이래저래 상호 간에 생산적으로 섞이다 보면, 언젠가는 ‘4차혁명’을 넘어서는 ‘5차혁명’, 즉 ‘예술혁명’이 도래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항상 그래왔지만, 이제는 더더욱 누구라도 ‘스스로 예술가’가 되어야 당면한 세상을 더욱 의미 있게 살 수 있다. 예술은 그야말로 ‘사람의 맛’을 내는 열쇠다. 이는 관심과 공감, 비판과 논쟁, 성장과 발전 속에서 더더욱 생생해진다. 게다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든다.
앞으로 내가 제시하는 ‘맞춤 색안경’과 이를 통해 풀어내는 ‘이야기보따리’, 기대 바란다. 연유도 모른 채 그래야만 하는 양, 모양과 위치별로 하나하나 세세하게 외워야 하는 기존의 ‘백과사전식 관상이론’은 이제 그만 잊자. 누가 뭐래도 ‘예술하기’는 ‘간접 소비’보다는 ‘직접 창조’가 제 맛이다. 이 책에서 나는 이를 실천한다.
사람의 정답은 결국에는 맞춤이다. 따라서 다른 ‘맞춤 색안경’과 다른 ‘이야기보따리’, 환영한다. 기왕이면, 다양한 눈으로 다양한 얼굴을 통해 다양한 세상을 즐겨보자. 결국에는 나름대로 파악한 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창의적으로 적용해보는 시도가 중요하다. 즉, 공식은 간단해서 머리로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활용은 열정적이라 심장으로 마음이 울리게.
자, 이제, ‘얼굴 우주계’로 여행을 떠난다. 특별한 여행이 될 저의 우주선에 탑승한 여러분, 반갑습니다! 일정상 이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뉩니다. 우선, ‘이론편’에 도착합니다. 다음은 ‘실제편’이고요. ‘이론편’에서는 간략한 얼굴이, 그리고 ‘실제편’에서는 복잡한 얼굴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여행의 순서는 같고요, 이를 거치면 하나의 여행 일정이 비로소 완성됩니다. 한편으로는, 두 개의 트랙이 함께 가는 ‘대위법’이구요! 함께 하면 아름다운 노래라니,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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