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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눈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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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 김영사 | 2013년 03월 26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138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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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3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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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13 9788934919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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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1명)

어린 시절의 꿈은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하여 다섯 시면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었다 한다. 책읽기는 그가 그토록 무서워하고 미워했던 아버지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학교를 싫어했던 그는 삼중당문고를 교과서 삼아 열심히 외국 소설을 독파했고, 군입대와 교련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핑계로 드디어 1977년 성서... 어린 시절의 꿈은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하여 다섯 시면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었다 한다. 책읽기는 그가 그토록 무서워하고 미워했던 아버지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학교를 싫어했던 그는 삼중당문고를 교과서 삼아 열심히 외국 소설을 독파했고, 군입대와 교련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핑계로 드디어 1977년 성서중학을 끝으로 학교와의 인연을 끊는다. 그러나 1979년 폭력범으로 소년원에 수감되면서 그는 학교와 군대의 나쁜 점만 모아놓은, 세상에서 가장 몹쓸 지옥인 교도소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의 경험은 「하얀몸」을 비롯한 그의 시의 바탕이 된다.

오랜 정신적 방황을 겪은 그는 박기영을 스승으로 삼아 시를 배우기 시작하여 마침내 1984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시운동』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왕성한 시작 활동을 하였고, 1987년에는 희곡 「실내극」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극작활동도 시작한다. 그리고 같은 해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고 연이어 시집 『길안에서의 택시잡기』를 발표하면서, 지금껏 문단에서 경험해본 적이 없던 '장정일'이라는 '불온한 문학'이 드디어 '중앙'에 입성했음을 알린다.

1988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단편 「펠리칸」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를 겸업하기 시작한 그는 소설집 『아담이 눈뜰 때』(1990), 장편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2),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1994)를 연이어 발표하고 이 소설들이 모두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며 '장정일'은 드디어 우리 문화의 뚜렷한 코드 상징으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1996년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발간한 후 그가 파리에 있는 그의 아내인 소설가 신이현을 만나러 출국한 사이, 한국에서는 외설시비가 일어나고 자신의 소설이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포르노로 규정받고 있던 그해의 마지막날, 장정일은 파리에서 자진 귀국하여 당당히 자신의 작품에 대해 변론한다. 그러나 영화 <거짓말>이 무죄판결을 받은 것과 대조적으로, 법원의 최종판결은 유죄. 그리고 또 한번의 구속으로 이어진다. 당시 그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강금실은 후에,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라는 책에서 당시의 장정일과 재판에 대한 글 <장정일을 위한 변명>을 썼다.

그 사이 한국에서의 평가와는 달리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일본에서 발간되는 등 해외에서 더 호평을 받고, 그는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는 『중국에서 온 편지』(1999)와 자전적 소설 『보트하우스』(2000)를 펴낸다. 그의 '독자 후기'를 모은 『장정일의 독서일기』도 5권까지 펴내며 그는 지금 대구에서 평생 소원인 책읽기와 재즈듣기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머리같이 쓸데 없는 데서는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노모가 바리깡으로 직접 깎아주는 빡빡 머리와 헐렁한 골덴 바지 그리고 청색 면 티 차림을 하고.
저자 : 장정일
시, 소설, 희곡, 시나리오 등 모든 장르의 글을 발표함으로서 우리 문화계의 뚜렷한 코드 혹은 상징으로 자리 잡은 그는 1962년 경북 달성에서 태어났다. 1984년 무크 『언어의 세계』3집에 『강정 간다』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어 1987년 희곡 『실내극』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극작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시집 『햄버거에 관한 명상』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며,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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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왜 다시 장정일인가?
한국 문단의 가장 문제적인 작가, 21세기를 이끌 젊은 예술가, 장정일!

장정일의 문학은 80년대의 엄숙한 지적 분위기에 대한 환멸의 표현이자, 문화 전반에 보내는 통렬한 야유로 시작되었다. 그 출발의 연장선상에서 장정일은 ‘신세대’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의 시대, 90년대라는 터전 위에서 ‘새로운 도시 세대의 감각’, ‘젊은 작가의 불온한 상상력’이라 불리는 문학 세계를 펼쳐 놓았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장정일에 대한 평가는 ‘90년대 한국 문학이 거둔 귀중한 성과 중 하나’라는 긍정적 반응과 ‘소비사회와 포스트모더니즘을 교묘하게 이용했을 뿐’이라는 반론이 양 극단에서 팽팽하게 대치되어 왔다. 한 작가에 대해 이렇게 상반된 평가가 나오는 까닭은 ‘새로움’으로 무장한 그의 작품이 신선했던 만큼 이질감도 컸기 때문이다.
장정일의 작품은 출간시마다 ‘젊은 작가’, ‘새로운 시대’, ‘세기말적 감각’으로 논의되었다. 그의 문학에 대한 이러한 독자의, 평단의, 나아가 사회의 조명은 한때의 소동으로 그칠 일은 아니다. 장정일의 초기작 『아담이 눈뜰 때』가 1992년 일본에서 번역 출간되었을 때, 아사히신문 사설에서는 ‘지금 한국이 변하고 있다’라고 호평했다. 이처럼 그의 문학적 영향력은 이미 국내외를 넘나들고 있으며, 한국 문단과 사회에 큰 변화의 물결을 불러일으켰다. 장정일의 작품이 그의 시대를 앞선 감각과 도발성으로 인해 낯설게 느껴졌다면, 이제 시간이라는 숙성의 과정을 지나 좀 더 객관적으로 탐구되어야 할 과제이자 사건으로 바라보아야만 한다.


누구나 장정일을 안다고 한다. 그러나 장정일만큼 잘못 알려진 작가도 없다.

젊은 감각과 도발성으로 신세대 문학의 선두가 되었던 작가,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장정일’이란 이름 자체가 화두와 코드로 상용되는 작가, 최연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작가, 외설이냐 예술이냐 그 경계에 위태롭게 서있던 작가, 시ㆍ소설ㆍ 희곡ㆍ 시나리오 등 모든 장르의 글이 영화화되고 연극 무대에 올려진 특이한 이력의 작가…….
누구나 장정일을 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작품으로 그와 그의 문학 세계를 알아간 이는 드물다. 장정일은 시에서 출발하여 희곡, 소설, 시나리오 등으로 장르를 옮겨갔으며, 모든 장르의 글이 영화화되고 연극 무대에 올려지는 과정에서 ‘대중적이지 않은 대중작가’가 되었다. 그의 이런 전방위적 작품 활동과 소위 ‘거짓말 사건’으로 불리는 필화 사건은 장정일이란 인물을 문학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즉 문학판을 넘어 대중과 사회 속에서 회자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장정일의 문학, 그의 감수성과 상상력은 90년대 잠깐 반짝이던 일회적이고 유한한 감각이 아니다. 그리고 장정일의 작품은 과거의 문학이 아니다. 지금도 살아서 꿈틀대는 감수성과, 경악과 환희의 경계에 선 도발성, 때론 매혹적으로 또 때론 악마적으로 다가오는 장정일 인물들의(혹은, 장정일 자신의) 내밀한 속삭임. 이제 그의 작품을 통해서 그의 문학에 폭넓고도 깊이 있게 다가가야 한다. 독자들은 그곳에서 21세기가 간절히 바라는 장정일 문학을 다시 한 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장정일 문학 선집

“나는 문학이 직업이 아니라면 구역질이 난다”
스물한 살 때,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문학이 직업이 아니라면 구역질이 난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금의 나에서 또 다른 나로 이전해 가고 싶다는 욕구가 나를 독재자처럼 지배했다. 내가 시에서 희곡으로, 희곡에서 소설로 마구 장르 이동을 하게 된 이유도 어쩌면 나의 삶을 독재자처럼 휘둘렀던 그 ‘변신욕망’, 여러 겹의 삶을 살고 싶다는 안타까운 욕망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내 삶을 뿌리부터 ‘갈이’ 하지는 못하였으나 장르 이동은 시인이 아니라 극작가로, 극작가가 아니라 소설가로 살 수 있게 해주었다.---장정일

1. ‘사춘기를 도둑맞은 세대’의 좌절과 모색의 기록 『아담이 눈뜰 때』
1990년대 이후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신세대 문학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신세대 소설의 신화가 된 소설 『아담이 눈뜰 때』. 시인에서 소설가로 변신한 장정일의 첫 창작집인 이 책은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희망과 절망, 감옥과 같은 현실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예정된 좌절을 보여준다. 표제작 『아담이 눈뜰 때』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세상을 읽어낼 수 있는 조숙한 영혼을 지니고 있는 19세 소년 ‘아담’을 내세워, 성이라는 파격적인 사회화 과정을 통해 현실 세계를 직접 체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제7일> <아이> <실크 커튼은 말한다> <펠리컨> <아버지를 찾아가는 긴 여행> 등의 작품은 세계라는 감옥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대인들의 비극과 권태, 그리고 두려움을 함께 묘사하고 있다.
‘세기말’이라는 화두가 떠오른 90년대의 시작점에서 전통적인 가치와 권위가 붕괴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가치 기준은 제시되지 않는 현실. 그 혼란한 과도기 속에서 기성질서에 거칠게 부딪치는 젊은 세대, 그들의 좌절과 모색의 기록은 장정일의 뜨거운 문체로 보고된다.

나는 비로소 마음을 놓고 큰 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가짜 낙원에서 잘못 눈을 뜬 아담처럼. 내 이브는 창녀였으며, 내 방은 항상 어둡고 습기가 차 있다. 어쩌다 책이 썩는 냄새를 없애려고 창문을 열면, 네온의 십자가 아래서 세상은 내 방보다 더 큰 어둠과 부패로 썩어지고 있다. 나는 내가 눈뜬 가짜 낙원이 너무 무서워서 소리 내어 울었다. -본문 중에서

2. 불행한 사회의 불행한 존재이전 『너에게 나를 보낸다』
생이란, 섹스란 무엇인지를 충격적으로 펼쳐 보이는 장정일의 첫 장편소설. 동명으로 영화화되어 큰 관심을 불러 모으기도 한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나’, ‘은행원’, ‘바지 입은 여자’, 세 주인공의 인생유전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표절작가로 낙인찍힌 주인공 ‘나’는 돈 때문에 포르노 소설을 써대는 작가이다. ‘바지 입은 여자’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자신의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화려한 변신을 한 ‘바지 입은 여자’의 운전사 겸 가방 들어 주는 사람으로 전락하여 또 다른 삶을 맞이한다. ‘바지 입은 여자’는 공장의 여공이었지만 노동예술제에 시를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엘리트 민중문학 평론가 ‘오만과 자비’의 동거녀가 된다. 동거가 파경에 치닫는 과정에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바지 입은 여자’는 ‘나’의 표절작품을 보고 정신병에서 깨어나 ‘나’를 찾아온다. 그녀는 ‘나’를 작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너무나 아름다운 엉덩이를 가진 탓에 광고 모델 겸 영화배우로 활약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은행원’은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충실한 인물이다. 그는 유리 박스 안에 갇혀 잔돈 바꿔 주는 일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며, 결국 ‘나’와 ‘바지 입은 여자’가 버린 타자기로 작품을 써 일약 유명 소설가가 된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 삶이 바뀌는 인물은 위의 세 주인공만이 아니다. 민주투사가 감옥에서 요리책을 보고 주방장이 된다거나 안기부 직원이 청와대 사칭 사기꾼이 된 이야기, 그리고 술집 아가씨와 결혼해 여고 앞에서 분식집을 차리는 젊은 시인의 이야기……. 이 소설은 불행한 사회의 불행한 존재이전들로 가득 차 있으며, 변화하지 않는 삶, 일회적인 삶에 대한 거부의 욕망이 장정일만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펼쳐진다.

인간존재의 유한성과 일회성. 나는 늘 그것이 두려웠고, 현대사회가 강제하는 요지부동의 존재구속이 갑갑했다. 그래서 무한한 다원성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작가에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내 삶을 바꾸고 싶다는 모든 ‘공상’이 소진된 끝에 나는 ‘이 멍청아, 지금의 나에게 다른 나로 전이해 가고 싶다는 변신의 꿈을 어떻게 너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니?’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 누군들 불변하는 자신의 삶에 불만족이 없겠는가? ---장정일

3. 악의 없는 거짓말로 이루어진 세계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대기업의 말단 사원인 서른 살의 남자가 있고, 그가 순결하게 사랑하는 처제가 있다. 그리고 그 처제와 한가족이 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결혼한 바람둥이 아내가 있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는 이와 같은 근친 속의 삼각관계를 끊임없이 반복 설명하며 그때마다 세부적인 디테일들을 조금씩 즉흥적으로 변주한다.
하루 종일 방에서 다섯 개의 비디오를 보며 양파링 다섯 봉지를 걸신들린 듯이 먹어치우고 국산 도색영화에 자극되어 섹스를 하는 부부. 먹고 자극받고 배설하는 것. 이 소설은 이 같은 본능적인 행위를 포장하는 문화적 코드인 ‘양파링, 비디오테이프, 섹스’, ‘햄버거, 화장실의 낙서, 수음’, ‘김밥, 미니스커트, 간통’ 등으로 계속 변주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재즈는 정확한 악보가 없는 무한한 변주의 음악이다. 삶은 재즈와 같이 변덕스럽고, 슬프며,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장난 같은 선율로 무한히 변주된다.
작가 스스로 ‘불협화음과 반복되는 장식음의 변주, 즉흥적인 돌발성을 특징으로 하는 재즈 음악과 같은 글쓰기’로 풀이한 이 재즈적 글쓰기는 1994년 출간 당시 경박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평과 반대로 신세대의 감수성을 잘 표현한 살아 있는 언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받았었다.

재즈를 쿵다락 닥닥 하는 음악으로만 한정시키지 말게. 흔히 우리는 지금 다원주의 세계, 다민족주의 세계, 다종교주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데 그게 바로 재즈네. -본문 중에서

내가 이해하고 있는 세계는 진실보다 악의 없는 거짓말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다. 세계가 그렇게 가변적일진대 왜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성격과 생김새, 시간과 공간이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어야 하고, 소설가가 쓰는 통사구조는 완벽해야 할까?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에 동일한 인물이 그때그때의 감정에 따라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다가 추하게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니 167센티의 키에 35-24-34의 몸매를 가진 46킬로그램의 여주인공이 170센티의 키에 34-24-35의 몸매를 가진 50킬로그램의 여인으로 바뀌는 설정이 진실성을 결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위증이 더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장정일

4. 환상과 아이러니로 꿈꾸는 세계 『보트 하우스』
『보트 하우스』는 문학청년 시절 사용했던 구식 타자기를 그리워하면서 찾아다니는 한 소설가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환상 소설이다. 장정일의 첫 소설 『아담이 눈뜰 때』의 첫 문장에 나오는 타자기를 찾아가는 ‘나는’이라는 이름의 소설가, 소설가의 뮤즈 격인 타자기로 변신한 ‘이주민’이라는 소녀, 초능력을 가진 전당포 노인, ‘낙양성 십리허에’라는 민요의 후렴구 ‘애라 만수- 애라 대신이라-’에서 따온 ‘애라’와 ‘만수’와 ‘대신’, 그리고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여주인공 ‘와이’ 등, 이 소설은 다양한 인물들이 얽히고설켜 마치 질주하는 롤러코스트와 같은 가속도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초고속 상상력의 소설 『보트 하우스』에서 장정일은, 반대로 컴퓨터로 대표되는 속도 중심의 문명에 맞서 타자기를 내세워 아날로그 시대를 대변한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외설 판정으로 구속 수감된 후 2년 만에 『보트 하우스』를 내놓은 장정일은 ‘작가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많이 부숴 보니까 이제는 내 생각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속도 빠른 자본주의사회에 브레이크 걸기, 컴퓨터 대신 수동타자기로 글을 쓰며 저항하기 류의……. 그게 작가가 해야 할 몫이다’라고 말했다.
『보트 하우스』는 바다로 떠나기 위해 항구에 머문 보트냐, 단지 항구에 안전하게 모셔진 보트냐 하는 문학적 갈림길에 놓인 장정일 자신의 상황을 암시한다. 또한 한편으로는 타지 않는 보트를 세워놓는 장소인 『보트 하우스』를 통해 장정일은 자신이 화해하고 싶지 않은 세계, 자신을 박해하는 이 세계에서의 탐험을 끝내고, 얼음을 재운 콜라를 마시며 그늘에서 쉴 수 있는 백사장에 머물기를 바라고 있는 듯하다.

백사장의 그물 의자 위에 몸을 쭉 뻗치고 누운 채 나는 시원스런 파도머리에 흰 포말이 얹힌 채 밀려오는 해변을 바라보고, 양껏 얼음을 재운 유리잔 속의 콜라를 마신다. 그리고 내 살의와 저주, 꿈과 청춘을 가둬 둔 보트 하우스를 흘낏 훔쳐본다. 잘 있거라, 보트여. -본문 중에서

5. 우리 삶이 톱질당하는 소리가 들린다 『긴 여행(희곡집)』
<실내극> <어머니> <긴 여행>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이 네 작품의 인물 모두에게 닥친 상황은 시작도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윤회의 삶이다. <실내극>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의 습관적인 절도와 체포, <어머니>에서는 감옥 안에서 먹고 맞고 잠자는 형태로 되풀이 되는 일상의 시간표, <긴 여행>에서는 계속 이어지는 도망과 추적,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에서는 회사원의 하루, 일주일, 매일매일 같은 형식이 계속되는 나날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반복되는 상황에 갇힌 인물들은 그런 윤회의 삶에 의해 고문당한다. 시작도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순환 구조, 그래서 탈출의 가능성이 완전히 막힌 인물들의 운명은 현 사회의 절대적, 상대적 소외자인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1987년 희곡 <실내극>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극작 활동을 시작한 장정일은 당시 ‘우리 극작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연극 감각과 재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장정일의 모든 장르의 작품이 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음을 생각할 때 그의 연극적 감각은 타고난 재능이라 할 수 있다. 장정일 스스로도 ‘시, 소설 등 온갖 장르의 좌판을 벌여 놓긴 했지만, 작가 생활의 마무리는 희곡으로 끝맺고 싶다’고 작가 후기에도 밝혔듯이 희곡집 『긴 여행』에서는 장정일 문학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다.

M : 근원은 어디 있나? 끝은? 바닥은? 거의 비슷한 삶, 끝없이 반복되는 삶. 그러나 그 모든 무수한 삶은 거의 같지! 몇천 년 동안, 몇천 번을 되풀이한 삶, 하나의 통과의례에 붙들린 삶. 인간의 시작은 누구나 같지. 그러나…… 종말은 알 수가 없어.
W : 긴 여행 같은 거지……. -본문 중에서

6. 내게 잠시 시귀(詩鬼)가 머물렀다 『주목을 받다(시집)』
장정일, 그의 시와 그의 이름은 80년대의 암울한 정치상황과 그에 맞선 민족문학계의 치열한 전투적 시들로 가득했던 한국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의 시를 접한 평론가들과 독자들은 금세 장정일의 새로운 도시풍의 시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장정일은 80년대 후반의 한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 받는 시인이 되었다. 이는 그가 첫 시집으로 최연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더욱 공론화되었다.
『주목을 받다』에 실린 시들은 현재는 절판된 <상복을 입은 시집>(1987), <서울에서 보낸 3주일>(1988), <천국에 못 가는 이유>(1991)에서 장정일이 직접 가려 뽑은 것들이다. 그는 이 시집에 실린 시 한 편 한 편에 시작메모를 붙여 시를 썼던 초심을 되돌아보았다. 시와 함께 읽는 장정일만의 독특한 메시지는 시의 맛을 더욱 돋운다.
장정일은 스스로가 ‘내가 아주 젊었을 때, 시귀(詩鬼)가 잠시 머물렀다 갔다’라고 고백했듯 그의 시는 대부분 22세에서 25세에 쓰여졌다. 그리고 그는 ‘시 쓰는 법을 잊어버렸다’라고 스스로가 붙인 이유로 인해 시작을 중단했다.
시집 『주목을 받다』를 통해서 독자들은 장정일 문학의 뿌리, 장정일의 문학의 초심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초기작을 읽을 수 있다.


도시적 감수성과 불온한 상상력으로 보듬은 꿈들 하지만 그의 문학은 여전히 불온하다

장정일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전통적인 가족관계의 해체 속에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주인공들의 도착적인 성관계를 여과 없이 표현하면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소비사회의 인간적 삶을 독창적으로 형상화하는 작가이자 한국의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장정일의 문학은 세상에 대한 희망과 절망, 구원을 향한 열망과 포기, 자신에 대한 우월감과 열등감, 문학에 대한 진지함과 경박함 사이, 즉 모든 갈등과 모순 위에 놓여 있다. 이 시대의 ‘통념’과 ‘상식’에 비껴 선 이단아 장정일은 모든 장르적 규범을 거부함으로써 이러한 갈등과 모순을 작품으로 실현시켰다.
그의 작품은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불온하다. 장정일이 내놓는 작품들은 그 시대의 초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적’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문학에 대한 새로운 편견이었다. 그 편견이 한국문학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한 지금, 낯설고 새롭기만 했던 그의 작품들은 현대의 고전으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장정일 문학 선집의 발간에 부쳐

나는 글쓰기가 범죄라고 느껴왔다
- 장정일

글을 쓸 때 작가는 자신이 범죄자라고 느껴야 한다. 원고지 앞에서 혹은 깜박거리는 컴퓨터의 커서를 보며 자신을 범죄자라고 느끼지 못하는 작가는 가망이 없다. 김수영의 말을 빌자면, 불온하지 않은 것은 상한 것이니 유독 불온한 것만이 문학이 될 가치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 내가 쓴 작품들은 ‘나의 전쟁터’였다. 나는 가장 더럽고 누추한 전선만 찾아 다녔다. 새로운 전선을 찾아 나설 때마다, 나는 야반도주(夜半逃走)를 생각했다. 야반도주란 뭔가? 이웃에게 진 빚을 갚지 않고, 밤에 몰래 보따리를 싸서 도망가는 것이 야반도주다. 그런데 숱한 야반도주 가운데는 ‘문학의 야반도주’도 있다. 작가란 제일 먼저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으로, 인간이 모이면 사회가 된다. 그러므로 작가가 범행을 저지를 장소는 사회일 수밖에 없다. 각 나라의 중앙은행이 그 나라의 공인된 통용화폐를 발행하듯이, 사회 곳곳에는 공인된 가치와 규범을 만들어내는 중앙은행이 무수히 매복해 있다. 법원·학교·종교가 그런 것들이다. 작가는 통상적인 의미나 규범적인 가치가 아닌, 독자적인 의미와 가치를 통용시키려고 한다는 점에서 당당한 위조지폐범이다. 나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화폐질서와, 화폐질서만큼 공고한 체제의식을 조롱하고 전복하는 위조지폐범이 되고자 했다. 좋은 보직(補職)과 후방을 찾지 말자. 장교가 되지 말자. 범죄자는 범죄 장소로 늘 되돌아온다고 한다. 그게 작가의 더러운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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