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블록체인부터 죽음까지 그림 인문학』은 세상에 대한 보다 넓고 깊은 이해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그중에 한 사람으로서 그간 많은 고민을 했다. 알 것 같다가도 모르겠고, 모르는 줄 알았는데 벌써 알고 있었고, 아는 게 모르는 거고, 모르는 게 아는 거고, 즉 세상이 나와 벌이는 ‘밀당(밀고 당기기)’은 기기묘묘(奇奇妙妙)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내 마음속에서 세상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세상과 나는 춤을 췄다. 아마도 누군가에게는 꽤나 색다른 춤이리라. 블록체인부터 죽음까지라니, ‘아, 세상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세상만물에 ‘사람의 맛’이 도무지 나지 않는 분야가 없구나’와 같은 삶에의 ‘통찰’, 그리고 여러 이야기들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세상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말하고 들으면서, 그리고 곱씹고 토론하면서 함께 성장해가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이다. 나는 여러 분야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세상 이야기’를 들었다. ‘인문 이야기’, ‘종교 이야기’, ‘과학 이야기’, ‘경제 이야기’, ‘정치 이야기’ 등 세상을 보는 여러 방식을 접했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예술 이야기’가 언제나 아쉬웠다. 다가오는 시대에는 이 이야기가 가장 중요할 것도 같은데, 때로는 너무 지엽적이거나, 혹은 뜬 구름 잡는 말들이 많았다.
예술은 그야말로 거대한 ‘대통합 이야기’다. ‘예술을 위한 예술’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예술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더욱 의미 있게 살 수가 있다. ‘세상을 위한 예술’의 관점에서 보면, 예술은 세상만물 속에 다 녹아있다. 즉, 주변에서 ‘예술의 맛’을 느끼지 못하면 세상이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 모두가 ‘예술의 맛’을 느끼는 ‘예술인간’이 된다면, 즉 ‘초인’이 된다면, 비로소 주변의 ‘상품’은 고귀한 ‘작품’이 되고, 통속적인 ‘모작’은 신선한 ‘창작’이 된다. 실로 미다스의 손이 따로 없다.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분야가 있다. 그런데 드러나는 ‘현상’에 대한 이해와 그 너머의 ‘이면’에 대한 고찰은 마치 ‘고기’를 잡아주는 것과 ‘고기 잡는 방식’을 알려주는 것의 관계와도 같다. 이 책에서 나는 후자의 중요성에 주목하여 대표적으로 네 분야에 집중했다. 새로운 시대, 누구나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가장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영역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들은 바로 다음과 같다.
첫째는 ‘기술’이다. 기술혁신으로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얼핏 보면 ‘기술’은 ‘예술’과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둘 다 ‘혁신’에 그 바탕을 둔다. 그리고 사람은 꿈꾸고 연상하는 종이다. 그렇다면, 예술에서 ‘사람의 맛’을 느끼듯이 기술에서도 그럴 수 있다. 아니, 그러하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힘들어진다. 한편으로, 예술적인 시선으로 ‘기술’을 바라보면 비로소 ‘기술’이 친근해진다. 나아가, ‘기술의 미래’도 밝아진다. 기술자 혼자 걸어갈 순 없는 일이다.
둘째는 ‘과학’이다. ‘기술’이 당장 우리 눈앞에 벌어지는 자동차 경주라면, ‘과학’은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그 이면의 작동 원리이다. 드러난 현상을 넘어 보이지 않는 진실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예술’은 만난다. 생각해보면, 둘 다 ‘철학’에 그 바탕을 둔다. 그리고 사람의 호기심에는 끝이 없다. 그렇다면, 예술에서 ‘궁극적인 진실’을 논하듯이 ‘과학’에서도 그럴 수 있다. 아니, 그러하지 않으면, 학문에 지친다. 한편으로, 예술적인 시선으로 ‘과학’을 바라보면 비로소 ‘과학’에 고마워진다. 나아가, ‘과학의 미래’도 밝아진다. 과학자 혼자 걸어갈 순 없는 일이다.
셋째는 ‘예술’이다. ‘예술’의 역사는 유구하다. 사람은 효율적이고 정확하고 빠른 연산능력에 기반을 둔 작동체계가 아니다. 오히려, 비효율적이고 부정확하고 느린, 수많은 ‘생각의 뭉텅이’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가련한 종이다. 그런데 가련하기 때문에 더욱 신나게 꿈을 꾸는 희한한 종이다. 그리고 ‘예술’은 ‘꿈’에 그 바탕을 둔다. 만약 사람의 예술적인 기질에 대한 이해와 고려가 없으면, 사람이 메마른다. 한편으로, 예술적인 시선으로 ‘예술’을 바라보면 비로소 ‘예술’에 절실해진다. 나아가, ‘예술의 미래’도 밝아진다. 예술가 혼자 걸어갈 순 없는 일이다.
넷째는 ‘사람’이다. ‘사람’의 역사는 우리의 모든 것이다. 마치 뇌가 두개골 밖으로 평생토록 나오지 않듯이,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기만의 방’에서만 살다가 가는 외로운 종이다. 한편으로, ‘사람’은 다른 종과는 달리 ‘가상의 질서’를 세우고 대규모 협력이 가능한, 즉 ‘공동체 세력’을 지향하는 사회적인 종이다. 그리고 사람은 ‘인식’에 그 바탕을 둔다. 만약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는 체계와 방식에 대한 이해와 고려가 없으면, 자기 안에 갇힌다. 한편으로, 예술적인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면 비로소 ‘사람’의 의미를 찾는다. 나아가, ‘사람의 미래’도 밝아진다. 한 사람이 혼자 걸어갈 순 없는 일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세상만물을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맥락으로 파악하며, 여러 ‘생각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의 맛’을 내고, 나아가 우리들의 삶에 유의미한 ‘통찰’의 지점을 짚어보고자 했다. 더불어, 어려운 내용을 최대한 쉽게 풀어쓰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가능한 난해한 이론 없이, 내 생각의 작동 방식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새로운 문체를 실험했다. 이를테면 문어체 사이에 구어체를 끼어 넣어, 무거움을 가볍게 만들고, 학술적인 내용을 개인적인 맛으로 소화하는 느낌을 주었다. 또한 대화체도 군데군데 사용하여 정곡을 집어내는 데 요긴하게 쓰이도록 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같은 꿈을 가진 독자를 만난다. 그대와 나, 우리 모두는 다 나름의 입장에서 ‘작가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본다. 세상의 판도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비유컨대, 세상이 작품이라면, 나는 창의적인 작가이자, 동시에 비평적인 관객이다. 그렇다면, 우리네 삶은 전시장이다. 그래, 세상은 한낱 쇼다. 그런데 멋진 쇼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궁극적으로 ‘기술이 우리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는구나’, ‘과학은 우리에게 끝없는 여행이구나’, ‘예술이 그래서 우리에게 절실하구나’, ‘사람이 추구하는 의미가 그런 거구나’, 나아가 ‘세상은 결국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렇게 하는구나’와 같은 여러 지점의 통찰을 끌어내는 데 이 책이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 이상 뿌듯할 수는 없겠다. 우리는 작가다. 고로 세상은 작품이다. 즉, 세상은 우리가 만든다. 만물은 예술이고 삶은 예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