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11/8 조창완(chogaci@hitel.net)
그리 오랜 시간을 두지 않고, 인터넷과 정보통신 등에 관련된 몇 개의 잡문을 썼다. 빌 게이츠의 '생각의 속도'가 있었고, '메가넷'이 있었고, 로버트 리드의 '인터넷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책이라는 책에 관한 글의 잡문도 썼다. 그전에도 '디지틀이다'라는 네그로폰테의 책에 대한 단상을 쓴 적이 있다. 비슷한 종류의 책이 계속해서 출간되는데, 이번에 든 책은 '디지털 시대의 파워 엘리트'라는 존 브록만의 책이다.
이 책의 외양은 '인터넷을 움직이는 사람들'과 가장 닮았다. 다만 범위가 확장되어, 디지털 문화 전반에서 뽑아낸 인물들을 모은 책이다. 그리고 글쓴이 존 브록만은 얼핏 생각하기에 네그로폰테 못지 않은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쉽사리 다룰 수가 없다. 하지만 인터넷을 누구나가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브록만 역시 확고한 판단을 세울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부분은 간간히 눈에 띤다.
우선 눈에 걸리는 것이 이 책의 번역제목이다. 우리나라 번역본의 편집자들 역시 알고 있겠지만 제목에 들어간 '파워 엘리트'라는 단어를 공식화한 사람은 뛰어난 미국의 사회학자 C.W 밀스다.(이 책의 원제는 디제라티다. '디제라티'란 이 책의 저자가 만들어 낸 신조어로, '디지털 혁명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란 뜻이며 '디지털(DIGITAL)'과 '지식계급(LITERATI)'의 합성어이다) 밀스는 미국을 교묘하게 지배하는 정계, 군부, 재계의 3거대세력을 일컬어 부정적인 의미에서 파워 엘리트라고 평했다. 따라서 이 단어에는 그들간의 밀약을 의미하는 부정적인 냄새가 난다. 밀스도 그랬지만, 사회를 통제하기 원하는(통제하고자하는데는 항상 자신들만의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 시대를 선도하는 이들 역시 그런 욕구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미 개인정보를 관리하려는 인텔의 의도나 이미 네티즌들의 원하는 모든 정보를 습득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빌 게이츠의 능력으로 표징된다. 개인적으로 이메일 중에 핫메일을 사용하는데, 세계적인 이메일망의 처리속도가 상당히 느린 것을 보며(그 사이에 접속단자는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주고 받는다) 감시당한다는 피해망상증에 빠지곤 한다. 이미 빌 게이츠의 재산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의 욕망은 지나치게 거대하다. 혹자는 훌륭한 발명품으로 돈을 많이 번 것이 죄가 되느냐고 비판할지 모른다. 그렇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불과 10년도 안돼 세계 최고갑부가 된다는 것은(거기에 독점적 야욕까지 발휘하며)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다른 책에서 다루었으니 이만 넘어가자.
서문에서 스튜어트 브랜드의 말을 인용해 '엘리트들은 중대한 일을 해낸다. 그들은 문화와 문명을 주도한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뭐 굳이 대학 시절 세미나에서처럼 엘리트이론과 민중이론을 놓고 싸울 일은 아니지만 조금은 우습다. 기술적으로 그들이 선도자라는 것을 알지만 그들이 문화와 문명을 주도할 만한 철학과 이성이 있는가. 하루가 마다않고 무자비하게 사람들에게 총질을 하는 나라,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나온 과학 엘리트들이 과연 인류의 문화와 문명을 주도할 수 있는 이들인가. 절대로 아닐 것이다. 그들 역시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퇴보하면 좌절하고, 아무에게나 총을 들이댈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어떻게 인류의 문화와 문명을 주도하라고 한단 말인가.
보자. 여기에는 33명의 엘리트들이 나왔다. 그들의 사고들이 과연 위험하지 않는가를 동양의 한 나라에서 이성이란 무엇이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아주 쬐끔 심각하게 생각한 이의 판단을 통해 만나본다. 저자가 '코요테'라고 지칭한 존 페리 발로는 전자프론티어재단(사이버공간 인권 보호를 위한 전문단체)의 발기인으로 지적재산권의 무위성과 사이버 스페이스의 자유방임을 말한다. 그리고 사이버의 혁명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속에는 자신의 위상을 만들려는 본성과 그것의 전형인 미국 중심의 무한 팽창주의가 확연하게 보인다. 마치 19세기 군대와 함께 동양으로 밀려오던 기독교를 보는 기분이다.
저자가 '예언가'로 소개한 번넬은 '인터넷 매출과 이윤 올리는 8가지 방법'(76p)에서 콘텐츠의 가치를 올리는 중요한 요소들을 지적한다. 내가 보기에 예언이라기 보다는 현재 콘텐츠를 운영하는 가장 중대한 문제들을 적절하게 지적한 말이다. 이 책은 서문에서부터 '콘텐츠'를 풀이함에 있어, '컨텍스트'니, 유동성이니하는 복잡한 언어로 독자들을 혼동하게 한다. 이것들은 언어학이나 해체주의 등을 공부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표현이다. 더욱이 이 예언가는 위에서 소개한 발로처럼 오픈만을 신봉한다.
이 책에서 접한 인물중에 아메리카온라인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케이스는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다. 미국에서 PC통신의 대명사인 AOL을 만들고 발전시킨 케이스는 넷스케이프, 마이크로소프트, AT&T 같은 이질적이지만 최대규모의 기업들을 사업속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이미 96년 600만명의 회원을 확보했던 AOL이기에 콘텐츠를 갖고 있는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간이라는 것은 말한 나위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이 통신의 가입자는 오래전에 2천만명이 넘었다. 개인적으로 판단컨데, 케이스는 얼마지 않아, 빌 게이츠 못지 않은 영향력자로 등장하지 않을 듯 싶다.
보수주의자 데이비드 겔런터는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컴퓨터 무용론에 가까운 생각을 갖고 있다. 차분하게 그에 관한 글을 읽어보는 것은 재밌다. 하지만 그의 보수주의에는 철학이 결핍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점은 '성인'으로 불린 케빈 켈리도 마찬가지다. 그도 컴퓨터의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 하지만 켈리는 후쿠야마가 쓴 '종언'이라는 단어와 비슷한 개념으로 이 단어를 쓴다.
'네트워크 컴퓨팅 모델'을 소개한 스콧 맥닐리편은 인터넷이 변화되는 방향중에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는 점에서 한번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천재'로 불린 다니엘 힐리스가 '인터넷은 사물이 성장할 수 있는 아주 새롭고 비옥한 대지이고 웹은 거기에서 자란 최초의 식물이다'(186p)라고 한 말은 인터넷과 WWW간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이들을 쉽게 이해시킬 것 같다. 다만 인터넷에서 다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생긴다고 할지라도, WWW에서 확장되는 수준이지, 이것을 획기적으로 넘지 않으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책은 전반적으로 붕 떠 있는 느낌이다. 마치 그들이 이야기가 어디로 가는 지 몰라 물위에 떠 다니는 것 같은 형상과 닮았다. 저자가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은 많은 탓이지만, 다시 말하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정확히 독자들에게 이해시키지 못한 다는 말로도 풀 수 있다. 이런 면에서는 리드의 '인터넷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훨씬 명료하다. 또한 지나치게 저널리스트 중심으로 인물들이 구성되어 있다. 기자들이 사회를 설명하는 역할을 하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는 않는다. 요즘 한국의 사정에서 보듯이 기자란 결코 숭앙 받을 수 없는 하이에나적 본성을 버리지 못한다. 그런데도 저자는 기자를 너무 높이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