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다시 루쉰을 불러내는가?
이별과 방황, 절망과 희망 사이에 놓인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루쉰의 조언
이 책은 루쉰의 생애를 중국학자인 저자 특유의 담담한 시선과 필체로 한눈에 알기 쉽게 연대기 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개인사적으로 중요한 일들, 인간적인 그의 면모와 사회적인 역할, 시대적인 배경, 주요 저작, 주요 인물들, 그의 생 굽이굽이 느꼈던 감정과 비애 등 루쉰의 모든 것을 입체적으로 담았다. 저자는 이 책의 집필을 위해 루쉰의 생애에서 중요한 장소였던 일본 센다이와 중국 사오싱을 직접 답사하고, 그 현장의 생생함도 책에 담았다.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한 루쉰의 삶은 이별과 방황의 세월이었다. 월나라 사람들의 후예들답게 ‘저항 정신’이 가득했던 고향 사오싱, 그곳을 떠난 루쉰은 난징으로, 도쿄에서 센다이로, 그리고 다시 도쿄로, 이후 항저우, 사오싱, 난징, 베이징, 샤먼, 광저우를 거쳐 마지막 상하이에서 그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이 공간의 이동은 또한 정신의 방황이자 성장을 이룬 것이기도 하다. 그는 초기에 헉슬리의 ‘사회진화론’에 심취했고, 일본 유학 시절에는 장타이옌의 혁명론, 나중에는 마르크스주의로 끊임없이 변화했다. 때문에 루쉰을 ‘문학가’만이 아닌 ‘문학가이자 사상가이자 혁명가’로 일컫는 것이다.
루쉰은 그의 인생에서 두 번의 커다란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다. 첫 번째는 그 유명한 ‘환등기 사건’이다. 중국을 떠나 일본으로 간 루쉰은 의학 공부를 결심한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본 사진 한 장의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건장한 중국인들이 신체적으로 결코 좋은 조건이 아닌 일본인들에게 총살당하는 장면을 본 루쉰은 그날 밤 미친 사람처럼 온 산을 헤맸다. 그리고 의학 공부를 그만두고 ‘문학 계몽’ 운동을 할 것을 결심한다. 이후 루쉰이 집요하게 매달렸던 것은 ‘저열한 국민성 개조’였다.
두 번째 전환점은 신해혁명 이후 위안스카이의 공포정치가 극에 달했을 때 다니던 교육부를 그만둔 루쉰이 집에서 칩거하며 고문서 탁본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그때 한 친구가 찾아와 그에게 글쓰기를 권했을 때 루쉰은 이렇게 말했다. “창문도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는 쇠로 만든 방이 한 칸 있고, 거기에 잠든 많은 사람들은 곧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그런데 자네가 그들 중 몇 사람을 소리 질러 깨운다면 어떨까?” 이에 친구는 대답했다. “그 몇 사람이라도 깨어난다면 쇠로 만든 방을 깨부술 희망은 있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루쉰은 쇠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 대문호 루쉰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루쉰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 그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현실의 이별과 방황을,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꾸어나갔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직업인으로서, 작가로서 치열하게 살아내느라 젊은 나이에 병까지 얻었지만, 그는 묵묵히 그 역할을 수행했다. 아내이기 때문에 부양의 책임은 지지만 평생 마음을 주지 못하는 ‘내적 모순’ 속에서 마음의 빚을 지고 살지언정 ‘사랑’ 또한 포기하지 않았다. 지식인으로서 지켜야 할 것과 교육자로서의 존경과 명망도 잃지 않았다. 그를 원하는 곳이 있다면 일주일이나 걸리는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강의를 했다. 중국 소설사에 대한 고전을 넘어 경전으로 일컬어지는 『중국소설사략』은 그가 비교적 젊은 시절 베이징대학 등에서 강의한 원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생과 자신이 머무는 모든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독히도 사랑했던 루쉰! 이별과 방황,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약해지고 포기하고 메말라가는 지금의 우리가 그를 다시 보아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이것은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_「고향」 『외침』
길을 잃어버린 세상, 출구가 막혀버린 사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내적 자각’과 ‘개인의 확립’에서 그 답을 찾고자 했던 루쉰의 혜안
어떤 세상, 어느 사회라도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의 근원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루쉰이 살았던 시기는 청 왕조가 무너지고 서구의 새로운 학문과 가치관의 유입으로 이제 막 새로운 시대가 열리던 시점이었다. 루쉰은 ‘낡은 관습’과 ‘악폐’에 물들어 있는 중국, 중국인들의 낡은 가치관을 깨부수려 치열하게 싸웠다. 「광인일기」에서 그가 ‘식인’이라 칭했던 것들이다. 「아큐정전」에서도 루쉰은 “사람을 각성시킬 수 없는 모든 혁명은 가짜일 수밖에 없다. 진정한 혁명의 목적은 어떤 정권의 타도가 아니라 사람의 각성”에 있다고 말했다.
사실 「광인일기」 「아큐정전」이 워낙 많이 알려져 루쉰은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실제로 그가 남긴 소설은 그리 많지 않다. 루쉰이 오히려 공을 들여 집필했던 것은 그가 ‘잡문’이라 불렀던 논설들이었다. ‘환등기 사건’을 겪으며 우매한 민중을 계몽하는 것에 뜻을 둔 루쉰은 소설이든 잡문이든 그때그때 필요한 형식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이 잡문과 소설은 루쉰 창작의 양 날개였던 셈이다. 루쉰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사람을 세우는 것立人’이었다. 그는 ‘사람을 세우는 것’의 요체는 ‘개성의 존중’이라고 보았다. 곧 저열한 국민성을 개조하기 위해서는 ‘루쉰 자신과 같이 자각한 개인의 내적 욕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새로운 사회가 세워지고, 그것들은 결코 나와 무관치 않다는 ‘주체성’의 문제는 루쉰 문학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중요한 화두이다.
당시 새로운 시대로 이행하면서 혼란했던 중국 사회의 탈출구로 내놓은 루쉰의 해법은 지금 우리에게도 관통하는 것이다. 길을 잃어버린 세상, 출구가 막혀버린 사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내적 자각’과 사람을 세우는 일, 즉 ‘개인의 확립’에서 그 답을 찾고자 했던 루쉰의 혜안을 빌려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일도양단하듯 한 시기가 끝나고 바로 다음 시기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 중간에는 옛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는 루쉰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사적 중간물’이 존재하고, 새로운 세상으로의 견인차 역할은 총명한 사람들이 아닌 ‘어리석은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이 해나가는 것이다. 루쉰이 지금 우리에게도 남기고 싶은 가장 중요한 메시지일 것이다. 나 한 사람, ‘어리석은 인간들의 각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세상의 주인, 역사의 주인은 바로 이들이다!
그렇지만 세계는 오히려 바보들이 만들었으며, 총명한 사람은 결코 세계를 지탱할 수 없다.
_「역사적 중간물」
중국의 현재와 맞닿아 있는 격동의 중국과 중국인,
지금의 중국과 중국인을 아는 기본 교양서
루쉰이 살았던 시대는 왕조시대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로 이행하던 중국 현대사의 격동기였다. 신해혁명, 5·4운동, 3·18참안, 대장정, 국공합작 등의 커다란 역사적 사건과 변곡점을 함께한다. 또한 위안스카이, 쑨원, 쟝졔스 등의 역사적인 인물들과도 궤를 같이 한다. 따라서 이 책은 지금 중국의 현재와 맞닿아 있는 가장 가까운 중국의 역사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하는, 루쉰의 눈으로 기록한 ‘격동의 중국사’이기도 하다.
루쉰의 개인사에서는 한 집안의 장남으로서 과도한 책임감으로 자신의 건강마저 잃어가며 대가족을 부양하는 중국 사람들의 가족적인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결혼하고 내치지도 못하는 아내 주안과 루쉰의 관계에서는 전통과 새로운 것 사이에서 갈등하는 당시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루쉰의 소울메이트 같은 존재였던 동생 저우쭤런과 루쉰의 여인이었던 쉬광핑과 주고받은 글에서는 혼란한 시기를 살았던 당대 지식인들의 고뇌를 알 수 있다. 「광인일기」 「아큐정전」 「복을 비는 제사」 등의 작품 속에는 루쉰이 그토록 바꾸고자 했던 당시 중국인들의 생활과 사회상, 그 속에 흐르는 그들의 문화와 생각이 잘 담겨 있다. 이러한 것들은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역사적 중간물’의 단계에 있는 현재 중국과 중국인의 모습일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지금 중국과 중국인들을 이해하는 기본 교양서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