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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발행일 | 2007년 09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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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23쪽 | 888g | 174*225*30mm |
ISBN13 | 9788958850779 |
ISBN10 | 8958850779 |
얼리리더를 위한 5월의 책 : 디즈니 캐릭터 PVC 마그넷 증정
2024년 05월 01일 ~ 2024년 05월 31일
상시
35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4천년의 시간여행
처음 이 책을 받아 목차를 펼쳤을 때, 굉장히 많이 놀랐다. 내가 모르는 화가가 이렇게 많았나,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150명의 화가 이름을 하나 하나 훑어보면서 내가 아는 화가들을 세어보았더니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 뿐이었다. 이것도 명화 중에 명화, 유명한 화가 중의 화가를 고른 것일텐데도 그만큼 나는 미술에 대해 몰랐다. 그래서 첫장부터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책이다.
먼저 기원 2000년 전으로 나를 데려갔다. 고대의 미술. 흔히 연상할 수 있는 '이집트 특유의 그림'부터 저건 벽화가 아니야! 라고 외치고 싶을만큼 정교하고 화려한 벽화도 있었다. 고대에도 그림은 신비로웠다. 약간은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작품도 있었다. 그래도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그림은 그 자체로 비정상적인 멋이 있다. 분명 사람을 그린 것인데 구도나 자세를 봐서는 사람이 아닌 듯 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인간적으로 보이는 묘한 멋이다.
한 장, 한 장 그림 속을 통해 이동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워낙에 유명해서 내가 아는 화가가 가장 많이 등장했던 부분이었다. 일단 유명할 수 밖에 없는 르네상스의 세 천재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비롯해 어디선가 이름을 들어보았던 것 같기도 한 왠지 익숙한 이름들, 그리고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대에서 암흑기인 중세를 지나오며 그림은 많이 사실적으로 변화했다. 고대와 달리 인체가 어색하게 보이지 않았다.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천장화 '천지창조'의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근육이 꿈틀거릴 것만 같았다. 모나리자의 볼수록 빠져드는 미소와 피부 질감, 라파엘로의 완벽하게 정돈된 아름다움, 엘 그레코의 무서운 화려함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르네상스의 그림들은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편이었다. 성모와 예수를 그린 것부터 그리스 신화까지 '인간' 자체를 그린 그림은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중세의 영향이 채 가시지 않았던 탓일까. 파르미자니노의 '목이 긴 성모' 그림은 꽤 재미있었다. 그림 설명에서 '성모는 얼굴에 비해 목이 지나치게 길다.' 라는 설명이 있는데, 내 목의 비율이 대략 그 정도 된다. 그래서 볼 때 '별로 안 긴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다가 '비정상적' 이라는 말에 그래, 나보다 길어, 나보다 길어... 하고 억지로(?) 생각하게 한 작품이었다.
북유럽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적혀있으나, 그들과는 또다른 맛이 있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작품들이 굉장히 사실적이고 화려하다면 이쪽은 좀 더 섬뜩하고 흐릿한 느낌이었다. 첫 그림인 '아르놀피니의 결혼', '수태고지',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 등의 작품은 정교하게 잘 짜여진 아름다움 뒤에 있는 듯 없는 듯 섬뜩한 무서움이 숨어있었다. 특히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장 푸케)의 성모와 예수는 마치 인형을 보는 듯 차갑고 단단한 이미지였다.
17세기의 미술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배경의 처리가 돋보이는 작품이 많았다. 금방이라도 그림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인물화, 정물화들, 그들은 사진이라 해도 믿고 싶을만큼 입체감과 현실감이 뛰어났다. 프란시스코 수르바란의 도자기 정물이나 라헬 라위스의 꽃다발 그림은 그림이란 사실을 믿기가 어려웠다. 배경의 처리는 클로드 로랭의 작품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바닷가의 하늘을 여러 색깔을 쓰지 않고 만져질 듯한 질감으로 표현해놓았던 것이다. 로코코 미술까지 이러한 경향은 이어졌다. 사실, 로코코 미술을 분리해두었지만, 큰 차이는 느끼지 못했다. 차이라면 그림의 대상에 있어 좀 더 생활 가까이 왔다는 느낌이랄까.
근대로 들어서면서 미술은 많이 변화한다. 무서울만큼 현실감이 넘치던 이전과 달리 사실적인 모습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각각의 사실적인 면모보다 전체적인 이미지를 나타내고자 하는 듯 세부적으로는 흐리지만 전체는 어떤 메세지를 남기고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남기는 작품이 많았다. 윌리엄 터너(꼭 어느 영화의 누구를 생각나게 하는 이름이었다.)의 노을 처리는 황홀할 정도로 쓸쓸했고 프리드리히의 사막은 세상의 것이 아닌 양 신비스럽고 우아했다.
인상주의, 여기서부터 현대 미술까지가 가장 난해했다. 실제를 그리면서 실제적이지 않은, 주변 사물이 아닌 내면의 심리를 포착하고자 하는 그림들은 뭐 이런 그림이 다 있냐, 이것도 그림이냐, 등등의 생각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설명이 충분히 잘 되어있기 때문에 몇 가지는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역시 모두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감이 있었다. 특히 심리적인, 혹은 화가의 영혼을 담은 듯한 난해한 그림은 참 당혹스러웠다. 마치 AFM, SEM(현미경의 일종이다. 세포나 박테리아 등의 표면을 세밀하게 볼 수 있다.)으로 찍은 세포 같은 그림도 있고 페인트를 마구 부어놓거나 거친 색상으로 붓질을 해서 현실감을 지워버린 작품 등 그림에서 어떤 정확한 이미지를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사회가 변하면 미술도 변한다. 인상주의의 작품들은 광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의 작품들이고, 그래서 빛의 한 '순간' 을 잡아내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이 잘 느껴지지는 않았다. 현대의 미술들은 현대 도시와 인간에 대해 나타낸 작품이 눈에 띄었다. 서서히 인간성을 잃어가는 사람을 비현실적으로 일그러지게 표현한 것이다. 이전의 미술에 대해 반기를 드는 듯, 모든 사물을 재조합해서 언뜻 보기에 엉뚱한 낙서처럼 보이는 작품을 만들어낸 피카소 같은 화가들도 있었다. 이들도 나름대로의 깊은 생각과 신념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을텐데 그것을 알아봐주지 못해 미안하기까지 하다.
나중에 인상주의와 현대미술 부분은 다시 읽어봐야겠다. 책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 사람에게 다르게 다가오니, 그림도 나중에 다시 보면 내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기회가 있어 나중에 유럽으로 여행을 간다면, 가기 전에 다시 읽고 미술관에서 그림에 하나 하나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전체적인 미술사의 흐름을 짚어주는 내용이었다. 미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화폭에 담고 싶었던 그들의 관심사는 무엇이었는지 짤막한 설명과 더불어 쉽게 풀어나간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번역이 잘 안 되어서인지 문장의 흐름이 앞뒤가 안 맞다고 느낀 적이 꽤 많았다. 게다가 '가장' 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해서 눈에 거슬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장의 사소한 문제는 150장의 미술 작품들을 눈으로 즐기고 감상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마음 한 켠이 쓸쓸해지는 가을 날, 역사적인 그림들과 함께 4천년의 짧은 시간 여행을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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