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Holy Shit-욕의 모든 것(물론, 영어권에서만)

사람은 참 신기하다. 누가 하라고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오히려 어린 아이에게 욕을 최대한 늦게 가르쳐 주려고 애쓴다) 어쩜 그렇게 어린 나이에 욕을 재빨리 캐치해서 따라하는지. 4, 5살 때가 되면 귀신같이 주변 다른 사람들(형제, 자매, 주변 어른들, 또래 등등)이 내뱉는 금기의 단어들을 듣고 따라한다. 어린 것들이 벌써 욕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깨우친 것일까? 좋은 단어부터 배우면 좋으련만, 부모님이 열심히 가르친 단어는 제쳐놓고 그런 요상한 단어를 재밌다는 듯이 말하고 때로는 주변인들의 반응을 즐긴다. <HOLY SHIT>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아이들이 욕을 처음 말하는 나이가 3세라는데, 이게 만 3세라는 걸 고려해 보면 우리나라 아이들이 욕을 하는 나이와 비슷하다. 아마 이 나이는 전 세계 공통인가 보다.

전세계적으로 욕을 하는 것은 교양없어 보이고 예의가 없으며 부적절한 것으로 취급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욕을 하면 어느 정도 스트레스 해소가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이 책에 따르면 심한 욕일 수록 스트레스 해소가 잘 된다고 한다. 점잖은 욕은 별로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으므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욕을 할 때는 본인이 만족할 만한 욕을 하자.) 그래서 마션의 저자도 첫 페이지부터 야무지게 F로 시작하는 단어를 썼나보다. 하긴 화성에 저 혼자 남았으니, 욕이 안 나오면 사람이 아니지. 아무튼, 아무리 종교적인 시대라 해도, 인간이 말을 할 수 있었던 그 순간부터 욕이 없던 시기는 없었으며 욕을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말 할 줄 아는 사람도 없다. 욕은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욕구처럼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원초적인 욕구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전문적인 연구는 많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욕'을 주제로 한 책이 나왔다니 반드시 읽어주는 것이 예의!

Holy Shit의 저자는 엘리트들이 바글바글한 곳으로 소문난 스탠퍼드대학에서 중세 르네상스 영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 책을 통해 무려 고대 로마부터 중세의 욕은 물론 현대의 욕까지 그 기원과 문학사적 의의를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위트 있는 저자의 책은 역시 첫 페이지부터 욕으로 시작하는데 바로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머니가 다른 단어는 다 잊어버렸어도 휠체어가 덜컹거리자 Shit이란 욕을 내뱉었다는 에피소드였다. 심지어 저자의 할머니는 평소에 이런 욕설을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아름다운 단어와 문장을 만들기로 유명한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도 말년에 병상 신세를 질 때 욕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그것도 신을 차용한 욕) 수녀들에게 쫓겨났다고 한다.

시대에 따라 심하지 않은 욕과 심한 욕이 다른데, 이건 사회 문화적 배경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신이 절대적 위치를 차지했던 중세시대에는 신을 함부로 넣은 욕이나 서약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심한 욕이었고 현대에서는 신God을 넣은 욕보다는 성적인 것들을 저렴하게 표현하는 욕이 강세다.(영어권에서도 한국에서도 공통적으로 성적인 욕이 제일 쎈 것으로 분류되는 걸 보면, 역시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세계 간의 거리가 많이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다.) Holy shit에서는 욕의 강도와 쓰임, 기원 등을 다양한 유적, 문학작품을 통해 추척하고 사회문화적 배경을 통해 추정하는 과정이 나와 있는데 꽤 재미있다. 특히 매혹적인 fascinating이라는 단어가 발기한 음경을 가르키는 파스키눔fascinum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워서, 집안을 돌아다니며 온 가족들에게(가족 중 어린아이들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 유쾌한 사실을 알리고 다녔다. 많은 부모님들은 fascinating이 절대 '발기한 음경'이라는 뜻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아이들이 이 단어를 단어장을 보고 열심히 외우는 것을 보고 흐뭇해하겠지. 아 그런데 혹시 내 블로그에서 fascinating의 유래를 알게 된 사람들은 이 단어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 장담한다. (원래 야한 것, 욕, 금기어 등은 잘 안 잊어버린다. 많은 기억술 책에서 이런 것들을 암기에 사용하길 권장하고 있다.)

이 책은 욕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서양 욕에 대해 정통해질 수 있다는 주 목적 외에도 이 책을 읽으면 로마시대부터 시작하여 현대 영미권 국가까지 서양역사와 문화의 배경에 대한 지식이 많아진다는 부수적인 장점이 있다. 예를 들면 그리스로마시대에는 여자가 성적 주체가 된다는 것을 허용할 수 없어서 남자가 수동적인 주체가 되는 커닐링구스cunnilingus라는 욕이 가장 심한 욕이었다는 이야기는 욕에 대한 내용이지만, 그리스로마시대에는 수많은 남자들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여겼으며 아우쿠스투스 포럼이 로마인의 정치적, 군사적인 삶의 중심지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부수적으로 딸려오는 지식이다.

식상한 책에 질렸다면, 영어권 욕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는 책 HOLY SHIT에 도전해보면서 부수적으로 영어권 국가의 문화사회적 배경지식까지 쌓는 것을 추천한다. 간만에 읽은 발칙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