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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0년 05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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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79쪽 | 558g | 153*224*30mm |
ISBN13 | 9788958623106 |
ISBN10 | 8958623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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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살게 된 중요한 계기가 있냐고 누군가 물어볼 때마다 생각나는 게 있다. 하나는 2003년 김주익 열사 장례식에서 40~50대 아저씨들이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면서 숨죽여 우는 광경이다. 나도 많이 울었지만, 그 모습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당시 언론은 "역사상 최고의 단협, 한진 노조 완승"이라고 했다. 진보 언론에서도 노조가 원하는 요구가 다 들어간 단협이 타결됐다며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기사를 냈다.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 싶었다. 사람이 두 명 죽었고 노동자들이 이렇게 울고 있는데 그게 어떻게 '완승'일 수 있나….
근본화라는 건 우리 삶의 실존 문제가 공적인 영역에서 해결되지 않으니까 다른 요인들이 전면에 등장하게 되는 건데, 그중 하나가 물리적인 충돌이에요. 즉 폭력화이죠. 자기 몸과 생명을 던지지 않으면 생명을 담보해줄 최소한의 조건을 지킬 수 없는 사회가 된 거예요. 왜? 국가의 공공성이 후퇴하면서 공공 영역에서 보장을 안 해주니까요. 곳곳에서 물리적 충돌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공적 보호를 수행해야 할 국가가 제 역할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1인당 GDP 2만 달러 시점에서 사회의 공적 지출을 조사해봤더니 한국은 OECD 평균의 3분의 1에도 못 미칩니다. 세전, 세후를 기준으로 한 정부의 소득조정 기능은 아예 6분의 1에서 7분의 1에 불과합니다. 정부가 시장의 불평등을 거의 교정하지 않고 있는 거죠. 즉 국가의 공적 역할을 통한 시장 교정 기능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게 가장 좌파정부라고 비난 받았던 노무현 정부 때의 통계입니다.
공공성의 해체로 인해 우리 삶이 얼마나 개체적, 자영적 차원으로 밀려가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성한 국가가 소수 과두집단에 포함된 시민 외에는 개별적으로 열심히 먹고살라고 한다면 곧 공동체로부터 전혀 시민됨을 보장받지 못하는 겁니다.
수직적인 권력분립을 위해서는 국가와 대의기구, 시민사회 사이에 권력분립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국가와 대표에게 주었던 주권의 많은 부분을 다시 찾아와서 행사해야 한다는 겁니다.
두 번재는 수평적 권력분립니다. 입법, 사법, 행정을 감찰하고, 국민의 인권, 국민의 권리와 직접 관계되는 분야들은 입법, 사법, 행정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거예요. 따라서 이것들을 독립시켜 4권분립으로 가야 해요. 그리하여 4부가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시장과 국가를 감독하는 부처들을 독립시켜 국민과 시민의 직접 통제 아래 둬야 해요.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위기인 까닭 중 하나가 불평등의 피해자들이 그 차별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마트에서 짐 나르는 일이니 어쩌겠어요. 제가 공부를 안 했으니까요 라고 이야기해요. 말이 안 되잖아요. 중,고등학교 때 시험 잘 친 사람들에게 한 사회의 부가 10배, 20배, 아니 심하게는 100배씩 집중되는 것에 대체 어떤 정당성이 있습니까?
계속 차별받으면서도 그걸 당연하게 여기다 보니까 이젠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끼리도 의사소통이 안 돼요. 형식적이고 상투적인 것 말고는 해본 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학창시절에 갈등을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해결해봐야 하거든요. 우리는 몽둥이 아니면 벌점이잖아요. 가장 유치한 방식이거나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갈등을 억압하는 교육을 받은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진도를 나가야 하기' 때문이에요. 단지 진도 때문에 갈등을 인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거예요.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엄격하게 부당한 권력의 독과점을 거부해왔음을 알 수 있죠. 그러나 한국 사회는 아무 개념이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극소수의 자본가에게 모든 권리와 권력이 집중되고 있는데, 일종의 마름들이라고 할까요? 관리계급이자 기생권력으로서 학벌권력이 그 아래에 있는 겁니다.
학벌의 권력 불평등성의 문제는 나아가 시민적 의사소통을 치명적으로 왜곡합니다. 한국 사회에선 학벌이 현대화된 문중이에요. 학벌문제는 결정적으로 교육의 파탄과 직결됩니다. 학생들이 대학에 공부하러 들어오는 게 아닌데 대학이 어떻게 본연의 구실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한국 대학은 대학원을 키우지 않아요. 대학원으로 경쟁해봤자 아무도 안들어오거든요. 대학은 오로지 고시 합격생과 입학생들의 수능 점수에만 신경을 씁니다. 학생들은 학교에 공부하러 오지 않고, 학교도 거기에는 관심이 없어요.
이 모든 문제가 시험 교육에서 비롯됩니다. 한국처럼 정원이 3,000명 남짓인 한 대학을 두고 50만 명이 경쟁하는 시스템에서는 교육의 목적이 시험이 될 수밖에 없어요. 물론 시험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시험이 목적이 되어버리면 객관식이고 주관식이고 가릴 것 없이 대답하는 데만 길들여지죠. 질문은 하지 못하고 우리 뇌는 굳어져만 갑니다.
묻지 못한다는 게 단지 학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예요. 모든 종류의 불합리와 불편함과 불의가 질문하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되거든요. 흔히 우리가 시민의 무관심을 이야기하잖아요. 하지만 그건 미국 얘기고, 한국 사회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질문하지 않는 것'입니다.
학벌 문제를 해결할 길은 '대학평준화'뿐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문중화된 대학 장벽을 헐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대학 자체를 공영화하고 민주화해서 학교 운영에 관한 한 국가가 똑같이 지원하면서 국립과 사립의 장벽을 없애야 해요. 대학평준화를 하자고 하면, 서울대 없으면 한국 망한다고 다들 이야기해요. 특권계급의 이익이 국가 전체의 이익이라고 강변하면서 그 특권계급이 망하면 우리 사회가 전부 망한다고 끊임없이 우리를 협박해온 게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어요. 재벌도 마찬가지고, 과거 군부독재 때도 그랬고, 현재는 학벌도 그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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