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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4년 06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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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762쪽 | 852g | 124*189*40mm |
ISBN13 | 9791195026142 |
ISBN10 | 1195026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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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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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처럼 겹치는 것들이 있다. 어떤 표식처럼, 혹은 하나의 계시처럼 우연과 우연이 겹쳐지는 순간속에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들어서게 되는 그런 때, 삶이라는 잠에서 잠시 깨어나 오래 전 떠나왔던, 그러나 언제나 여기 있었던 것들과 다시금 해후하게 되는 순간들이 우연처럼 겹쳐져 무채색의 풍경들에 색을 입히고 메마른 입술을 노래로 적시는 그런 때가.
굳이 소리내어 말하지 않더라도 알아지고, 보이는 것 너머의 것들을 보게 되는 그 순간들은 너무도 귀하고 소중한 것이라서 함부로 꺼내 보일 수가 없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그 순간들 속에서는 그 누구도 외롭지 않고, 외롭지 않으니 굳이 함께 할 동료를 찾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내게 그러한 시간을 허락해 준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참으로 이상한 우연들이 겹치고 또 겹쳐졌다. 길가 피어있던 꽃의 이름을 궁금해하지 않고 다만 눈여겨 보던 여러 해 산책길, 내게 그 꽃의 이름을 알려준 것은 저자의 해설 한 부분을 읽고 난 다음 날이었다.
그랬다. 일상이 되어버린 산책에서 꽃과 다시 마주했을 때, '너였구나!'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우연히 보게 된 식물 도감에서 그 '너'가 이 '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것들은 그렇다. 그렇게 저절로 알아진다.
그리고 그 앎은 만났을 때 이루어 진다.
만나고자 하는 인위적 노력이 아닌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만남, 신비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그러한 것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 만남이 없다면 이 길고 긴 생을 우리는 무엇으로 견딜 수 있을까.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하이쿠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살았다."고.
그 짧은 문장 하나에 담겨 있는 것들.
책을 다 읽기 위해 수백 번 읽기를 멈추고 만나지 않는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살아내는 것'.
그 살아내는 시간 안에 만나지는 것.
그것이 바로 생의 슬픔과 고통을 순식간에 경이로움으로 맞바꾸는 힘이 아닐까...
*
두 사람의 생
그 사이에 피어난
벚꽃이어라 (바쇼)
로 시작되는 긴 여정.
두 개의 삶으로 살다가 그 사이 피어난 벚꽃으로 만나는 시간으로의 초대.
백만 광년의 고독을 안아주는 그 만남이 있어 다시금 살아갈 희망을 얻는 시간.
반쯤 열린 문 사이로 꽃이 피었다 진다. 허공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채워져 있으나, 그 보여지는 비어있음으로 꽃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허공이 펼쳐진다.
망설임이 길었다.
긴 말이 오히려 해가 될까, 완벽하다 말할 수 있을만큼 정제된 언어의 정원 속에 만개한 10여 년에 걸친 저자의 노고와 열정을 표현할 단어가 과연 있을까 많은 의문도 들었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시는 읽는 이의 것.
작가의 노정과 읽는 이의 노정이 만나 두 생 사이의 간격을 좁히고 종국에는 여러 이름으로 흩어져 있던 나 자신과의 합일을 이루어내는 것, 그 안에서 신성을 발견하고 세상과 다시 마주할 힘을 얻는 것.
때로 올 것이다.
앞으로도 종종, 혹은 가끔, 지금 이 순간까지 미처 만나지 못했던 그 만남의 시간이 '그래, 너였구나!' 하고
그렇게 다시 올 것이다.
그 만남에 가슴 두근거리며 마지막 책 장을 덮는다.
다리 긁으며
살아있음을 아네
칠월의 모기
정강이에 입맞춤하며 내게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모기와 하이쿠를 통해 긴 고독 속, 저자가 만났던 '때'를, 그 '삶'을 엿보게 해 준 이 삶에게 감히 고백한다.
고독이 긴 만큼 아름다웠다고
슬픔이 큰 만큼 사랑했다고
절망이 깊은 만큼 희망했다고.
*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이지만
그렇지만 (잇사)
*
화장터 불빛
손금의 생명선을
비춰 보았지 (류시화)
*
산길 넘는데
왠지 마음 끌리는
제비꽃 (바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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