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이디'가 무척 멋진 소설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정말로 멋진 이야기니까!
오죽하면 스페인에서 '하이디'를 쓴 작가인 '요한나 슈피리'의 얼굴을 자랑스럽게 동전에다 박아 넣었을까?
나는 지금부터 그 대단한 이야기를 읽고 느낀점을 써보려 한다.
..하지만 먼저 배경소개를 해야 하겠지?
하이디는 무척 생기발랄한 주인공으로 사소한 것에도 행복을 느끼며, 방글방글 활짝 웃는 기쁨이 가득한 소녀이다. 그리고 할아버지, 페터의 할머니, 페터, 양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데테(하이디의 이모)에게 끌려가듯 프랑크푸르트로 보내졌지만, 작은 소동(이를테면, 하이디가 향수병과 몽유병에 걸렸다든지...)덕분에 집에 갈 수 있었다. 흐음.. 불행이 행운이 되었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할아버지의 오두막에 방문하셨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 돌아가실 때에 하신 말씀은 지금도 기억난다.
“산이 정말 좋구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삶을 다시 사랑하게 돼.” ...나는 아닌데?!
몇일 후, 하이디를 너무나 그리워하던 클라라가 놀러왔다!
나는 그 부분을 읽고 꽤나 놀랐다. 클라라가 왔다고? 무척이나 허약해서 휠체어에만 기대 살던 애가? 우와아아아!!
하지만 하이디와 페터, 할아버지가 지극한 정싱을 들여 클라라는 건강해졌다. 역시.....! 나는 그 부분을 읽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면 된다!!'
지금까지 내 생각과 하이디에 관해 간단히 설명해 보았다. 그리고, '하면 된다!!' 무척 대단한 문장이다. 나도 하고 싶을 때(만) 모든지 다 되거든!!
그나저나 '하면 된다'면 무모한 도전과 쓸데없는 위험한 생각도 하면 될까? 그건 더 생각해 봐야겠다.
하이디의 힘이란 무엇일까?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완고하게 살던 할아버지의 마음을 열고, 하루 하루를 물레만 돌리시며 눈도 잃고 삶의 즐거움까지 잃은 페터네 할머니에게 삶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 밖에 나가지 못해 매일 지루해 하는 클라라에게는 건강과 웃음을 주었던 하이디의 힘이란 명랑함, 밝은 웃음,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하는 마음, 뛰어난 친화력이다.
하이디에 나오는 염소들도 하이디의 목소리가 들리면 자기가 먼저라며 하이디에게 뛰어간다.
하이디에게 이런 힘을 생기게 한 것은 수많은 경험과 누구든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튼튼하게 해주는 대자연의 힘, 스스로의 마음과 의지가 합쳐져 하이디의 힘을 만들었다.
수많은 경험은 판단력과 상대방의 감정을 공감하는 이해력을, 대자연의 힘은 친화력과
누구에게나 힘을 주게 하는 밝은 웃음과 친절을, 스스로의 힘이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하이디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즐거움과 행복을 아낌없이 뿌려 힘과 용기를 준다.
하이디는 만나는 사람마다 사랑을 뿌리고 다녔다. 하이디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아빠 토비야스는 집 짓는 일을 돕다 들보에 깔려 돌아가시고 엄마 아델하이트는 그 충격에 돌아가셨다. 하이디는 부모님의 사랑이라고는 많이 받아본 적 없지만 대신 할아버지의 사랑과 대자연의 보살핌이 부모를 여읜 하이디에게 불가능처럼 보이던 일을 가능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란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이디를 읽고 난 후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가 아닌 "모두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로 바꾸고 싶다. 부모님을 잃고 주변 환경도 수시로 바뀌는 상황 속에서 어렵게 살아왔는데도 불구하고 불가능일 것 같은 모든 일들을 해냈으니 말이다
이 세상에는 불가능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말로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해보기 전에 어렵다고 불가능이라고 판정 짓는 순간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 도전하고 연습하면 불가능은 가능이 될 수 있다.
이 세상에는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불가능으로 여겼던 것을 가능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아야 한다. 실패해도 상관없다. 에디슨이 남긴 명언 중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수많은 실패로 성공을 얻고, 수많은 경험이 성공을 준다.
우리는 하이디처럼 불가능을 믿으면 안 된다. 불가능은 수없이 노력을 한자에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매일 집에만 있으니 너무 심심하다. 밖에 안 나간지도, 학교에 못간지도 오래 되서 집에서 재미있게 놀거리라도 찾으러 집을 돌아다녔다. 지금까지 '심심해'하는 말을 자주 쓰지 않던 내가 이렇게 놀거리를 찾고 있다는게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일이였다. 그때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놀거리를 찾았나? 맛있는 간식이 식탁에 있었나? 그 무엇도 아닌 선생님께 전화가 온 것이었다. 선생님은 집에만 있는 나에게 '하이디'를 추천해 주셨다. 이게 지금까지 내가 '하이디'를 읽게 된 계기였다. 계기가 너무 길었나보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 너무 많다.
일단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정말 스위스에 온 기분같다는 것이다. 책 속의 자연이 정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또한 나는 이 책을 보며 정말 슬펐다. 지금 난 하이디 책을 읽고 있지만 원래 올해 여름 스위스에 여행가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였다. 당연히 코로나 19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나는 책 속의 하이디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만약 작년에 한번 스위스를 못갔다면 이 책 속의 자연을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에도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넘으면 주위 사람들에게 이상해 보일 수 있다. 하이디는 그 선을 지켜가는 것이 약간 엄마의 마음처럼 대견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자연의 힘은 부정적이던 사람을 긍정적이게, 마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다시 치료해주고, 못걷는 사람을 걷게 해준다. 내가 지금 말한 예는 의사 선생님과 클라라를 예로 든 것이다. 오죽하면 여행갔을때 우리가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할머니께서도 뛰놀고 싶다고 했을 터였다. 그런데 자연의 힘은 이렇게도 강한데 페터네 할머니 눈은 고치지 못했는가? 당연히 못고치겠지만 슬펐다.
이 책에서 또 느낀 점은 사람의 내면 안에는 또 내면이 있고 데테 이모처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재에 대해 안좋은 이야기로 수근거리는 일은 절대 바르지 못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인물을 간단하게 짚어가며 느낀점을 이야기 해 본 것이다. 너무 길게 표현한 것 같지만 난 아직 하고픈 이야기가 더 있다. 바로 하이디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 하이디에게
하이디, 안녕? 스위스에 못 가니 너무 아쉽다. 아직도 들판에서 뛰놀다가 구덩이를 미처 보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찐 일이 생생하게 떠올라. 코로나 잘 이겨내며 지내고 있지? 진짜 조심해야해. 이제 날싸가 쌀쌀해져 가고 있어. 꼭 클라라가 선물해 준 외투 잘 입고 얼른 코로나가 끝나면 가족들이랑 꼭 놀러갈께!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어른이 되서라도 꼭 갈께. 가기 전에 한번 더 연락줄께. 할아버지께 마른풀로 만든 침대 좀 준비해 달라고 부탁드려줘. 부탁할께. 정말 보고싶을 거야. 시내에 들러서 스위스 초콜렛도 사가져갈께. 우리 같이 라면도 먹자. 나의 비밀 친구, 하이디! 정말 사랑해! 그럼 안녕."
지금까지가 나의 독후감이였다. 사실 독후감보다는 일기 같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느낀점은 정말 책 속의 내용이 생생해서 알프스 여행을 하고 온것만 같았다. 사실 내 제목이 하이디와 함께 하는 알프스여행인 이유도 이것이였다. 책을 읽은 것만으로도 힐링이 될 정도였으니 제목을 이것으로 정한 것이 이상한 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독후감을 쓰고 스위스에 간다면 더 인상 깊을 것이다.
"하이디, 꼭 만나러 갈께!"
우리 사람들이 사는 곳은 크게 두 곳으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맑은 자연, 다른 하나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이다. 부유할 수 있지만 바쁘고 때론 상처를 받아가며 살아가는 도시와 그리 부유하진 않지만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 당신이라면 어떤 곳에서 살아갈 건가? 물론 편리한 도시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아름다운 자연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둘러보면 도시에서도 우린 언제나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다. 우리 주변에 피어있는 꽃, 여러 가지 곤충이나 동물, 길가에 있는 많은 풀들 이처럼 꼭 산, 바다 등의 자연에서 살지 않아도 언제나 자연과 함께 있다.그만큼 자연은 정말 소중하다. 우리는 이런 멋진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라는 책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게 되는 하이디의 이야기이다. 태어나서 부모님을 잃은 하이디를 이모 데테가 키우게 되고 데테는 돈을 벌로 떠나야 해서 숲의 오두막에 살고 있는 무서운 할아버지의 집에 맡긴다. 하이디는 그곳에서 잘 지내지만 얼마 뒤 이모 데테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부잣집에 하이디를 맡기겠다고 하이디를 데려간다. 그곳에서 클라라라는 휠체어를 탄 여자아이를 만나고 재미있게 지낸다. 하지만 알프스가 그리워 결국 몽유병에 걸린다. 하이디는 다시 알프스에 가고 몇 달 뒤 클라라가 하이디의 집에 놀러온다. 클라라는 하이디와 함께 걷는 연습을 하여 마침내 걷게 된다.그리고 다시 프랑크푸르트에 가는 걸로 끝이 난다.앞으로 클라라는 집에서 휠체어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닐 수 있겠지?
이 책의 주인공인 하이디는 처음 글을 읽지 못하지만 열심히 하여 글을 배워 글을 읽을 수 있게 된다. 클라라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져서 걷지 못하였다. 하지만 알프스에서 하이디와 함께 연습하여 걸을 수 있게 된다. 하이디와 클라라, 둘 다 결핍되었지만 자연, 알프스와 함께 이겨내고 변화한다.
책을 보면 알프스산에 올라온 사람들은 모두 건강해져서 돌아간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연의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 흔들리는 나무, 매애 하고 우는 아기 염소들이 상처 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줘서 이지 않을까? 자연은 정말 우리에게 많을 것을 준다.
자연은 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지만 우린 그런 자연의 선물을 당연하다 여기고 있을지 모른다.이 책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도움을 주는 자연을 보존해가며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자연은 정말 소중하다. 앞으로 난 늘 우리 주변에 있다는 걸 당연히 여기지 말고 자연을 보존해가며 살아갈 것이다. 자연을 보존하는 일,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보존해가며 살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