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가장 뛰어난 미국 작가들이 이 한 권에 모였다.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리처드 포드가 편저하여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미국 작가 32인의 소설을 한 자리에 모았다. 도미니카 출신의 젊은 작가 주노 디아스(Juno Diaz), 단편소설의 대가 존 치버(John Cheever), 흑인여성 작가 ZZ 패커(ZZ Packer)… 각기 다른 배경과 세대, 남다른 개성의 작가들의 서른두 편의 소설이 일(work)이라는 공통의 테마 아래 모인 것이다.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노칼라’ 시리즈(1권 『판타스틱한 세상의 개 같은 나의 일』 2권 『직업의 광채』)의 뛰어난 단편들은 직업?직책?역할 뒤에 가려진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제목처럼 블루칼라(점원, 배달원, 공장 노동자, 수리공), 화이트칼라(사무직, 변호사, 약사) 외에도 비밀군사기지 연구원, 작가, 카우보이 등 우리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직업의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또한, 실직의 아픔 역시 직업의 빠질 수 없는 측면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퓰리처상 수상 작가들 10인─리처드 포드, 존 치버, 주노 디아스, 제프리 유제니디스, 에드워드 P. 존스, 줌파 라히리, 제임스 앨런 맥퍼슨, 유도라 웰티, 애니 프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을 포함해 조이스 캐럴 오츠, 리처드 예이츠, 떠오르는 신예 ZZ 패커와 같은 작가들이 시대를 초월해 한자리에서 같은 주제를 펼쳐 보인 흔치 않은 기회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위해 이보다 더 나은 상상의 단합은 없었다.
우리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일을 한다는 것은, 일이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연애소설 모음집, 추리소설 모음집은 봤지만 일소설 모음집은 처음이다. 일을 주제로 한 이 소설집의 기획자인 리처드 포드에게 일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는 먼저 아버지를 떠올려 보았다.
그랬다. 하루가 길었다. 지독히 외롭고 답답했다. 보수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혜도 없었다. 책상에 앉아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지루한 일이었다. 그러나 반대편과 비교하면 그런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직업이 없으면 내세울 자존심도 마뜩잖았고, 먹고 살기도 힘들었다. 당연히 임금도 없었다. 아무 것도 없었다. 달리 말하면, 일은 아버지의 윤리적 세계관에도 부분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리처드 포드 「서문」
사실 아리스토텔레스(“품삯을 받기 위해 하는 일은 모두 노예의 노동이나 마찬가지다.”) 때나 지금이나 일을 하는 인간은 어쩔 수 없는 무게에 짓눌려왔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일을 통한 자아의 성취라는 신화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누구나 하고 싶어하지만 모두들 하기 싫어하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것이 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리처드 포드에게 일이라는 주제는 복잡한 연애상대 못지 않은 흥미와 도전의 대상이었다.
나에게 일은 관심을 완전히 사로잡고, 도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었으며, 인간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무엇인가를 밝혀주고 식별하게 해주는 점화 메커니즘이었다. 리처드 포드 「서문」
그렇게 똑똑한데 왜 부자가 되지 못한 거지?
이 책은 “정시에 출근하고 일을 끝내야 하며 일거리를 집에 가져가고 어떻게든 고용되어야 하며, 때로는 해고되고 승진하거나 좌천당하며, 구조조정당해서 집에 보내지고, 때로는 넌더리가 나서 보따리를 쌀 준비를 하지만 돈벌이를 해야 하는 복잡하고 곤혹스런 문제들에 대해 문학에서 위안을 얻으려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리처드 포드 「서문」
이 책의 주인공들은 가게를 차리기 위해 은행 대출 창구에 앉아 있고, 돌아오는 월요일에는 절대 출근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금요일 밤을 보내고 있다. 주인 없는 슈퍼마켓의 점원, 횡령과 분식회계 따위를 연구하는 출판사 편집자, 직장 상사에게 아내를 빼앗긴 회사원, 당구대를 배달하려다 그 집 여자를 옮긴 배달원, 아이스크림 공장에서 러시아 문학을 읽는 알바의 이야기다. 요약해 보니 우스꽝스럽지만, 작품을 다 읽어보면 우습게도 눈물이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책에서 작가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작품은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은 그렇게 똑똑한데 왜 부자가 되지 못한 거지?” 이 문장은 경제경영서의 스테디셀러인 『마케팅 전쟁』의 한 구절이다. 역사상 유래 없는 물질적 생산물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오히려 극심한 박탈감과 결핍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 그들을 대신하여 소설 속 주인공은 싸움을 건다. 횡령이라는 문제적 방법으로.
“있잖아, 2년이면 치고 빠질 수 있어. 우리는 멋지게 잘 해내고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나면 우리 돈을 투자해서 GDP를 성장시키기 위한 우리 몫의 역할을 하는 거지.” 제프리 유제니디스 「위대한 실험」
부당한 승리자들, 불운의 주인공들, 그리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나는 언제부터인가 매사에 걱정을 떨치지 못한다. 이제 나는 지루하다 못해 불안하다. 맥스 애플 「사업 이야기」
『판타스틱한 세상의 개 같은 나의 일』의 첫 소설 「사업 이야기」는 한 중년 여자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문제가 일이 없는 데에 있다면 해결책은 일을 벌이는 것에서 나올 것이다. 그녀의 신개념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은 길 건너에 위치한 베스킨라빈스에 아랑곳 없이 성공할 수 있을까? 일단 그녀가 벌인 번거로운 일들로 지루할 틈은 없어진 것 같다.
『거리의 법칙』의 작가 러셀 뱅크스가 쓴 속도감 있는 단편 「걸리」는 ‘걸리’라고 불리는 빈민가를 배경으로 법과 윤리가 무너진 곳에서 탄생한 범죄 영웅들이 주인공이다. 살인과 범죄가 판치는 그곳에서 범죄자들을 살해하는 범죄를 저질러 돈을 벌고 영웅이 되는 그들의 모습은 오늘날 세계의 우화적 축소판이다. 톰 코라게선 보일의 「자파토스」는 미국의 신발 유통업체 ‘자포스’를 연상케하는 제목이다. 소설의 배경은 ‘세계에서 가장 길고 메마른 나라’(칠레)인데, 기막힌 방법으로 이탈리아산 수제 구두를 밀수하여 부자가 된다는 내용은 「걸리」처럼 풍자적이다.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이민자, 노동자)은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들이다. 주노 디아스의 「뉴저지, 에디슨」(당구대/게임기를 배달하는 도미니카 이주자 청년), 스튜어트 다이벡의 「사워크라우트 수프」(시베리아보다 추운 냉동창고의 알바), 에드워드 P. 존스의 「가게」(60년대 뉴욕의 가게에서 일한 흑인 청년) 등은 혹시 노동자를 다룬 소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있었다면, 그 시각을 가장 빨리 교정할 소설들이다. 이 소설들은 재미있으면서 무언가를 깨닫게 해준다. 「뉴욕 타임스」의 다소 거들먹거리는 태도의 리뷰어도 이것 하나는 배웠다고 썼으니. “다음에 우리집에 오는 배달원에게는 아주 아주 후한 팁을 주기로 했다.”
지금까지 미국인이 써온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
그리고 그에 필적하거나 능가할 경쟁자들
지금까지 미국인이 써온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는 존 치버의 것이다. :: 보스턴 글로브
주노 디아스는 냉정한 저널리스트의 눈과 시인의 혀를 지녔다. :: 뉴스위크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오늘날 미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다. :: 뉴요커
리처드 포드는 놀라울 정도의 치밀함으로 일상을 창조해내는 재능과 탁월한 대화 능력을 지닌 참신하면서도 지적인 소설가다. :: 뉴욕 타임스
독창적이고 매혹적이다. 에드워드 P. 존스의 이야기는 모든 독자의 심금을 울려 공감시키고 인정받을 것이다. :: 워싱턴 포스트
최고라는 식상한 수식어를 어쩔 수 없이 동원해야 하는 이름들이다. “이것은 존 치버의 소설이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정이현 소설가) “존 치버 만큼 미국 단편 문학의 지평을 넓힌 작가는 이제껏 아무도 없다.”(조경란 소설가) 존 치버는 작가 중의 작가라 할 만하다. 소설가 김영하는 주노 디아스의 소설집 『드라운』에 대해 “시궁창’에도’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시궁창’에만’ 꽃이 핀다는 것, 소설이라는 것의 출신 성분이 본래 그런 ‘잡놈’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썼다. 주노 디아스의 『드라운』에는 본 단편집의 수록작 「뉴저지, 에디슨」이 있다. 『미들섹스』와 『처녀들, 자살하다』로 한국에서도 폭넓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2008년 『뉴요커』에 발표한 신작 단편 「위대한 실험」을 수록했다. 기대했던 날카로운 필력을 확인함은 물론이다.
새로 만나는 작가들을 통해 느끼는 놀라움은 더하다. 리처드 바우시, 앤 비티, 톰 코라게선 보일, 조지 챔버스, 찰스 담브로시오, 니컬라스 델반코, 안드레 더뷰스, 데보라 아이젠버그, 에드워드 P. 존스 등 소설집을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들은 모두, 이미 거장 혹은 중견 작가로서 미국의 저명한 문학상들을 다수 획득한 이들이다.
『판타스틱한 세상의 개 같은 나의 일』에 수록된 열일곱 작품은 모두 좋은 단편소설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각자의 방식으로 답하는 재미있고 의미있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일에 대해서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을까 이 책의 편저자는 다음과 같이 답변을 준비해 두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일을 어떻게 정의하든 간에 일은 인간사에서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인간사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일의 진실한 모습도 우리 상상의 행위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리처드 포드 「서문」
그렇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가 이제까지 쓴 책을 다 합쳐도 설계가 잘 된 다리 하나보다 못하다는 걸 모르는 거니?” 스튜어트 다이벡 「사워크라우트 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