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너머의 삶을 향한 코넌 도일의 탐험
그의 일생과 현실의 벽을 허무는 작업들
『코넌 도일의 말』은 『수전 손택의 말』 『보르헤스의 말』 『한나 아렌트의 말』 『레비스트로스의 말』에 이에 마음산책에서 다섯 번째로 출간하는 ‘말에 지성이 실린 책’이다. 시공을 넘어 수많은 마니아와 리메이크를 양산한 셜록 홈스 시리즈의 작가 아서 코넌 도일이 실제로 남긴 말을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했다. 이 책에서는 아서 코넌 도일의 유년 시절부터 에든버러 의과대 시절, 셜록 홈스를 주인공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 인기 절정의 시리즈를 굳이 종결지으려 한 이유와 내밀한 가족사까지 ‘도일리언’이라면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도일이 말년에 심취했던 심령술과 그에 대한 신념이 생생한 육성으로 담겨 있어 지금까지도 논란인 그의 행보에 관해 새로운 관점과 이야깃거리를 제시해준다.
어떤 현상이 불가사의하고 경이롭게 느껴진다면 법칙이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기적은 정확한 법칙을 따릅니다.
-24쪽
이 책에서 도일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애지중지했던 아들 킹즐리와 남동생 이니스를 비롯하여 아홉 명의 가족을 잃은 이의 상실감과 노여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사랑하는 이들을 먼저 떠나보낸 고통 속에서 자연스럽게 현실 세계와 멀어져갔다. 1893년에 심령연구협회에 가입하긴 했으나 아들을 잃고 1년 후인 1919년에야 공개적으로 심령술 운동을 지지, 소설은 절필하다시피 하고 심령 서적 집필에만 몰두했다. 당시 도일은 협심증 진단을 받은 후에도 유럽 심령 순회를 강행하다가 들것에 실려 귀국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그러나 『코넌 도일의 말』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도일은 속임수에 빠진 사람도, 이성을 상실한 인물도 아니다. 그에게 심령술은 당시 지배적인 학설이었던 유물론과 전쟁으로 처참해진 현실에 대한 거부감에서 비롯된 것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세계 간의 벽을 허무는 작업, 새로운 지식으로의 탐험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고 그들의 증언을 일축하는 것은 현명한 인간이라면 보이지 말아야 할 오만한 태도 아니겠습니까.
-128쪽
타고난 스토리텔러, 아서 코넌 도일
그가 사랑하고 증오한 셜록 홈스
아서 코넌 도일은 1859년에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알코올중독 때문에 경제적 궁핍을 겪었고 일시적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기도 했다. 부유한 삼촌의 도움으로 가톨릭 학교에 들어가 교육을 받았으나 훗날 종교를 거부하고 불가지론자가 되었다. 이는 말년에 그가 심령술에 빠지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는 1876년부터 1881년까지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이 시기에 만난 조지프 벨 박사를 모델로 과학과 인본주의적 소신을 갖춘 ‘셜록 홈스’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 『주홍색 연구』(1887) 『네 사람의 서명』(1890)을 발표하여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1892년에 『셜록 홈스의 모험』을 출간할 무렵에는 의사 생활을 포기하고 전업 작가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부와 명예를 얻었다.
주인공이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그럴싸한 장치를 백 개쯤 설정해놓고 그걸 토대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죠.
-40쪽
그러나 희곡, 논픽션, 역사소설 등을 꾸준히 발표하던 도일에게 셜록 홈스 시리즈는 그저 상업성 짙은 연작에 불과했다. 그는 1893년에 시리즈를 마무리 짓고자 했고 『셜록 홈스의 회상록』(1894)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독자들의 성화로 『바스커빌 가문의 사냥개』(1902)를 통해 홈스를 부활시켰고 이후에도 『셜록 홈스의 귀환』(1904) 『셜록 홈스의 사건집』(1927) 등을 꾸준히 발표했다. 1920년대에 아서 코넌 도일은 전 세계에서 가장 수입이 많은 작가가 되었지만 그에게 셜록 홈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애증의 대상이었다.
홈스를 죽여서 영영 끝장을 낼까 합니다. 홈스 때문에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정신을 쏟을 수가 없어서요.
-47쪽
그러던 그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심령술 운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을 때 사람들은 당혹감을 표했다. 냉철한 이성의 탐정을 주인공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진위도 불분명한 요정 사진을 옹호하고 영매를 통해 죽은 아들과 만났다고 주장했으니 말이다. 당시 그의 변화는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었을 뿐 이렇다 할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코넌 도일의 말』은 이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의문점을 집중적으로 파헤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말년의 그가 가산을 탕진해가며 심령술 운동에 매진한 이유를, 각종 반론에 대한 그만의 논리와 주장을 오롯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심령술이라는 미지의 해독제
낭만적 사랑과 애도의 방식
아서 코넌 도일에게 심령술은 미지未知의 세계였다. 불가지론자인 그에게 ‘알 수 없음’에 대한 감각은 하나의 돌파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도일은 수많은 저작을 통해 성공한 작가가 되었음에도 사랑하는 이들을 지킬 수 없었던 자신의 무력함과 상실감을 잊기 위해 몰두할 만한 어떤 것을 갈망했다. 그것은 명석한 그조차 풀 수 없는 수수께끼여야 했고 이성과 논리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어야 했다. 홈스가 왓슨에게 “일이야 말로 슬픔을 잊게 만드는 가장 훌륭한 해독제”라고 말했듯 도일에게는 ‘미지’라는 해독제가 필요했던 것이다.
내가 끝없는 바닷가에 무릎까지 담그고 물살을 헤치며 걸어가는 어린아이와 같다는 걸 나도 알아요.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합니다. 바다가 있다는 거요.
-143쪽
『코넌 도일의 말』에서 도일은 낭만적인 성향이 다분한 남자다. 그는 아내 투이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의 10년 동안 그녀 곁을 지켰고, 언제나 가족을 사랑했으며, 넘치는 정의감을 발휘하여 조지 에달지처럼 누명을 쓴 이들을 나서서 변호하기도 했다. 이런 그에게 전쟁의 경험과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기에 도일은 심령술이라는 ‘베일 너머의 삶’을 피안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영영 만날 수 없게 되어버린 이들을 그리는 그만의 독특한 애도의 방식이었을 수도 있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세상 속에서 아직 피지도 못한 꽃다운 청춘들의 사망 소식이 날마다 전해지고, 사랑하는 이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아내와 어머니 들이 도처에 즐비했으니 내가 어쩌다 한 번씩 고민했던 이 문제가 단순히 과학의 법칙에서 벗어난 능력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두 세계 간의 벽을 허무는 무언가 어마어마한 것임을 문득 깨달았던 듯합니다. 그건 엄연히 저승에서 건너왔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직접적인 호출, 엄청난 고통이 닥쳤을 때 인류에게 전해진 희망과 인도의 외침이었어요.
-68쪽
추천사
전화라든가 엑스레이 같은 19세기 발명품이 이전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연결을 가능케 했다면, 영혼과 요정 같은 존재 역시 우리가 미처 모르기 때문에 부정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은, 적어도 코넌 도일의 시대에는 꽤 합당하게 품을 수 있는 의문이었다. 미지의 세계를 논리로 격파하고자 하는 코넌 도일의 담백하고 확신에 찬 육성은 지금까지도 논란이 분분한 도일의 말년에 대해 새로운 빛을 흩뿌린다. 셜록 홈스를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죽였던’ 코넌 도일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셜로키언이라면, 혹은 코넌 도일 같은 이성과 논리의 화신이 심령술과 요정에 빠져들었다는 사실 앞에 여전히 당혹스러워하는 도일리언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마침내 그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것이다.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