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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6년 04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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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394g | 137*197*20mm |
| ISBN13 | 9791166688362 |
| ISBN10 | 1166688364 |
17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어떤 사랑은 시작되는 순간 이미 끝을 품고 있다. 그 사실을 알고도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이야기는 비로소 인간의 것이 된다. 파멸이 예정된 관계임을 인지하는 순간, 선택은 멈추는 대신 더욱 선명해진다.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인연을 따라가듯, 혹은 이미 금이 간 운명을 되짚듯. 『다정한 지옥』 안에서 흐르는 것은 결국 인간이 스스로를 향해 내딛는 가장 오래된 선택의 이야기이다. 이 세계의 사랑은 시작과 동시에 종말을 품고, 그 종말은 예고가 아니라 서서히 번져오는 현재로 작동한다. 끝을 향해 기울어지는 시간 속에서 감정은 오히려 더 또렷해지고, 그 또렷함은 도리어 물러설 수 없는 상태를 만들어낸다.
왜 인간은 스스로를 망칠 선택을 하는가. 그 답은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피할 수 없는 것을 거부하는 대신, 오히려 그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는 방식. 주어진 운명을 견디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품 한가득 끌어안으려는 움직임. 이러한 태도는 고통을 제거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고통까지 포함한 삶 전체를 긍정하려는 내면을 드러낸다. 운명애(運命愛), amor fati.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차원을 넘어, 그것이 필연이라면 기꺼이 반복되기를 바라는 상태. 작품 속 인물들은 무지하거나 충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충분히 이해하고, 충분히 예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서지 않는다. 선택은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지 않고, 이미 기울어진 세계 안에서 끝까지 걸어 나가려는 의지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거대한 신념이 아니다. 영원이나 구원 같은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 세계에서 인간을 붙잡는 것은 오히려 훨씬 작고, 짧고, 사소한 것이다. 찰나의 다정함.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의 감각처럼, 모든 것은 머무르지 않고 흘러간다. 존재는 고정되지 않고, 관계 또한 붙들 수 없는 상태로 흩어진다. 그렇기에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온기는 더욱 선명하게 각인된다.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결국 사라질 것임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진실로 존재하는 따뜻함. 이 짧은 체온은 삶 전체의 방향을 바꾸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다. 인간은 영원을 소유하지 못하는 대신, 사라질 순간을 끌어안으며 자신을 태운다.
그래서 이 소설집의 관계들은 서로를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향해 다가선 끝에, 결국 베어내는 쪽으로 기운다. 검과 꽃, 피와 향이 뒤섞인 세계. 동양적 환상이라는 장막 아래에서 감정은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응축된다. 욕망과 애정은 분리되지 않고, 한쪽이 깊어질수록 다른 한쪽도 함께 날카로워진다. 상처를 남기지 않는 사랑이 아니라,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남기는 사랑. 그것이 이 세계에서 허락된 유일한 형태처럼 보인다. 한 송이 동백이 통째로 떨어지듯, 사랑 또한 어느 지점에서 갑작스럽게 전부를 내어주며 끝난다. 그 낙하는 결코 완만하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급격함이야말로 감정을 가장 순도 높게 드러내는 방식이 된다. 더 아름답고, 더 잔인하다.
인간은 왜 끝내 파괴될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선택하는가. 이 질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지옥 같은 세계 속에서도, 단 한 번 스쳐 지나가는 다정함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라질 것을 알기에 더 깊이 새겨지고, 붙잡을 수 없기에 더 오래 남는다. 그리하여 인간은 같은 선택을 되풀이한다. 알고 있는 결말을 향해 걸어가고, 그 안에서 다시 한번 온기를 찾는다. 그것이 구원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분명히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때문에. 그래서 인간은 영원을 얻지 못하는 대신, 소멸을 자각한 채로도 선택을 멈추지 않는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붙드는 마음, 그 모순을 끝내 끌어안는 태도 속에서 삶은 비로소 형태를 갖는다. 그러므로 이 반복은 오류가 아니라, 유한한 존재가 스스로를 긍정하는 가장 집요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끝이 정해져 있다는 이유로 발걸음을 거두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건넨다.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단 한 번 스쳐 지나갈 온기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었던 기억이 있다면, 이 세계는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사랑이 언제나 구원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 때로는 가장 깊은 상처로 남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그 감각을 다시 불러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다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지. 동양의 환상 속에 깃든 이 잔혹하고도 애틋한 이야기들은, 결국 하나의 감각으로 귀결된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끝내 붙들고 싶은 마음. 그 모순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응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지옥은 결코 낯설지 않을 것이다.
??도서출판 아작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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