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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14년 05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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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수, 무게, 크기 | 348쪽 | 453g | 140*210*30mm |
| ISBN13 | 9788954624862 |
| ISBN10 | 89546248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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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는 간결한 문체로 미국 중산층의 삶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여 20세기 현대 문학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작가이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은 그의 작품 중 12개의 단편소설을 엮어 『대성당』을 펴냈다. 표제작「대성당」은 아내의 오랜 지인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시각장애인인 지인과 함께 거실에서 TV를 보던 ‘나’는 대성당이 무엇인지 설명하려다 곧 말문이 막혀버리고 만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대성당이라고 해서 나한테는 뭐 특별한 게 아니거든요. 아무 의미도 없어요.” -「대성당」中
그 말을 들은 지인은 ‘나’에게 두꺼운 종이 위에 대성당을 그리게 하고, 자기는 손으로 그림 위를 더듬는다. 그러자 ‘나’의 내면에 변화가 찾아온다. 아무 의미도 없던 대성당이 새롭게 감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지인과 손을 맞잡은 채 함께 그림을 그려 나간다.
「대성당」은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그걸 완전히 안다고 말할 수 없음을 독자에게 상기시킨다. 현상 너머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대성당」의 '나'는 지인의 말을 따라 대성당의 형상을 직접 그리면서 그 가치를 깨우친다. 카버가 소설을 쓰는 방식도 이와 흡사한 측면이 있다. 리얼리스트의 대가라 불리는 카버는 인물들의 일상을 최대한 자세히 보여주며 작품 속 현장을 독자가 직접 체험하고 감각하도록 한다.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뚜렷한 이야기 구성 없이 시시콜콜한 대화나 장면이 이어지는 「깃털들」이나 「기차」 같은 작품에서 이러한 특징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여느 삶의 단면을 잘라서 펼쳐낸 듯한 작품은 픽션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카버는 왜 특별한 순간이 아닌, 지극히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자신의 문학으로 선택했을까? 카버가 그린 현상 너머에는 어떤 가치가 숨어있을까?
10대에 일찌감치 가정을 꾸린 카버는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지는 데 삶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대학에서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작가로서 글을 쓰는 한편, 아내 메리앤과 함께 공장 잡부, 정원사, 병원 청소부 등 온갖 직업을 전전한다. 이러한 카버의 삶은 그의 작품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책에 실린 12개 작품 중 대부분의 작품에서 부부나 가족이 등장하는데 그가 묘사하는 부부 관계는 로맨틱하기보단 현실적이고, 가족 또한 애정을 기반으로 맺어지는 화목한 모습이 아닌 책임으로 얽매인 삭막한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존」과 「굴레」는 실직한 남편 대신 경제적으로 가정을 떠받치는 아내가 등장하고, 「열」은 아내와 이혼한 주인공이 베이비시터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비타민」에서는 비타민 판매원인 페티가 꿈속에서도 비타민을 팔러 다니는 자신의 신세를 남편에게 한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밤이고 낮이고 나는 비타민만 팔고 있어. 빌어먹을. 무슨 놈의 인생이 이래.”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바보짓을 했지만, 이 여행은 그중에서도 가장 멍청한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오래전에 이미 자신의 애정을 거둬들이게 행동했던 그 아이를 만나고 싶은 욕망이 그에게는 없다는 점이었다. 갑자기, 그리고 너무나 분명하게 자신에게 달려들던 그 순간의 아이 얼굴이 떠오르면서 쓰라림이 물결처럼 마이어스를 지나갔다. 그 아이는 마이어스의 청춘을 집어삼켜버렸고, 그가 연애해서 결혼한 젊은 여인을 신경과민의 알코올중독자로 바꿔놓고는 번갈아가며 병도 주고 약도 줬다.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자신이 싫어하는 누군가를 만나려고 이 먼길을 나섰단 말인가. -「칸막이 객실」 中
사소하고 지루한 점들로 이어진 하나의 선을 삶이라고 한다면, 집요하리만치 현실과 맞닿아있는 사실적인 카버의 문체는 선으로 이어지던 우리의 삶을 뚝 잘라 다시 점의 형태로 돌려놓는다. 독자는 지루하고 지독한 누군가의 삶을 모조리 체험하는 한편, 현실과 한 발 떨어진 문학적 공간에서 본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경험을 한다. 어째서 우리는 이토록 변변찮은 삶이라도 멈추지 않고 살아가야만 하는지를 번번이 되물어가면서 말이다.
원하지 않던 삶이 발 아래 툭 하고 떨어지고 그것이 시궁창으로 처박힌다 해도, 삶에 품는 애정과 희망의 크기가 아주 얄팍하다 해도 우리는 쉽게 이 고통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삶조차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우리 삶에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닌 그 너머의 가치를 소중히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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