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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4년 02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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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 쪽수, 무게, 크기 | 256쪽 | 320g | 128*188*20mm |
| ISBN13 | 9788991418363 |
| ISBN10 | 8991418368 |
45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작가의 본명은 박기평입니다.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고흥의 작은 마을 동강에서 자랐어요. 그는 자신을 키운 건 순정한 흙가슴을 간직한 사람들 속에서 보낸 어린 날이었다고 말하죠. 1973년 서울로 이주해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선린상고(야간부)를 다녔고, 1984년 27살에 쓴 첫 시집 <노동이 새벽>은 금서였음에도 100만 부가 발간되었습니다. 박노해라는 필명은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으로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렸죠. 1991년 군부정권 하에서 사형을 구형 받고 무기수로 감옥 독방에서 7년 6개월을 보냈어요. 석방된 후 민주화운동가로 복권되었으나 국가 보상금을 거부했습니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라며 <나눔문화>를 설립했죠. 20여 년간 국경 너머 가난과 분쟁의 땅에서 평화 활동을 펼치며 사진과 글로 진실을 전해오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살아가는 삶의 공동체 <참사람의 숲>을 꿈꾸며 집필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내 모든 것은 ‘눈물꽃 소년’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어린 기평이가 할머니 심부름을 떠나는 물어물어 가는 길 위로 함께 떠나 봅니다.
“잘했다, 잘혔어. 그려 그려, 잘 몰라도 괜찮다. 사람이 길인께. 말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 빛나고, 안다 하는 사람보다 잘 묻는 사람이 귀인이니께. 잘 물어물어 가면은 다아 잘 되니께.” (p12) 소심하고 집에만 있기를 좋아하는 손자를 할머니는 심부름을 통해 밖으로 이끕니다. 정미소 지나 산굽이 길을 가다가 맨 위 다랑논에 벼가 얼마나 익었는지, 애기 동백이랑 유자나무가 얼마나 컸는지 보러 가는 길을 떠나요. 길을 모른다는 기평이에게 할머니는 말합니다. 물어물어 찾아가라고요. 기평이는 약간의 두려움으로 타박타박 걷다가 콩을 거두던 새댁을 만나고 나무하던 아재도 만나고 갯가에서 전어를 잡아 갈대에 꿰들고 오던 용재형을 만나요. 대추알, 돌배, 밭배알도 따먹고 산국화를 물고 산언덕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알밤을 주워서 집으로 돌아와요. 집에서는 말이 없고, 조용했던 기평이가 심부름을 다녀오면서 만난 사람들 얘기와 주변 풍경 얘기를 쉴 새 없이 쏟아 놓습니다. 할머니를 위해 웃옷에 싸온 밤을 풀면서요. 할머니는 어린 손자의 이야기를 따뜻한 미소로 들으면서 조용히 알밤을 까서 입에 넣어줍니다. 그러면서 말하죠. 잘 몰라도 물어물어 가면 된다고요. 말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 빛나고, 잘 묻는 사람이 귀인이라고요. 잘 묻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색하게 내가 모른다는 걸 들키는 것보다 손안의 스마트폰에게 물어보면 쉽고 빠르고 간단히 해결되죠. 점점 잘 묻는 사람들이, 한 번의 질문으로 생각과 관점을, 분위기를 일순간에 바꾸는 질문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이제는 거의 다 커버린 딸들에게 늦었지만, 기평이 할머니의 말을 전합니다. 사람이 길이니 물어물어 가라고, 말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 빛나고 귀인이라고요.
“아가, 사람이 나이 들면 다 주름지고 닮아지고 흙이 되는 거시제. 그랑께 눈이 총총할 때 좋은 것 많이 담고 좋은 책 많이 읽고, 몸이 푸를 때 힘 쓰고 좋은 일 해야 하는 거제이. 손발 좀 아낀다고 금손 되겄냐 옥손 되겄냐. 좋을 때 안 쓰면 사람 베린다. 도움 주는 일 미루지 말고 있을 때 나눠야 쓴다잉. 다 덕분에, 덕분에 살아가는 것인께.” (p70) 동네 사람들한테 감사 받고 인사받는 좋은 일은 꼭 기평이를 불러 시키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뒤 아버지까지 잃은 기평이는 할머니의 말을 새깁니다. 마치 할머니가 책을 읽는 나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와요. 눈 총총할 때 좋은 것 많이 담아야 할 텐데, 다른 사람들의 못난 것, 잘못된 것 담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심지어 나 자신의 못난 것, 부족한 것, 추한 것들을 담느라 어리석은 열심을 냈던 시간이었죠. 지금이라도 할머니의 말씀을 마음에 새깁니다. 눈이 총총할 때 좋은 것 많이 담고 좋은 책 많이 읽고, 몸이 푸를 때 힘쓰고 좋은 일 해야겠다고요. 남들은 퇴직을 생각하는 나이에 취직을 하려고 애쓰는 제가 못나 보여서 힘들었습니다. 할머니 말처럼 몸이 아직 푸르니 손발 아끼지 말고 일을 해야겠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경제적인 이득이라고 하더라도, 그 일을 통해서 좋은 일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요. 마음을 바꾸어 먹었는데, 취직자리가 없습니다. 아직은 조금 더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온통 색인과 밑줄이 쳐진 책을 또 한 번 읽습니다. 좋은 책은 서평을 쓰기가 너무 어려워요. 어떤 말을 얻는다는 것이 죄책감마저 들게 하니까요. 이전에 책을 통해 박노해의 사상과 생각을 알았다면 <눈물꽃 소년>을 통해서는 인간 박기평과 그 가족들을 만납니다. 감옥의 독방에서 7년 6개월을 버티며 시를 쓸 수 있었던 힘, 과거를 팔아 현재를 살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와 행동력, 가장 낮고 아픈 사람들을 향한 샘솟듯 하는 사랑. 그 모든 것의 원천이 되는 눈물꽃 소년을 만납니다.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마당을 깨끗하게 쓸고 감잎을 데코처럼 떨구고 “참 곱지 야”라고 말하던 어머니, 어린 기평이의 마음을 헤아리며 사람과 삶에 대해 일러주신 할머니, 귀한 배를 사서 기차 안의 사람들과 나누며 기쁨을 가르친 아버지, 어린 소년의 가슴에 시를 심었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용기를 가르쳐 준 형. 가족 모두가 있었기에 우리는 박노해를 공유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어두운 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을 만난 듯 마음과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죠.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유튜브 쇼츠를 채운 저에게 눈물꽃 소년은 강렬한 청량감을 선사합니다. 주위가 온통 어둠뿐인 곳에서 올려다본 쏟아지는 별빛 같은 책. 그 별빛을 하릴없이 바라보며 할머니의 말을, 어머니의 말을, 어린 기평이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이제 깨끗해진 영혼으로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겠다고, 눈물꽃 소년의 응원을 들으며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다시 더러워진다면 또 샤워를 하면 될 일이라고, 이제 그런 책을 만났다고 위로하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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