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의 위로를 나누고 싶어’ 직접 쓰고 그린 달詩
철쭉꽃이 환하게 핀 봄밤, 저자는 머리 위에 뜬 달을 오래도록 바라보다 와락 눈물이 났다. 초승달, 반달, 보름달로 차고 기울면서 달은 이 세상 존재의 비밀들을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은 인류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알고 있다. 수많은 사랑과 뜨거움,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얼룩진 밤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밤마다 온 세상에 따스한 빛을 비추며 그 모든 이야기를 보내고 있다.
시인은 휘황찬란한 도시의 인공 빛들에 밀려 희미해지는 달빛이 안타까웠다. 달의 존재를 잊고 지내는 무심한 사람들, 저마다 홀로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이 안쓰러웠다. 달은 언제나 따뜻하고 밝고 환하고 둥글다. 달빛은 한 번도 우리를 앞서 가지 않는다. 다만 환한 에너지로 밤마다 찾아와 밤이 외롭고 두려운 작은 존재들을 쓰다듬는다. 길을 잃은 마음에 등불이 되고 소망이 되어준다.
시인은 그러한 달의 기운을 받고 또 나누고 싶어 달의 이야기를 담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마음에 가득한 생각과 감정을 꺼내는 일이라 시를 쓰는 일은 행복했다. 글씨가 예쁘다는 칭찬을 종종 들어온 터라 종이에 시를 적는 일도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림은 좀 달랐다. 재주도 없고 배운 적도 없어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오랫동안 아끼며 모아온 펜과 파스텔, 크레용과 물감을 잔뜩 꺼내놓고 그리기 시작했다. 예술적으로 뛰어나진 못해도 마음을 담은 그림이라 ‘느낌 있다’는 벗들의 호응이 고마웠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사람들은 달 그림과 어우러진 이 시들을 ‘달詩’라 불렀다.
● 페이스북에서 뜨거운 공감을 받은 달詩
많은 사람들이 달詩를 좋아했다. 페이스북에 달詩를 하나씩 올려놓을 때마다 수십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팍팍하고 건조한 일상에 달詩가 촉촉한 감정의 울림을 준다 했다. 잊고 있던 그리운 이들이 떠올라 눈물이 난다 했다. 문득문득 고개를 들어 달을 찾아보게 되었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페이스북 벗들의 달詩에 대한 사랑이 깊어졌다. 페이스북의 절친인 ‘Lachel Bach’는 달詩를 영어로 번역해 올렸다. 한글을 아는 사람들을 넘어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게도 달詩를 알리고 싶어서란다. 밀란 쿤데라, 로맹가리 등 세계적 작가의 작품들을 국내에 소개한 번역가 백선희도 달詩를 불어로 번역해 페이스북에 올렸다. 달詩는 이렇게 눈 밝은 이들의 눈에 먼저 띄며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존재에 대한 애틋함
시인은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어릴 적에는 낮잠을 자다 깨어나서 툇마루에 멍하니 앉아 저녁이 오는 하늘을 바라보다 목이 메어 운 적이 있다. 홍역을 앓던 어느 날에는 한밤중에 자다 깨어 일어나 들창을 바라보다 들창 안에 뜬 초승달이 너무나 슬프고 아름다워 울었다. 어머니는 ‘어린것이 왜 그리 청승맞냐’며 걱정을 했다.
시인은 지금도 눈물이 많다. 봄을 맞아 세 뼘 담장 높이로 올라와 재잘거리는 개나리들, 하늘 한구석이 쿵, 하고 무너질 때마다 떠오르는 추억들, 한 줌도 안 될 햇빛에 옷가지를 말리려고 젊은 아낙이 마당에 나와 탁탁 옷을 터는 소리들이 눈물겹다. 뿐만 아니다. 동네에서 박스를 줍고 다니는 할머니가 몸에 걸쳐야 할 비닐 우비를 박스 위에 덮어 놓고 당신은 비를 맞으며 손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에 눈물이 난다. 우산을 씌워드리고 손수레를 밀어드리며 자꾸만 눈물이 난다. 그 순간 삶이 너무나 숭고하고 밥벌이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온몸으로 느낀다.
이러한 시인의 눈물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애틋함은 언젠가 사라질 모든 존재들에 대한 따뜻한 연민으로 이어진다.
● 사라졌으나 묘하게 존재하는 당신, 그토록 소중하다
수많은 지금 순간들이 지나가면 언젠가 우리는, 우리의 삶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두고 시인은 우리 모두가 ‘여름의 눈사람’ 같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여름의 눈사람처럼 녹고 있다고. 탄탄했던 살도, 관절도, 내장도, 머리카락도, 사랑했던 기억마저도….
그렇다. 눈물 날 만큼 행복한 시간도, 가슴 시리도록 아픈 시간도 어느새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인은 세상 어느 것도 아주 사라지는 법은 없어서, 먼 허공의 기억 같은 곳에 머물던 그 순간들이 메아리가 되어 문득문득 말을 걸어온다고 느낀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나뭇잎이 흔들릴 때, 소나기가 내리기 전 ‘훅’ 하고 열기 같은 것들이 몰려올 때, 저물 무렵 왠지 불안해질 때, 햇빛 아래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날 때면 이 세상 살다가 사라진 것들이 어떤 에너지로 남아 살아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선생님, 벗들, 아끼는 사람들과 사랑하고 편들고 때로 토닥거리고 미워하고 다시 껴안고 깔깔거리며 웃던 그 날들이….
달詩와 산문들은 이렇게 모든 그리운 것들을 불러오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렇게 분명 존재하지만 한여름의 눈사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존재를 불교에서 말하는 ‘진공묘유(眞空妙有)’로 설명한다. 텅 비었는데, 없는 것이 묘하게 있는 것을 뜻하는 말. 지금 나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유, 그리고 당신이 그토록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시’로 사회의 어려운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시인은 달동네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달동네 독거노인, 박스 수거하는 할머니, 숨에 턱 막히는 월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외롭고 지친 사람들에게 ‘달詩’가 용기와 희망을 주기를 바랐다. 출간 시점에 맞추어 사인회를 열고 책 홍보를 위한 출간기념회를 마다한 시인은 작고 소박하지만 지인들과 함께하는 ‘달詩展’(2014년 4월 4일~4월 6일)을 마련하여 판매액을 모두 달동네에 기부하기로 하였다. 저자의 진심이 담긴 ‘달詩’가 사회에 더 많은 울림을 주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