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세기 가장 영리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궁극적으로 위험한 수학자 중 한 명에 대한 훌륭한 전기이다. ― 《파이낸셜 타임스》
폰 노이만, 현대 사회를 규정짓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만나는 이름
― 어느 비범한 과학자의 삶을 통해 바라본 혁명적인 20세기 과학사, 그 생생한 이야기
“인공지능”은 기술적 도전의 영역일까, 사회적 도전의 영역일까?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성장한 인공지능의 충격은 단순히 산업계에 머물지 않았다.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은 과학과 R&D, 예술, 의학, 법학, 군사, 심지어 요리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만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존 폰 노이만이다.
폰 노이만은 정의하기 힘든 인물이다.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며 대학에서는 화학을 공부했다. 10대 때부터 20세기 수학의 여러 난제를 해결했고, 양자역학에 중요한 정리들을 발견했으며,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해 핵무기 개발에 관여했고, 그 과정에서 컴퓨터의 탄생에 기여했다. 게임이론을 낳아 현대 경제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꾸었으며, 생명의 논리를 찾아 스스로 생각하고 복제하는 기계의 시원을 설계하기도 했다. 그는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시점을 가리키는 “특이점(singularity)”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으며, “컴퓨터과학과 신경과학이라는 두 분야를 통합시켰”고(레이 커즈와일), 분자생물학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했다. 이처럼 현대 사회를 규정하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그의 이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인지, 세계적인 인지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20세기 후반의 사상사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진보 중 폰 노이만을 ‘~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는 분야가 있을지 의심스럽다”고도 했다.
폰 노이만의 삶은 한 세기의 과학사 전체를 관통한다
― 단순한 한 인간의 일대기가 아닌, 20세기 문명사 전반을 꿰뚫는 선지자의 발자취
이 책 『미래에서 온 남자 폰 노이만』은 15년간 학술지 《네이처》 등에서 선임 편집자를 지낸 과학 저널리스트 아난요 바타차리야가 존 폰 노이만의 삶과 그의 학문적 성과, 그리고 그가 인류에 공헌한 업적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단순히 폰 노이만이라는 한 과학자의 일대기를 추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폰 노이만의 이야기와 함께 20세기 문명사 전반을 탐사할 수 있도록 이 책을 구성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양자역학에 대한 폰 노이만의 기여를 설명할 때는 양자역학의 탄생부터 주요 이슈 등을 함께 정리했고,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폰 노이만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기술하기 위해 핵분열과 핵융합의 원리부터 이를 무기에 활용하는 매커니즘, 그리고 맨해튼 프로젝트와 고등연구소, 이후의 RAND 연구소까지, 세계대전 시기와 냉전 시대에 이루어진 수많은 과학적 진보도 함께 살펴보았다.
컴퓨터의 시대의 탄생을 예고한 노이만의 활약을 이야기할 때는 ‘자동 계산 기계’라는 개념의 등장부터 ENIAC의 탄생과 한계,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 최초의 프로그램 가능한 컴퓨터인 EDVAC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함께 제시한다. 20세기 초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하고, 그에 대한 과학적 접근법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노이만이 미친 영향력은 게임이론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이 책은 그 모든 과정을 상세하게 풀이한다.
컴퓨터 개발에서 21C 인공지능 개념이 싹 텄다
― 수학, 물리학의 비약적 발전에서 원자폭탄, 컴퓨터, 인공지능의 혁명적 발견까지
노이만은 단순한 계산 기계를 현대적 개념의 컴퓨터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의 개념을 탄생시켰다. 그 후 오토마타 이론을 개발해 스스로 자신을 복제하는 자기복제기계의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이것은 이후 인공지능과 기계학습, 나아가 인공 합성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저자는 앨런 튜링과 노이만의 만남부터 ENIAC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과 한계, 노이만이 제시한 오토마타 이론이 이후 다른 과학자들과 만나 어떤 식으로 펼쳐졌는지를 상세하기 기술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폰 노이만이라는 한 인물의 발자취를 시간 순서에 맞춰 따라가지만, 실상 이 책에 담겨 있는 것은 20세기 문명사 전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반에는 수학과 물리학의 비약적인 발견이 이루어졌고, 곧이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닥치면서 인류는 이때 이루어진 과학적 성취를 바탕으로 지표면의 거의 모든 생명체를 멸절시킬 수 있는 무기를 개발했다. 열핵전쟁의 시기가 지나고 냉전 시대가 왔을 때 인류는 경제라는 무기를 활용하기 위해 그 이론을 더욱 치밀하고 정교하게 다듬었다. 고도화된 산업사회에 필요한 것은 뛰어난 계산 능력을 갖추었으며 명령 없이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계였다. 이것은 컴퓨터의 발전, 나아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이어졌고, 21세기를 결정짓는 분야로 성장했다. 이처럼 노이만의 과학은 그가 제시한 자기복제기계처럼 끊임없이 확산되고, 복제되고, 진화를 거듭했다.
오직 생각하는 것만이 유일한 즐거움인 사람
― 완벽한 천재 혹은 미숙한 인간? 대체 폰 노이만은 어떤 사람인가
수많은 연구와 업적을 제외하고, 폰 노이만에 대한 인간적인 평가는 어느 정도 일치한다. 지나칠 정도로 합리적인 사람이며 인간관계에서는 미숙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폰 노이만의 외동딸 마리나는 그가 “냉소적인 과학자와 자상한 남자”의 모습을 모두 지녔으며, 내면에서 상반된 두 캐릭터가 항상 치열하게 싸움을 벌였고, 그 와중에 겉으로는 가능한 한 관대하고 명예롭게 보이고 싶어 한 “자연의 커다란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노이만은 공부 외에 신체 활동에는 관심도 없고 재능도 없었다. 악기 연주 실력이 형편없었고, 운동을 극도로 싫어해 두 번째 부인이 스키를 타러 가자고 했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혼하자”고 했다고 한다. 또 체스 게임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법을 개발했으면서도 정작 체스 실력은 중급 이상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 운전을 좋아했지만 실력이 좋지는 못해서 1년에 한 번씩 차를 바꿔야 했다. 차가 1년 만에 고철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프린스턴에 지낼 당시 그가 자주 사고를 냈던 곡선도로에 “노이만 코너”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고 한다.
노이만에 대한 주변인들의 평가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그가 생각(사고)을 누구보다 좋아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직 생각하는 것만이 유일한 즐거움인 사람”(에드워드 텔러)이자 “중증의 사고 중독자”(피터 랙스)였으며, “그때 레고 블록이 있었다면 레고로 컴퓨터를 만들었을”(마리나 폰 노이만) 사람이다. “무질서하고 불합리한 세상에 질서와 합리성을 부여하려는 열망”을 간직한 그는 “이 세상 모든 문제를 수학적 논리 문제로 변환하는 탁월한 능력”(프리먼 다이슨)을 갖추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대부분의 수학자가 증명 가능한 것을 증명하는데,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증명”(로자 피터)한 사람이기도 하다.
동시대를 수놓은 위대한 천재들의 교류와 창발의 파노라마
― 아인슈타인, 괴델, 오펜하이머에서 노이만의 두 번째 부인 클라라 댄까지
쿠르트 괴델, 에르빈 슈뢰딩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리처드 파인먼, 에드워드 텔러, 오스카 모르겐슈테른, 베른하르트 리만, 로버트 오펜하이며, 앨런 튜링, 존 내시, 로이드 섀플리, 다비트 힐베르트 등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에는 각 분야에서 놀라운 업적을 쌓은 이들과 노이만의 개인적인 관계와 사연이 흥미진진하게 소개된다.
이 책의 저자 아난야 바타차리야는 이미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인물들만큼이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한 사람, 바로 노이만의 두 번째 부인인 클라라 댄의 삶에도 주목했다. 저자는 ”지구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과 결혼하면서 생긴 부작용“ 탓에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던 클라라의 업적을 자세히 소개했다. 클라라는 당시 대부분의 여성처럼 대학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1938년 겨울에 결혼한 둘은 미국의 프린스턴으로 건너와 생활했다. 그녀는 전쟁 기간 동안 우연히 프린스턴 대학교 인구조사국에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아, 이후 사실상 인류 역사상 최초의 코더(coder,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며 ENIAC의 수치 처리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핵폭탄 안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중성자의 궤적을 계산하는 몬테카를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처럼 폰 노이만과 지적으로 교류하고 새로운 지식과 사상을 혁명적으로 만들어나간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자연스레 20세기의 문명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간 아인슈타인이나 파인먼, 오펜하이머에 비해 덜 조명된 그의 삶의 궤적을 밟아가며 ‘미래에서 온 남자’ 폰 노이만을 제대로 평가하고 그가 만든 21세기를 새롭게 누려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