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나카지마 히데토 교수의 일본 방송대학의 『사회 속의 과학』이라는 수업 교재인데, 첫 수업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여기서 말하는 「과학」은 기술을 포함한 넓은 영역을 가리킨다. 현대사회에서 과학은 종래처럼 더 이상 순수한 지식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과학은 기술을 통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저자는 17시기의 영국 과학사를 전공했으나, 그 분야를 연구할 때에도 과학이 현대사회에서 왜 이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을 버린 적이 없었다. 어떤 사정으로 첨단공학 연구소에 첫 직장을 얻게 되어, 과학과 기술이 과학과 기술이 경계가 없이 융합한 것, 즉 순수과학과는 너무나 다른 것을 보고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얼마 뒤에는 역시 우연한 계기로 대학에서 기술사 강의를 담당하게 되어 이전부터 전공해 오던 과학사의 수업과 병행하여 기술사라는 분야를 교육하게 된다. 당시까지 진행되어 왔던 과학사와 기술사의 교육 내용은 상상 이상으로 서로 동떨어져 있었다는 것과 만약 그 두 교육을 통합하여 과학과 기술이 융합해온 과정을 추적할 수만 있다면, 현대사회에서 과학, 기술의 막강한 영향력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저자는 방송대학의 『사회 속의 과학』 과목을 강의를 맡게 되면서 과학사와 기술사의 수업을 문헌으로 돌아가 재검토하고 그에 대하여 새로운 책들과 문서들을 읽으며 연구했던 성과들을 간추리고 이해하기 쉬운 내용으로 정리하게 되었다.
이 책은 크게 그리스시대의 과학부터 현대과학까지를 정리하고 있는 과학사의 통사로 볼 수 있다. 어느 분야든 통사를 쓴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그것은 통사가 그 분야의 다양한 지적 흐름들을 시대를 초월하여 폭넓게 정리하는 특징을 지녔지만, 동시에 상호 단절되기 쉬운 각 학파들의 사유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총체적 조감도여야 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옮긴이가 느낀 이 책의 특징은, 첫째, 과학사와 기술사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지은이는 과학과 기술의 상호 관련성을 일관되게 고민하면서 과학과 기술이 결합하기까지 양자가 어떻게 독립적으로 발전해 왔는지를 고대 이후부터 추적하고 있다. 이 같은 서술은 근대 이후 과학이 기술과 연관을 맺게 된 구체적 유래를 이해하는 데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과학이 현대사회에서 이렇게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된 이유를 해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종래의 과학사 통사들과는 구분되는 과학기술사 통사라고 볼 수 있다. 둘째, 단순히 기술을 포함한 과학사의 통사에 머물지 않고, 과학철학, 과학사회학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시각 안에서 과학기술과 사회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사 또는 과학철학이나 과학사회학 만을 독립적으로 다루는 연구는 더 이상 ‘과학’의 복잡한 다양성을 이해할 수 없고, 특히 기술의 측면을 배제하고는 현대의 과학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과학기술사를 줄거리로 하면서도 과학철학의 논쟁적 이론들, 그리고 오늘날 기술과 결합한 과학이 사회 속에서 불러 일으키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폭넓게 고민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종래의 과학사 통사들과 구별되는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이다.
- 저자 서문과 역자 후기에서 정리
추천사
HPS(과학사·과학철학)에서
STS(과학기술학/과학기술사회론)로
과학기술은 과학혁명, 산업혁명, 과학기술혁명을 거치면서 현대사회의 구심점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과학기술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것이 사회에서 어떤 몫을 하는가에 대한 관심이 일찍부터 싹튼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19세기 후반 과학의 역사와 철학에 관심을 가졌던 마흐, 푸앵 카레, 뒤엠 등 과학자들이 과학사 · 과학철학(HPS)의 주춧돌을 놓았다. 1920년대 유럽 곳곳에서 일어난 조직적인 과학철학운동은 논리실증주의를 꽃피게 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뿌리내렸다. 오랫동안 ‘과학자에 의한, 과학자를 위한, 과학자의 과학사’를 벗어나지 못했던 과학사는 20세기 초 사튼의 ‘문화사적 과학사’를 거쳐 1930년대에 철학적 과학사(내적 접근)와 사회적 과학사(외적 접근)로 나누어졌다.
1930년대 머튼이 17세기 영국 과학기술의 사회학적 분석으로 시작한 과학사회학은 같은 시대의 과학철학처럼 역사와 가치를 배제하는 한계를 보였다. 1960년대에 들어와 과학철학에 역사적 접근이 불처럼 일어났고 사회적 과학사 붐이 뒤따랐다. 1970년대에 사회구성주의가 등장함에 따라 과학사회학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과학학(science of science)은 1920, 30년대 소련과 폴란드에서 태동했다. 과학에 관한 과학적 분석을 시도한 과학학은 사회주의권 밖에서는 별로 주목을 끌지 못하다가 1970년대에 서유럽에서 과학학(science studies) 또는 과학에 관한 사회적 연구(social studies of science)로 재출발했고 기술이 추가되어 과학기술학(STS)으로 온 세계에 퍼져나갔다. 과학기술학으로 묶일 수 있는 과학기술철학, 과학기술사, 과학기술사회학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지만 따로 따로 발전해왔다. 1980년대 이후는 과학기술을 다루는 여러 분야들을 아우르는 노력이 활기를 띠고 있다. STS는 과학기술학(S&TS;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과 과학기술사회론(ST&S;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으로 불리는데 일본에서는 과학기술사회론, 한국에서는 과학기술학이 더 널리 쓰이고 있다.
서양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19세기에 근대화한 일본에서는 이미 20세기 초에 신칸트학파의 과학관이 소개되었고 1930년대에 마륵스주의적인 과학론이 활발히 연구되었다. 20세기 중반 과학사 · 과학철학과 STS에서도 일본은 한국보다 한 걸음 앞서 있었다. 한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기술학이 차례로 강의되었지만 과학과 사회 강의에서는 1981년 일본서 나와 이듬해 한국어로 번역된 나카야마 시게루의 『과학과 사회의 현대사』가 교재로 쓰였다. 과학사와 STS에서 나카야마보다 한 세대 아래인 나카지마 히데토의 『사회 속의 과학』은 사회적 맥락에서 본 과학기술사로서 과학사, 기술사, 과학기술과 사회의 교재로 모두 적합하다. 한국과학기술학회에서 곧 낼 예정인 교재 『과학기술학 강의: 과학기술과 사회』(휴머니스트)는 과학기술학의 주요 문제를 망라한 책이다. 두 책은 각각 훌륭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상호보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나카지마는 나온 지 5년 되는 이 책의 한국판 서문에서 STS에 관한 중요한 생각을 적고 있다.
이 책을 지은 나카지마 히데토 교수를 20년 전 도쿄의 학회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그는 도쿄대학 조수였는데 19세기 서양기술의 일본 도입에 관한 그의 발표가 너무 좋아 내가 1997년 과학기술과 문화에 관한 국제회의를 대전에서 조직했을 때 초청연사로 불렀다. 미국에서는 웨스트폴 전 과학사학회장, 일본서는 사카모토 일본과학철학회장과 함께였으니까 파격이었다. 2000년 나는 그의 초청으로 베이징에서 쩡꾸오핑 칭화대 교수와 함께 동아시아 STS 네트워크(East Asian STS Network)를 창립했다. 그는 물리학에서 시작해 과학기술사를 거쳐 일본 STS를 대표하는 과학기술사회론학회 회장이다. 홍성욱 한국과학기술학회장, 한국과학사학회 차기회장과는 같은 연배이고 걸어온 길과 관심이 비슷하다.
이 책을 옮긴 김성근 교수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1996년 어느 날 밤, 한림대에서 한문을 가르쳤던 김대현 교수(전남대 국문과)가 아우 성근과 함께 우리 집을 찾아왔다. 화공과를 갓 졸업한 아우가 과학사를 공부하러 일본에 가겠다는데 어쩌면 좋겠냐고 물었다. 서울대 대학원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이 생겼으니 일본에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성근은 고집을 꺾지 않고 일본으로 갔다. 그는 도쿄대 과학사 · 과학철학 연구실에서 한국 사람으로는 가장 빨리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는 김성근 박사를 일본 갈 때마다, 그리고 영국, 미국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을 때도 만났다. 작년 가을 전남대에 취직해 바쁜 첫 학기였지만 이 중요한 책의 번역을 맡아 멋있게 해 냈다. 이 책이 한국에서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
2013년 1월 25일 이탈리아 피자에서
송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