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교육학 고전을 읽는가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 열풍과 함께 찾아온 ‘고전 읽기’는 여전히 진행형일까? 같은 고전의 다른 번역본이 계속 출시되고 고전 주석서들이 끊이지 않는 현상을 보면, “그렇다”라고 해도 무방할 테다. 한국 독자들에게 익숙한 고전들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교육학 고전’들이다. 장 자크 루소의 『에밀』, 존 듀이의 『학교와 사회』, 파울루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를 모르는 고전 애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들을 정독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교육학 고전의 주독자로 예상되는 교사들은 과연 이 책들을 읽을까?
“무엇보다 영락없는 교육학 초심자인 나 자신을 위해 썼다고 말하는 편이 가장 정확하겠다.”(6쪽) 글쓴이 정은균의 고백이다. 이 책을 쓴 까닭을 “교육 철학 초심자나 교육 철학에 관심 있는 교육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뒤 이어서 한 말이다. 글쓴이 정은균은 경력 20년이 다 된 현직 교사다. 하지만 교육 철학 초심자다. 대학에서 교직 과정을 이수할 때 첫 학기에 배운 3학점짜리 교육 철학 과목이 공부의 전부였다. 교육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쓴 책 제목을 무수히 만났지만. 실제 그들의 삶과 책을 제대로 살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가 학교 안팎에서 만난 다른 교사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교육학은 교원임용고시의 기계적인 오지선다형 문항 속에 들어 있을 뿐이었다. 또한 현장 교사로 살면서 수업과 생활지도 요령 같은 “당장의 쓸모”를 구하다 보면, 교육학을 공부할 시간은 잘 주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전문적인 학문 분야라는 교육학은 학교 현장에서 찬밥 신세다. 교육학이 실제 교육 활동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없다고 반문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교육학 이론이 학교 수업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여긴다.
실리와 실용, 명쾌한 팁과 비법이 각광 받는 시대다. 어떤 일이든 실리나 실용과 무관한 면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은 몇 가지 팁이나 비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흔히들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유일무이한 ‘정답’을 찾기 힘든 교육에서야 오죽할까? 정신, 마음, 내면이 일정하게 깊이나 올바름을 갖출 때 우리가 얻고 누리는 실리와 실용은 의미를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글쓴이는 수년 전부터 짬짬이 교육 철학사의 고전을 읽었다. 교육의 근본정신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그들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돌아볼 문제가 무엇인지 정리했다. 이 책은 그 작은 결과물이다. 플라톤과 『국가』, 장 자크 루소와 『에밀』, 존 듀이와 『민주주의와 교육』을 본편에 넣고, 그 사이에 마르틴 루터, 요한 페스탈로치, 파울루 프레이리를 두었다. 저자는 이들을 “교육사의 거인들”에 빗대었다.
현장 교사의 눈으로 본 ‘교육 철학사’, 그리고 ‘우리 교육’ 이야기
글쓴이가 여러 교육학자와 교육학 고전들 가운데 플라톤, 장 자크 루소, 존 듀이와 이들의 대표작을 고른 까닭은 무엇일까? ‘교육 철학사’와 ‘우리 교육’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국가주의 교육’,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 듀이의 ‘민주주의 교육’은 교육사나 교육 철학사의 흐름이 크게 모퉁이를 돌며 전진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 자체로 교육사와 교육 철학사의 큰 흐름이다. 그리고 마르틴 루터, 요한 페스탈로치, 파울루 프레이리는 그 사이를 연결한 거인들이다. 이 책을 간명하게 정리한 ‘교육 철학사’라고 불러도 되는 이유다.
모든 사회·문화 현상은 단일한 요인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여러 요인이 중층적으로 작용한다. ‘우리 교육’ 또한 마찬가지다. 민주화 시대라고 해서 ‘민주주의 교육’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교육 이론과 실천들이 뒤섞여 갈등하고 때로 조화하며 우리 교육을 지탱한다. 이 가운데 글쓴이가 주목한 것이 바로 ‘국가주의 교육-자연주의 교육-민주주의 교육’이다. 20년 현장 교사의 눈으로 봤을 때, 이것들이 ‘우리 교육’을 특징짓는 주요한 이론과 실천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가 『국가』, 『에밀』, 『민주주의와 교육』을 골랐지만, 실제로는 ‘우리 교육’이 이 책들을 호명한 셈이다.
교육사의 거인들을 만나다
이 책에서 다룬 교육사의 주요 ‘거인’은 세 사람이다. 첫 번째 거인은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서양 철학의 비조이자, 교육 철학에 관한 아이디어들을 최초로 집대성한 사람이었다. 그 결과물이 『국가』와 『법률』이다. 이 두 책을 중심으로 플라톤이 주창한 이상주의 교육과 국가주의 교육 철학을 살펴보았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논증한 이상 국가의 교육 시스템은 우리가 교육의 공적 측면을 고찰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책에서 다룬 두 번째 거인은 장 자크 루소다. 루소는 교육사에서 인간의 본성으로서의 자연을 중시하는 자연주의 교육 철학의 대변인이자 개인주의 교육의 주창자로 분류된다. 루소는 인간의 본성을 자연의 일부로 파악하고, 이러한 관점을 교육에 반영하자는 메시지를 자신의 대표작 『에밀』에 담았다. 글쓴이는 『에밀』을 읽으면서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 철학에서 말하는 ‘개인’이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밝히려고 노력했다. 독자들은 『에밀』을 읽으면서 사회와 국가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인을 어떻게 기를 것인지 고민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존 듀이는 최근세의 교육 역사를 대표하는 거인이다. 듀이는 시종일관 좋은 교육을 통해 사회가 점진적으로 바뀌면서 이상적인 민주주의 공동체가 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진보주의와 민주주의 교육을 향한 듀이의 이와 같은 바람이 가장 잘 담긴 책이 『민주주의와 교육』이다. 그것은 듀이 교육 철학의 결정판이자, 보통 사람의 상식에 기반한 교육의 본질과 방향을 집대성한 저작이다. 이 책을 통해 지금 전 세계적으로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가 지향해야 하는 교육 철학이 어떠해야 하는지 깊이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이들 세 사람 사이에 또 다른 거인들 몇 명이 더 자리 잡고 있다. 16세기 초 독일의 마르틴 루터는 역사적인 종교 개혁 이후 국가 중심의 공교육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주장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사이에 살았던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는 루소에서 이어지는 아동 중심 교육을 현장에서 실천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파울루 프레이리는 20세기 중후반 이후 남미를 중심으로 한 제3세계에 피억압자들을 위한 해방의 공동체 교육을 전파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이 책은 교육 철학과 교육 이론뿐 아니라, 교육사의 거인들의 ‘삶’에 주목한다. 교육사의 거인들이 어떤 시대 현실에서 살았으며, 그들이 경험한 삶의 국면들이 어떠했는지를 밝히는 데 지면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독자들이 거인들이 각각의 책들에 담아 놓은 메시지를 좀 더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과거를 산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사는 지금 이곳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처럼 생각해 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글쓴이는 지금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거인들의 주장과 행동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플라톤이 이상 국가 건설을 위해 내세운 ‘난혼’과 ‘영아 유기’에 관한 주장, 루소가 5명의 자식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낸 행동이 대표적이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에서 “가장 훌륭한 남자들은 가장 훌륭한 여자들과 되도록 자주 성관계를 맺어야 하지만, 열등한 남자들은 열등한 여자들과 되도록 드물게 성관계를 맺어야”(45쪽) 한다. 또한 빼어난 수호자들의 자식들은 도시의 특정 구역에 따로 떨어져 거주하는 전문 양육자들 손에 길러진다. 반면 열등한 수호자 부모의 자식들, 또는 다른 부류(계급) 사람들의 자식으로서 불구 상태로 태어난 아기들은 은밀한 장소에 유기된다.
루소는 5명이나 되는 자신의 아기들을 모두 고아원으로 보냈다. 프랑스대혁명에 영감을 준 『사회계약론』과 자연주의 교육 시대를 연 『에밀』을 쓴 사람이 한 행동이라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루소는 처음에는 가난과 자신의 무능력을 이유로 들었으나 나중에는 묘한 논리들을 동원했다. “나는 내 아이들을 직접 기를 수 없어서 공교육에 맡김으로써 그 아이들이 건달이나 재산을 노리는 구혼자보다는 노동자와 농민이 되도록 만든다면 시민이자 아버지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나는 스스로를 플라톤 공화국의 일원이라고 생각했다.”(97쪽)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은 교육학 고전에 대한 단순한 ‘리포트’나 교육학자들에 대한 ‘위인전’이 아니다. 이는 책 제목에서 ‘나’라는 읽는 주체를 강조한 까닭이기도 하다. 전주교육대학교 이서연 학생은 추천사에서 “나는 예비 교사로서 ‘이런 점은 본받아야지’, ‘이런 점은 시대 흐름에 맞지 않아’ 따위의 공감과 비판을 하며 우리가 써 내려갈 교육이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했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