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초창기 한국만화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김종래 선생님의 작품을 소개하는 도록집이다. 선생님께서는 1927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셨다. 세 살 무렵 가족과 함께 도일(渡日)하셨고, 일본 교토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고 해방을 맞아 귀국하셨다. 만화가가 된 것은 한국전쟁 당시 육군본부 작전국 심리전과에 배속되어 선전용 전단과 반공만화를 그리면서부터다. 이후 『만화세계』와 같은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고, 「엄마 찾어 삼만리」(1958)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2010년 5월, 서거 10주년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김종래 선생님의 유가족들께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작품을 기증하셨다. 선생님께서 오래전에 그리셨고, 평생을 소중하게 보관해왔던 574권의 도서와 4만여 장(도서 525권 분량)의 친필원고가 박물관으로 전달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김종래 작품 도록’이 기획되었다.
주요내용
도록집 내용구성은 크게 작품의 출간정보와 이미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출간정보는 기본적인 서지사항과 연관작품, 부록, 광고, 작품해설로 세분할 수 있다. 서지사항에는 기본적인 권수와 부의 구성을 비롯하여 출간일자, 출판사, 분량, 완결 여부, 시리즈 제목, 원작명 등을 밝혔고, 부록에는 작가의 인사말이나 단편만화, 공지사항 등의 항목을 정리하였다. 신작광고의 경우, 작가명과 작품명 순으로 표기하였다.
이미지는 표지와 속표지, 원고의 일부분(4~7쪽)으로 구성하였다. 조금이나마 내용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가급적 연속된 페이지를 골라 배치하였으며, 도서와 원고가 둘 다 있을 때는 가급적 원고를 게재하였다. 주지하듯 도서의 이미지는 원고와 비교하면 질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인데, 특히 당시의 작품들은 열악한 인쇄환경과 조악한 지질(紙質) 때문에 원고의 섬세함은 거의 구현되지 못했으며, 심지어 다른 작품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 책에는 총 206종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많은 수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후 진행될 작가연구 및 작품연구에 귀중한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출간연도를 살펴보면 1950년대 말에서 절필(1978년)하실 때까지의 작품이 대부분이고, 일부 1980년대에 복간된 작품들이 포함되었다. 데뷔작으로 알려진 「붉은 땅」(1954)을 비롯하여 1950년대 중반 잡지에 연재되었던 작품들은 대부분 누락되었다. 초창기의 작품들이 빠져 있기는 하지만,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셨던 전성기의 작품들은 대부분 수록되었다는 점은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들어가며...
2011년, 기증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연구가 제안되었고, 필자가 연구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작품에 관한 자료를 접하게 된 순간, 생전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필자에게 건네진 수십만 장의 이미지는 종이와 먹물로 이루어진 단순한 글과 그림이 아니라, 선생님의 삶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작품 하나하나에는 사람들과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오롯이 담겨 있고, 솟구치는 창작욕, 그리고 그것을 형상화하려는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 평생을 품고 있었을 작가로서의 자존심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한 자부심과 애정이 없었다면, 이 모든 성취는 세월의 이름으로 흘러가버렸을 것이다.
초반의 작품들은 장편이 많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는 단편 위주로 창작되었다. 여러 부로 이루어진 장편의 경우, 제목이 같을 때에는 같은 작품으로 취급하였고, 내용상 연결되더라도 제목이 다를 때에는 개별 작품으로 취급하였다. 단 ‘하리마오 시리즈’의 경우는 총 3개의 제목으로 구성되었지만, 한 작품으로 취급하였다. 부에 대해서는 특별히 표기(ex.2부, 3부)하지 않는 편이어서, 1부와 2부의 작품들이 섞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편, 표지와 속표지, 판권지의 제목이 다르게 표기된 작품들도 있었는데, 이 경우에는 모두 함께 적었다.
연출 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삽화체에서 만화체로의 전환을 꼽을 수 있다. 주로 1950년대 후반에 창작되었던 삽화체 작품들은 정적인 삽화체의 그림을 바탕으로 많은 양의 지문을 사용하고 있어 ‘그림소설’이나 ‘그림이야기’라고 불렸다. 만화체로 바뀌기 시작하는 과도기에 창작된 작품으로는 「울지마라 은철아」(1962)를 들 수 있는데, 유머의 연출이 서툴고, 인체비례나 구도 면에서 어색한 모습이 다수 발견된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영화적인 연출이 차용되기도 하였으며, 작가를 대변하는 동물 나레이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등 특이한 연출기법이 발견된다.
김종래 선생님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아마 ‘이야기꾼’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것이다. 그의 작품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도, 독자들을 작품 속에 빠져들게 하는 치밀하고 복잡한 서사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지하듯 그의 작품들이 가진 스토리텔링은 작가의 상상력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선생님께서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민담이나 전설, 신화, 고전 및 현대 소설, 연극(신파극),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을 차용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서사구조에 관한 분석은 추후에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연구과제다. 이 밖에 캐릭터와 주제의식(가족주의, 영웅주의, 반공주의, 민족주의, 복수와 용서 등), 그리고 작가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일본에서 받았던 사회문화적 영향에 관한 깊이 있는 분석도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필자는 이 말을 작가연구를 위해서는 작품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한국 만화사 연구에서, 특히 초창기에 활동했던 작가들은 남아있는 작품이 많지 않아서 작가연구마저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이런 척박한 현실 속에서 김종래 선생님의 작품 도록집이 출간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고인이 되신 선생님의 노력과 유가족의 배려 덕분이다. 풍족한 자료들 덕분에 모처럼 신명나는 한 해를 보낼 수 있었다. 감사하다는 말로는 그 기쁨을 다 표현할 수 없지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후 추가 연구를 수행하여 김종래 선생님의 작품세계에 관한 심도 있는 평론을 발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끝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신 이희재 선생님과 백수진 팀장을 비롯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관계자분들,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 방대한 자료와 씨름하면서 멋진 책을 만들어주신 허브출판사 박관형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2012. 2.
만화평론가 한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