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자본주의에 조종(弔鐘) 울려라!
『다현사』의 저자 박세길이 제시하는 전환시대의 독법
2008년 세계 주가 대폭락, 2011년 유럽의 금융ㆍ재정 위기와 전 세계로 번진 반(反)금융자본주의 시위. 과연 자본주의는 이대로 지속될 수 있을까? 국내외 사회경제 분야에서 벌어지는 기업혁신과 사회변동을 탐색하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소멸과 새로운 사회의 도래를 전망한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80~90년대 대학생들의 필독서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의 작가 박세길. 전작을 통해 민중 중심의 진보적인 역사관을 선보였던 저자는, 이번 책에서 좌우 구도를 뛰어넘는 새로운 독법으로 앞으로 도래할 미래 사회상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사회는 반드시 존재할 것이며,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역사의 진보”라는 20년 전 믿음이 이 책을 구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힌다. 저자가 오랜 고민 끝에 펼치는 주장은 매우 도발적이다. 자본주의는 그 승자독식 논리로 인해 이미 내적 위기에 처해 있고, 지식사회의 도래라는 외적 환경의 변화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 여기서 저자는 이 책에서 새롭게 정의한 ‘상생’과 ‘인본주의’라는 두 핵심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를 뛰어넘을 대안적 가치를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이는 독자들과 함께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모색하려는 대담한 제안이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2부는 미국 금융자본주의 붕괴를 중심으로 역사의 변곡점을 맞고 있는 자본주의 문명의 변화를 거시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3~4부는 이 책에서 저자가 새롭게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의 주요 개념들을 본격적으로 살핀다. ‘인본주의’가 어떻게 전환기의 자본주의로부터 태어나 진화하고 있는지(3부), 승자독식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소멸되고 ‘상생의 생태계’가 조성되는지(4부)를 설명한다. 그리고 5부에서는 상생의 인본주의 사회에 빠르고 확실하게 도달할 수 있는 왕도를 제시하면서, 새로운 사회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본다.
자본주의는 필멸(必滅), 어떻게 사라지는가?
20세기를 호령했던 자본주의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그것의 종말을 논하는 것은 속단처럼 느껴진다. 그럼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자본주의 필멸의 근거는 무엇일까? 저자는 두 가지를 지적한다. 먼저 자본에서 지식으로 생산수단의 위상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는 것. 저자는 오늘날을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이동하는 역사적 전환기라고 보고 있다. 산업사회를 이끌었던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을 지닌 자가 고용이라는 형태로 사람을 지배했다. 그런데 지식사회의 도래와 함께 지식 소유자(창조자)들이 자신이 보유한 창조력을 바탕으로 자본을 소유ㆍ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푼돈의 자본금으로 거대기업으로 성장한 휴렛 팩커드, 구글, 애플 등이 그 예라는 것. 자본보다 사람의 창조력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로 관계가 역전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자본주의의 승자독식 구조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승자독식에 적극적 가치를 부여하고 시장경쟁을 최고조에 이르게 한 것이었다. 그 결과 사회는 1%의 부유층과 99%의 빈곤층으로 확연히 갈렸다. 저자는 사회적 양극화 자체도 문제지만, 이것이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빈곤층은 어쩔 수 없이 소비를 줄이고, 부자들도 투자 기회를 얻기 힘들어진다는 것. 저자는 한 예로 2000년대 미국의 경제위기를 들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제조업들이 줄도산하면서 실물경제가 악화되고, 그에 의존해 이윤을 냈던 금융자본이 함께 위기를 맞은 것이다. 저자는 이렇듯 승자독식을 핵심 기조로 하는 자본주의는 결코 지속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다가올 새로운 사회, 상생의 인본주의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미래 사회의 핵심 가치로 제시되는 것은 ‘상생’과 ‘인본주의’이다. 이 개념들은 근래 대기업의 독점 구조가 도마에 오르면서, 기업들이 ‘상생경영’, ‘사람경영’ 등의 수사적 표현으로 자주 사용했기에 독자들에게도 그렇게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저자는 이 용어들을 기왕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자본주의의 대항 가치로서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고 있다. 곧 상생은 “자본주의가 야기한 문제 중 가장 집중적으로 극복할 대상”인 승자독식에 대항하여 도입한 개념이고, 인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주도적 생산 요소인 ‘자본’의 대항 가치로서 ‘인본’을 강조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저자는 새로운 사회의 주도적 생산 요소를 창조력이라고 보았는데, “사람 자체가 권력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인본주의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얘기하는 상생의 인본주의의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저자는 상생의 인본주의 사회에서는 고용ㆍ피고용 관계가 완전히 해소된다고 본다. ?조자들은 지식사회의 생산수단인 창조력을 지녔기에 기업 구성원의 관계에 있어서도 수평적인 동업자ㆍ협력자 관계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마치 소작농이 (……) 자작농으로 변신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창조자들의 수평적 연합체인 ‘직능조합’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상생의 인본주의 사회를 현실 세계에 구현시킬 수 있는 열쇠로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존의 “시장과 국가는 사회구성원의 삶의 질을 도약시키기에는 한계가 너무 많”기 때문에, 조합원들에 의해 민주적으로 구성된 직능조합이야말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직능조합의 서비스로는 창업 기회 제공, 기업들과의 장ㆍ단기 업무 협력 계약, 복지 혜택, 평생 교육 훈련 등이 있다. 이는 기존 공공기관의 역할 상당 부분을 직능조합에서 대체하는 것으로, 다소 놀라운 발상이다(417~420쪽).
승자독식을 넘어 상생의 생태계로
저자는 오늘날 승자독식의 체제를 대신하여 상생의 생태계 전략이 부상하고 있는 현상을 주목하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들고 있는 사례는 우리나라 전통사회에서의 논농사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논이 수천 년 동안 단작을 해왔음에도 지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원인을 설명한다. 그것은 논이 “곤충의 서식지가 됨으로써 생물종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관개용 저수지, 잡목림과 초원 등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복합 생태계의 일부로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 결과 생물들의 배설물과 사체, 주변 환경으로부터 영양소가 꾸준히 유입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상생의 생태계 전략은 근래 IT기업들을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유력한 비즈니스 모델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예컨대 애플은 아이튠즈 뮤직스토어와 앱스토어 등 온라인 장터를 개설한 뒤, 여기에 참여한 수많은 콘텐츠와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이익의 70퍼센트를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온라인 장터를 이용할 수 있는 아이팟, 아이폰 등 애플 제품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또한 아마존은 개방형 상거래 웹 서비스를 만든 뒤 누구든지 자유롭게 소규모 판매 사이트를 개설할 수 있도록 했다. 방대한 상품 데이터와 결제 시스템도 무료로 제공했다. 그 결과 수많은 소규모 판매 사이트가 만들어졌고 1년도 지나지 않아 수천만 명이 방문하여 상품을 구매했다. 저자는 이러한 상생의 생태계 구축을 통해 참가자 모두가 최상의 이익을 거둘 수 있으며, 이 책에서 제시하는 상생의 인본주의의 운영원리도 이 같은 상생의 생태계의 모습으로 구현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새로운 사회로 가는 장애물, 낡은 사상과 문화, 정치
저자는 왜 주로 사회경제적 영역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두었을까? 저자는 그 책임을 여전히 구시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상과 문화, 정치 영역으로 돌리고 있다. 사회경제 영역에서는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징표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 반면, 사상과 문화, 정치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 특히 저자는 “국가가 절대 우위를 차지했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으며, 그에 따라 “정치가 모든 것을 규정하던 시대 또한 물러갔다”고 우리의 낙후된 정치 문화에 불만을 토로한다. “국가의 위상 변화에 맞는 새로운 정치가 창출되어야 하지만”, 우리 현실은 “지나온 역사가 남긴 이념, 계급과 계층, 지역 대결 구도” 속에 그대로 갇혀 있다는 것. 결국 오늘날 정치가 대중에게 희망을 안겨주지도 못하고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는 기능을 상실한 원인도 여기에 있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사상과 문화, 정치가 함께 변화하지 않는 한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사회경제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행의 징표를 분석하는 것은 이를 통해 사상과 문화, 정치의 창출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풀 단초를 마련하려는 것. 저자는 이런 전환의 시대를 건너기 위해서는 기득권에 집착하지 말고,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기성세대일수록 기득권에 집착하기보다는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간파하고, 스스로가 변화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