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용 /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 뫼비우스 그림 /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처음 '개미'란 책을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 내가 초등학생이었는지 중학생이었는지 그때의 나의 모습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개미'란 책에서 내가 느낀 놀라움과 감동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어린나이에 굉장한 두께의 세권의 책은 쉬운 도전이 아니었다. 분명 내가 서점에서 들고 온 책이지만 어떻게 그런 책을 골랐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 그때 당시 책읽기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높았던 때도 아니었으니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아마도 그때 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면 '개미'란 책이 너무나도 재미있었기에 다른일은 할 수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세권의 책을 학교에선 교과서 위에 포개놓고 수업시간에 읽고, 집에 돌아오면 TV도 안보고 책을 펼치고 열심히 읽어나갔다. 아마도 나에게 책이 주는 재미를 처음으로 알려준 것이 '개미'일 것이다. 그 후로도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었던 기억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으니까.

그때 그렇게 '개미'란 책에서 엄청난 재미를 느끼고 베르나르 베르베르란 재미난 이름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여러 작품들을 만나면서 약간의 실망도 있었지만 '나무'란 책으로 다시 한번 강렬한 충격을 안겨 주면서 그에 대한 믿음은 거의 신앙에 가까워 졌다. 그렇게 멋진 세계를 창조해낸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나의 두뇌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파피용'의 출간소식을 들었을때 가슴안에서 그에 대한 신앙심이 끓어 오르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오랜 기간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없어서 쏟아부을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해 조용히 스러져간 그를 향한 불쌍한 신앙심이 되살아 나고 있었다. 살아난 신앙심은 온 몸을 휘감으며 기대감을 주입시켰다. 내 몸은 순식간에 이 한마리 나비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차 버리고 말았다.

책이 처음에 내품으로 날아 왔을때 아름다운 나비의 모습에 작은 탄성을 터뜨리게 되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나비의 모습이 굉장히 멋스러운 모습으로 한동안 눈길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책표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에게는 백점만점짜리 였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표지가 마음을 든든하게 해준다. 책장에 이 책을 꼽아놓으면 정말 행복할거란 생각을 하며 책표지에 심취에 있다가 서서히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만들어놓은 '파피용'의 세계를 확인해야 함을 느끼고 책장을 넘겼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인류를 위해 거대한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그 이름만으로도 굉장히 절실하고 긴박함이 느껴지는 '마지막 희망' 프로젝트이다.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나비모양의 우주선 파피용호에 14만 4천명이나 되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태워서, 세개의 밝은 빛을 발하는 성운에 위치한 새로운 지구를 찾기위해 1000년에 걸친 여행을 감행한다. 그가 아니면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할 거대한 프로젝트에 할말을 잃게 되었다.

사실 우주여행이란 단어는 그렇게 신선하지도 않고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었다. 이전부터 더 큰 세상을 보고픈 인간의 욕망은 우주를 향해 뻗어 나갔고, 그 욕망이 무한한 상상력과 만나 우주여행이란 것을 탄생시켰다. 지금까지 셀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우주선의 모양을 선보였고, 그 우주선으로 우주여행을 감행하였다.

'파피용'이란 책에서 우주여행이란 것 자체는 그렇게 큰 놀라움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말도 안되게 기발하다. 나비의 모양을 본떠 우주선에 어마어마한 돛을 달아 태양빛과 별빛에서 에너지를 얻어 운행한다는 것(파피용은 친환경적이다!)부터 해서 그 말도 안돼는 규모와 몇세대에 걸친 우주여행은 평범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였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베르베르의 상상력이 탄생시킨 파피용이란 거대한 우주여행 프로젝트는 크게 세개로 나뉘어져 있다. 파피용호를 만들어 출항하기까지의 지구 이야기와 파피용호가 새로운 행성을 찾아 항해하는 우주이야기, 그리고 세개의 빛이 있는 행성에 위치한 생명이 살 수 있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에 도착해서의 이야기를 담고있는 파피용호의 '마지막 희망' 프로젝트는 기발하지만 즐거워 할수 없는 것이었다. 이 거대하고 야심찬 프로젝트는 인간이란 동물에게 보내는 경고장이었다.

지금 지구는 인간의 위대한 업적으로 이루워낸 환경파괴로 인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상처에서 고름이 터지듯 썩은물을 토해내고 고열에 시달리며 흘러내린 식은땀이 육지를 가라 앉히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일구워낸 인간들은 저희들끼리 싸우고 있다. 조금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남을 것을 빼앗고 파괴한다. 지구는 이제 한계상황에 다달아 이렇게 이기심 많은 인간들을 수용해 줄 수 없다.

이런 인간들의 모습을 지켜 본 베르베르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은 탈출!'이란 마지막 해결책을 내놓았다. 인류는 침몰하는 지구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별을 찾아내서 정착해야 한다. 하지만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담고 출발한 우주여행은 눈뜨고 지켜볼 수 없는 것이었다.

우주선안은 인간이 살아갈 수 있게 지구와 비슷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 놓았다. 하지만 긴 여행동안 세대를 거듭하며 인간이 이 우주선안에서 벌이는 일이란 지구를 재현하는 것이었다. 애초의 목적의식은 서서히 사라지고 꿈틀대는 욕망이 우주선을 뒤덮는다. 인간은 자신들의 조상들이 그렇게 해왔듯이 서로를 죽이고 죽이는 싸움을 시작하고 우주선의 환경을 파괴해 나간다. 지구의 환경이 파괴되었듯 우주선안의 환경 또한 인간의 욕망의 물결에 휩쓸려 완전히 파괴되어 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호는 지구의 작은 모형이었다. 이 모형은 지금까지 지구에서 인류가 일구워 놓은 것들을 관찰하는 고통을 맛보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