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생존자, 히말라야 원정대, 남극탐험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마지막 구조자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만났던 미지의 구원자에 관한 보고서
최악의 위기를 기적으로 바꾼 그림자 멘토는 존재하는가
미국의 금융 브로커 론 디프란체스코는,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가 테러공격을 당했을 당시 남쪽 건물이 무너지기 직전에 그곳에서 나온 최후의 생존자다. 그는 자신이 근무하던 84층에서부터 계단을 내려와 탈출에 성공했는데, 불길을 뚫고 나오는 동안 믿을 수 없는 체험을 했다고 증언했다. 낯선 존재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일어서!”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는 그 목소리가 자신을 격려해 준 덕분에 불길을 뚫고 지나갈 수 있었으며, 마침내 불길이 없고 밝은 층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 존재는 모습을 감추었다고 말했다(18쪽).
테러 사고나, 극지 탐험, 자연재해 등으로 혹독한 환경에 놓여 있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 중에는 미지의 존재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 존재는 가장 위험했던 순간에 나타났다가, 위기를 넘길 즈음 돌아보면 다시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특별한 것은, 이러한 체험을 단순한 미신이나 개인적인 신비체험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는 점이다(28쪽). 히말라야에서 보이지 않는 동반자를 만났다는 산악가부터(68쪽), 낯선 존재가 조타실에서 키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본 항해자(71쪽), 우주정거장에서 죽은 아버지를 만난 우주비행사까지(128쪽), 비슷한 체험을 증언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산악가들 사이에는 이러한 이상 현상을 자주 경험한다는 것이 이미 정설이 되어 있다. 지난 4월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한 오은선 대장 역시 2008년 에베레스트 하산 길에 자신에게 조언을 해 주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2009년 10월 12일자 동아일보 기사 참조).
이처럼 심리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인상을 받는 현상을 ‘제3의 존재 현상(The Third Man Factor)’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더라도 실제로는 그 장소에 있지 않은 어떤 존재가 곁에 있다는 느낌 역시 제3의 존재 현상에 포함된다(156쪽). 제3의 존재는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며, 일반적인 환각과 달리 그것을 체험하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3의 존재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 존재를 만나 안정을 되찾았으며, 덕분에 침착한 판단을 내리고 생존을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최악의 위기를 삶이라는 기적으로 바꾼 제3의 인물의 정체는 무엇이며, 그들은 왜 나타나는가. 신이 보낸 사자인가, 극한이 만들어 낸 환각인가, 우리 내부에 잠들어 있는 타인인가.
캐나다의 저명한 논픽션 작가인 존 가이거는, 이러한 사례들이 한 번도 체계적으로 정리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제3의 존재 현상을 심층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책 『제3의 존재』에서 탐험가생존자들의 체험담을 수집하고, 제3의 인물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들을 소개함으로써 그 실체에 접근하고 있다. 인간이 넘기 힘든 한계에 부딪혔을 때, 삶을 위한 한 걸음을 내딛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6년간에 걸친 문헌 조사와 인터뷰, 서신 교환을 통해, 지금껏 불가사의로만 치부됐던 그림자 인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풀어놓는 경이로운 생존담과 다각적인 해설을 따라가노라면, 지금껏 비밀로 남겨졌던 인간의 깊은 내면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내가 가장 외로웠던 순간에, 나는 내가 아닌 위대한 어떤 것과의 소통을 경험했다.”
항상 내 곁에서 걷고 있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그림자 존재에 관한 최초의 탐구서
잔해 속에서 나타난 스님에게 사과를 건네받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마지막 구조자 박승현
뒤를 따라온 존재의 도움으로 남극에서 극적으로 생환한 어니스트 섀클턴
에베레스트에서 제3의 동반자에게 박하케익을 건넨 프랭크 스마이스
보이지 않는 탑승객의 도움으로 대서양 횡단비행에 성공한 찰스 린드버그
우주정거장 미르에서 죽은 아버지를 만난 우주비행사 제리 리넨저
이 책의 저자 존 가이거는 극지 탐험가, 등반가, 단독 항해자, 난파선 생존자, 비행기 조종사, 우주비행사 등, 모험의 유형에 따라 책을 구성하고, 제3의 존재를 설명하는 이론들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사례들은 ‘제3의 존재’에 관한 가장 유명한 사례들로서, 서울의 삼풍백화점 붕괴현장에서 마지막으로 구조된 박승현의 이야기도 소개되어 있다.
한국 서울의 삼풍백화점 아동복 매장에서 일하던 박승현은 1995년 7월에 백화점 건물이 무너지면서 매몰되었다. 그 사고로 300명 이상이 죽었다. 그녀는 음식도 없고 물도 거의 ?이, 엘리베이터 기계실 아래쪽의 작은 공간에 16일간 갇혀 있었다. 그 공간은 일어설 수도 없을 만큼 비좁았다. 주위에 있는 것이라고는 희생자들의 썩어 가는 시체뿐이었다. 심한 탈수 증세로 고통을 겪던 이 젊은 여성은 마침내 잔해 더미에서 구조되고 난 뒤, 힘들었던 시간에 스님이 여러 번 나타났다고 말했다. “스님이 사과를 주셨고, 희망을 잃지 않게 해 주셨어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스님이 찾아온 것을 기적이라고 불렀다(94쪽).
이 같은 제3의 존재 현상이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언급된 것은 1910년대 영국의 남극탐험대장 어니스트 섀클턴에 의해서다(45~61쪽). 1916년, 남극원정 길에 조난을 당한 인듀어런스호의 선원 스물여덟 명이 2년 만에 극적으로 생환했다. 선원들을 이끌었던 어니스트 섀클턴 대장은 구조를 요청하러 가는 마지막 행군에서 자신들을 지켜 준 기이한 존재를 만났다고 전했다. 이 발표는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시인 T. S. 엘리엇은 이 신비체험에 영감을 받아 자신의 시 '황무지'에 이런 구절을 썼다.
항상 그대 곁에서 걸어가는 세 번째 존재는 누구인가
세어 보면 그대와 나 둘뿐인데.
하지만 앞에 놓인 흰 길을 바라보면
항상 그대 곁에서 걷고 있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이 시로부터 ‘제3의 존재’라는 명칭이 생겨났고, 이후로 제3의 존재를 만났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한 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던 영국인 산악가 프랭크 스마이스는 누군가가 곁에서 함께 산을 오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 보이지 않는 동료의 존재가 너무 생생하게 느껴진 나머지 비상식량을 반쪽으로 나눈 다음 그것을 건네고 나서야 자신이 혼자였음을 깨달았다는 일화가 있다(65쪽).
1927년 단독으로 대서양 횡단 비행을 시도한 비행기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는, 졸음과 싸우면서 비행하고 있는 동안 자신이 탑승한 1인용 경비행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이 함께 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정신을 차렸다. 린드버그는 그들이 비행 중에 조언을 해 주고, 일상에서 얻을 수 없는 중요한 메시지를 주기 위해 온 것이라고 믿었다. 마침내 그는 이 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영웅이 되었고, 장거리 비행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된다. 그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회고록 『세인트 루이스의 정신』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혀 놓았다(113~118쪽).
1895년 요트를 타고 최초의 세계일주 항해에 성공한 조슈아 슬로컴 역시 바다에서 제3의 존재를 만났다. 지브롤터 해협으로 가는 도중 열대성 호우를 만난 슬로컴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식중독까지 걸려 선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정신이 들어 깨어 보니 낯선 사나이가 자신을 대신해 키를 잡고 있었다(71쪽).
나는 정신이 몽롱해졌다. 기절했다가 다시 정신이 돌아오니 요트는 격랑이 치는 바다로 뛰어들고 있었다. 갑판과 선실 사이의 승강 계단으로 내다보았더니 놀랍게도 어떤 키 큰 남자가 키를 잡고 있었다. 그의 굳센 손은 키의 바퀴살을, 마치 바이스로 죈 것처럼 단단히 쥐고 있었다(71쪽).
항상 그대의 곁을 걷고 있지만 그 모습을 어둠 속에 감추고 있는,
제3의 인물의 정체는 무엇이며 그들은 왜 나타나는가
신이 보낸 사자인가, 극한이 만들어 낸 환각인가, 우리 내부에 잠들어 있는 타인인가
인간이 얼마나 고독하며, 또 사회적인가에 관한 우아한 생존 보고서
제3의 존재를 설명하는 해석은 실로 다양하며, 시간을 따라 변천해 왔다. 수호천사, 죽은 이의 혼령, 극한이 유발한 두뇌의 이상 현상, 도플갱어, 그리고 집단무의식으로부터 소환된 인물까지. 저자 존 가이거는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이 지금까지 기울여 온 노력이 그 자체로 ‘인간의 변화하는 자기이해의 기록’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33족) 그는 제3의 존재를 해석하는 여러 가지 주장들을 균형 있게 소개하면서 제3의 존재의 정체에 접근한다.
이 책에는 그런 이론들과 동시적으로 진행된 해법을 찾기 위한 탐구 과정에 대한 서술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실려 있다. 그 현상을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인간의 변화하는 자기이해의 기록이다. 그것들은 처음에는 수호천사라고 불렸다가, 다음에는 감지된 현존감, 또는 그림자 인간이라 불린다. 이 현상을 이론화하는 주체도 처음에는 성직자, 다음에는 심리학자, 나중에는 신경학자의 순서를 거치는데, 이런 추세는 외부에서 내면으로, 신으로부터 심리로, 두뇌로 들어가는 점진적인 환원 과정이었다.(33쪽)
저자는 제3의 존재의 출현을 지배하는 기본 원칙 다섯 가지를 들어 제3의 존재 현상을 고찰한다. 지루함의 병리학, 다중 방아쇠의 원리, 미망인 효과, 뮤즈 요인, 구원자의 힘이 그것이다.
제3의 존재를 만나게 되는 환경은, 주로 고도의 주의를 요하면서도 매우 고립되고 단조로운 공간이라는 특징이 있다.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들어오는 자극에 익숙해지도록 진화해 온 인간이, 일상을 ?어나 이러한 감각자극이 주어지지 않는 환경에 놓이게 되면 작은 기척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그것을 생명을 가진 실체로 인식하거나, 혹은 자기 자신을 분리시켜 타인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주장이 ‘지루함의 병리학’이다. 1997년 미국항공우주국의 우주비행사 제리 리넨저는 우주정거장 미르호에 탑승하여 130여 일 동안 임무를 수행했는데, 이따금씩 정거장 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존재를 느낀 적이 있다고 말했다(128쪽). 지루함의 병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의 일상으로부터 철저히 단절되어 있는 우주정거장에서의 단조로운 생활과 고독감이 리넨저로 하여금 죽은 아버지의 존재를 느끼게 한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제3의 존재 체험에는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개인의 감수성이나, 살고자 하는 의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사회적인 욕구 등이 복잡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존 가이거는 말한다. 어린 아이들이 상상 속의 동무를 만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171쪽)나 가위에 눌렸을 때(수면마비) 낯선 존재를 감지하는 사례(282쪽) 역시 제3의 존재 체험과 연관성이 있다고 보는 가설들이 있다.
사지의 일부가 절단된 사람이 잘려나간 부위가 여전히 있는 것처럼 가려움 등의 감각을 똑같이 느끼듯, 인간의 신체 감각은 실제와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다. 제3의 존재 역시 자신의 신체 감각을 실제와는 다른 위치에 투사한 결과로 보는 이론이 있다(276쪽). 그렇다면 에베레스트에서 제3의 존재에게 비상식량을 건넨 프랭크 스마이스의 경우에서 보듯이, 제3의 존재에게 음식을 건네거나 그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것 역시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278쪽). 이러한 자기상 환시(自己像 幻視)의 체험은, 자기 자신을 타인으로 마주하게 되는 도플갱어 현상과도 연관된다.
프랑스의 문학가 빅토르 세갈렌은, 중국과 티베트의 국경지대에서 고고학 탐사를 하던 중에 자기 자신과 만났다고 썼다. 무리한 트레킹으로 인해 지쳐 있던 세갈렌은 길의 맞은편에서 투명한 사람의 형체와 마주했다. 그 몸을 통해 너머에 있는 부서진 바위와 급류가 보였다. 세갈렌은 그가 투명한 형체이긴 하지만 유럽의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말을 걸어도 그는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는 듯 넋이 나가 있었다. 그러나 곧 세갈렌은 그가 ‘젊은 시절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세계의 끝에 왔다는 것을 직감하기라도 한 듯 방향을 돌려 귀환 길에 올랐다(280쪽).
이처럼 다양한 이론을 통해서 존 가이거는 제3의 존재를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다. 이러한 탐구를 통해서 그는 인간을 조금은 비일상적인 시각에서, 일상성을 뛰어넘은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저 특이한 현상으로 치부하고 넘길 수도 있는 사건을 인간의 본질에 뿌리박은 경험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자기 인식의 새로운 형태로 해석하는 것이다.
제3의 존재는 인간의 매우 심오하고 희귀한 자기 인식의 한 가지 형태다. 높은 산에서, 깊은 바닷속에서, 우주공간에서, 또 일상의 한계 상황에서, 인간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깊은 내면에서 솟아오른 자신의 모습과 대면한다. 그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한 모습이며,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자기 발견이다. 제3의 존재는 자기 자신이면서 동시에 타자이다. 그것은 타자와 관계를 맺고자 하는 근본적인 희망, 혼자가 아니고자 하는 인간의 희망에서 발원한다(315쪽).
“이 책에 실린 생존 이야기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배웠다면,
그것은 인간 존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인하며
더 큰 회복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저자 존 가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