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의도
고전에서 ‘지금 이곳’의 대안을 찾는 고전평론가 고미숙,『임꺽정』에 꽂히다
자타가 인정하는 고전평론가(고전을 싱싱하게 재구성하여 현대의 독자들과 만나게 해주는 일종의 ‘매니저’) 고미숙이 『열하일기』에 이어 또 하나의 고전에 꽂혔다. 바로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의『임꺽정(林巨正)』이다. 2008년 여름 사계절출판사에서 마련한 고전 특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게 된 『임꺽정』이 그녀의 일상을 새롭게 바꿔놓았다. “민중과 저항, 역사소설, 리얼리즘 등의 코드로 가득한 족쇄”로 여겼던 책에서 오늘날 심각한 청년 실업 문제와 비정규직의 해결책을 엿본 것이다. 고미숙은 말한다. “꺽정이와 친구들은 하나같이 백수다. 그럼에도 궁상맞게 살지 않고 사랑과 우정, 공부와 놀이 면에서 우리한테 조금도 꿀리지 않고 훨씬 더 풍요롭다.” 조선시대의 ‘마이너’-천민에다 백수-들이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유를 누리는 모습에 속된 말로 ‘감동을 먹은 것이다’. 그러고는 곧 우리의 문제로 돌아온다. 때마침 2008년 가을, 신자유주의가 파산을 선포함에 따라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백수로, 노숙자로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길의 시대’가 열렸다. 백수는 임금 노예인 정규직을 얻지 못해서 안달복달하고, 정규직은 언제 거리로 내몰리지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그래서 결국 백수나 정규직 모두 노예가 되어버리는 오늘날의 이 기막힌 현실은 뭐지? 하고.
백수들의 향연, 『임꺽정』으로 쿵푸하다
고미숙은 평소에 공부는 단순히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전체를 온몸으로 익히는 기쁨이자 삶 자체, 즉 쿵푸(功夫)라고 역설해왔다. 그는『임꺽정』을 읽으며 그동안 갖고 있던 편견을 깨뜨렸다. 우리가 임꺽정을 계급적 저항에 불타는 민중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건 80년대를 풍미한 리얼리즘과 민중문학의 명제들이 그렇게 명령했기 때문이지, 꺽정이를 비롯한 칠두령은 의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10권이나 되는 방대한 대하역사소설『임꺽정』을 한마디로 ‘백수들의 향연’, ‘몸으로 승부하는 달인들의 향연’이라고 요약한다. 세 번의 완독 후에 빈손으로도 얼마든지 당당할 수 있고, 또 길 위에서도 얼마든지 사랑하고 배우고 싸울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곧바로 쿵푸를 한다. 바로 2008년 겨울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시작된 강의가 그것이다. 지난 일년간『임꺽정』을 읽고 강의하면서 고미숙은 사유의 전환을 겪는다. 이 책『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이 그 결과물이다. 또한 지금 ‘코뮤넷(CommuNet) 수유 너머’란 새 이름으로 용산 연구실을 거점으로 서울 구로, 신길, 강원 춘천 등 지역간 네트워크 형태로 조직을 개편하는 것의 아이디어도『임꺽정』의 청석골이라는 조직에서 얻었다 한다. 현재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진행중인 백수가 자유인이 되는 프로젝트, ‘청년 백수를 위한 케포이필리아’(공부와 밥과 우정의 향연) 역시『임꺽정』의 달인 실천 프로그램이다.
주요 내용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임꺽정』의 충실한 안내서이다. 남들이 쉽사리 발견해내지 못하는 작품의 면면을 고미숙 특유의 화법으로 분석, 정리하여 소개한다. 그래서『임꺽정』내용을 알고 모르고와 상관없이 누구나 흥미롭고 새로운 고전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고전을 통해 ‘지금, 이곳’의 대안을 찾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방식의 고전 리라이팅인 동시에, 저자가 평소에 강조하는 각 방면의 ‘달인 종합편’에 해당한다. 고미숙은『임꺽정』에 나오는 청석골 칠두령의 사랑과 우정, 자유와 열정, 반역과 투쟁의 여정을 통해 비정규직과 백수 등 우리 시대 ‘마이너’들에게 삶의 비전을 제시한다.
1장 경제 : 마이너리그 혹은 ‘노는 남자들’
저자는 임꺽정과 그 친구들을 ‘노는 남자’로 규정한다. 이들은 농사를 짓자니 땅이 없고, 장사를 하자니 밑천이 없다. 게다가 혈연적 유대 역시 형편없다. 꺽정이는 그나마 가족, 친지라도 있지만 유복이는 이름대로 어머니밖에 없는 유복자고, 봉학이는 기묘사화때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바람에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곽오주 역시 눈칫밥 먹기 싫어 가출한 뒤 여기저기 떠돌며 ‘임노동(알바)’을 하는 처지다. 길막봉이는 소금장수고, 배돌석이는 떠돌이 룸펜이다. 천왕동이는 백두산에서 살다 제 누이가 꺽정이와 혼인을 하는 바람에 꺽정이네 집에 와서 더부살이를 한다. 한마디로 결손가족에, 집에서 내놓은 자식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하나의 집단, 하나의 계급으로 묶기란 곤란하다. 사. 농. 공. 상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건 물론이려니와, 그렇다고 평민, 천민 같은 범주로 계열화하기도 뭣하다. 말하자면 특정 범주로 포섭하기 어려운, 체제의 변경을 떠도는 ‘마이너’들인 셈. 이들은 세상의 차별과 모순에 대한 울분은 강했을지언정, 땅이나 직업에 대한 욕구,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가장 콤플렉스’ 같은 건 전혀 없다. 그런데도 그럭저럭 먹고들 산다. 이들은 놀면서도 당당하고, 심지어 배울 건 다 배운다. 고액 연봉자건 평생 직장에 매여 있건, 늘 가족들에게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 우리 시대의 가장들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저자는 조선 청년 백수들의 이러한 생활구조를 분석해보면 조선조 부락공동체의 경제구조를 파악하는 동시에 우리 시대 백수들의 ‘생존 노하우’도 터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훗날 이들이 모이는 거점, 청석골은 하나의 경제공동체이다. 점점 규모가 커져 체제 바깥을 떠도는 이주민들의 난민촌이 되자, 구성원들은 각자의 능력을 발휘해 집을 짓고, 마을을 만들고, 의원에 기생까지 초빙해오는 수준이 된다. 개별적으로 흩어지면 유랑민들에 불과하지만 집합적 배치를 이루면 상상을 뛰어넘는 힘과 기량을 발휘하는 것이다. 저자가 여기서 주목하는 경제적 원리는 ‘능력들간의 순환’이다. 능력들이 활발하게 순환을 이루면 분배구조 역시 매끄럽게 돌아간다. 그들은 정착민으로 살아갈 때 지켜야 할 여러가지 의례와 습속을 벗어던지고 자기들만의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낸다. 즉 추방된 자들의 자유를 최대한 누린 셈이다. 청석골은 도망자들의 막다른 거점이자 ‘자유의 새로운 공간’이기도 했다. 저자는 이 점이 우리 시대의 ‘마이너’들에게 여러모로 시사적이라고 본다.
마이너란 단지 추방당한 자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류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마이너란 낡은 습속에서 벗어나 삶의 새로운 형식을 창안할 수 있어야 한다. (56쪽)
2장 공부 : 길 위에서 배우고, 이야기로 터득한다
꺽정이와 봉학이, 유복이는 노는 남자들인 동시에 ‘배우는’ 남자들이다. 이들은 집안 어른이자 스승인 갖바치 집에 더부살이를 하면서 많은 걸 배운다. 이야기로 듣는 병법, 장난질하며 익히는 기예 등 우리 시대가 꿈꾸는 최고의 대안교육을 받은 셈이다. 그에 비하면 학교에 학원에 학습지에 독서에, 온종일 교과서와 문제지를 끼고 살지만 스승복, 공부복은 없는 우리 시대 청소년들의 처지는 참으로 불쌍하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배움의 목표가 없다. ‘공부의 목표는 성공’이라는 우리 사회의 등식이 이들에겐 통용되지 않는다. 이들의 배움 역시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 이들은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논다. 그러다 보니 각 방면의 최고 고수이자 달인이 된다. 활의 달인 이봉학이, 댓가지창의 달인 박유복이, 돌팔매의 달인 배돌석이, 축지법과 장기의 달인 황천왕동이, 사기치는 인간 호모 치토스 서림이(‘배반의 달인’이기도 하다.)와 노밤이 등 많은 달인들이 탄생한다.『임꺽정』의 인물들은 갖가지 방식으로 배움의 길에 나선다. 물론 이 길에는 목적지가 없다. 꺽정이와 그 친구들은 청년기를 자기만의 수련으로 통과한다. 입시지옥에 빠져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허접한 시험문제만 풀어대는 우리 시대 청년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유의 여정’이다.
공부란 무엇인가? 존재와 세계에 대한 비전 탐구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무엇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아주 낯선 세계 속으로 진입하는 것, 이전과는 아주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다. (87쪽)
3장 우정 : 세상은 넓고 친구는 많다
『임꺽정』을 끌어가는 서사의 기본 라인은 ‘청석골 칠두령의 우정과 의리’다. 다들 힘깨나 쓰는 인물들이라 일단 만나면 죽기 살기로 싸우고, 그러다 보면 정이 든다. 밤새 술 마시면서 자신의 인생경력을 이야기하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된다. 그야말로 인연들이 칡덩굴처럼 얽히고설켜 청석골 칠두령이라는 ‘밴드’가 탄생한다. 이 밴드의 모태 역시 다름 아닌 길이다. 저자가 간결하게 풀어놓는 유복이와 곽오주, 천왕동이와 배돌석이, 꺽정이와 길막봉이 등 이들 커플의 특별한 감응은 피보다 진하고 연인보다 더 애틋하다. 칠두령의 내력을 보면 이른바 ‘트라우마’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출생의 비극, 가난과 질병, 멸시와 천대, 원한과 복수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런데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 드러내놓는다. 허물이든 수난이든 자신이 겪은 그대로 고스란히 이야기한다. 이들은 절대 착하고 좋은 ‘놈’들이 아니지만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좋은 친구들’이 되었다. 저자는 임꺽정과 친구들이 관계 맺는 과정을 통해 ‘이야기의 힘’에 대해 역설한다. 그 시절, 이야기는 소통의 수단이자 오락이요 예술,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는 출구였는데 반해 우리 시대는 서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속내와 인생역정을 남에게 이야기할 줄도 모르지만, 다른 이의 사연을 들을 줄도 모른다. 남의 이야기는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엿보고, 자기 이야기는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를 찾아가서 한다는 것. 저자는 꺽정이와 친구들의 관계를 통해 우리 시대의 친구, 우정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이들에게 있어 친구란 한가할 때 만나 수다 떨고 쇼핑하고 회식하는 대상이 아니라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을 주고받는 관계를 의미한다. 즉 거창한 이념에 입각하여 우정과 의리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과정을 친구와 함께하다 보니 친구 없이는 살 수가 없고, 그래서 친구를 위해선 부귀공명도 목숨도 기꺼이 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인생과 우정이 하나로 오버랩되는 이 특별한 기술을 체득할 수 있다면! 고독과 소외라는 현대적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청년실업(혹은 무직자들)의 경제적 대안(놀면서 배우는)을 마련함과 동시에 생에 대한 비전 자체를 전향적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117∼118쪽)
4장 사랑과 성 : 야생적인, 너무나 야생적인!
『임꺽정』에 나오는 인물들의 사랑 역시 하나같이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 백두산을 유람하다 만난 야생 처녀 운총이와 청년 꺽정이의 풋풋한 사랑, 유복이는 아비의 원수를 갚고 도망가는 길에 산신당 제물로 바쳐진 여인네와 만나 사랑을 하고, 길을 가다 청석골 원조 도적 오가의 사위가 되어 가족을 이룬다. 소금장수 길막봉이 역시 소금 팔러 나간 길에 결혼을 한다. 까칠한 꽃미남 천왕동이는 장기에 미쳐 국수를 찾아다니다 봉산 최고의 미녀를 아내로 얻고, 장인 덕분에 직업까지 얻는다. 고미숙은 꺽정이와 친구들의 사랑을 인물별로 분류한다. ‘무식하고 어수룩하고 데퉁맞은’ 쇠도리깨 도적 곽오주는 사랑에 관한 한 비련의 주인공이고, 봉학이의 열애는 귀신방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배돌석이의 사랑은 파격적이고 엽기적이고 잔혹한 ‘죽일 놈’의 사랑이다. 뒤늦게 바람이 난 중년 꺽정이의 사랑은 카사노바, 어떤 때는 조르바 형이다. 이들 칠두령의 사랑법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지만 그 기저에는 한결같이 ‘유머’가 존재한다. 저자는 여기에 주목한다. 꺽정이와 그 친구들은 사랑에 있어서도 달인들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순전히 자신의 힘으로 사랑을 하고 혼인을 한다. 그것도 길 위에서. 이들의 사랑에는 중간단계가 없다. 머뭇거림, 잔머리, 확인절차 따위가 없다. 그냥 몸으로 ‘들이댄다’. 몸으로 느끼고, 몸으로 표현한다. 몸과 몸이 직접 교통하는 것, 그것이 조선시대 민중들의 ‘사랑법’이다. 저자는 온갖 잔머리에 매뉴얼까지 동원해서 줄다리기를 하지만 정작 사랑이 시작된 다음엔 뭘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리는 우리 시대의 연애와 비교하며 이들의 사랑방식을 논한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노래도 있지만, 그렇다, 사랑은 아무나 한다! 소유나 출신, 외모와 학벌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필요한 건 낯선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충만한 몸뿐이다. 그런 점에서 길이야말로 에로스의 거처다. 집과 가문의 울타리에서라면 절대 불가능한 마주침이 길에서는 흘러넘친다. 예기치 않은 만남과 열정이 폭발하는 사랑의 성소, 그곳이 바로 길이다. 그 위에서 ‘충만한 신체, 충만한 대지’가 뜨겁게 교차한다. (164쪽)
5장 여성 : 복수는 나의 힘!
조선시대는 남존여비의 사회라고들 한다. 사회제도나 관습이 그랬던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선 위풍당당한 여인들과 마주치게 된다. 백정의 딸로 정경부인이 된 봉단이, 돌석이가 하룻밤 즐겨볼까 했다가 코 꿰게 된 억석이 딸, 그리고 꺽정이의 세번째 아내가 된 과부 김씨 등『임꺽정』에 나오는 여인들은 조선의 여성상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또한 장모들의 권력은 막강하다. 이교리도 장모한테 쫓겨났었고, 막봉이도 장모한테 쫓겨나 청석골로 들어온다. 서림이도 결국 장모의 등쌀에 못이겨 서울로 잠행했다 조직을 배신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또『임꺽정』의 여성들은 복수의 화신들이다. 한을 가슴에 품는 게 아니라 복수라는 구체적 행위를 통해 풀어낸다. 유인숙의 노비 갑이가 상전의 원수를 갚는 장면이며 호랑이한테 잡아먹힌 아들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관아에서 생떼를 쓰는 어미며, 보쌈당한 아들의 원수를 갚아달라는 상노아이의 엄마가 그러하다. 여성들이 이렇게 위풍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의식주에서 봉제사접빈객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주부들과는 존재방식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임꺽정』의 여인들은 남존여비의 사회에서, 가난과 습속, 갖은 억압 속에서도 자기 삶의 현장은 완벽하게 틀어쥐고 산다. 옳건 그르건, 좋건 나쁘건 자신의 욕망과 의지를 드러냄에 있어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다. 청순가련 혹은 우아한 현모양처의 이미지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6장 사상 : 매트릭스(Matrix) 혹은 ‘사주명리학’
『임꺽정』에는 조선 지성사의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다. 한창 성리학에 입문중인 청년 퇴계, 윤원형쟀 세도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남명 조식, 인종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평생 간직한 채 살아가는 천하문장 하서 김인후 등이 유학사의 빛나는 별들이라면,『토정비결』의 저자 토정 이지함과 조선 사상사의 아웃사이더 화담 서경덕,『용호결』의 저자 북창 정념, 허준과 함께『동의보감』의 편찬에 참여한 정작(정념의 아우) 등은 도교사의 스타들이다. 한편 문정왕후 시절은 불교의 중흥기이기도 했다. 억불정책으로 변경으로 밀려났던 불교가 문정왕후의 전폭적 지지하에 돌연 중앙무대를 장악하게 되었으니, 승 보우가 바로 그 핵심이었다. 갖바치는 이 모든 인물들과 조우한다. 그 과정에서 유불도 삼교의 진면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저자는 유교와 불교, 도교로 사상사를 나눠 ‘차이와 공존’이 역동적으로 교직되는 것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즉, 유·불·도가 지향하는 수양, 수행, 수련을 통해 어떤 경지에 오를 수 있는지를 『임꺽정』의 인물들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기묘사화에 반발하는 유생들의 모습을 오늘날의 촛불집회와 비교하며 ‘다중’의 의미를 되새겨보기도 하고, 사화에 등장하는 권력자들의 말로를 통해 큰 교훈을 얻기도 한다. 보우와 병해대사(갖바치)를 비교하며 불교의 수행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 인생길이 갈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갖바치와 이천년을 통해 도교의 음양오행론과 사주명리학을 설명한다. 그리고『임꺽정』에 자주 등장하는 사주와 관상, 점복술 등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높이고, 재미삼아 『임꺽정』이 미완으로 끝난 까닭을 벽초 홍명희의 사주로 풀어보기도 한다.
7장 조직 : 청석골, ‘움직이는’ 요새
칠장사 갖바치의 영정 앞에서 칠두령이 ‘사생동고’라는 맹세를 하고 꺽정이는 청석골의 두령으로 추대된다. 청석골의 전략전술은 ‘도중회의’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아이디어의 대부분은 서림이한테서 나오고 최종적으로 그걸 추인해주는 이는 꺽정이다. 이들의 행동 매커니즘은 체계적인 강령이나 원칙이 아니라 우정과 의리, 자존심 같은 것이다.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큰 사건들도 아주 사소한 일들이 꼬이고 꼬여 일어나곤 한다. 하지만 일단 작전에 들어가면 놀라운 전투력과 조직력을 발휘한다. 체계는 없지만 활동성은 엄청 강하다. 이들은 잠행과 변신의 귀재들이고, 도처에 이들의 짝패가 존재한다. 또 여차하면 요새를 비우고 튄다. 그러기 위해서 각지에 요새를 만든다. 더 심하게는 졸개들을 마을에 심어두고 주민이 되게 한다. 평소엔 민으로 살다, 전투시엔 바로 화적이 되는 전술을 구사하며. 청석골은 산중 깊숙한 곳에 있지만 결코 닫혀 있지 않다. 인근마을은 물론 서울 한복판까지 연결되어 있다. 어디까지가 청석골이고 어디서부터가 청석골 바깥인지 경계도 불분명하다. 어떤 것과도 접속할 수 있고, 어디로도 튈 수 있는 조직. 권위도, 위계도 없지만 활동성과 응집력 하나는 끝내주는 달인들의 꼬뮤니티다. 고미숙은 청석골이라는 조직에 주목한다. 중앙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한바탕 소용돌이를 일으켰다가 장렬하게 와해되는 반란군이 아니라 전투와 일상과 축제가 동시적으로 가능한, 그래서 존재 자체가 불온한 아주 특별한 저항조직. 청석골이 움직이는 요새이자 유목민의 텐트가 되는 건 이런 연유에서다.
어디서건 요새를 만들 수 있고, 동시에 언제건 버리고 튈 수 있다. 왜? 마이너들에겐 세상의 모든 길이 존재의 집이자 실존의 현장이니까. 꺽정이와 그의 친구들에겐 화려한 이념이나 그럴싸한 명분은 없다. 대신 길 위에서 살아가는 기막힌 노하우들이 도처에, 보석처럼 숨어 있다. 물론 그 비전들은 길을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 마이너들 -비정규직과 청년 백수, 혹은 이주민들-에게만 보일 것이다. 고로 『임꺽정』의 ‘리얼리즘적 진수’는 바로 여기, ‘조선적 정조’가 ‘노마디즘’과 마주치는 그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닐는지. (3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