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을 증언하는 어린이들의 목소리!
두터운 봉인을 뜯고 나온 이들의 목소리는
부서져 사라지지 않고 소름끼치는 악을 드러내며
우리의 기억과 역사를 납빛으로 물들인다.
4년여의 전쟁 동안 슬픔은 발육과 성장을 멈추게 했고
말言을 잃어버리게 만들었으며, 하룻밤 새에 머리를 하얗게 물들였다
일명 ‘목소리 소설’ ‘소설-코러스’의 작가로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렉시예비치가 제2차 세계대전 때 구소련 벨라루스의 ‘전쟁고아클럽’과 ‘고아원 출신 모임’ 101명(0~14세)을 인터뷰해 당시의 역사를 복원해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됐을 때의 부제가 “아이답지 않은 이야기들을 담은 책”이었듯이, 전쟁을 겪은 아이들은 이미 자라기도 전에 늙어버렸고, 삶의 날개는 꺾여버렸다. 굶주림과 더불어 생존의 위협에 놓인다는 것은 육체적 강탈이겠지만, 아무도 자신을 딸, 아들로 불러주지 않고 무릎 위에 올려놓지 않는다는 것은 이들을 끔찍하게도 어두운 어른으로 자라나게 한 정신적 강탈이었다.
작가는 왜 기억도 분명치 않을 테고 보는 시선도 미숙했을 아이들을 인터뷰했는가? 알렉시예비치가 두터운 봉인을 뜯고 가까스로 끌어낸 이들의 기억은 파편화된 조각으로만 남아 있어 이것을 이어 붙이는 작업 역시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오히려 경험이 많지 않은 시선들이 어른의 눈보다 더 생생히 포착해내는 점이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성찰하는 능력을 잃은 악의 추악함과 뻔뻔함 같은……. 아이들에게는 전쟁의 흐름을 지켜보고 헤아릴 사고력도, 그것을 위한 정보도, 또한 살아남기 위해 대처할 지혜도 부족하다. 이런 아이들조차 ‘왜?’라고 묻는다. 왜 독일군 조종사가 비행기를 몰며 즐거운 표정으로 총을 쏘아댔는지, 왜 독일군과 앞잡이들이 온 마을 사람들을 숲속에 모은 뒤 총살당하고 생매장당하는 주민들을 울음소리도 내지 말고 똑똑히 지켜보라며 윽박질렀는지, 왜 하얀 옷을 입은 독일 사람들이 고아들의 피를 죽을 때까지 거듭거듭 뽑아댔는지, 왜 울부짖는 어머니의 품 안에 있는 젖먹이 아기에게 먼저 총을 쏜 뒤 어머니를 죽였는지.
작가는 전쟁이 끝나고 수십 년이 지나 그 기억들을 되살려내기 위해 수천 명의 사람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의 통로가 되어주고 녹취된 목소리를 반복해 들으며 글로 담아낸다. 지금 장년이 된 이들은 누구는 노동자로, 누구는 음악가로, 또 누구는 건축기사나 연금생활자로 살아가고 있다. 어릴 때의 기억이 잿빛 일색이었다면, 이후 이들의 인생 경로는 저마다 다채로웠다. 그럼에도 현재, 그들의 모습은 굴곡진 어린 자아의 흔적을 뚜렷이 간직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증언하는 소름끼치는 악은 작가의 몸속으로, 마음속으로, 머릿속으로 스며들어 온통 어둡게 물들이는데, 알렉시예비치는 이로써 전쟁을 겪은 이들의 목소리를 붙들어 생동감을 불어넣고 제자리를 찾아주는 동시에, 소비에트연방 현대사의 독특한 한 장을 새롭게 써낸다.
알렉시예비치의 저작들은 근래 ‘유토피아의 목소리’ 시리즈로 새롭게 묶였는데, 마치 다섯 악장으로 이루어진 교향곡과도 같아 수많은 목소리가 각 악장을 채운다. 『마지막 목격자들』 역시 ‘전쟁을 목격한 어린이들의 시선과 감정’이라는 고유한 테마를 연주하며 합창처럼 울려 퍼지고 있다. 그런데 유독 이 책에만 ‘솔로’라는 부제가 달려 있어 대단히 독특한 울림을 준다. 그것은 이 작디작은 이들의 가늘고 여린 목소리가 다른 네 악장을 채운 어른의 굵고 거친 소리에 묻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으리라.
목소리 1: 굶주림은 우리의 목소리를 앗아가고 청력을 빼앗고
“난 단추를 씹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어요. 큰 단추, 작은 단추 가릴 것 없이요.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미쳐갔어요. 굶주림으로 목소리가 변하거나 아예 사라지기도 했어요. 목소리로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건 불가능했죠. 우리의 아침 식사는, 우리의 아침 식사는 벽지 한 조각이었어요. 낡은 벽지이긴 해도, 거기에는 풀이 남아 있었으니까요. 그 벽지와 끓인 물이 바로…… 900일 동안 그런 나날들을 보낸 거예요.”(갈리나 피르소바, 10세)
피르소바에겐 꿈이 있었다. 참새를 잡아먹는 꿈. 시내엔 이따금 새들이 날아다녔는데,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은 이 아이와 똑같은 생각을 품었다. 아이는 굶주림 때문에 옷을 껴입고 있어도 한기를 느꼈다. 하지만 내면의 한기는 끔찍할 정도로 그보다 훨씬 차가웠다. 당시 레닌그라드가 900일 동안 봉쇄되면서 기아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피르소바는 귀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굶주림으로 미쳐가자 고양이를 잡아먹기 시작한다. 그러곤 개를 끌고 와 그것까지 먹고는 살아난다. 자기 집 고양이와 개를 잡아먹어도 좋다는 생각은 어느덧 이들에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비둘기와 제비에 이어 모든 동물의 소리는 도시에서 사라져갔다. 아이는 증언한다.
“우리는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어요. 수업 시간이면 우리는 책상 앞에 앉아 종이를 뜯어 먹었답니다.”(아냐 그루비나, 12세)
그루비나의 목소리가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그 역시 레닌그라드의 아이였다. 아빠는 죽었지만, 삼남매를 돌봐야 했던 엄마는 죽는 것마저 할 수 없었다. 레닌그라드의 봉쇄가 뚫리던 날 이들 가족은 우랄 지역으로 이주했고, 카르핀스크에 도착한 아이는 곧장 공원으로 달려갔다. 공원에서 산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원을 먹기 위해. 아이는 특히 낙엽송을 좋아했다. “보드라운 소나무 잎사귀는 정말 맛있는 먹거리였어요!” 작은 소나무에 움튼 어린 눈을 물어뜯고, 어린 풀을 뽑았다. 시내에 살던 사람들은 푸른 것이라면 모조리 먹어치웠다. 아이는 자연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자라났다. 그것은 그저 식욕의 대상일 따름이었다.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시험해보고 싶다는 욕망! 사람들은 심지어 흙도 먹었다. 해바라기 기름이 스며든 흙! 아이의 엄마는 가장 싼 흙, 즉 청어를 담은 나무궤짝이 놓여 있던 자리의 흙을 살 수 있었다. 그 안에는 소금기도 없었고 오직 청어 냄새만 가득했다. 아이는 전쟁이 끝나고 수십 년이 지나서야 어린 풀을 보며 즐거워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가기 시작한다.
목소리 2: 비참한 삶으로 귀결되다
“난 침울하고 의심 많은 어른이 되었죠. 내 성격은 어두웠습니다. 누군가가 울면, 난 그 사람이 불쌍하다고 생각하기는커녕 편안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난 울 줄 몰랐으니까요. 두 번 결혼했는데, 두 번 다 아내에게 버림받았습니다. 오랫동안 날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렵죠. 압니다, 나도 안다고요.”(유라 카르포비치, 8세)
카르포비치는 못 볼 것을 보고 자랐다. 인간이 봐서는 안 될 것들을. 소연방 포로들은 나무껍질을 갉아먹으며 버텼다. 독일군은 그들에게 먹을 것 대신 썩은 말을 던져주었다. 독일군은 또 철도에서 노역하던 이들을 전부 레일 위에 눕혀놓은 채 그 위로 기관차가 달리도록 했다. 아이는 그 장면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목격해야 했다. 사람들이 브리치카(사륜마차)에 매이는 것도 봤다. 독일군은 그들을 매단 채 브리치카를 몰면서 즐겁게 쏘다녔다. 독일군은 총검으로 엄마의 품에서 아이들을 낚아채 불에 던지기도 했다. 우물에도 던졌다. 다행히 카르포비치의 순서까진 오지 않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는 이웃집 개의 눈을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집이 불타고 남아 있던 자리에서 개가 혼자 울고 있었는데, 그것은 노인의 눈을 한 개였다. 전쟁으로 인한 암흑의 세계는 그의 마음까지 검게 물들여놓아, 카르포비치는 어느새 누구도 감당하기 어두운 동굴 속 같은 사람이 되었다.
“나는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오랫동안 사람들을 피했어요. 평생 혼자 있기를 좋아했지요. 난 사람들이 부담스러웠고 타인과 함께 있는 것을 힘들어했어요.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어떤 것을 내 안에 간직하고 있었죠.”(발랴 유르케비치, 7세)
호밀밭을 빽빽하게 덮고 있던 시체들…… 그게 아이가 전쟁으로부터 받은 첫인상이었다. 검게 탄 아군 병사들. 유르케비치는 여자아이였는데도 그 모든 것을 목격하면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아이는 자기 가족에게 은신처를 마련해주었던 주인집 유대인 가족이 게토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들을 찾으러 드비나 강으로 달려갔다. 독일군이 보트에 게토로 가는 유대인을 잔뜩 싣고 있었는데, 강 한가운데로 그들을 끌고 가더니 보트를 확 뒤집어버렸다. 그러자 어른들은 금방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는데, 아이들은 계속 수면 위로 떠올랐다. 파시스트들은 낄낄거리면서 노로 아이들을 팼다. 두들겨 패다가 아이들이 다시 떠오르면 쫓아가서 패고 또 패고. 하지만 아이들은 마치 공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정적을 가득 채운 건 독일군의 웃음소리뿐이었다.
“그때는 아이들이 아주 빨리 어른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는 이후 동생의 싸늘한 시선을 목격하게 된다. 선생님이었던 엄마는 그에게 “인간으로 남아야 해”라고 몇 번이고 되풀이했지만, 그는 어느새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사람으로 자라났다. “난 길거리를 다니는 것이 무서웠어요. 어째서인지 폐허 속에서 돌아다닐 때가 한결 마음이 편안하더군요.” 엄마는 아이가 변한 것을 눈치 채고 끊임없이 여자아이들과 손님들을 집으로 불러들이며 그에게 온기를 불어넣어주려 노력했다. 아이로선 그런 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한참 뒤 자기 속에 갇힌 모습으로 살아오던 그는 마침내 어머니의 사랑이 자신을 구원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는 중이다.
목소리 3: 아이답지 않은 아이들
“교수형을 당한 동향인들을 처음 본 순간, 난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엄마, 우리 마을 사람들이 하늘에 매달려 있어요.’ 처음으로 난 하늘이 무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건이 있은 뒤, 하늘에 대한 내 태도가 변했지요. 난 경계심을 품은 채 하늘을 대하게 되었습니다.”(표트르 칼리놉스키, 12세)
아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익혀야 했던 것은 전쟁에 대한 대비였다. 총 쏘는 법과 수류탄 던지는 법을 배웠다. 여자아이들조차 전쟁터에 몸을 던지길 바라는 열망에 불타올랐고, 혁명의 과업을 이어가는 것을 꿈으로 품으며 살았다. 아이는 비행사가 되어 하늘을 나는 것이 장래희망이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그 꿈은 산산이 부서진다. “한번 상상해봐요. 고향의 길거리에서 독일군을 봤을 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난 울었습니다. 밤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덧창을 닫고는 닫힌 창문 뒤에서 울었어요.” 고향 사람들이 교수형을 당한 것을 본 날부터 그는 이제 하늘마저 두려워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아주 높이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자들이 떠나자, 난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어요. 웃고 또 웃고, 그렇게 10분이 지났는데도 내가 계속 웃고 있어요. 엄마가 야단을 쳐도, 애원해도 소용없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난 계속 웃었어요. 모두 두려움을 느꼈어요…… 내가 미친 게 아닐까 무서워했죠.”(나자 사비츠카야, 12세)
아이의 오빠는 군대에 끌려갔다가 전쟁이 터지자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전쟁 내내 울었다. 하루는 밭에서 낟알들을 줍고 있는데 독일군 순찰병들과 맞닥뜨렸다. 놈들은 아이 가족이 모은 알곡을 모두 쏟아버리고는 그 자리에 멈추지 않으면 총살하겠다고 위협했다. 가족은 엉엉 울었고, 엄마는 놈들의 군화에 입맞춤을 하며 애원했다. “나리들! 제발, 나리들, 내 자식이라고는 이 아이들이 전부예요. 보세요, 딸아이들뿐이랍니다.” 그자들이 총구를 거둔 채 떠나자 아이는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마치 실성한 것처럼. 하루 종일 웃어댔고 집에 돌아와서도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는 웃음을 그칠 줄 몰랐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끔찍한 상황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 웃는 것뿐이라니. 1944년, 해방 후 아들의 전사 통지서를 받고 엄마는 울다가 실명하고 말았다. 마을은 불타버렸고, 아이가 살던 낡은 옛집도 불타 가족은 숲에서 머물렀다. 숲에서 주운 먹거리를 독일군 철모에 넣고 끓여 먹으며 연명하던 그들. 숲이 아이에게 가르쳐준 건 자연의 풍요로움 따위가 아니었다. 그가 배운 건 바로 두려움이었다. 독일군이 남겨놓고 간 셰퍼드들이 어디선가 달려나와 어린아이들을 물어뜯어 죽였기 때문이다. 숲속을 거닐 때면 크게 소리를 질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바구니에 딸기를 가득 채울 때쯤이면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어요. 어찌나 소리를 질렀던지. 목이 잠기고, 목구멍이 부풀어 오르고…….” 독일군은 떠날 때 인간의 살에, 인간의 생생한 피에 맛들인 개들을 두고 갔고, 아이들은 숲을 두려운 존재로 여기며 자라나게 되었다.
* * *
알렉시예비치의 고국인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 및 리투아니아와 더불어 소련의 서쪽 경계선에 위치한 소연방 국가였던 까닭에 소련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더 극심한 참상을 겪었다. 독일이 독소 불가침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바람에 벨라루스의 평온한 일상은 하루아침에 짓밟혔고, 나치 독일이 소련 전역을 공격하기 위한 전초지로서 벨라루스 공화국이라는 괴뢰정부를 세운 뒤 벨라루스인의 삶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철저히 파괴되었다. 이 기간에 벨라루스의 마을 628개가 주민과 함께 불살라지고 인구의 4분의 1이 사라졌으며, 1945년에 고아의 수는 2만5000명에 달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후에는 나치 독일의 점령지에 있었다는 이유로 소련 정부로부터 배신자 취급과 온갖 차별까지 받았으니……. 『마지막 목격자들』은 이 참극 속에서 가장 작고 무기력한 존재였던 어린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알렉시예비치의 다른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는 전쟁에 참전한 여성들이 그의 인터뷰를 강하게 거부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참혹한 기억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그리고 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가족과 이웃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여자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그럼에도 한번 입을 열기 시작하면, 가슴속에 묻어둔 말들이 그치지 않는 눈물과 함께 솟구쳐 오른다. 그러나 『마지막 목격자들』을 쓰기 위한 인터뷰는 성인의 이야기를 끌어낼 때와는 달랐으리라 추측된다. 전쟁 기간에 어린이였던 이들은 인터뷰 당시 대략 42세에서 58세 사이의 장년이었다. 이 책에는 부모들이 필사적으로 아이들의 눈을 감기며 ‘보지 마라’고 애원하는 장면, 아이들이 테이블이나 나무 밑에서, 혹은 이불 속에서 엿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아이의 기억에는 타의로든 자의로든 이처럼 가리개가 드리워진 경우가 많다. 특히 아주 어린 아이에게는 감각 기관이 인식한 자극을 논리 정연하게 이해하고 기억할 능력이 없고, 그런 자극을 표현할 어휘마저 충분하지 않다. 또한 아이들의 유약한 기억은 수십 년이라는 시간의 압력 아래 흩날려버리기도 하고, 그 기억이 주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인해 심연 속에 묻히기도 한다. 따라서 알렉시예비치는 화자들 자신에게조차 희미하고 아련한 기억을 불러내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 아이들이 그 납득할 수 없는 잔혹한 폭력을 의문에 찬 눈길로 지켜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목숨 걸고’ 해나간다. 한눈을 판 사이 엄마와 언니를 태우고 떠나버린 기차를 향해 공포로 가득한 눈을 뜬 채 필사적으로 달리고, 너무 어려 전쟁에 나가지 못하는 미안함을 150도의 모래가 사방으로 튀는 포탄 공장에서 온종일 일하는 것으로 갚고, 학살이 벌어지는 게토에서 부모도 없이 사흘 동안 다락방에 숨어 있고, 굶주림으로 교실에서 쓰러진 선생님을 위해 얼마 안 되는 자기 몫의 빵을 남겨 몰래 전하고, 방과 후에 병원에서 구역질을 참으며 피고름으로 얼룩진 시트와 붕대를 빨고, 들판에서 몰살된 아군의 부패한 시신들을 살피며 신분증명서를 거둔다. 이 모든 이야기가 바로 이 책에 담긴 목소리이고, 그들의 짧은 이야기가 역사로 기록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