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오클랜드에서 이륙하자마자 세 자매는 “저 검둥이 여자애들” 운운하며 삿대질하는 백인 스튜어디스며, 인종차별적인 힐난을 퍼붓는 얼치기 평화주의자 등과 맞닥뜨리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흑표범당 캠프에서 배운 바를 당당하게 실천한다. “이 용변 칸은 민중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옳소!”(본문 13쪽)
이처럼 진일보한 변화를 이룬 델핀 자매에게 뉴욕의 가족들은 칭찬 대신 꾸중을 퍼붓는다. 특히 백인들이 가득한 곳에서 ‘대단한 구경거리’를 만들어서 나무에 목이 매달리는 비극을 맞을까 봐 겁내는 ‘할매’는 델핀이 실수로 백인 남자의 신문을 건드리는 장면을 목격하고서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끝내는 따귀를 올려붙인다.
이처럼 이 이야기는 전편에서 세 자매가 보고 듣고 경험하고 성취한 결실을 무위로 돌리려고 하는 현실에서부터 출발한다. 전편과 정확히 대비되는 이야기의 동선은 이런 면에서 퍽 의미심장하다. 『어느 뜨거웠던 날들』이 비행기를 타고 현실에서 날아올라 다른 세상을 구경하고 체험하는 이야기라면, 『너답게 살아라』는 꿈만 같았던 다른 세상을 떠나 인종 차별과 여성 차별이 판치는 현실로 돌아와, 힘없는 흑인 소녀로서 삶과 부대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이 아무리 험난하더라도, 이 용감하고 생기발랄하며 한편으로는 안쓰럽기 짝이 없는 세 자매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고난 속에서 스스로 부딪치며 질문하고 깨달으며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전편에서 엄마 시실과 흑표범당 당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러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해 세 자매의 성장에 힘을 보탠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아빠를 사로잡고 세 자매를 바짝 긴장시키는 당차고 세련된 여성 ‘마바 헨드릭스’, 집안의 맏이이자 큰언니 노릇을 완벽하게 해내려고 노심초사하는 델핀에게 매번 “추신, 열한 살답게 살아.”라고 충고하는 친엄마 시실(의 편지),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교환 근무를 하러 와서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도록 교육하는 ‘음윌라 선생님’,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었다가 마침내 돌아온 세 자매의 친구이자 영웅 ‘다넬 삼촌’, 티격태격하다가도 곧잘 화해하는 ‘루시 롤리’와 ‘프리다 뱅크스’를 비롯한 학교 친구들…… 등, 여러 인물과 교감하면서, 세 자매는 어린아이에서 소녀로 성장한다.
여성 대통령을 상상하는 페미니즘 소설
『너답게 살아라』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전편보다 더욱 짙어진 여성주의 색채다. 전편의 ‘시실’이 흑표범당 당원이자 시인 ‘은질라’로 거듭난 격정적이고 전투적인 여성인 데 반해, ‘마바 헨드릭스’는 현실에 단단히 발붙인 채 일상의 정치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현명하면서도 열정적인 여성이다. 마바 헨드릭스의 활약상 중에는 미국 의회 최초의 흑인 여성 의원이자 흑인 최초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기도 했던 ‘셜리 치좀’(1924~2005) 선거 운동도 있다. 최근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서, 저 엄혹했던 시대에 정치계의 유리 천장을 깨뜨린 선구자로 또다시 조명받았고, “그들이 테이블 자리를 내주지 않으면 접이 의자를 가져가라.”는 말로 회자되곤 하는 바로 그 인물을 놓고, 신세대를 대표하는 마바 헨드릭스와 구세대를 대표하는 할매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설왕설래 밥상머리 대화를 나눈다.
여성 대통령을 상상하는 페미니즘 소설
『너답게 살아라』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전편보다 더욱 짙어진 여성주의 색채다. 전편의 ‘시실’이 흑표범당 당원이자 시인 ‘은질라’로 거듭난 격정적이고 전투적인 여성인 데 반해, ‘마바 헨드릭스’는 현실에 단단히 발붙인 채 일상의 정치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현명하면서도 열정적인 여성이다. 마바 헨드릭스의 활약상 중에는 미국 의회 최초의 흑인 여성 의원이자 흑인 최초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기도 했던 ‘셜리 치좀’(1924~2005) 선거 운동도 있다. 최근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서, 저 엄혹했던 시대에 정치계의 유리 천장을 깨뜨린 선구자로 또다시 조명받았고, “그들이 테이블 자리를 내주지 않으면 접이 의자를 가져가라.”는 말로 회자되곤 하는 바로 그 인물을 놓고, 신세대를 대표하는 마바 헨드릭스와 구세대를 대표하는 할매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설왕설래 밥상머리 대화를 나눈다.
본디 타고난 자기를 찾아서
『너답게 살아라』는 『어느 뜨거웠던 날들』의 속편이자 그 자체로 독립적인 이야기이다. 전편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맛보고 돌아온 델핀이 잃어버렸던 ‘본디 타고난 자기’를 찾기까지의 좌충우돌 수난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과 지리멸렬한 현실에서 살아가는 것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만큼 차이가 크다. 델핀은 앞으로 발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 세계로 돌아온 뒤, 자신이 기성세대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왔음을 깨닫는다. 본디 타고난 자기를 찾기 위해 진통의 시간을 지나는 델핀의 곁에서 많은 이들이 따뜻하게 보듬어 준다. 친엄마 시실, 아빠의 여자 친구 마바 헨드릭스, 잠비아에서 온 음윌라 선생님 등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델핀의 아집과 독선을 일깨우고, 철부지인 줄로만 알았던 보네타와 펀은 독재자처럼 구는 언니의 간섭에 저항함으로써 델핀의 변화를 재촉한다.
한편 델핀은 남자아이들과 비교해도 너무 큰 키가 늘 콤플렉스다. 델핀이 잭슨 파이브의 장남 재키를 흠모하는 이유도 큰 키와 듬직한 분위기 때문이다. 그런 델핀이 틈만 나면 짓궂은 장난을 걸어서 눈엣가시였던 키다리 소년 엘리스 카터와 댄스파티 파트너가 되는 과정은 재미와 웃음을 안겨 준다.
잭슨 파이브를 만나기 위해
『너답게 살아라』에는 세 자매에게 주변 인물 못지않을 만큼 큰 위안을 주는 ‘먼먼 곳의 친구’가 더 등장한다. 꼬마 마이클 잭슨과 형제들이 결성했던 당대의 아이돌 ‘잭슨 파이브’가 바로 그들이다. 큰 키가 콤플렉스였던 델핀은 잭슨 파이브의 듬직한 장남 ‘재키’와 언제 봐도 강인해 보이는 셋째 ‘티토’에게 반한다. 자신들만큼이나 어린 마이클 잭슨과 형제들이 선보이는 춤과 노래는 어린 나이에 엄마와 이별한 뒤 어려움 속에서도 스스로 길을 찾아 나가는 세 자매에게 큰 위안을 준다. 세 자매가 잭슨 파이브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에 가기 위해 함께 돈을 모으고, 늘 덜렁대던 보네타가 총무 역할을 꼼꼼히 해내는 에피소드는 전체 이야기에서 중요한 한 축을 충실히 맡는다. 그리고 목표액에 도달할 무렵 벌어지는 깜짝 놀랄 사건은 소설 전체의 하이라이트로 탄식을 자아내게 만드는 한편, 베트남 전쟁이 보통 사람의 삶에 남긴 트라우마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작가와 옮긴이의 말
“『너답게 살아라』는 『어느 뜨거웠던 날들』이 끝나는 장면에서 곧바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 후속편에서는 당대의 시대정신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작가에게 허용되는 재량권을 활용해 게이더 집안과 베드포드-스타이브센트라는 지역 사회,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사사로운 일들을 하나로 엮었어요. 『어느 뜨거웠던 날들』에서 오클랜드라는 도시가 흑표범당과 블랙파워 운동의 상징이었듯, 이 작품 속 배경인 베드포드-스타이브센트는 불안정한 격동기에 일어난 폭동,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유대인 간의 인종 갈등, 도시 황폐화를 상징하는 장소예요.” --- 작가의 말
작가는 어린 소녀로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1960년대 말의 시대상을 사실적이고,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살려 냈습니다. 『어느 뜨거웠던 날들』에서 어린 세 자매가 직접 보고 겪고 활동하는 방식으로 흑표범당의 활동을 소개했다면, 후속편인 이 책 『너답게 살아라』에서는 전미여성기구의 강령과 실천을 엿보게 합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가족 간 밥상머리 대화로 엮어 놓은 겁니다.
목소리 1. 여성들도 정치계에 몸담아야지. 남성들과 똑같이 말이야.
목소리 2. 젊은 여자들이 알량한 말단 자리 하나 차지하겠다고 설치고 다니면, 살림은 누가 하고 자식 교육은 누가 시키겠니? ---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