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과 통념을 뒤엎는 과학적 통계 수치! 지구 온난화 논쟁의 진실을 밝힌다!
지구 온난화 논쟁을 새롭게 쓰다
지구 온난화와 관련한 기사들이 신문의 지면을 장식한 지 오래되었다. 한층 더워진 날씨 탓에 지구가 점점 더 위기를 향해 치닫고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팽배해지고, 이에 편승해 수많은 정치인들이 지구 온난화를 현시대의 가장 시급한 문제로 내세운다. 한편 그와는 반대로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은 인류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고, 따라서 우리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극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표준적인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구 온난화에 쏟아지는 그 모든 뜨거운 관심을 고려한다면, 이제 좀 더 냉정하게 문제를 직시하자는 롬보르의 주장은 우리의 눈과 귀를 붙잡아두기에 충분할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들
○ 교토 의정서를 이행할 경우 매년 1,800억 달러의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현세기 끝을 기준으로 할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편익은 놀라울 만큼 미미하다. 상당히 많은 자원을 소모하면서도 효과는 거의 없다.
○ 지구 온난화 때문에 사망률이 떨어질 수도 있다. 이산화탄소를 줄이면 더위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겠지만, 추위로 죽는 사람은 더 많아진다. 기온으로 인한 사망자가 오히려 8만 4,000명 증가한다.
○ 교토 의정서는 기후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교토 의정서를 이행하더라도 2050년까지 지구의 기온을 고작 0.06도 낮추는 데 그친다.
○ 지구 온난화 때문에 북극곰이 멸종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지난 40년 동안 북극곰 무리는 극적으로 팽창해왔으며, 현재는 규모가 안정되었다. 오히려 점점 추워지는 지역에 서식하는 무리의 개체 수가 줄고 있는 실정이다.
○ 교토 의정서는 이산화탄소를 제한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교토 의정서의 성과는 산업 국가의 배출량 가운데 이산화탄소를 겨우 1퍼센트를 줄이는 정도에 그친다.
만들어진 온난화의 공포
저명한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은 기후 변화 때문에 앞으로 벌어질 재앙에 비하면 2003년 유럽에서 열파로 3만 5,000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은 새로운 석기시대의 서곡일 뿐이라고 말한다. “현세기가 끝나기 전에 우리 가운데 수십억이 죽을 것이고, 견딜 만한 기후가 남아 있을 북극권에서나 극소수가 살아남아 겨우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고 밝혔다.
앨 고어의 영화 「불편한 진실」에는 마이애미 전역을 포함한 플로리다 주의 많은 지역이 약 6미터 깊이의 물속으로 가라앉는 무척 가슴 아픈 장면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만이 범람하고, 네덜란드가 지도에서 사라지며, 베이징과 상하이가 차례로 물속에 잠기는가 하면, 방글라데시의 6,000만 인구가 살 곳을 잃고, 심지어는 뉴욕 시와 새로 지은 세계무역센터기념관마저 대홍수에 가라앉는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묵시록적 묘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으며, 기후 관련 내용은 특히 잘 팔리는 소식이다. IPPR(1988년 설립된 영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책 연구 기관으로, 중도 좌파 성향의 진보적 정책 제시를 추구한다)은 “이러한 호들갑은 심지어 은밀한 스릴마저 자아낸다. 사실상 ‘기후를 소재로 한 포르노’라고도 할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일부 정치가와 환경 전문가들을 통해 형성된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심하게 치우쳤다. 지구 온난화를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이산화탄소를 조절하는 데에만 집착한다.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게 부분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있겠지만, 우리의 주 관심사는 분명히 인간과 환경의 안녕을 최대한 증진시키는 것이어야 하며, 그러려면 다른 많은 요소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사망자가 증가할까?
2003년 8월 초 유럽을 덮친 열파는 지구 온난화를 막아야 할 급박한 필요를 암시하는 강력한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프랑스 전역에 걸쳐 1만 5,000명이 죽었고, 독일에서 7,000명,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8,000명, 영국에서도 2,000명이 사망하여, 유럽의 총 사망자 수는 3만 5,000명이 넘는다.
통계에 따르면 유럽 전체에서 매년 약 20만 명이 혹서 때문에 숨진다고 한다. 그러나 혹한 때문인 사망자 수는 연간 약 150만으로, 이는 더위로 인한 사망자 수의 7배가 넘는 규모이다. 지난 10년 동안만 놓고 보더라도 유럽에서 1,500만 명이 추위 때문에 죽었는데, 이는 2003년 열파 당시 사망자 수의 400배가 넘는 수치이다.
추위와 더위에 대한 유럽 최대 규모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온이 2도 상승하는 경우, ‘추위 관련 사망자 수의 단기적 감소폭이 기온 상승에 따른 사망자 수의 증가폭을 압도할 것’이라고 한다. 영국의 경우, 기온이 2도 오르면 더위 관련 사망자 수가 2,000명 늘지만 추위에 따른 사망자 수는 2만 명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다. 실제로 어떤 논문에서는 “지구 온난화로 사망률이 낮아질 수 있으며, 특히 심혈관계 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내려갈 수 있다.”라는 점을 밝혀냈다.
해수면 상승의 원인은 바다의 빙하가 녹기 때문일까?
해수면이 올라가는 건 바다에 떠 있는 얼음이 녹기 때문은 아니다. 그런 얼음은 이미 바닷물을 자기 무게만큼 밀어내고 있다. 물을 한 잔 떠서 얼음을 띄워두면 그 얼음이 녹아도 물 높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흔히들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북극의 얼음이 녹더라도 해수면 높이는 바뀌지 않는다.
해수면 상승은 그보다는 다음의 두 요소 때문이다. 첫째, 다른 것들이 그렇듯 물도 따뜻해지면 팽창한다. 둘째, 육지를 덮은 빙하가 흘러들어 바다를 이루는 물의 양이 늘어난다. 지난 40년 동안의 해수면 상승 원인을 분석해보면 빙하 때문인 것이 60퍼센트, 물의 팽창 때문인 것이 40퍼센트였다. 2007년에 발표한 유엔의 보고서에서 따르면 2050년까지의 해수면 상승폭은 12센티미터 정도일 텐데, 이는 1940년 이래 일어난 변화보다 크지 않다. 사실 1860년 이래 지금까지 해수면이 약 30센티미터 높아졌지만, 그 때문에 대단한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허리케인 피해가 늘어나는 것은 온난화 때문일까?
1900년에 갤버스턴(Galveston) 시를 정통으로 덮쳐 시 전체를 약 2.4미터에서 4.6미터 깊이의 물로 뒤덮어버렸던, 사상 두 번째로 큰 피해를 끼친 허리케인이 오늘날 덮쳐왔다면 약 1,000억 달러의 손해를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1900년에는 건물들이 현재보다 수수했고 수적으로도 적었기 때문에 피해 규모는 겨우 6억 달러 정도였다.
현재 덮쳐왔다고 가정했을 때 당할 피해를 기준으로 허리케인을 모두 비교해보면, 2005년 뉴올리언스를 덮친 카트리나는 810억 달러로 3위, 1915년 갤버스턴 허리케인이 680억 달러로 그 뒤를 따르고, 그 다음은 560억 달러 규모의 1992년 허리케인 앤드류이다. 그러므로 지난 한 세기에 허리케인의 파괴력이 커진 탓에 피해가 늘었다고 할 수 있는 경우는 사실 없었던 셈이다. 열대 사이클론의 사회적 영향이 최근 증가한 건 대체로 인구와 기반 시설이 해안 지역에 점점 더 집중되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상징적인 협정, 교토 의정서
탄소 감축을 추구하는 실질적인 정치적 구상은 1997년에 협상을 마친, 이른바 교토 의정서가 유일하다. 앨 고어를 위시한 많은 환경주의자들은 이 협정을 지지했다. 이에 따르면 산업 국가에서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총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원래 배출했을 양보다 20퍼센트 정도 줄여야 한다.
그러나 교토 의정서는 기후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모든 나라가 이 협약을 비준했더라도, 또 모든 나라가 21세기 내내 이를 지키더라도 변화는 미미할 것이다. 2050년 무렵까지 기온은 거의 재기도 어려울 수준인 약 0.06도만큼 낮아질 것이고, 2100년 무렵이면 원래 추정치보다 약 0.17도 낮아지는 데 그친다. 이는 기온 상승 예상치 약 2.6도에 이르는 시점이 2100년에서 2105년으로 겨우 5년 미루어지는 것과 같다.
「워싱턴 포스트」에서 교토 의정서를 가리켜 ‘전적으로 상징적인 협정’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확고한 지지자들조차 교토 의정서가 작은 첫걸음일 뿐이라는 점을 인정하며, 훨씬 더 야심찬 계획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정치적 측면
정치인들은 기후에 대한 불안을 들쑤셔놓고는 자신들이 자리를 떠나고 나서도 한참 세월이 지난 다음이 될 15년에서 40년 안에 이산화탄소를 감축하겠노라고 공언한다. 그러나 실제 감축은 아직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교토 의정서 협상은 1997년에 끝났지만, 제한 조건이 처음 발효되는 건 2008년에서 2012년 사이이다. 지구 온난화를 최우선 과제로 천명한 캘리포니아 주의 법률은 주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2006년 9월에 서명한 이래 그에게 많은 정치적 지지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목표 시점은 편리하게도 14년이나 뒤인 2020년이다. 영국 수상 토니 블레어가 내놓은,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60퍼센트 줄이자는 안은 거창하게 들리지만 또한 머나먼 훗날의 일이기도 하다.
진실을 살펴보면 지구 온난화를 막자는 정치인들의 목소리는 높지만, 실제 실천해야 하는 시점이 오면 모두 갑자기 시들해지고 만다. 이는 이산화탄소 감축에 드는 비용이 금세 크게 불어나리라는 점과 정치적으로 위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각국 정부에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 감축은 정치인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초래할 게 자명하다.
온난화만큼 중요한 문제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현재 개발도상국에서 기후 변화 때문에 죽는 사람 수가 약 15만 명인데, 이 추정치는 대단히 부풀려졌다. 제3세계에는 더 시급한 다른 문제가 많은데, 거의 400만 명이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에이즈 때문에 300만 명, 실내외 공기 오염 때문에 250만 명, 미량 영양소(철, 아연, 비타민 A) 결핍으로 200만 명 이상, 깨끗한 마실 물의 부족 때문에 거의 200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
지구 온난화가 이들 문제 가운데 일부를 악화시키기는 하지만, 기후 변화로 생겨나는 추가적인 문제는 이러한 문제들에 비하면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지구 온난화 때문에 추가되는 일부 문제만을 줄이는 정책보다는 이러한 문제들을 전반적으로 줄이는 정책이 훨씬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지구 온난화뿐인 것은 아니다.
기분이 좋은 방안 vs. 실제로 좋은 방안
교토 의정서는 매년 1,800억 달러라는 비용을 들이면서도 우리가 얻는 편익은 미미하다. 물 부족 문제를 예로 들 경우 우리의 도전 과제는 오히려 지구 온난화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본질적으로 30억 명에게 깨끗한 마실 물과 하수 처리 시설을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작은 정책 변화는 매년 40억 달러라는 놀라울 만큼 저렴한 비용으로, 세계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질 측면에서의 편익을 안겨준다. 교토 의정서를 실천하는 방안과 롬보르가 주장하는 방안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 교토 의정서를 통해 매년 0.06마리의 북극곰을 살릴 수 있다.
→ 사냥 중단 조치를 통해 800마리가 넘는 북극곰을 살릴 수 있다.
○ 이산화탄소 감축으로 줄일 수 있는 허리케인 피해는 0.5퍼센트이다.
→ 건축 관련 규정 개선, 제방 확충, 보조금 보험 축소 등의 사회 정책을 채택하면 기후 정책에 들어갈 비용의 극히 일부로도 허리케인 피해를 50퍼센트 넘게 줄일 수 있다. 지붕 트러스와 벽에 버팀대를 설치하든지 띠, 클립, 접착제로 보강하는 등의 간단한 구조적 대책만으로도 큰 효과를 얻는다.
○ 교토 의정서를 실행하면 80년에 걸쳐 말라리아 감염 위험도가 0.2퍼센트 줄어들며, 말라리아에 따른 사망자를 14만 명 줄일 수 있다.
→ 의료 체계와 기반 시설 등으로 말라리아 퇴지 정책을 개선하면 같은 비용의 60분의 1만 들여도 8,500만 명을 살릴 수 있다.
○ 지구 온난화가 홍수의 가능성을 높인다.
→ 교토 의정서는 오히려 물 부족 인구를 증가시킨다. 상습 침수 지역에 대한 건축 보조금 철폐, 제방 남발 억제, 자연적 완충 지대로서의 범람원 활용, 습지 확충을 통해 홍수에 대처하면, 총 12억 명의 물에 대한 접근성이 개선된다.
○ 지구 온난화 때문에 영양 불량 인구가 늘어난다.
→ 기후 정책으로 기아 문제를 공략하는 건 엄청나게 비효율적이다. 선진국의 농업 보조금을 철폐하고 농업 연구에 투자한다면 교토 의정서를 통해 영양 불량 인구 한 사람을 구하는 비용으로 5,000명을 구할 수 있다.
이성적인 중간 지대가 필요하다
롬보르는 인류를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는 이면의 도덕적인 의도에는 찬성하지만, 이산화탄소 감축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외고집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지구 온난화 부정론과 과장된 호들갑 사이의 이성적인 중간 지대에 서려고 노력했다. 「뉴욕 타임스」가 그의 책을 가리켜 지구 온난화 논쟁에서 새로이 떠오르는 ‘실용주의적 중심’의 일부분이라고 평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 옳지 않듯, 충분히 걱정하지 않는 것 또한 옳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 때문에 멸망의 날이 다가온다며 자꾸 호들갑스럽게 북소리를 울려댄다면, 별 효과도 없이 비용만 막대하게 들어가는 정책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정책은 세계에 별 도움은 안 되면서도 긴 안목으로 멀리 내다보는 데 필요한 지구력을 금세 고갈시킨다.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려면 실용주의적인 중간 지대를 모색해야 하고, 현명하면서도 비용 효율이 좋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 책에서 롬보르는 오로지 냉정을 유지할 때(Cool It)에만 그러한 목표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백 년이나 흐른 후에야 간신히 도움이 될까 말까 한 일에 몇 조 달러를 썼다는 말을 미래 세대로부터 듣고 싶은가? 아니면 미래에 닥칠 난제에 더욱 잘 대처하고 더 나은 삶을 꾸릴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싶은가? 바꾸어 말하자면, 그저 좋은 기분을 느끼고 싶을 뿐인가, 아니면 실제로 좋은 방안을 실천하고 싶은가? 이에 대한 롬보르의 목소리는 확고하다. 우리는 지금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을 실천하고자 나서야 한다.
“이 논쟁은 우리 세대의 소명에 대한 것이다. 다가올 40년 동안에 우리가 이룩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