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0여 역사 교사가 함께 만든 본격 어린이 한국사 교양서
현직 역사 교사 20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전국역사교사모임(회장 윤종배)에서 어린이를 위한 한국사 책을 펴냈다. 휴먼어린이 출판사에서 올해 1월부터 12월까지 순차적으로 10권의 책으로 발행할 예정인 <행복한 한국사 초등학교>가 그것인데, 이번에 3권이 출간되었다. 선사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를 다룬 앞 권들에 이어 3권 ‘민족을 다시 통일한 고려’는 견훤과 궁예, 왕건의 등장에서부터 무신 정권의 수립과 만적의 난에 이르는 300년간의 고려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1988년에 결성되어 올해로 20주년을 맞는 전국역사교사모임은 2002년에 한국사 대안 교과서인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2005년에 세계사 대안 교과서인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를 펴내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 같은 작업의 연장선에서, 꼬박 3년에 걸친 기획과 집필 과정을 거쳐 선을 보인 <행복한 한국사 초등학교>는 초등학생용 한국사 대안 교과서인 셈이다.
교사 모임과 출판사가 ‘어린이들이 흠뻑 빠져서 읽을 수 있는 새로운 한국사책을 만들어 보자’며 뜻을 모은 것은 2005년 초였다. 김선옥(서울 상경중), 김육훈(서울 태릉고), 남정란(서울 태릉고), 박선희(서울 고명중), 방지원(전 서울 대영고 교사, 현 신라대 교수) 교사가 책임 집필을 맡았고 윤종배(서울 온곡중), 이성호(서울 배명중), 홍석주(경기 양서고) 교사가 원고 검토 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렇게 구성된 팀이 지난 3년 동안 글을 쓰고, 같이 읽으며 토론하고, 다시 고쳐 쓰는 공동 작업을 통해 거둔 결실이 바로 이 책이다.
교사들이 만든, 대안 교과서를 지향하는 어린이 역사책은 역사학자나 아동 작가들이 만든 역사책과 어떻게 다를까? <행복한 한국사 초등학교>의 남다른 점은 ‘우리 역사를 가지고 어린이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하는 교사들의 오랜 집단적 고민과 현장 경험이 녹아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아이들의 흥미와 공감을 자아내는 이야기 방식을 취하면서도 한국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내용을 충실히 다루어서, 읽는 재미와 교육적 목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하였다.
시중에 어린이를 위한 역사책이 많이 나와 있지만, 사실 초등학생들에게 옛날이야기가 아닌 ‘본격적인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이들의 독서 수준을 고려하면서도 역사적 사실에 관한 지식을 일정한 체계를 갖추어서 내용 있게 전달한다는 것이 웬만해선 풀기 힘든 숙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대부분의 어린이 역사책은 아이들에게 지루한 정보의 연속으로 여겨지거나, 반대로 단순한 호기심을 채워 주고 순간적인 즐거움을 주는 데 그치는 양 극단의 함정에 빠지곤 했다.
<행복한 한국사 초등학교>는 구성과 집필, 편집에서 일관되게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본격적인 역사책’이라는 자기 성격을 지켜 가고 있다. ‘처음 만나는’ 역사책에서 즐거움과 감동을 받는 것이야말로 평생 역사책을 즐기는 힘이 된다는 생각으로, 시간의 흐름을 타고 흐르듯 계기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방식으로 역사를 서술했다. 풍부한 사료 연구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사례나 일화를 이야기에 끌어들이고, 사실 관계에서 큰 무리가 없는 한 새로운 일화를 구성하는 데도 힘썼다. 꼭 필요한 역사적 설명도 이야기에 녹이려고 하였다. 궁극적으로 역사는 인간의 이야기라는 전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내어, 아이들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바탕으로 역사를 접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친숙한 이야기 방식을 취하면서도, 대중을 위해 집필된 역사서를 어린이에 맞는 말랑한 언어로 풀이해 놓는다거나 구어체 서술의 친근한 느낌에 호소하는 책들과는 달리 ‘본격적인 역사책’의 성격을 뚜렷이 살리고 있다. 흥미로운 사건의 흐름만으로 이어지는 역사 이야기는 재미있고 쉽게 읽힐 수 있겠지만, 책을 덮는 순간 아무런 역사상을 남기지 못하고 파편화된 이미지만을 남긴다. 그래서 이 책은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어떤 시대를 잠시 다녀온 느낌을 갖거나 ‘아, 이렇게 살았구나, 이런 시대였구나.’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기 위해 그 사회의 구조와 성격을 이야기의 바탕에 담아내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이처럼 아이들이 빠져들어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본격적인 역사를 다루는 이 책의 방식은 초등학생들에게 역사란 먼 옛날의 일이나 어른들의 일, 남의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며, ‘역사가 왜 재미있고 의미 있는가?’에 대하여 나름의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곧 역사를 읽고 즐기는 법, 역사와 소통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하는 것이다. <행복한 한국사 초등학교>를 통해 우리의 어린 독자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소박한 공감에서 출발해서, 그들의 이야기가 나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하나의 깨달음, 내가 살고 있는 시공간과 나 자신의 삶이 지닌 역사성에 대한 이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역사가 재미없다고? 그래 맞아. 너희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역사 속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 대신 이름만 남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외워야 할 제도만 남은 역사책은 재미없는 게 당연하단다. 하지만 역사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만들어 간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가장 극적인 울트라 수퍼 드라마란다.
우리는 옛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가 묻어나는 살아있는 역사를 들려주고 싶었단다. 딱딱한 제도와 이름에 숨결을 불어넣어서 너희들과 생생하게 만나게 하고 싶었어. 그래서 우리들은 옛날 사람들이 남긴 책과 유물, 유적, 다양한 흔적을 열심히 살펴보았단다. 이러한 것들을 사료라고 하지. 옛 사람들의 숨결과 생각이 담긴 사료들은 아주 생동감 있고 진실한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서 너희들에게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실감나게 보여 줄 거야.(……)
지금부터 우리 조상들이 살아 온 5000년의 이야기, 꿈을 꾼 사람들, 희망을 노래한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과 좌절한 사람들, 실패한 듯 보였지만 역사 속에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그 속에서 너희가 주인공이 될 멋진 미래를 꿈꾸어 보렴.
- <초대하는 글> 중에서
2. 기획 취지와 집필 의도
- “역사책을 읽으며 웃고 우는 너희들을 보고 싶다.”
“엄마,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어요!”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다음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만약 초등학생인 아이가 한국사 책을 읽다가 이렇게 말한다면 부모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나 현실은 어른들의 상상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 아이들은 대부분 “역사책은 내용이 다 비슷비슷해요.” “지루하고 따분해요.” “도대체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푸념한다. 아이들의 말이 맞다. 지금까지 나온 역사책들은 거의 다 참고 읽어야 하는 책들이었다. 항상 무언가를 알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책이었다. 특히 역사 교과서는 지루하고 욀 것이 많은 끔찍한 책이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역사를 참 부담스러워한다. 초등학생 시절에 그렇게 역사를 처음 만났기 때문에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역사란 외울 거리만 잔뜩 쌓여 있는 과목이라고 생각해 버리곤 한다. 특히 이 책의 필자들은 이 같은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들이 바로 그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이기 때문이다.
함께 이 책을 쓴 다섯 사람은 다 역사 교사이다. 물론 집에 가면 초등학생 아들딸이 있는 부모이기도 하다. 아이가 책에 흠뻑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힘이 나고 행복해지는 그런 부모 말이다. 어느 날, 이들이 속해 있는 역사 교사들의 모임에서 본격적인 어린이 한국사 교양서를 만들어 보자고 결의했고, 이들은 자연스레 대표 집필을 맡았다.
“내 아이에게 읽히고 싶은 역사책을 쓰자.”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고 꿈이었다. ‘하나하나 외우지 않아도 역사를 죽 이해할 수 있는 역사책’, ‘사람과 삶이 묻어나서 그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는 역사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생생하고 진실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실감나게 보여주기 위해 애를 썼다. 그래야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듯 역사를 읽으면서도 역사에 대한 올바른 안목과 정확한 지식을 키워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명의 필자들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
“우리는 너희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의 바다에 행복하게 빠져 들었으면 해. 웅장하면서 아름답고, 때론 슬프지만 더 큰 희망이 살아 있는 우리 역사 오천년 이야기를 즐겁게 만나고, 역사에서 배운 지혜를 바탕으로 너희들이 주인공이 될 미래를 멋지게 꿈꾸기를 간절히 바란단다.”
3. 구성과 서술, 편집의 특징
1.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첫 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중요한 전쟁이나 사건에 대하여 처음으로 인상 깊게 읽은 내용은 오랫동안 그 사건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책을 읽는 동안 아이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해 간다는 것을 유념하여, 올바른 역사관과 균형 잡힌 관점,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2. 한국사에 대한 지식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얻게 해주는 책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한국사의 주요 내용을 제대로 다루었고, 아이들이 이를 바탕으로 지식과 감수성을 확장해 갈 수 있도록 했다. 이야기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놓인 앞 뒤 맥락 속에서 의미 있는 지식을 전달하여, 아이들이 첫 눈에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여러 차례 반복하여 읽으면서 점점 더 많은 새로운 즐거움과 의미를 찾아낼 수 있도록 했다.
3.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어떤 사건이나 사실을 정확하기 알려주기 위한 친절한(어른 관점에서) 설명이 어느 선을 넘어서는 순간, 아이들에게는 지루한 정보의 연속으로 다가간다. 따라서 설명을 할 때는 아이들이 충분히 구체적 상황을 떠올리면서 따라 읽을 수 있도록 서술했고, 역사적 사건이나 상황을 다룰 때도 아이들이 이해하고 납득하는 데 필요한 내용을 충분히 다루었다.
4. 한국사의 각 시대 속에서 살다가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시대를 상상하여 여행하면서 ‘우리 역사와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인물들을 통해 소박하게 형상화된 한 시대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다음과 같은 애정 어린 질문도 던질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 때에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우리 역사는 꼭 이렇게 흘러와야만 했을까? 혹시 다른 길은 없었을까?’ 또한 우리 역사에 대한 애정은 이웃에 대한 존중을 토대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내 것’을 만들어 오는 데 역할을 담당한 ‘주변’과 ‘이웃’에 대해 건전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국제 관계를 담아내는 시각도 균형을 유지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5. 기본적으로 ‘읽는 책, 읽히는 책’을 지향했다. 아이들의 책읽기 방식을 고려하여 본문 외에는 읽기 요소를 두지 않고, 아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흡인력 있는 본문을 구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생각의 흐름을 방해받지 않고 읽을 수 있도록 페이지의 구성 요소를 단순화하였고, 사진이나 그림도 본문과 함께 ‘읽히도록’ 하였다. 그것들이 따로 신경을 쓰며 보아야 하는 자료가 아니라 본문의 내용을 상징화하거나 한층 강렬한 이미지로 뒷받침하여 본문과 하나가 될 수 있게 하였다.
6. 글과 시각 자료에서 초등학생에게 필요한 ‘역사적 상상’을 활용하고자 하였고, 이를 보면서 아이들이 이어지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기를 바랐다. ‘느낌’이 살아있는 역사 읽기, 곧 그 시대의 한 장면을 실제로 보거나 그 시대의 공기를 호흡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본문은 인물을 중심으로 상황을 재구성하여, 아이들의 눈앞에 어떤 ‘장면’이 그려지도록 하는 서술을 지향하였고 시각 자료로 이를 보완하였다.
7. 본문에서 충분히 서술하지 못하였지만 꼭 알아야 할 내용을 다루기 위해 ‘특별꼭지’를 두었다. 각 권당 3-4개로 ‘문화재를 찾아서’, ‘세계 속의 한국인’, ‘만약에’로 구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