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을 학문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연암학’의 총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조선 후기의 뛰어난 문장가이며 실학자(實學者)이다. 연암의 글은 생동하는 언어와 파격적인 문체로 인해 당대인뿐만 아니라 후대인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읽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국내에서는 ‘연암학’(燕巖學)이라는 명칭이 생길 정도로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연구되었으며, 1차 번역본부터 저자의 다양한 의견이 수렴된 책까지 수십 종에 달하는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연암의 산문 작품을 번역한 책 중에서 가장 정밀하고 전문적인 책이다. 산문의 원문에 표점을 붙여 번역문과 나란히 수록함으로써 서로 대조해 가며 읽을 수 있게 했고, 이본들을 자세히 교감하여 그 결과를 각주로 제시했으며, 번역의 동이(同異)를 밝혔고, 고사나 전거(典據)가 있을 경우 학문적인 견지에서 그 내용을 최대한 자세히 밝혀 주었다.
그간 출간된 연암 번역서의 다양한 번역을 ‘번역의 동이’를 통해 대조해 가며 읽고, 박제가, 이재성, 김택영 등 옛 선인의 다양한 비평을 ‘제가의 비평’을 통해 읽음으로써, 보다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연암의 글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연암학’의 질적인 발전은 물론 ‘한국학’의 연구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이 책은 정밀하고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독자층은 좀더 광범위하게 볼 수 있다. 연암 전문가를 넘어서서, 연암의 산문을 보다 깊이 있게 읽고자 하는 일반 독자에게 이 책은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총 다섯 권을 계획하고 있는바, 곧 두 번째 책이 간행될 예정이다.
연암 산문을 정세하게 들여다보다─역주·고이·집평
이 책은 연암 박지원의 산문 작품 22편을 뽑아, 원문을 교감(校勘)하고 번역·주석한 것이다. 연암 산문의 애호가(愛好家), 전문 연구자들이 좀더 정세(精細)하게 연암의 글을 감상할 수 있도록 역주(譯注)·고이(考異)·집평(輯評)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갖추었다.
▶역주(譯注) 번역(飜譯)하고 주석(注釋)을 달다. 번역문과 원문 모두에 주석을 달다.
이 책은 이해하기 힘든 구절에 대한 상세하고도 정밀한 학술적 주석을 가하여 원문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기존의 주석서와는 달리 전고(典故)의 원출처를 일일이 찾아 상세한 내용을 밝히는 방식을 취하였다. 매 작품마다 소단락을 나누어 분석하였는데, 번역문과 원문 모두에 주석을 달았다. 번역문의 경우 ‘역문풀이’라는 형식으로 단어나 문장의 뜻을 해석, 전고(典故) 등을 조사하여 밝혔고, 원문의 경우 ‘원문풀이’라는 형식으로 주석을 달아 인용된 원전의 문장을 찾아 일일이 적어 주었다. 또한 김택영, 박영철, 이재성 등 여러 사람의 평점 비평에 대해서도 번역문과 원문을 함께 제시하고, 주석을 달았다.
▶고이(考異) 차이(差異)를 상고(詳考)하다. 이본의 교감 및 번역의 동이를 살피다.
이 책은 박영철본(朴榮喆本: 박영철 편, 『燕巖集』, 17권 6책, 1932) 『연암집』(燕巖集)을 저본으로 삼고, 알려진 『연암집』의 이본 23종을 모두 수합·대조하여 원문을 교감함으로써 『연암집』의 ‘정본’을 만들었다.
연암 박지원은 자신의 작품을 몇 번이고 퇴고하면서 글의 완성도를 높여 간 작가였다. 이 책에서 수행한 면밀한 이본 교감은 연암의 이런 퇴고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본들의 차이를 살피다 보면 연암이 글의 어떤 대목에서 이리저리 주저하며 생각에 골똘히 잠겨 글을 다듬고 표현을 고쳤는지, 어떤 대목에서 특히 마음이 흔들리고 고심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이본 교감은 연암의 창작 심리와 창작 방법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한 편의 완성작을 퇴고의 ‘전 과정 속에서’ 동태적으로 그리고 입체적으로 읽어 내게 해 줌으로써 작품 분석과 이해에 새로운 방법론적 지평을 열어 줄 것이다.
이러한 원전의 이본 교감과 아울러 번역이 난해한 부분에 대한 기존 번역서의 번역문을 나란히 제시하여 한눈에 해당 구절의 동이(同異)를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특히 번역의 동이를 밝혀 주는 일은 한국학술사에서 처음 시도되는 작업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산문가(散文家)라 할 연암의 글인 만큼, 그리고 연암의 일부 글들에 대해서는 꽤 다양한 번역이 나와 있고 그 중에는 오역도 적지 않은 만큼, ‘번역’을 엄정한 ‘학문’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이 작업이 꼭 필요하다.
이 책에 제시된 번역의 동이를 대조해 가며 읽음으로써 하나의 구절이 다양한 뉘앙스로 번역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연암의 산문을 좀더 풍부하게 이해함과 더불어, 이 책의 번역까지 포함해 연암 산문의 모든 번역을 좀더 비판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읽어 낼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집평(輯評) 평점(評點)을 수집(蒐輯)하다. 평점 비평을 모으다.
기존의 연암 번역서와 이 책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 책은 연암 산문에 대한 ‘평점 비평’(評點批評)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그 어떤 번역과도 다르다.
‘평점 비평’(評點批評)이란, 동아시아의 전근대 시기에 전개되어 온 문학비평 방식으로, 문두평(文頭評), 미평(眉評), 후평(後評), 미비(眉批), 행비(行批), 원권(圓圈), 첨권(尖圈), 방점(傍點)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행해진다.
문두평(文頭評): 제하평(題下評: 제목 아래에 붙인 평).
미평(眉評): 두평(頭評). 작품의 첫머리에 있는, 작품 총평의 성격을 가진 비평.
미비(眉批): 상단 난외(欄外)에 있는, 작품의 일부 구절에 대한 비평.
행비(行批): 방평(傍評). 본문의 행간에 있는, 작품의 일부 구절에 대한 비평.
후평(後評): 작품의 맨 끝에 있는, 작품 총평의 성격을 가진 비평.
원권(圓圈): 권점(圈點). 글자 오른쪽에 친 ‘○’ 표시.
방점(傍點): 비점(批點). 글자 오른쪽에 친 검은 삐침 ‘’ 표시.
첨권(尖圈): 삐침 표시인데, 속이 하얗게 빈 ‘’ 표시.
연암 산문 중에는 연암 당대에, 그리고 그 이후에, 평점 비평의 대상이 된 작품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이들 평점 비평은 그 자체로서도 읽거나 보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연암 산문이 이전에 미학적으로 어떻게 수용되고 읽혔는지를 알게 해 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고, 더 나아가 연암 산문을 정당하게 이해하고자 고심하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좋은 길잡이가 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왜냐면 이들 비평은 이덕무, 이재성(李在誠, 연암의 처남), 김택영(金澤榮) 등등 문학에 대한 탁월한 식견과 교양은 물론이려니와 높은 비평적 통찰력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수행된 것으로서, 연암 산문의 묘의(妙意)와 정수(精髓)를 한두 마디 말로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들 비평은 연암 산문을 읽다가 혹 길을 잃거나 미로를 헤맬 때 나침반 구실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