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전 언론이 주목한 58개띠들의 눈물겨운 삶의 이야기 마침내 출간!
2006년 병술년 개띠해를 맞아 신년의 화두로서 전 언론이 일제히 특집으로 다룬 바 있는‘58개띠들’의 삶의 이야기가 마침내 한 권의 두툼한 책으로 출간되어 우리들의 눈길을 잡아끌고 있다. 화남출판사에서 최근 출간된『58개띠들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익히 알다시피 2006년 병술년 개띠해를 맞아 이 땅의 모든 신문과 방송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앞다투어?특집?으로 다룬?신년화두?의 압권은 단연?58개띠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즉,「왜?58년 개띠?인가」「달려라! 58개띠」「?58년 개띠?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왜?58년 개띠?가 유명해진건가?」「산전수전 다 겪은 58개띠」「찬밥신세?낀세대?서 주류로!」「잡초와 같은 생명력을 지닌 58년 개띠 사람들」등등의 주제로 연일 신문과 텔레비전 그리고 라디오 방송에서 1958년에 태어난 개띠 사람들의 삶과 그 인생역정을 집중조명하였는데, 이는 한국언론사상 매우 특이한 ?58 신드롬?이었다.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이 책의 뒤표지에 실린 내용을 참고 바람)
물론 올해가 병술년 개띠해이기 때문에 그러했겠지만 그것으로만 잘 설명이 되지 않는 뭔가가 있을 듯하다. 한국 언론이 지끔껏 이처럼 유별나게 어느 한 시대의 띠에 얽힌?내력?과 그 띠의?정체성?에 초점 맞춘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도대체 58 개띠가 뭐길래 이 야단인가?>라는 궁금증을 불러왔다. 이 책『58개띠들의 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자, 이른바 58신드롬의 비밀을 한눈네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산전수전 다 겪고 잡초와 같은 생명력으로 살아온 58개띠들, 58신드롬의 비밀을 밝힌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온 58개띠들의 삶의 연대기이자 청춘의 비망록!
전후?베이비 붐?세대로서 치열한 경쟁과 사회변혁의 소용돌이에서 굴곡지고, 파란에 가득찬 인생역정을 살아온 한국 현대사의 증인들은?58개띠들?에겐 몇 개의 공통적인 키워드가 있다.
가난, 반공, 유신, 무시험 입학-뺑뺑이, 5월, 5공, 민주, 자유, 6월항쟁, IMF, 명퇴 등의 말 속에는 한국 근현대사라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58개띠들만이 겪은 독특한 생의 비밀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흔히들 58년 개띠들을 가리켜 산전수전 다 겪은 세대라든가 혹은 잡초와 같은 생명력을 지닌 세대라고 일컫는다. 아울러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 한국인의 독특한 생의 한 모습을 58개띠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곤 한다.
『58개띠들의 이야기』는 왜 58년 개띠인가? 58개띠들에겐 그들만의 도드라지는 공통점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밥병을 담고 있으며, 이 시대의 대표적 세대로서?58개띠들?이 인생도정에서 느낀 남다른 소감과 감회, 우리사회에 던지는 목소리를 한데 담아낸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찬밥세대 낀세대>서, 어언 우리사회의 <주류>로 성장해온 58년 개띠생 각계 인사 27인이 필자로 참가하고 있는 바 그 면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임백천 가수 ? MC, 정병국 국회의원, 김광일 조선일보 문화부장, 김강석 SBS 멀티미디어팀 팀장, 위영란 현대불교신문 편집국장, 김상철 공평아트센터 관장, 서홍관 국립암센터 책임의사, 장용철 윤이상평화재단 사무처장, 유종순 열린사회시민연합 공동대표, 류연복 화가, 오민석 단국대 영문과 교수, 김완하 한남대 교수, 장경화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장, 배경희 음악가 등을 비롯해 문학인으로 이재무, 이승철, 박상률, 이진영, 서정홍, 정복여, 서애숙 등 중견시인들과 이대환, 임영태, 정영희, 조명숙 등 중견소설가 등이 필진으로 참가하는 등 각계를 대표한 27명의 개띠 인사들이 자신들의 삶의 역정과 청춘의 비망록을 공개하고 있으며, 때론 흥미진진하고 때론 눈물겨운 이야기가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 찬밥신세 <낀세대>서 어언 우리사회의 주류로 성장해온 58개띠생 각계인사 27인의
파란과 격동의 인생역정이자, 58개띠들이 우리사회에 던지는 발언!
이 책에 실린 주요 원고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원고의 수록순임).
○ 달려라, 58개띠- 임백천
임백천 씨는 현재 가수이자, MC로서 KBS-2FM의 <임백천의 골든 팝스> MBC 텔레비전의 <가요 큰잔치> SBS 텔레비전의 <비법 대공개>를 진행하고 있다. 덕수초등학교 시절 그는 1600여 명의 개띠 동기들과 함께 콩나물 시루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면서 수업을 빼먹고 영화를 보러다닌 <땡땡이>의 명수이자, 영화광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어른들이 입장할 때 옆에 슬쩍 묻어들어가는 수법으로 빈대와 벼룩, 이에게 물어뜯기면서도 공짜 영화를 보러다니며 한때 영화인을 꿈꾸다가 초등 6학년 때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잔>을 멋들어지게 기타로 치면서 가수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그는 이 때문에 <그까이꺼> 하면서 학교 공부를 등한시했으나 무시험 고교입학제, 뺑뺑이 때문에 여의도고교 2회로 들어갔으나 엄청난 숫자의 개띠 동기들로 인해 수십대 일의 대입경쟁률을 겪었으니, 58개띠들이 꼭 특혜만을 받은 <뺑뺑이 세대>가 아니다고 항변한다. 58개띠생이자, 박정희 대통령 아들 박지만 씨와 교분을 트고 지낸 그가 어느날 뺑뺑이 관련 소문을 지만 씨에게 물었던 일화, 중동붐으로 취직은 되었으나 88올림픽 건설현장 사고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이야기, 집안의 둘째 아들로서 <젖은 낙엽정신>과 같은 악착같은 생존력으로 살아온 이야기 등을 들려주면서 상식이 통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밝힌다. 아울러 IMF 위기로 명퇴를 당하는 등 최대의 피해자가 된 58개띠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자신이 현재 방송가에서 <선생님>으로 통하나 아직은 한창 일할 나이이니 <작은 오빠>라고 불러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 개띠 혹은 개띠와 유리된 곳에서의 한철- 김강석
김강석 씨는 SBS 텔레비전의 <8시뉴스> 팀장을 지내다가 현재 SBS 뉴미디어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1974년 이른바 뺑뺑이 1세대로서 <한강 이남 최대의 명문고- 부산고>에 입학하는 행운을 얻었으나,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한 방편으로서 퇴폐의 소굴이라는 <문예반>에 들어간다. 거기서 그는 선배들의 모진 군기잡기로 몽둥이 찜질을 당하면서 문학도로서의 꿈을 키운다. 라면땅을 안주 삼아 소주와 고량주를 마셔대고, 아리랑 담배를 배우며 지옥 같은 고교시절을 탈출하기 위해 스스로 위악적 삶에 빠져든다. 수업을 빼먹은 채 문예반 친구들과 집단으로 백일장에 참석, 정학 위기에 처했으나 다행히 <진해군항제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덕분에 정학처분을 면하기도 한다. 또한 스스로 낙제의 길을 택하여 개띠에서 유리된 고2 시절을 겪다가 고 3때 자퇴를 결심하기도 했으나 담임선생님의 따뜻한 배려로 학교를 무사히 졸업, 이후 외국어대 신방과를 입학하여 언론인의 길을 걷게 된다. 또한 그는 대학 2학년 때 유신반대 학생운동에 몰입, 긴급조치 9호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으나 10.26 사태로 인해 곧 석방되기도 한다. 그는 대학 졸업 이후의 삶은 먹고사는 데만 집착해온 견생(犬生)으로서의 삶이었다고 고백한다.
○ 용약한 아웃사이더- 김광일
김광일 씨는 경기고교 불어교사,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논설위원을 지내다가 현재 이 신문사의 문화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57 닭띠, 59 돼지띠들과 학교를 다닌 그는 초등 시절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하면서 보내던 일화와 함께 졸업식 날 받은 저금을 <삥땅>쳐서 군것질을 하다가 어머니에게 들키던 일로 세상사를 배우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 일로 그는 뺑뺑이로 중학교 배정을 받던 날, 겨울 홑바지를 걷어올리고 어머니에게 모진 회초리로 혼이 나게 된다. 그는 전주 남중학교 때 탁구부 선수였으나 도시락을 꺼내먹다가 원산폭격이라는 군대식 기합을 받으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런데 선배들은 탁구부 예산으로 잡채밥을 시켜 먹던 선배들에 대한 기억 때문에 지금도 중국집에 가면 무조건 잡채밥을 시켜 먹는다고 고백한다. 또한 중학 2학년 시절, 겨울 방학을 2주일 앞두고 공부하기 싫어 학교 교실을 불태워버린 58개띠 친구들 때문에 지옥 같은 학교 건물이 잿더미로 불타오르는 것을 보고 모두 환호성을 지르던 이야기 등을 통해 그는 58개띠들이 입시 지옥 때문에 겪어야 했던 웃지 못할 추억담을 소개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58개띠들이 현대사의 중심적 사건을 관통했으면서도 용약한 아웃사이더로 남아있어야 했었다고 스스로를 고백한다.
○ 내 안에 걸린 무지개- 이대환
이대환 씨는 베트남 전쟁 고엽제 문제를 다룬『슬로우 불릿』의 작가이자,『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 평전』등을 집필한 전기작가로서 현재 경북작가회의 회장과 포스코 청암재단 이사로 일하고 있다. 고아원 친구들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꽁보리밥과 된장찌개, 열무김치와 고추장, 김치밥국 등 웰빙 식단으로 가득한 가난의 체험과 미제 분유와 강냉이죽에 얽힌 추억담을 기억해낸다. 이어 그는 수녀원 운동장에서 상영된 공짜영화를 볼 때 대한뉴스를 통해 귀신 잡는 해병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거나 그가 살던 집 근처에 포항제철 공장이 들어서게 돼 훗날 박태준 씨와의 운명적 인연을 맺게 된 사연, 총각선생님과 젊은 수녀와 애틋한 사랑이야기 등이 결국 그를 작가의 길로 이끈 문학적 자양분임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그는 386세대들의 발랄함, 경쾌함, 경박함에서 시대적 상처와 고뇌를 발견할 수 없다면서 그들에게 한마디 충고도 아끼지 않는다. 이 땅에는 여전히 인간다운 삶을 해치고 고통을 강요하는 억압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남북분단과 물신주의가 실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삼십대여, 쾌락을 경계하라!>고 386세대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기도 한다.
○ 내 자신의 운명과 도전하며 살아온 58개띠-정병국
정병국 씨는 YS 시절 청와대 최연소 비서관을 지내다가 정계에 입문, 16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현재 17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해마다 시민단체가 선정한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뽑힐 정도로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경기도 남한강변에 위치한 양평군 개군면의 한 빈촌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농사꾼을 바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리고 초등학교 5학년때 가출을 결심하게 되는 데 그 이유는 서울에서 시행 예정인 중학 무시험제도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 가출을 결심한 덕분에 결국 농부가 될 것을 강요하는 아버지의 고집을 꺾게 된 그는 이후 중학시절 돈암동 산동네에서 자취생활를 하면서 형의 뒷바라지를 해가며 겪게 된 고통과 설움을 들려준다. 그러면서 국회의원이 된 지금 그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은 초등 5학년 때 자취방을 얻어주면서 아버지가 했던 그 한마디 말이 인생의 좌표가 되었다고 회상한다. 즉 <이제 J 혼자다. 네가 원했던 것이니만큼 누구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58년 개띠들이야말로 잘못된 교육제도의 피해 당사자들이라고 진단하면서 교육이 바로서는 나라를 58년 개띠들이 만드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 강언덕의 꿈 많던 소년-서홍관
서홍관 씨는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등을 역임하고, 현재 대한의사학회 이사, 국립암센터 암예방검진센터 및 금연클리닉 책임의사로 일하고 있다. 만경강이 흐르는 호남평야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바로 위의 형이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 어머니가 그를 임신한 탓에 하마터면 이 땅에 태어나지 못할 운명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1968년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일 이후에 겪었던 일화, 박정희 3선 개헌에 반대한 둘째형의 영향으로 <사상계>를 사모으기 위해 헌책방을 뒤지고 다녔던 일, 둘째 형으로부터 알게 된 박정희 정권의 영구집권을 위한 3선 개헌 무렵의 학생운동 탄압에 얽힌 여러 시대상을 한눈에 보여주는 그날의 일기장, 6촌 누나가 형의 영향으로 <독재정권에 항거하자>는 편지를 전주 시내 각 중학교 학생회장에게 보낸 일로 결국 국가전복 음모 혐의로 중학교에서 퇴학처분을 받은 이야기, 10월 유신과 민청학련 사건, 혼식장려와 쌀막걸리 출현에 다른 에피소드 등을 소개하고 있다. 58개띠들은 1977년에 대학을 입학한 탓에 이런 정치적 영향으로 긴급조치 세대로서 학생운동에 뛰어들게 되는데 그의 경우 청계천 피복노조에서 야학교사를 하면서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되고, 광주민주화운동과 휴교령으로 인해 한때 자괴감에 빠졌으나 서울대 의대 레지던트 시절에 <4.13호헌반대 의사시국선언>을 이끌어내고 이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를 창립하여 여러 활동을 하고 있으며, 신경림 시인의 추천으로 『창비』로 등단하여 현재 시인으로서의 길도 걷고 있다.
○ 비밀장부에 적어 넣은 나의 이십대- 정복여
정복여 씨는『문학정신』『동서문학』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그는 그 자신의 삶이 장작을 패다가 튕겨져 나간 나무조각과 같은 삶이었다고 회상하면서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대학입시를 포기하고, 여고 졸업 후 친척이 운영하는 경리직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된 불우한 청춘의 연대기를 회상한다. 즉, 그는 시게를 파는 친척회사의 경리 직원으로 일하면서 비밀장부를 기입하는 일을 하거나 과외를 하면서 간신히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한때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민주화운동 관련 수배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나 사랑보다 가족을 선택해야 했던 아픈 젊은 날을 회상한다. 그러면서 그는 장작처럼 격동적인 생을 살지는 못했으나, 거기서 우연히 씨눈이 살아나 기적처럼 싹을 틔울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이름없는 풀 한포기를 위한 거름이 되겠다고 스스로를 다짐한다.
○ 북한산에 케네디 대통령이 묻혀 있다!-김상철
김상철 씨는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현재 공평아트센터 관장, 중앙대 및 상명대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여섯 살 때 호남선 통일호 열차를 타고 상경한 그는 초등학교 시절 전라도 사투리 때문에 촌놈으로 치부받아 서울아이들 곁에서 수모를 당한 이야기, 동양최대의 학생수를 자랑하던 숭인초등학교 시절의 여러 추억담과 함께 소년한국일보 주최 전국어린이 미술대회의 장원하여 이후 화가의 꿈을 키우던 일, 택사스 윤락가에서 신문을 돌리던 사춘기 시절에 겪은 고생담, 미대 진학 후 국토순례길에서 화투를 치다가 술집 작부에게 지갑을 털리던 어리숙한 시절의 애환, 1980년 서울의 봄 시절 데모를 하던 친구들과 반대로 데모를 막는 전경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즉 그는 운동권 친구들의 치열한 사회의식과 진보적인 사고에 대하여 변변하게 말 한마디 못할 정도로 변방으로 밀려나거나 어색한 침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에 나와서는 도전적인 후배들에게 기성세대로 치부되어 대접은커녕 비판의 예봉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으며, 권위와 위엄으로 무장한 선배들에게 눌려 영원한 후배로 남아있어야 하나, 그는 여전히 눈 내리는 날 흰 눈발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검둥강아지의 늑대울음을 꿈꾼다고 말한다.
○ 나를 긍정하고 내 세월을 긍정한다- 임영태
임영태는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1994년 장편소설『사람이 아니었어』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중견소설가로서 현재 소설가인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그는 일곱 살 때 초등학교에 들어간 탓에 57년 닭띠들하고 학창시절을 보내게 되었고, 이 때문에 뺑뺑이 세대에서 탈락된 그는 이후 동년배 개띠들과 다른 특이한 입시 경험을 지녔다고 한다. 그는 서울 시내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전학했으나, 시골과 다른 교과 진도로 인해 학업성적이 뛰떨어진 탓에 초등학교 최우수 모범학생이라는 추억에 사로잡혀 중하위권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바엔 차라리 실업계 고교에 진학하자는 엉뚱한 오기가 발동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결국 적성에 맞지 않는 실업계 고교를 선택하게 되고, 그런 나머지 철저한 이방인으로서 고교시절을 보내면서 문학의 꿈을 키우게 된다. 그는 말하자면 58년생으로의 기질과 자존심으로 실업계에 진학한 탓에 이후 사회생활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소외를 경험하게 되나 현재의 삶을 긍정하고, 결국 지나온 나를 긍정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특유의 낙천적 성격을 보여준다.
○ 나를 견디게 한 문학, 내가 배신하지 않을 문학-박상률
박상률 씨는 시인이자, 희곡작가로 활동하면서 58년생 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동화작가로 유명하다. 2년 전 그가 도서출판 시공사에서 펴낸 청소년용『삼국지』는 원작에 가장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현재 숭의여대 문창과 겸임교수로 활동하면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유년 시절 자신의 밥값을 스스로 해야 했던 어린 농부로서 온갖 농사일을 했던 경험담을 들려준다. 58개띠들과 개떼처럼 어울려 닭서리를 했던 일화, 초등시절 외워야 했던 국민교육헌장에 얽힌 이야기, 유신헌법, 교련교육, 입영 집체훈련 등으로 군사문화에 길들여지며 살아야 했던 일을 회상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늘 글쓰는 사람을 꿈꾸었으나 가난 때문에 상과 대학을 진학하게 되고, 대학시절 평범한 상대생을 꿈꾸었으나 어느날『전환시대의 논리』『창작과비평』『뜻으로 본 한국역사』등을 보면서 의식화된다. 그러던 중 대학 4학년 때 5.18 광주민중항쟁을 겪게 되면서 인생의 물길을 바꾸게 된다. 그는 1980년 5월, 그 열흘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다시 문학에 뜻을 두게 되었다. 그는 문학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삶을 견뎌 왔다고 말하면서 똥개이기를 거부하고, 진도 출신이므로 명견 진돗개의 삶을 꿈꾸고 있다고 말한다.
○ 58개띠에게 축배를!-정영희
『시문학』과『동서문학』신인상으로 시인과 소설가로서의 삶을 살아온 대구 58 개띠생 정영희 씨는 현재 글을 쓰면서 역학연구원을 차려 타인의 운명을 점지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대구출신 58개띠들이 희대의 입시부정 사건의 여파로 고교 시험을 두 번이나 치르게 된 사연을 소개하면서 이십대 초반 문학이 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맹신으로 한때 고행을 치르는 수도사처럼 만행을 거듭했다고 회상한다. 그는 국민교육헌장을 못 외워 결국 자살하게 된 한 친구의 가슴 아픈 일화 등을 소개하면서 대학 4학년 시절 1980년 5월을 체험하게 되고, 친구들이 학생운동에 뛰어들 때 살아남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살아왔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 그는 386세대가 민주화의 주역으로 인정받고 있을 때 58개띠들은 묘한 소외감을 느끼고 있으나 58개띠들은 끝없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격동의 세월을 견뎌왔다고 회상한다. 그는 어느날 58개띠들이 모두 <중팔자>를 타고 났다는 말을 듣고, 명리학 공부를 하게 되는 바 그가 풀이하는 58년생에 대한 사주풀이는 흥미를 끈다. 그의 말에 따르면 58개띠 무술생(戊戌生)은 괴강살을 타고나 자기주장이 강하고, 권위와 위엄에 당당히 맞서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여성의 경우 온갖 못된 짓을 한 남자가 태어나는 살을 가지고 있어 남자보다는 더 사나운 팔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알 수 없는 엄청난 회한과 멍을 껴안고 있으나 찬바람 속에 의연히 서있는 겨울나무처럼 의연하게 살고 싶다고 다짐하고 있다.
○ 개 같은 날들의 기억, 여섯-오민석
『한길문학』에 시를,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어 글을 쓰고 있는 오민석 씨는 현재 단국대 영문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정릉 산동네에서 노가다를 하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담과 함께 가난한 달동네에서 유년시절을 겪은 여러 체험담을 고백한다. 그는 대학시절 한때 개띠 친구와의 심한 몸싸움으로 정학의 위기에 몰렸으나 어머니의 사과로 이를 면하던 일, <독재타도>라고 써진 화장실 낙서와 의식화 교재를 읽고서 학생운동에 관심을 가졌으나 뒤늦게 군대에 갔다가 절친한 친구로부터 <프락치>로 몰려 그 친구와 싸우게 된 이야기, 그리고 정치적 입장 때문에 서로 등을 돌리게 된 58년생만의 독특한 경험담은 군사독재가 58개띠들의 우정마저 개판치게 만들었다고 회상한다.
○ 모성이 지배하는 마을 공동체- 김완하
『문학사상』신인상으로 등단하여 현재 한남대 문창과 학과장과 계간『시와정신』편집주간을 맡고 있는 김완하 교수는 경기도 안성의 궁벽진 시골에서 친구도 없이 홀로 떠돌던 유년시절을 회상한다. 그는 농사일을 하는 부모님과 온갖 대자연의 정취 속에서 겪은 삶의 무늬와 우물가에 서 계시던 어머니에의 추억 그리고 당제삿날 고향마을의 풍경을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로 복원시켜놓고 있다. 그는 정월 대보름날 마을의 당제삿날과 두레와 품앗이로 농촌마을의 푸근한 공동체의 삶을 들려주고 있는 바 이는 농촌출신 58개띠생들의 공통된 추억이기도 하다. 특히 고향 마을의 마정리 느티나무에 얽힌 사계절의 추억담은 그가 바로 그러한 삶을 닮고 싶다는 회한의 정서를 진득하게 보여준다. 그는 세상 만물이 느티나무의 품안에 둥지를 트듯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활력을 주는 삶을 살면서 따뜻한 시를 쓰고 싶다고 말한다.
○ 생의 변방에서-이재무
새로운 문예지로 각광받고 있는 시전문지 계간『시작』편집주간이자, 현재 한남대 문창과에서 출강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이재무씨는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부여 읍내에서 20여 리쯤 떨어진 조그만 산촌마을에서 아홉식구가 움막같은 집에 모여 산 유년시절을 회고하면서 이승복과 옥수수죽, 암스트롱의 달 착륙과 국민교육헌장 암기에 학교공부보다 더 많은 시간을 매달려야 했던 순간을 기억해 낸다. 그와 함께 고교시절 처녀선생님을 연모하면서 깔치, 꼰대, 망치, 구름과자 등 속어에 얽힌 추억담과 나팔바지를 입거나 이종용, 이장희 등의 노래를 부르며 청소년 시절을 보내야 했던 그 시절의 문화 풍속도를 회고한다. 정동진 역에서 고문관으로 군대생활을 해야 하던 이야기와 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가계사적 절망의 한가운데서 시를 쓰게 되고, 이후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전교조운동에 휘말려 교사로서의 꿈을 접고 이후 출판사에 뛰어들어 문학의 길을 걷게 된 청춘의 긴 여정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 일에 파묻혀 산 착한 개띠 여자-위영란
위영란 씨는 <주간불교신문>기자로 입사한 이후 <법보신문> 을 거쳐 현재 <현대불교신문> 편집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착한여자 콤플렉스> 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젊은 날을 회고한다. 장애가 있던 작은오빠의 뒷바라지와 일가친척들의 서울 관문의 역할을 한 집에서 생활을 한 탓에 부모님의 고충은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때문에 복잡한 일은 혼자 조용히 떠 안아 해결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고 ‘착해야 된다’고 교육받던 시절의 영향으로 콤플렉스는 본인 차지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 콤플렉스는 모든 문제들을 남보다 더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 자기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증후군’의 삶이었고, 또 다른 증후군을 찾아 앞으로도 그녀는 계속 탐색할 것이라고 말한다.
○ 승속동행의 삶- 장용철
장용철 씨는 시인이자 현재, 진각복지재단 및 윤이상평화재단 사무처장, 문화복지연대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나가지> 마을의 천하 약골로 태어나 미국의 원조 급식으로 생긴 두드러기 때문에 고생했으나 북한산 웅담으로 이를 고쳤다고 한다. 그는 인생의 네 가지 화두로 진리(종교), 문학(시), 통일(민주), 사람(인연)을 들고 인생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25여 년 동안 불문을 들락거리고, 사회생활이라고는 종단생활 외에는 한 적 없이 한 우물만 파 왔다. ‘불온삐라’를 줍던 인연으로 통일꾼을 자처하며 사리원에 금강국수공장을 세우는 등 대북사업을 열성으로 하고 있다. 또 전생의 인연으로 <윤이상평화재단>의 사무처장으로 일하면서 음악가 윤이상의 명예회복을 위해 애쓴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문학은 그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두 가지 유산 중 하나였다. 하늘조차 막힌 둔전 동네에서 음유시인인 아버지로 인해 그의 집은 동네에서 책이 제일 많은 집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천성적으로 시인의 품새가 어울리는 사람이고 겨울 산천을 누비는 개똥지빠귀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다.
○ 새싹 돋는 희망의 봄-류연복
류연복 씨는 서울미술공동체를 결성하며 화가의 길을 걸은 이후 민족미술인협의회 사무국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대외협력국장 등을 거쳐 현재 판화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어린시절 천연스키장 북악스카이웨이에서 댓개비에 발만 올려놓으면 기막히게 미끄러지는 환상의 스키를 탔고, 정릉천변에서 칼춤을 추던 아이를 짝사랑했다. 짤짤이로 돈을 따서 영화를 보고 대학생활에서는 술 마시는 일이 예술인 양 ‘애술’을 즐겼다. 1979- 1980년에 일어났던 10?26, 12?12, 5?17이라는 격변기적 사건으로 뒤죽박죽이었던 그림과 사회, 역사에 대한 여러 문제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로 인해 졸업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미술운동을 하였다. 특히 1986년도에는 필자의 집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 사회면을 장식하기도 했던 에피소드 등이 있다. 이제는 위로부터의 변혁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꿈꾸기 위해 변방의 한 소도시를 옮겨서 그림이, 문화가 어떻게 생활 속에 녹아들어야 할지 해야 될 몫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중이라고 한다.
○ 당신 몸에서는 지독한 역마살 냄새가 풍겨요-이진영
이진영 씨는 시인으로 <전남일보> 기자를 거쳐 ‘포천가구사업협동조합’ 상무이사를 역임하였고 현재 문학과경계사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를 시작으로 중?고등학교를 거쳐 현재에 이르러서도 ‘역마살’을 58개띠의 운명처럼 몸소 체험(!)하며 살아온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햐얀 운동화가 몹시 신고 싶어 저금한 돈을 타서 몰래 운동화를 사거나 중학교 때 서울을 동경하다 쌀독의 돈을 훔쳐 상경했다고 한다. 5?18의 혼란을 거쳐 입산과 하산, 기자, 가구사업, 시인 등등 많은 직업들을 거쳤다. 한때 알코올로 아슬아슬한 죽음의 외줄타기를 했고 병든 자신의 영혼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시(詩)의 성(城)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임을 깨달았다. 오직 시만이 그를 죽음과 우울의 늪에서 건져 올려줄 수 있는 구원의 밧줄임을 비로소 알게 된 그는 황무지에 한 방울 두 방울 물을 뿌리며 재기의 쟁기질을 한다. 그런 고난을 지나 뒤늦게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에 다녔고, 출판사를 차리고 <58개띠 생명전-아무도 너의 깊이를 모른다>라는 주제로 시 판화전을 갖기도 했다.
○ 좋은 사람, 좋은 세상-강경호
강경호 씨는 시인이자 도서출판 시와사람 대표, 광주대 문예창작과 강사로 일하고 있다. 개펄에서 조개를 잡다 밀물 때문에 물에 빠져 죽을 뻔하다 살아서 엉엉 울었다. 중학시절엔 문학에 심취해 아랫집 후배의 작은 아버지가 읽었던 책들을 훔쳐다가 읽기도 했다. 과자와 삼중당 문고를 바꿔 읽었고, 책에서 나는 잉크 냄새까지도 좋아했다. 군 제대 후 좌절과 방황을 겪으며 이 땅의 구석구석을 쏘다녔다. 해남 땅끝에서부터 강원도 울주?고성, 문화유산이 풍부한 경주나 부여, 그리고 이름없는 시골 마을과 야산까지를 누볐다. 여행을 통해 동?식물 들은 시간을 통해 제 몸으로 말하는 것을 깨달았고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쓸모없는지를 몸소 느꼈다. 이후 근현대문학사를 통해 고향인 전남 광주 지역에 좋은 문예지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고재종 곽재구 신덕룡 이지엽 교수 등과 의기투합해 시전문 잡지『시와사람』을 창간한다. 그것은 5?18광주민주화운동 16주년에 창간호가 나왔으며 문학을 통해 ‘좋은 사람,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실천하고자 하는 바램들을 말한다.
○ 아름다운 유산- 서정홍
서정홍 씨는 시인이자 월간『어린이와문학』발행인, 월간『작은책』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노동현장에서 쓴 시집『58년 개띠』는 노동자로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서정홍 씨의 삶의 기록이다. 유년시절 식구들의 오줌을 먹고 자란 ‘조선상추’의 맛을 잊을 수 없고 특별활동으로 ‘사육재배부’에서 모아온 꽃씨들을 뿌려 그의 집은 꽃으로 넘쳤다고 한다. 58개띠들은 누구나 가난의 둘레에서 자유롭지 못한 어린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지독한 가난에 혼자 힘으로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기계처럼 일을 하던 어머니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이 절절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부자가 되려고 열네살 때 공장으로 간 이래 노동의 현장을 체험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가난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가난은 떳떳했고 가난한 만큼 죄가 적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곡절 많은 현대사를 거쳐온 58개띠들이 산전수전 다 겪었기에 그 삶은 결국 우리시대의 에너지와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 내 기억 속의 그 사람- 유종순
유종순 씨는 시인으로『민중의 소리』편집위원, 열린사회시민연합공동대표, 시민방송운영위원 등을 지냈다. 몸이 약했던 그는 고등학교 때 역도부에 들어가 체력 단련을 했고, 그것들이 20여 년간 모임과 술자리의 연속을 벼텨낼 수 있는 힘이었다고 한다. 그는 고교 때 국어교사였던 정의홍 선생을 회상하는 글을 싣고 있다. 정희홍 선생은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시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주셨고 입시위주의 교육보다는 인성이나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알려주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 이 터졌을 때 수배중이여서 달랑 책 2권과 잡동사니 메모철을 들고 서울을 떠나 청류암의 움막에서 6개월을 보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가져온 잡동사니 메모들에 눈을 돌려 그 가운데 시적 영감들이 묻어 있는 것들을 시로 만들어 30여 편을 완성하였다. 은둔 속에서 쓴 시들은 나중에 신경림 선생께 전해져 창비에서 시집을 펴낼 수 있게 된다.
○ 혹 달린 거북이- 조명숙
전업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조명숙 씨는 자라면서 아들, 딸 차별 문제에 대해 자매들과 대조적으로 대들고 싸우고 울고불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주 집안의 골칫덩이였다. 그녀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일한 유산은 목숨밖에 없었다. 일찌감치 탯줄 묻은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갔으나 기댈 언덕이 없었던 그녀는 그래서 한결같이 억척스럽고 부지런히 58개띠로 살았는지도 모른다. 신장이 나빠 고생하던 오빠가 조금 엉뚱하게도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뇌일혈로 운명을 달리했다. 그 오빠가 운명을 달리하기 전에 정원을 만든답시고 구덩이 속에 청거북을 풀어놓았다. 오빠의 죽음을 잊고 지내다 가 끈덕지게 살아 움직이는 혹 달린 거북이 한 마리를 보며 젊은 날의 회한에 젖는다.
○ 똥개와 같은 내 인생-배경희
시인 배경희 씨는 창작문화공동체 ‘꼬두메’를 결성했고 현재, <시하나 노래하나>대표이자 시노래 모임 <나팔꽃> 동인으로 문화예술의 샘 ‘보리울’에서 음악인으로 창작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개띠로서 애완견인가 똥개인가를 회고한다. 학창시절엔 늘 지각대장에 뒷골목을 독차지하고 반 평균성적을 깎아 내리는 좀벌레라고 매도되어 늘상 혼자서 거의 다 맞았다고 한다. 지하실 그룹사운드 연습실에서 지내다가 걸린 결핵으로 군에 못 가게 되나 우격다짐으로 입대를 자원했다. 군에서 <에스터데이>를 불러대는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문관 행각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똥개처럼 살아온 그는 ‘노래’에 대한 자신만의 개똥철학을 가지고 있다. 개들이 찍찍 갈겨대는 오줌싸기가 사실은 자기 영역 표시의 성스러운 행사이듯, 마찬가지로 그 역시 깊이 몰두하고 집중해서 작업을 한다. 창작물에 대해 개똥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그는, 그야말로 개똥철학을 이고 사는, 그러니까 쉽게 얘기해서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개똥만 가득찬 틀림없는 58개띠란다.
○ 49년의 삶과 이야기- 장경화
장경화 씨는 광주시립미술관 개관 큐레이터, 광주비엔날레 전시기획자,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등을 거쳐 현재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옥수수빵과 우유 덩어리를 기다리던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 고등학교 때 제과점에서 연 <장경화 시화전>이 이념성이 강하다 하여 광주경찰서 형사들에게 철거되었다. 그 충격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시보다는 그림으로 자신의 이념과 철학을 표현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미술과에 입학하였다. 음악을 즐겨했던 그는 대학 때 MBC <제1회 창작가요제> 본선에 참가해 대상을 수상하였다. 광주비엔날레 조직위원회의 공무원으로 참여한 그는 맨땅에 해딩하는 기분으로 ‘비엔날레 전시장’ 준공으로 뛰었다. 빠듯한 날짜에 맞추기 위해 24시간, 약 2주간의 무리한 강행군으로 모두 과로로 졸도를 했다. 그러나 보약을 지어먹어가며 유치를 시작된 ‘광주비엔날레’는 지금 6회를 준비하고 빠른 속도로 세계 5대 비엔날레라는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 개와 같이 사네-서애숙
2001년『오늘의 문학』에 시를『월간아동문학』에 동시를 발표하여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서애숙 시인은 항구 도시 목포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유년시절 58개띠 생인 한 친구의 이야기를 빌어 가난 속에서 기구한 삶의 길을 걸어야 했던 아픈 삶을 추적한다. 어느 날 아버지의 죽음이 몰고 온 파장으로 가정이 붕괴돼 이후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배고픔을 면하려고 세상의 온갖 궂은 일을 해야 했던 그 친구는 하루 한끼의 식사로 돈을 아껴 가며 장사를 하다가 이젠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오십마리가 넘는 개를 키우며 생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58년 개띠생인 친구가 개처럼 펄펄 뛰어나닐 살 날을 바라고 있다고 말한다.
○ 10년마다 바뀌는 인생-방남수
이혜성스님의 상좌로 한때 승려생활을 하다가 10.27 법난의 여파로 하산해야 했던 화남출판사 대표 방남수 시인의 기구한 인생역정을 담고 있다. 가난 때문에 고교 진학을 못하다가 결국 입산하게 된 방남수 사장은 이후 한국불교계의 청담 문중으로 사미계를 수지하여 승려로서의 삶을 기약하게 되나 전두환 신군부가 조작한 10.27법난의 여파로 불교계를 떠나야 했고, 이후 제약회사 영업 직원을 거쳐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여성불교> 편집주간으로 10년간 일하게 된다. 이후 그는 군대 동기인 이재무 시인과의 인연으로 출판계에 입문하여 지금껏 한국문학의 부흥과 인문학의 발전으로 위해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 어느 <58년 개띠>에 대한 자기보고서-이승철
현재 화남출판사 편집주간이자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국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로 그동안 민족문학운동을 펼쳐온 이승철 시인의 유년 시절의 기구한 운명을 밝히고 있다. 즉 2대독자로 태어났으나 유복자 아닌 유복자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생활해야 했던 유년시절의 가슴 아픈 이야기와 이후 문학청년으로 떠돌다가 1980년 5월의 삶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광주의 진실을 밝히는 시낭송 운동과 출판문화운동, 민족문학운동의 길에 나서야 했던 인생 역정을 담아내고 있다. 이승철 시인의 삶은 격동의 한국현대사 속에서 겪은 파란의 청춘의 연대기를 살아야 했던 58개띠생들의 운명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