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과학기술의 꽃 거북선을 만든 사람_ 나대용
임진왜란 하면 이순신, 이순신 하면 거북선이 떠오르지만 실제 거북선을 설계하고, 제작을 총지휘한 사람은 나대용 장군이다. 나대용은 어린 시절부터 천하무적의 배를 만들겠다는 열망으로 한길을 걸었으나 아무도 그의 진가를 알아주지 않았다. 마지막을 각오하고, 찾아간 이순신 장군은 설계도의 의도를 한눈에 파악하고, 곧바로 나대용으로 하여금 거북선 제작을 책임지는 직책을 맡게 했다. 나대용과 이순신 아래의 병사들이 배 만드는 일에 매달린지 1년 만에 마침내 ‘거북선’이 탄생한다. 그리고 곧이어 일어난 임진왜란에서 거북선은 나라를 구하는 비밀 병기가 된다. 조선 과학기술의 꽃이라 할 만큼 대단히 과학적으로 설계된 거북선은 바로 나대용의 과학기술과 이순신의 전술이 합쳐진 두 사람의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최고의 해전 전문가_ 정걸 장군
무관 정걸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0~40년 전, 배 위에서 대포를 쏠 수 있도록 설계된 ‘판옥선’을 개발한 사람이다. 거북선에 가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단 3척뿐이던 거북선과 함께, 해전을 이끌었던 배가 바로 판옥선으로, 임진왜란 당시 대표적인 싸움배이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무기를 개발해 꾀돌이 발명왕으로 불리던 정걸은 거급 해전을 치르며,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된다. 북방 여진족을 몰아내는 데 여념이 없었던 조선이 육지전을 중시하면서 정걸의 이름이 잊혀지는 듯 했으나, 임진왜란 발발과 함께 이순신을 만나면서 그 명성을 되찾게 된다. 자신보다 나이가 서른 살이나 많은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이순신의 열린 마음과 기꺼이 그의 부하가 되어 준 정걸 장군으로 인해 조선 수군은 아무도 넘볼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 이후 정걸은 부산포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행주대첩에서도 커다란 역할을 한다.
물길 연구에 바친 삶_ 물귀신 어영담
해전에서 승리의 관건은 바닷물의 흐름을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느냐에 있다. 출세 길을 마다하고 평생 물길 연구에 삶을 바친 어영담도 이순신을 만든 숨은 영웅이다. 그렇잖아도 물길 전문가를 찾고 있던 이순신은 어영담을 찾아내 물귀신의 눈을 얻음으로써 바다 싸움에서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다. 어영담은 이후 31인의 특공대를 조직해 당항포해전을 승리로 이끈다.
화약은 내게 맡겨라_ 염초 제조 기술자 이봉수
임진왜란은 화약 전쟁이다. 전쟁이 한창 진행될 무렵 조선 수군에 화약이 떨어지자 이순신은 급히 이봉수를 찾는다. 이봉수는 바다 속에 철쇄를 심을 때 나무 도르래를 이용하는 발상을 하기도 하고, 봉수대를 마치 예술품처럼 완벽하게 설치할 만큼 과학자다운 역량을 보였던 인물이다. 이순신은 이봉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가 위기 상황이 닥치자 이봉수를 찾은 것이다. 이봉수는 애매한 기록 하나를 근거로 수없이 많은 실험을 거듭한 끝에 화약의 재료인 염초 제조에 성공하고, 따라서 조선은 승리의 폭죽을 다시 쏠 수 있었다.
조총의 비밀을 밝혀라_ 정사준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최대 무기는 조총이었다. 우리의 승자총통과 비교하면 방아쇠가 있다는 점이 다른데, 그 결정적 차이가 임진왜란 초기, 조선을 벼랑으로 내몰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제의 몸으로 이순신을 찾아 간 정사준, 그는 조총에 버금가는 총을 만들어보겠다는 열정을 밝혔고, 이순신은 그를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과학기술에 열정을 품었던 이필종, 안성, 동지, 언복 등과 팀을 이뤄 마침내 조총에 버금가는 정철총통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양반 정사준과 함께 한 이들은 평민이거나 당시 백성의 대접을 받지 못했던 노비들이다. 이순신은 이렇듯 신분과 상관없이 그들의 능력과 열정을 샀으며, 결국 조선의 과학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천재 전략가_ 이운룡
이순신은 자신의 후계자로 이운룡 장군을 꼽았다. 이운룡은 다름아닌 경쟁자 원균의 부하이다. 1587년 여진족을 상대로 한 녹둔도 전투에서 이순신과 이운룡은 서로의 자질과 됨됨이를 알아본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운룡은 자신의 상관인 원균을 설득해 어려운 시기에 이순신의 출전을 끌어내도록 하고, 이순신도 비록 경쟁자의 부하이지만, 이운룡의 청을 거절하지 않고 도와준다. 이후 한산대첩에서 이순신이 구상한 학익진이 성공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유인 작전을 펼친 장수가 바로 이운룡이다.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두 장수의 합심으로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한산대첩을 이끌어 냈으며, 이후 일본이 다시는 조선 땅을 넘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순신이 빚진 장수_ 전라우수사 이억기
녹둔도 전투에서 이순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발벗고 나서서 이순신을 도와준 장수가 이억기이다. 명문가 자손이었던 이억기는 자칫 이순신과 경쟁 관계에 설 수 있었으나 이순신의 실력을 인정하고, 2인자로서 숨은 도우미가 되길 마다하지 않았다. 이후 전쟁 막바지 일본의 계략으로 이순신이 죽음의 문턱에 섰을 때 조정 대신들에게 이의 부당함을 알려 이순신을 또 한번 구해낸다. 서로를 진심으로 아꼈던 두 영웅은 지금 여수 충민사에 나란히 모셔져 있다.
그리고…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영웅, 이순신
이렇듯 자신의 꿈을 소중히 여겼던 숨은 영웅들은 실력만을 존중했던 이순신 장군을 만나 그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조총으로 무장하고, 수년 간 준비 끝에 조선을 침략한 일본이 단 한 사람, 이순신 앞에 무릎꿇은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끝으로 이순신 장군이 일생 동안 흔들림 없이 지켰던 몇 가지 신념을 중심으로 진정한 영웅의 면모를 낱낱이 볼 수 있다.
이순신은 어릴 적 골목대장 시절부터 ‘싸움은 힘이 아니라 과학’임을 몸소 깨닫는다. 이때의 깨달음이 훗날 최고의 전술가요, 지장(智將)의 명성을 그에게 선물한다. 이순신은 실력과 상관없이 정쟁의 소용돌이에 좌우되는 문관보다는 실력으로 정정당당하게 평가받는 편이 낫다는 생각에 무관의 길을 선택할 만큼 다른 어떤 것보다 실력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았다.
‘어떤 경우에도 실력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원칙, 철저한 유비무환의 자세,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 바로 이러한 점들이 우리로 하여금 그를,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영웅으로 기억하도록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