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대륙은 발전하고 있을까, 퇴보하고 있을까?
국제원조는 아프리카의 발전에 정말 도움이 될까?
바싹 마른 몸의 아이들, 빈곤과 기아가 일상인 환경, 피비린내 나는 내전, 위정자들의 독재와 폭정, 목숨을 걸고 외국행 보트를 타는 난민들……. 지난 몇십 년간 ‘아프리카’ 하면 우리가 흔히 떠올려온 것들이다. 그리고 이렇듯 ‘열악하고 빈곤한’ 지역의 대명사인 아프리카를 위해 그간 세계 각국과 기구들은 지속적으로, 때로는 대규모의 대외원조를 시행해왔다.
그러나 최근 이뤄지는 대(對)아프리카 원조는 단순한 인도주의적 차원의 목적을 넘어서고 있다. 경제가 전반적으로 과거보다 침체되어 강대국들의 패권경쟁이 심화하는 세계적 상황에서 아프리카는 새로운 시장이자 지구촌 마지막 성장동력, 그리고 정치적 아군으로서의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미국 재무장관 재닛 옐런(Janet Yellen)과 중국 외교부장 친강(秦剛)은 2023년이 시작되자마자 각각 아프리카 순방에 나서 향후 아프리카의 발전을 위한 투자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거대한 아프리카 대륙을 강력한 우군으로 만들어 유지하겠다는 것이 양국의 속내다.
한국도 이런 세계적 움직임에 가세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와 플랜트산업협회는 아프리카 21개국을 초청해 ‘한-아프리카 통상산업협력 포럼’을 개최, 양측의 교역 및 산업협력 수요 확대의 모색에 나섰다. 이 포럼에서 한국 측은 산업·에너지 분야에서의 공적개발원조를 적극 추진해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한 이와 별개로 한국 정부는 대아프리카 지원 규모를 2019년 대비 2030년까지 2배 이상 확대해 아프리카의 지속가능발전 목표 달성을 지원할 계획임을 공개하기도 했다
여기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최근의 이런 움직임이 있기 전까지 아프리카에 이뤄졌던 세계적 대외원조는 충분히 효과적이었을까? 수십 년간의 대외원조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아프리카가 빈곤과 기아, 낙후 지역의 대명사인 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그런 문제들이 아직도 그대로인 이유는 지금까지의 원조 규모가 턱없이 작았기 때문일까? 대외원조 규모를 확대하면 아프리카의 발전을 이끌어낼 것이 분명할까?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금을 효율적으로 투자해 최대의 효과를 이끌어내려면 어떤 점들을 고려해야 할까? 이 책은 바로 이런 질문들에 답하는 책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성공적이었던 원조가
아프리카에서는 불가능했던 이유
저자인 로버트 칼데리시는 세계 최대의 원조기구인 세계은행에서 경력의 대부분을 쌓았고, 선진국들의 원조 관행을 조정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일했다. 또한 세계은행에서 아프리카 대변인으로 일하는 동안엔 아프리카 대륙에서 변화를 잉태시키고자 하는 많은 이들과 함께 머리를 맞댔고, 탄자니아와 코트니부아르에 세계은행 지부장으로 부임해 현장 경험을 축적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는 소농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이념과 문화의 차이가 매우 큰 수천 명의 아프리카인들과 접촉하고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 속에서 아프리카에 대해 이뤄지는 국제원조가 그간 실패했던 이유 및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들에 대한 인사이트를 갖기에 이르렀다.
앞서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을 먼저 밝히자면 이렇다. “원조 규모를 키우는 것만으로는 아프리카를 구할 수 없다.” 과거에 있었던 아프리카 국제원조들의 상당수가 실패한 것은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칼데리시가 지적하는 실패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은 ‘필요에 따라 개발 정책의 우선순위를 설정 및 시행하고 그에 필수적인 기관을 설립하는 정부가 아프리카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아프리카의 현실과 대비시켜 저자가 대표적 예로 드는 나라가 한국이다. 1960년대의 한국은 가나만큼 가난했지만 30년 후엔 아프리카에 원조를 제공할 만큼 부강해졌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작은 국가들에서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우수한 경제 정책, 견고한 공공재정, 낮은 인플레이션, 명료한 투자 규정 덕분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더불어 아프리카에서 자생한 독재정치, 아프리카의 잘못된 정치적·행정적 관행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은 채 원조의 목표에 대해서만 논의하려 하는 서방국들, 아프리카 대륙 내 국가들이 경제에 대해 갖는 경시적 시각, 이 모든 문제에 맞서는 데 필요한 힘과 동기를 잃어버린 아프리카인들의 현실 등이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모두 하나같이 아프리카의 대내외적 상황과 객관적 진실을 정확히 파악한 이가 아니라면 결코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전문 보고서처럼 딱딱하지 않고 무게도 잡지 않은, 그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듯 풀어놓았는데도 날카롭고 예리한 시각을 실로 이 책의 많은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이유다.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그러면서도 집약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국제원조와 관련된 아프리카의 대내외적 문제들
저자는 이젠 아프리카에 대한 담론 대부분을 지배하는 과도한 절망이나 우아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또 아프리카의 인재와 기업들을 해방시켜줄 수 있는 구체적 대책을 아프리카인들과 전 세계가 제안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선 그간 외면받아왔던 몇몇 불쾌한 진실이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고, 이 책은 그 생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풀어놓았다.
〈1부. 아프리카는 무엇이 다른가〉에서는 현재의 아프리카가 겪는 문제들의 원인이라 여겨온 요인, 즉 노예무역, 식민주의 냉전, 높은 부채, 국제기구의 조치 등을 회의적 시각에서 점검하고, 아프리카에서 자생한 독재정치가 각 국가에 얼마나 해악적이었는지를 여러 나라의 예로 보여준다. 아울러 아프리카 고유의 문화와 가치가 오히려 그 대륙에 대한 탄압을 묵인하기 위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도 함께 살펴본다.
〈2부. 최전방 이야기〉는 일련의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발생한 만성적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다룬다. 그러한 국가들 중 저자가 특별히 주목하여 자세히 기술한 두 나라는 탄자니아와 코트디부아르다. 줄리어스 니에레레 대통령의 주도하에 아프리카식 사회주의를 표방한 탄자니아는 역설적이게도 ‘자립’을 강조한 덕에 매우 많은 국제원조를 받았다. 그러나 부를 창출하기보다는 흡수하는 국영기업들, 경제성장의 속도보다 빠른 정부 조직 확대로 야기된 예산 부족, 처음에는 억제되는 듯했으나 점차 퍼지기 시작한 부정부패, 실질적인 경제적 인센티브보다는 국가적 자부심에 호소해 농업을 발전시키려 했던 오판 등으로 비전의 현실화에 실패했다. 코트디부아르의 경우는 국민의 노력, 비옥한 토양, 좋은 입지에 힘입어 기적과도 같은 경제적 성공을 이뤘고,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번영과 안정을 누릴 수 있었으나 국부(國父)였던 펠릭스 우푸에부아니의 지나친 반대 세력 통제, 부정한 방식을 통한 엄청난 사유재산 축적 등으로 인해 1999년 12월 군부의 정부 전복이 일어나며 기적도 끝나버렸다. 이 두 나라와 관련된 내용은 각국의 개별적 역사뿐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이 대외원조와 관련해 고질적으로 겪어온 갖가지 문제들을 집약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3부. 사실과 마주하기〉에서는 서방국들이 아프리카를 지원할 때 당면하는 어려움, 그리고 아프리카 정부들과의 개별적인 정책 추진에 걸림돌이 되었던 요인들을 살펴본다. 특히 세계적 이슈가 되었던 차드-카메룬 송유관 프로젝트 진행과 관련한 스토리는 아프리카의 미래에 투자할 경우에는 좀 더 적극적인 개입이 효과적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더불어 아프리카의 문제를 바라보고 인식하는 데 있어 세계와 아프리카 지도자들 사이의 크나큰 간극을 보여주는 실례들도 함께 제시한다.
이 책의 실질적 가치는 아프리카의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데 있지 않다. 〈4부 미래를 향해〉에서는 개발협력 전문가인 저자가 아프리카의 진정한 발전을 바라며 애정 어린 시각으로 역설한 아프리카 대외원조 정책 변화의 필요성과 아프리카를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시킬 대외원조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10가지 제안을 통해 제시한다.
리스크와 가능성 모두를 품은 아프리카 개발협력,
아프리카 전문가의 현실적이고 냉철한 제언이 필요한 이유
이런 점에서 아프리카 대외원조엔 우리가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리스크가 여럿 존재한다. 그러나 이 책의 실질적 가치는 아프리카의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데만 있지 않다. 아프리카의 진정한 발전을 바란다는, 그리고 아프리카인들에게 내재된 강인한 미덕과 문화가 건설적으로 발현하길 바란다는 사실은 책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러한 애정 어린 시각으로 저자는 현재까지의 아프리카 대외원조 정책이 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며, 아프리카를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시킬 대외원조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열 가지 제안을 통해 제시한다.
저자가 내놓은 제안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급진적이고, 어떤 것은 전통적 시각과 정면으로 배치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각 국가에 대한 직접적 원조의 50퍼센트 축소’다. 직접적으로 이뤄지는 아프리카 대외원조는 오히려 그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예산이 적을수록 필연적으로 더 잘 관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대외원조 관련 예산이 축소되면 아프리카 국가들은 원조금을 둘러싸고 국가 간에 건설적 경쟁을 치열하게 벌일 테고, 엄격한 원조지원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소수 국가들의 프로젝트가 원조 대상으로 선정될 수 있다.
제안 중에는 ‘공개적 정치토론과 공정한 선거’라는, 기존의 아프리카 정치지도자들이 암묵적 혹은 노골적으로 외면해왔던 정치적 사항들을 국제사회가 원조와 관련시켜야 한다는 것도 있다. 수년간 원조기구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부 자체보다는 ‘거버넌스’에 대해 논하고, 또 정치와 경제 사이엔 직접적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회피하며 원조를 진행해왔다. 아프리카 국가들에게도 ‘사생활’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아프리카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스스로 일으키는 대대적 개혁이기에, 이러한 ‘무개입’ 원칙은 더 이상 고려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초판이 2006년에 나왔다는 점에서 혹자는 이 책이 시의적으로 상당히 뒤떨어졌을지 모른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저자는 2023년 한국의 독자들에게 띄우는 글을 통해, 책을 처음 집필했을 당시와 현재의 아프리카 상황이 근본적으로는 크게 달라진 바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아프리카 대외원조에 대한 국가와 정부 차원의 관심과 규모가 늘어난 지금, 이 책은 향후 이뤄질 원조에 따르는 리스크는 줄이고 효율과 효과의 가능성은 높일 것이란 점, 그래서 아프리카를 한국의 또 다른 우방으로 구축해나갈 가능성도 열어준다는 점에서 반드시 참고해야 할 필독서다.